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2일 토요일

영체의 청정도 분리도와 영체별 가는 세계



중생은 많은 업을 짓기 때문에 영체가 심하게 오염되어 있습니다.  매우 더럽습니다.  비유하자면 오물통에서 막 건져낸 것처럼 악취도 나고 더럽습니다.  시커먼 숯검댕이 같다고도 합니다.

영체는 청정해질수록 흰 색으로 변해갑니다.  그래서 지옥 .  아귀 . 축생의 삼악도에 갈 영체의 색깔은 검은 색입니다.  하늘세계6하늘 54품는 1하늘에서 6하늘까지가 있는데 가장 낮은 6하늘에 가는 영체는 회색입니다.  1하늘에서 5하늘까지는 깨끗한 흰색입니다.  하늘 위에는 성중하늘3하늘 27품이 있는데 여기에 가는 영체는 빛이 납니다.  성중 1하늘 상품1~3품은 윤회를 벗어나는 아라한의 법위인데 아라한의 영체는 보름달처럼  빛이납니다.

그리고 네 개의 영체는 깨끗할수록 모양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분명하게 분리가 됩니다.  대부분의 중생은 영체가 완전히 붙은 상태로 있습니다.  하늘세계의 천인은 영체가 붙어있지만 다섯 손가락처럼 모습이 드러납니다.  윤회를 벗어나는 아라한이 되면 오리손 정도로 영체가 분리됩니다.

정토보살이 되면 영체가 완전히 분리된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붓다가 되면 네 개의 영체가 개별주체로서 자유자재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영체의 청정도와 분리도는 우리가 어느 차원의 세계에 가서 살 수 있느냐 하는 자격기준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 우리 네 개의 영체 중 어느 한 영체가 주체가 되어 가게 됩니다.  4번 영체겉부분는 중음계의 무주고혼귀신으로 갑니다.  사람이 비명횡사했거나 집착이 너무 많으면 죽어서 명부저승에도 못 들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4번 영체가 주가 되어 가고 1~3번 영체는 4번 영체 속으로 겹치게됩니다.

지옥에 갈 때는 3번 영체로 가는데, 이때 4번 영체의 겉부분은 떨어져 나가고 속부분이 함께 가게 됩니다.  물론 1 . 2번 영체는 3번 영체 속에 겹칩니다. 하늘세계에 갈 때는 4번 영체의 겉부분과 속수분이 완전히 떨어져 나가고 3번 영체로 가게 됩니다.  물론 1 . 2번 영체는 3번 속에 겹칩니다.

생사를 해탈한 아라한의 경우는 2번 영체로 가고 나머지 1 . 3번 영체는 2번 속에 겹칩니다.  물론 1 . 2번 영체는 3번 속에 겹칩니다. 아미타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세계에 가려면 정토보살
이 되어야 하는데 이때는 1번 영체로 가게 됩니다. 2  . 3번 영체는 1번 속에 겹칩니다.

그리고 붓다의 절대계에 가려면 네 개의 영체가 완전히 빛덩어리가 되어야 합니다.  네 개의 영체는 개별적으로 활동하면서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물론 네 개가 한데 뭉치면 그 힘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무아설과 무아윤회 그리고  유아윤회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부처님께서는 현상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중생에게 나에 대한 집착, 나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게 하려고 무아를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한편 부처님께서는 <<열반경>>에서 상락아정이라는 열반의 4덕을 말씀하시면서 무상이 아닌 상의 세계와 고가 아닌 낙의 세계, 무아가 아닌 아의 세계, 부정이 아닌 정의 세계를 말씀 하셨습니다.  즉 대열반을 이룬 본체계에서는 영원불변하는 '나의 실체'가 있다고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또한 영산 당시에는 천도재를 통해 영혼체가 당연히 존재한 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처님의 깊은 뜻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한편으로는 나에 대한 집착, 나라는 생각, 즉 아상을 버리게 하려는 방편으로 무아를 가르치시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혼체의 존재와 나의 실체가 있다는 것을 여러 방편을 통해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이와 같은 가르침으로부터 영혼체는 본체계의 존재로서 '나의 실체'이고 윤회와 해탈의 주체가 된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무아설 자체는우리 부처님의 심오한 가르침이란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아무튼 이 무아설은 불교의 수준 높은 철학적, 종교적 가르침이란 것을 다시 한번 말해둡니다.

