2022년 4월 4일 월요일

무량광을 보고 붓다를 이루는 과정*영산불교 현지사

 


무량광을 보고 붓다를 이루는 과정



이뿐이랴! 큰스님께서는 더 상세하고 자상하게 무량광을 보고 붓다
을 이루는 과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이 수행승은 공부 중에 무량광을 봅니다. 그런 다음 또 하나의 큰
관문을 거쳐서 자기를 찾아온 많은 부처님들을 뵙고 직접 법문을 듣게
됩니다. 

거룩하신 부처님들의 법문을 듣고 공부를 지도 받는 것입니다.
보다 자주 깊은 삼매에 들어가서 붓다로서의 공부를 마치게 됩니다."

큰스님께서 법회에서 설법하신 바에 의하면 또 하나의 큰 관문은 바
로 육종진동을 맞아야 된다고 하신다. 그래야 부처님의 법문을
들을 수 있으며 지도를 받아 보다 깊은 삼매에 자주 들게 된다고 말씀
하신다.

여기서의 가르침은 서양의 신지학에서도 거론되는 이야기이다.
즉, 서양의 뉴에이지 문명과 신비주의 학파의 구심축을 이루는 신지학
에서도 수행자가 정신계의 스스로부터 공부를 배워야 수행이 무르익고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다.

큰스님의 법 세계는 이미 서양의 정신 세계의 흐름과 위상을 근원적
인 측면에서 포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불교는 전 세계의 모
든 수행 문화의 지조이자 원류라고 할 수 있다.

큰스님의 불신사상에 대한 법 세계가 얼마나 원대하고 통합적인지는
다음의 가르침을 보면 잘 해의할 수 있다. 

즉 큰스님께서는 "불과를 이룬 이의 4개의 영체는 각기 독립해서 
분리하여 활동합니다. 바람과도 같이 이 거짓몸뚱이에서 빠져 
나와서 말입니다. 

죽을 때는 4개의영체가 자기 불신, 부처님 세계에 있는 자기 불신과 
하나로 계합합니다. '지복의 몸'과 하나가 됩니다. 

그 불신원만보신은 무아 속 절대세계, 즉 상적광토에 청정 법신을 둡니다. 

자기의 법신, 곧 '우주적인 몸'을 둡니다. 이제 우주 자체시공을 
자체화함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원만보신의 세계를 밝히신다.

신지학에서 에텔체, 아스트럴체, 멘탈체, 코절체로 일컫는 4대 영체
의 존재 의미를 그 어떤 문헌이나 서적보다도 극명하게 설하신다. 즉
4대 영체의 존재 의미는 불신과의 계합을 위해서이며, 4대 영체가 경
험한 모든 인생 도정의 공부 내용이 불신 속으로 녹아든다는 사실이다.

이 얼마나 미증유의 사실이며 심오한 법 세계인가 말이다. 우리의
영혼체는 사바세계를 통해서 리모털(재운명화)의 과정을 겪어가
면서 새로운 배움과 체험을 얻는다. 하지만 그러한 배움과 체험이
죽음으로써 모두 허망하게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 수행자
들의 세계이다.

하지만 큰스님의 법문을 잘 해의하면 그렇지 않음을 여실히 알 수
있다. 즉, 불과를 이루게 되면 배운 내용을 가지고 간다는 것이다. 바
로 지복의 몸인 원만보신에 보존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휼륭한 가르침이 아닌가 말이다! 이는 정말 가히 큰스님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경천동지의 사자후가 아닐 수 없다.

하이테거가 이야기한 바처럼 인류의 무수히 많은 역사를 통해서 면
면히 내려오면서 우리는 끊임없는 내적 투쟁을 해왔다. 무엇을 위해서
내적 투쟁을 해왔단 말인가?

만약 큰스님이 안 계셨다면 우리는 불신사상, 즉 붓다의 삼신불에
대해서 알 수도 없고 제대로 파악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류가 유구한 역사 이래로 내적 투쟁을 해온 이유를 몰랐을 것이다.

아니 전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답은 나왔다.
인류가 유구한 역사를 통해서 내적 투쟁을 해 온 것은 다름 아닌
영원한 생명으로서의 우주적인 몸을 구현하기 위함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이다.

재삼 강조하는 바, 이는 가히 큰스님이 친히 증험한 붓다의 경지가
아니고서는 어는 누구도 친히 설할 수 있는 법문이 아님을 우리는 명
각해야 할 것이다.

무량광은 본원광이요, 부처님 광 다음의 불신에 대한 말씀은 법성으
로서의 자성광과 구별하여 무량광을 밝히고 계신다.

"불신보신은 '지복의 몸'이라 하겠습니다. 지혜와 복덕을 완전 구족
하기에미래제가 다하도록 진락을 누리기에그런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청정법신 곧 '전우주적인 몸'이 육체적인 형태를 띠고 경험세계 속에
반영된 몸이 바로 불신입니다.

부처님의 몸, 곧 불신은 거듭 말씀드리지만 엄청난 광도를 지닌
무량광으로 이루어집니다. 무량광은 우주의 근원인 빛(성광)이 아
니라 그것의 본원(엑기스)광이요, 부처님 광입니다."

자세히 이 말씀을 해의해 보면 상당히 심원한 가르침들이 녹아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원만보신은 유시무종으로서 미래제가 다하도록 진락을 누린다는 점,
둘째 원만보신은 청정법신의 육화된 형태로 경험 세계에 반영된 몸이라는 점,
셋째 견성이나 깨달음을 얻은 후 드러나는 자성광이 아니라 자성광의 본원광인
부처님 광이 바로 불신이 발하는 무량광이라는 점이다. 자성광이 나무의 한 조각
잎파리라고 하면 무량광은 바로 나무의 중심 줄기가 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큰스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불신을 얻지 못하면
붓다가 아니며 사바세계에 한 분의 붓다가 나오려면 삼계왕이신 석가
모니부처님의 선택이 있어야 합니다. 주로 선근 보따리가 붓다 되기에
충분한 수행승이 낙점됩니다. 선택된 이가 바로 상품상의 보살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항은 첫째, 불신을 얻어야 붓다가 된다
는 사실이다. 기존 선불교에서는 부처는 마음이고 마음이 부처
라고 한다. 그렇게 불교의 위상을 격하시키고 실추시켰다. 또한 선불교
는 위빠사나 명상, 안반수의(아나파나시띠), 염불선 등 다양한 불교 수행
체계를 외면하고 오로지 간화선으로 불교 수행체계를 정형화시키고
박제화함으로써 불교의 지고지순한 생명감을 멸실시키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큰스님께서는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 분연히 붓을 들으신 것이다. 우리는 이 점 큰스님께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둘째, 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선근 보따리가 중요함을 여실히 강조하
고 계신다. 수행자가 우주적으로 무한한 선근을 지었을 때 붓다가 될
수 있다는 점, 매우 합리적이고 보편 타당한 가르침이다.

하지만 큰스님이 아니 계셨다면 우리는 이 점을 명료하게 알지는 못
했을 것이다.

셋째, 상품상의 보살이 붓다 되기 위한 후보가 된다는 점이다.
큰스님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는 하나 수행 비결 내지
수행 요결이 아닌 것이 없다.



출처/ 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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