문제는 무아설이 윤회와 결부되어, 무아윤회라는 말이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무아를 바르게 해석한다면 '무아설'이라 할때의 '무아'의 개념과 '무아윤회'라 할 때의 '무아'의 개념이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무아윤회라는 말은 일반적인 사용 예에 따라 '윤회 주체가 없는 윤회'로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반면에 유아윤회는 '윤회 주체가 있는 윤회'입니다.  영산불교에서 주장하는 것은 당연히 유아윤회입니다.




비아인 영혼체가 윤회 주체 - 유아윤회


유아윤회라 해도 실질적으로 무엇이 윤회하는가 하는 구체적인 문제에 이르게 되면 문제가 간단하지 않습니다.  유아有我라고 할 때의 윤회하는 아我는 어떤 아我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됩니다.

윤회하는 아我는 어떤 성격을 갖고, 어떻게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윤회하는 아我는 비아非我를 말합니다.  물론 비아非 我라는 개념 자체는 여기서 처음으로 제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아보다는 비아가 더 적절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들이 비아非我를 이야기 하는 것은 현상계에서 내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 없다고 하면 안 된다는 취지에서 무아보다는 비아가 더 적합하다고 하는 정도의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영혼체 개념까지 포함하여 말하는 비아윤회의 비아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윤회 주체와 관련지어 비아윤회라는 말을 사용하지는 못했습니다.

특히 비아인 영혼체가 윤회한다는 사실은 영산불교에서 최초로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산불교가 정법으로서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제 비아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이비아의 의미는 영혼체와 결부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바르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현상계에서 오온의 집합체로서의 나는 죽어 없어지는 존재이므로 실체가 있는 진정한 아我가 아닌 비아非我입니다.  그러나 살아있을 때의 '나'라는 존재는 앞의 영혼체 부분에서 본대로 육체라는 몸과 4개의 영혼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중생의 영혼체는 무량 세월을 윤회전생하면서 태산같은 업장,  탐진치 삼독, 108번뇌,  습, 기와 그 찌꺼기 등 비본질적인 것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데 이런 비본질적인 것들이 달라붙어 있는 상태의 나는 비아인 것입니다.

반면에 이 비본질적인 것들이 다 떨어져나간 청정무구한 우리의 영체는 영원불멸하는 우리의 실체인 진아인 것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이 영혼체는 육체로부터 빠져 나옵니다.  그리고 비아非我인 이 영혼체는 수많은 생을 살아 오면서 지은 업에 따라 심판을 받고 육도윤회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윤회하는 주체는 바로 이 비아非我인 영혼체인 것입니다. 그럼 비아非我인 영체는 어떤 존재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본체계의 존재라는 영혼체가 어떻게 윤회를 할 수 있느냐는 의문도 함께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체를 설명할 때 1번 영체가 인간의 본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1번 영체는 연기 이전의 존재입니다.  이 1번 영체로부터 어떤 원인이 작용하여 지극히 미세한 의식  생각 같은 것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생각은 수억 겁을 내려오면서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여 업력을 형성하여 2번 영체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2번영체가 점점 타락하면서 업을 지어 3번 영체가 생겨났
습니다.  이렇게 1 , 2, 3번 영체가 생기면서 윤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때의 윤회는 성중하늘과 욕계 6하늘을 오가는 윤회였습니다.  육체는 아직 생기지 않았을 때입니다.  3번 영체가 더욱 타락하여 오랫동안 업이 쌓여 4번 영체를 만들면서 육체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육체를 가진 인간은 몸에 대한 집착으로 점점 탐심이 많아져 죄를 많이 짓게 되고 이 죄업력이 쌓여 지옥  아귀  축생계까지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육도윤회계가 생기고 인간은 육도윤회를 하게 된 것입니다.  1번 영체는 영원불멸하고 오염이 될 수 없습니다. 4번 영체는 죽습니다.  그리고 모태에서 다시 생깁니다.  1. 2. 3번 영체는 붙어 있으면서 영원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정토보살부터는 분리 되고 붓다의 경우는 네영체 모두가 개별적으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중생의 2. 3. 4번 영체는 수천만 생을 살아오면서 지은 업장, 탐진치 삼독, 108번뇌, 악의 습  기와 그 찌꺼기등 비본질적인 것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 엄청나게 오염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번 영체와 오염된 2.  3번 영체는 겹쳐서 하나의 윤회 주체가 됩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 윤회하는 주체인 1. 2. 3번 영체는 본체계의 성격과 현상계의 성격이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상이한 속성의 영체가 복합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윤회를 할 수도 있고 해탈을 할 수도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비아인 윤회 주체는 바로 이 비본질적인 것들로 오염된 영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영체의 비본질적인 것을 완전히 벗겨버리면 해탈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힌두교의 아트만 이론은 이 영체를 세밀하게 몰랐기 때문에 윤회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교는 영원불멸하는 자아가 존재함을 인정하여 힌두교의 아트만 이론과 같아진다고 우려할 일이 아니라, 아트만 이론보다 한 차원 높은 체계적인 영체론과 윤회이론을 주장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전 세계에 알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인연법, 4성제와 8정도,  3법인,  불신론,  구원론, 수행록으로 정법의 교설체계를 갖추고 진리의 생사관을 전 세계에 확산시켜 인류를 고통으로부터 구원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현재 불교계의 윤회관련 이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1) 무아윤회가 가능하다는 의견에 대해
-무아윤회를 인정하면 불교가 아닙니다

윤회의 주체가 없어도 윤회가 가능하다는 지금 불교계의 무아윤회 이론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론입니다.  심식류가 윤회한다는 의견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교의 인연법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최고의 진리이며 우주이법입니다.  모든 불교교리의 사상적, 이론적 토대가 되는 진리입니다. 업과 윤회이론은 바로 이 인연법의 인과응보적 성격
이 중심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이 인과법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합니다.

첫째는 행위를 한 자, 즉 업을 지은 자가 반드시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행위 또는 업의 주체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업을 지은 자와 그 과보를 받는 자가 반드시 동일인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업자듯自業自得의 이치입니다. 그리고 이 두 조건은 칼날같이 정확하고 명확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주이법이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애매하거나 불명확하거나 불투명하게 적용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윤회주체가 없어도 윤회가 성립한다는 이론은 우주이법을 완전히 거스르고 불교 교리를 짓밟는 이교도의 사설邪設임을 분명히 해둡니다.



무아설과 윤회의 양립 가능성에 대하여

지금 불교계에서는 잘못된 무아설을 토대로 무아와 윤회가 양립할 수 있다는 이론과 양립이 불가능하다는 이론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아설은 현상계에서는 '무아 또는 비아'의 개념으로, 본체계에서는 '진아'의 개념으로 설명되는 진속 2제 眞俗二제의 성격을 갖는 불교만의 차원 높은 교설로서 윤회 주체를 인정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따라서 아무런 모순이 없습니다.  거듭 강조합니다.

무아설을 올바로 이해하는 한 무아설 자체와 윤회이론 간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습니다.  다만 무아윤회라고 두 단어를 연결시켜 사용하는 경우에는 앞에서 본것처럼 '윤회 주체가 없는 윤회'라는 의미가 되어 큰 문제가 생깁니다.

본체계의 실체까지 부인하는 잘못된 무아설을 전제로 했을 경우에는 당연히 무아설과 윤회이론은 모순이 된다는 주장이 맞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절대로 양립 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체 없음'과 '윤회이론'이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여러 학자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장하는 내용의 성격은 학자들 간에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무아설과 윤회론 중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불교도라 할 수 없습니다. 김진 교수는 무아와 윤회의 모순을 주장했다가 여러 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는데, 이후 학자들 간에 이 문제에 대하여 상당한 논쟁이 오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논쟁 자체는 불교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 합니다. 

그러나 김진 교수가 "윤회설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전제 조건은 자아의 통일성이다.  이전의
존재와 현재의 존재, 이후의 존재에 대한 자아 통일성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도덕적, 구원론적 논의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라고 본 것은 매우 정확한 견해입니다.

김교수가 거론한 칸트의 요청설은 필요하지가 않습니다.  우주의 궁극적 진리를 깨달으신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은 조건명제로서의 요청이 아닌 실질적이고 체험적이고 현실적인 인생 진리라는 것을 믿어 주시기바랍니다.  무아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나면 이런 문제는 저절로 풀릴 것이라 생각됩니다.



심식류의 윤회론, 상속이론에 대하여
- 식識은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앞에서 부파불교의 윤회 주체와 관련된 이론들을 본바 있습니다.  고정적 실체를 가진 윤회 주체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모두 심식류의 어떤 것 - 근본식 .  유분식 . 푸스갈라 . 일미온 . 궁생사온 . 오온 등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들 심식류가 의미하는 바는 상호간 다소의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푸드갈라는 그 의미상 다른 심식류에 비해 주체적 성격이 보다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식류 모두가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연속되는 생명체라는 개념에서는 공통점을 갖는다고 하겠습니다.  대승불교의 유식학파에 이르면 이들 심식류가 아뢰야식이라는 단일식으로 통일이 됩니다.

그리고 국내 학자들의 견해를 보면 윤회를 업이나 연기의 원리에 의한 연속적인 흐름의 과정이나 오온과 같은 찰나적 존재의 무한한 연결과 같은 관점에서 파악하는 경향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현재 불교계에서 고정적 실체로서의 주체가 없어도 윤회가 가능하다는 무아윤회이론 주장자들의 견해를 크게 보아 '아뢰야식 윤회 주체론'과 '상속이론 관점의 윤회이론'으로 정리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잘못 정리가 되었다면 조언을 당부드립니다.

이제 영산불교의 견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뢰야식은 어떠한 경우에도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심식류도 마찬가지입니다.

첫째, 식識은 우리의 인식기좐이 인식대상을 만나 일어나는 식별작용으로서 인식기관몸을 떠난 독립된 식은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초기불교의 교리대로 설명하자면 우리의 여섯 개 감각기관인 육근六根, 즉 안 . 이 . 비 . 설 . 신 . 의근이 각각  이에  대응하는  여섯 가지의  대상인  육경六境, 즉  색 .  성 .  향 .  미 .  촉 .  법경을 만나 육식六識, 즉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 . 의식을 형성합니다.

이렇게 볼 때 육근을 떠나서는 식이라는 분별작용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본이 되는 몸뚱이, 즉 기체基體 또는 본체本體가 존재해야 식識이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후에는 식識이 완전히 없어지느냐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육근이나 몸이라는 것을 반드시 우리 눈에 보이는 몸이나 신체 기관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하면 사후의 우리 영혼체도 육근을 다 가지고 있는 우리의 또 다른 몸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생전에 우리 몸이 가지고 있던 모든 의식은 4번 영혼체로 옮겨집니다.  그래서 저승에 못 들어가고 중음계에서 무주고혼의 귀신으로 있는 동안은 생전의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속인이나 영능력자가 부르면 와서 말도 하고 생전의 억울함도 호소할 수 있는 것입니
다.  텔레비전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이런 장면은 결국 저승명부에 못 들어간 귀신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물론 대성자는 무속인과는 다른 차원에서 영혼체를 보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식識 자체는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위하는 기능이 없습니다.  우리가 보통 어떤 행위를 한다는 것은 생각하고 판단한 후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악에 대한 어떤 가치적 판단일 수도 있고, 가치와 관계없는 일상적인 판단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뇌를 포함한 우리의 신체기관과 영혼체에 반영된 업의 합작품으로서의 정신적 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식識은 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위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따라서 식識은 행위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행위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히 과보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는 말입니다.  식識에게 잘못 했다고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잘했다고 상을 내릴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식識은 지옥에 가서 벌을 받을 수도 없고 천상세계에 가서 즐거움을 누릴 수도 없는 것입니다.  식識이 과보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생전에 죄를 지은 사람은 모두 식만 떼어내서 감옥에 보내고 몸은 밖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는 논리도 가능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이런 결과라면 불교의 육도윤회이론이 무너집니다. 불교의 존재 이유도 없어집니다.  따라서 식識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그것을 가지고 있는 주체가 있을 때입니다.  아뢰야식은 독립적으로 윤회를 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아뢰아식의 주인공인 영체가 윤회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윤회를 업이나 연기의 원리에 의한 흐름의 연속과정, 또는 오온과 같은 찰나적인 것들의 무한한 연결이라고 보는 상속이론의 관점도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행위자가 있어야 하고 행위자와 과보자의 동일성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인과법의 요건을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학자들이 주장하는 오취온적 자아, 업행위의 자아, 윤회의 자아라는 것도 애매모호한 개념으로서 인과법에 의한 윤회의 진정한 의미와 윤회 주체 문제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예로서 오온이 상속한다는이론도 의문점이 많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오온이 다 흩어져버리는데 이것이 어디에 있다가 어떤 원인으로 다시 모여 또 다른 오온을 형성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찰나적인 존재(?)의 연속이 과보를 받는 윤회의 당사자라는 개념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 매개체로서 중음신을 말하기도 하지만 중음신은 저승에 들어가지못한 4번 영혼체인 것입니다.  그리고 육신을 이루는 오온이 육신을 갖지 않는 지옥이나 천상세계를 어떤 형태로 가는지도 궁금합니다.

또한 윤회를 벗어날 경우 오온이 완전히 소멸되어 무화無化되어 버린다면 해탈의 의미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는지요?  오온이 남기는 업력이 상속한다는 논리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업력은 윤회를 하게 하는 원인이고 하나의 잠재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잠재적인 힘은 어떤 의지처나 매개체가 같은 주체 개념이 있을 때만 상속의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업력이 그때 그때 업의 과보인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낸다고 하면 이것은 윤회의 개념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업력이 다하면 해탈을 할텐데 그때는 무엇을 만들어 내는지, 아무 것도 없는지 생각해 볼 문제가 많습니다.

자아와 윤회문제는 실체주의적 자아관이나 반실체주의적 자아관과 같은 관점의 문제가 아니고 실체의 문제입니다.  본체계의 영역에 속하는 영혼체는 실체입니다.  윤회도 엄연한 현실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궁극적인 깨달음을 이루시고 인간이 윤회하는 여섯 세계의 고통을 보셨고 윤회를 벗어나 최고의 해탈경지를 체득 하셨기 때문에 중생들의 고통을 해결하고자 가르침을 펴신 것이 불교입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라야 할 것입니다.





잘못된 무아설 해석
-무아윤회는 불교의 존립기반을 흔든다

윤회 주체가 없어도 윤회가 가능하다면, 우리의 실체이며 윤회 주체인 영체를 부정한다면 불교는 설 자리가 없습니다.  영체는 불교 생사관의 중심적인 주체입니다.  육도윤회와 해탈이론은 불교의 존재이유를 뒷받침하는 근거입니다.

그런데 윤회와 해탈의 주인공인 영체가 없다고 하면 불교의 존립기반 자체를 흔드는 너무나 엄청난 사태입니다.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일입니다.  얼마나 감당이 안 되는 일인지 아래에 몇 가지 경우를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직접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1.  무아윤회는 인과법에 위배

무아윤회이론은 우주이법인 인과법에 위배됩니다.  진리의 종교인 불교가 어떻게 우주이법에 위배되는 교리를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인연법인과법은 우주이법입니다.  그리고 중생은 육도윤회를 한다고 하는 것 또한 인생의 진리입니다.  사람은 착한 일 많이 하면 천상 등의 즐거운 세계로 가고, 악한 일 많이 하면 지옥이나 축생 등의 악도로 가게됩니다. 

그러면 당연히 행위를 한 자가 있어야 되고 과보를 받는 자가 있어야 하며, 그 두 사람은 동일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이고도 핵심적인 요건입니다.  이것은 우주법칙입니다.  윤회의 주체가 없어도 된다고 하거나, 별도의 주체 없이 심식류의 상속이나 흐름으로 윤회가 가능하다는 의견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론입니다. 

이는 우주이법을 무시허거나 너무나 편의적으로 적용하려는 발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주이법은 거창하고 심오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단순하고 상식적이고 명쾌하기도 합니다.
우주이법은 칼날같이 명쾌하고 분명하게 적용되는 자연법칙입니다.  그러므로 애매모호한 윤회 주체이론은 있을 수 없습니다.



2.  육도윤회론과 해탈론도 근거 잃어

무아라고 윤회 주체인 영혼체를 부정하면 육도윤회도 해탈론도 사실상 성립할 수 없습니다. 해탈열반이 무화無化라면 불교의 존재 이유가 있을까요?

불교 수행의 목적은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고통이 없는 해탈계로 가기 위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중생의 이 고통을 해결해주시기 위해 출가하셨습니다.

그런데 윤회하는 주체인 영혼체도, 해탈계로 가는 주체인 영혼체도 없다면 결국 육도윤회도 해탈이론도 사실상 성립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수행하고 해탈을 이루려고 하겠습니까? 대상주체도 없는데 말입니다.

나의 주체인 영혼체가 있어야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열반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해탈 열반이 아무 것도 없는 무화를 의미한다면 불교의 존재 의미가 사라집니다. 부처님의 구원사상도 의미가 없어집니다.

부처님께서 중생의 고통을 구제하기 위해 6년 동안 그렇게도 혹독한 고행 난행을 하여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신 것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영혼체를 부정하면 불교가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3.  부처님과 보살님의 존재 부정

윤회 주체인 영혼체를 부정하면 불보살의 존재도 부정하는 것입니다. 왜 불교를 믿어야 하는지요? 경전의 그 많은 불보살님은 가공인물인가요?

영혼체를 부정하면 본체계에 존재하는 실체를 부정하게 되므로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계로 간 성자들의 존재마저 부정하게 됩니다.

불교 경전에 나오는 그 수많은 부처님, 보살님들을 부정하고 어떻게 불교를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경 중의 경이라고 하는 《법화경》과 《화엄경》에 나오는 부처님의 엄청난 위신력은 모두 소설이나 비유로 본다는 말입니까?

《법화경 여래부량품》에 나오는 구원실성하신 부처님은 도대체 어떤 존재로 해석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붓다가 되면 생기는 세가지 몸 중, 보신불은 네 개의 영체가 들어간 빛의 인격체로서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 하는 본불입니다. 32상 80종호의 거룩한 상을 갖추시고 눈 뜨고 바쁘게 활동하시는 부처님이십니다. 이런 부처님을 안 계시다고 하면 엄청난 망어입니
다. 그래서 영산불교의 첫 번째 사상이 부처님 실존관입니다.

이런 부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불교는 불교가 아닙니다. 불공을 드릴 필요도 없고 예불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4.  천도재의 근거 상실

영혼체를 부정하면서 천도재를 지내는 이유가 너무 궁금합니다. 천도재를 지낼 때만 영혼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 테지요?

우리 불교계에서는 영혼체를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조계종에서 발간한 <금강경> 표준해설집에서도 인간의 영혼체를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영혼체의 존재를 부인하면서도 대부분의 사찰에서 천도재를 지내고 있습니다.

영혼체가 없다면 지옥 가는 주체도, 짐승이 되는 주체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천도재를 지내는지 너무나 궁금합니다. 누구를 천도시키기 위한 천도재인지요?

설마 얼굴도 형상도 없고 생각과 판단도 못하는 식識을, 나의 부모 조상님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도 없는 식識을 천도시키려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싶습니다.

천도재를 지낼 때는 영혼체가 있고 그 외의 경우는 영혼체가 없다고 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돌아가신 분을 위해 극락왕생하라고 염불을 하는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영산 당시에 목련존자 등 여러 제자의 어머니를 천도시켜준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영혼체가 존재해야 한다고 설명해야 맞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조상을 잘 섬기는 미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하나의 예가 돌아가신 조상에 대해 제사를 지내는 일입니다. 제사는 돌아가신 분의 영혼에게 음식을 공양하고 예를 올리는 의식입니다. 제사 때 오는 영혼은 불교에서 말하면 저승에 못 들어간 영혼입니다. 무주고혼귀신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영혼체를 부정한다면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5.  영혼체 없으면 육신 받을 수 없어

영혼체가 없다면 사람 몸을 받아올 수 없습니다.

부모의 수정시 무엇이 육신을 받는지요?

영혼체는 인연에 따라 부모를 찾아 수정시 들어가게됩니다. 이때 식識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식識을 가진 영혼체가 들어갑니다. 식識은 생각과 판단 능력이 없기 때문에 부모의 인연을 찾아갈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영혼체가 육신을 받는 것입니다. 네 개의 영혼체 중 세 개의 영혼체가 들어가고 가장 바깥쪽에 있는 4번 영혼체는 모태 안에서 생깁니다. 태교의 대상도 영혼체이지 식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혼체가 없다고 하면 안 됩니다.



6.  본체계 아我의 세계 없으면
불교의 위대성 주장할 수 없어

본체계의 아我를 부정하면 불교의 위대성을 주장 할 수 없습니다. 불교가 다른 종교와 같은 차원이기를 진정 원하는 것은 아니겠죠?

무아라 해서 본체계의 아我까지 부정해버리면 불교는 왜소화 되고 다른 종교보다 위대하다고 주장할 수가 없습니다. 불교는 육도윤회세계 뿐만 아니라 아我의 세계인 해탈계에 대해서도 완벽한 실체적 지식체계와 증득할 수 있는 수행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단순히 우주 본성인 공空을 깨친 차원인 견성의 단계는 다른종교도 다 말할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는 차원입니다. 그러나 거기서도 백천만리 더 들어간 정토계, 정토세계에서도 백천만리 더 들어간 절대계는 불교의 위대성을 주장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차원의 본체계입니다.

다시 말하면 불교는 이런 차원의 보살을 내고 붓다를 내는 종교이기에 위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이러한 불보살님을 중심으로 우주 정법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우주법계의 절반 이상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空과 100% 계합한 붓다의 차원에서만 창조주적능력이 나옵니다. 부처님만이 중생의 업장을 소멸시키고 중생을 구제할 수 있는 우주적 구원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런 불보살님을 낼 수 있는 불교만이 실질적인 구원의 종교, 위대한 종교입니다.



7.  대성자는 영혼체를 정확히 볼 수 있어


영혼체는 해탈을 이룬 대성자가 볼 수 있습니다.

영능력자나 무속인도 볼 수 있는 영혼체를 없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인간의 영혼체는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해탈을 이룬 대성자들은 영혼체를 직접 볼수가 있습니다.
붓다의 경지에 이르면 완벽하게 칼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영혼체와 대화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런 성자들의 말씀을 믿고 영혼체의 존재를 믿어야 합니다.

영능력자나 무속인도 저차원에서지만 볼 수 있는 이런 영혼체를 없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무아와 윤회 주체 문제에 대한 맺음말

지금까지 '무아설의 왜곡'이 우리 불교를 망친 주범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올바른 무아설의 이해를 통해 인간의 본체인 영혼체의 존재를 알 수 있었고, 상락아정의 본체계가 실재하고 거룩하신 여러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실제로 계시다는 근거를 확인하였습니다.

육도윤회세계도 마음 속의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임도 보았습니다. 이제 우리 영산불교는 '무아설의 왜곡'이 가져다 준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 진리의 광명이 밝게 빛나는 새로운 정법시대를 열어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첫걸음으로 영산불교는 '영혼체 윤회설'을 공식적으로 불교의 교설로 선언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전 세계 모든 불교도들이 이 진리의 빛을 받고 정법의 길에 동참해주실 것을 간곡히 바라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려 드립니다.

1. 무아의 바른 정의는"형산계의 존재인 '나'는 오온의 집합체에 불과하여 실체로서의 '진정한 나'가 아니다. 그리고 업장 등 비본질적인 것이 붙어있는 오염된 나의 영혼체도 '진정한 나'가 아니다"라는 의미입니다.

2. 무아설을 바르게만 이해한다면 무아이론과 윤회주체 간에 모순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용어 상으로는 비아非我가 보다 적합하며, 무아의 용어 속에는 현상계의 '나'에 집착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겨져 있습니다.

3. 상락아정常樂我淨의 본체계에는 비아가 아닌 진아眞我, 소아小我가 아닌 대아大我가 '나의 실체본체'로서 존재하므로, 경전에 나오는 부처님 보살님들이 모 두 계시고 극락세계 등 해탈계도 실재합니다.

그러므로 육도윤회세계와 극락세계 등 해탈계, 불보살님을 내면의 마음 차원으로만 존재한다고 보는 것은 완전히 사설입니다.

4. 무아를 잘못 해석하여 본체계의 실체적인 아我인 영혼체까지 없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고, 불교의 존립 기반을 흔드는 외도의 교설敎說이나 마찬가지입니다.

5. 윤회의 주체가 없어도 윤회할 수 있다고 하는 무아윤회설은 불교 교리와 우주이법인 인과법에 위배되는 매우 잘못된 견해입니다. 그러므로 윤회의 주체가 있어야 한다는 유아윤회설이 맞습니다.

6. 생각과 판단을 하는 기능이 없는 심식류心識類는 어떠한 경우에도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으며 식識의 주인인 영혼체 만 윤회의 주체이고 동시에 해찰의 주체가 됩니다.

7. 윤회의 주체는 업장 등 비본질적인 것들로 오염이 되어 있는 비아인 영혼체 1.2.3번입니다. 비본질적인 것들이 다 떨어져나간 청정무구한 영혼체는 해탈의 주체입니다. 따라서 영혼체 윤회설만이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임을 확인합니다.

8.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영체는 영원불사하는 인간의 본체로서 업을 짓는 주체도 영체이고 과보를 받는 주체도 영체이며, 윤회를 하는 주체도 영체이고 해탈을 하는 주체도 영체이므로, 아래로는 지옥 중생에서부터 위로는 붓다에 이르기까지 가야 하는 머나먼 여정의 주인공이 우리의 영혼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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