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14일 토요일

외도의 세계

 외도의 세계




그렇게 빨리는 아니었지만 학교를 나와서 곧 스님이 되었습니다. 그때의 내 나이가 스물 네 살쯤 되었을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진리란 무엇인가? 정법이 무엇일까?’ 하고 대단히 파고 팠습니다. 이 세상, 이 사회에 남아 있었더라면 아마 상당한 고위직 공무원에 올라갔을 것입니다. 그것을 버리고 스님이 되었지요.

유독 구도심이 많았던 내가 지금 생각해 봐도 대단했습니다. 큰스님들 밑에서 공부를 하고, 또 산중 토굴에 들어가서 도반하고 공부를 하다가 스님이 된 지 10년쯤 되어서 ‘내가 깨친 바가 그러니까 나는 이 정도면 이 나라에서 그 어떤 선지식 못지않으니까 중앙으로 가서 내가 알고 있는 진리를 널리 펴는 포교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그때까지는 선불교(禪佛敎)가 우리 모두가 가야할 진정한 불법의 길이라고 알았지요. 그렇지만 내가 득력(得力)을 해보니까 그들이 이야기하는 대자유는 아니었습니다. 자유롭긴 해도 그것은 제한적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화엄경》을 보고, 히말라야 초인들의 삶을 보고, 카발라 신비주의 쪽을 들여다보고, 밀교를 보니까 이것은 아니다. 나는 여기서 만족을 못한다. 그리해서 외도라는 지탄을 받았지만 과감하게 염불(念佛)로 회귀했습니다.

그 후로 30여 년 간 염불수행을 하면서 여러 교학을 보고 동서고금의철학을 살펴봤어도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우리 '광명 만덕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진짜 염불을 했습니다.《금강경》을 읽고, 다라니를 하고, 석가모니불을 열심히 열심히 칭명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으로부터 붓다의 인가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붓다라고 하면 엄청난 법위올시다. 부처님 이후로 두 셋밖에 되지 않습니다. 정말로 뚫은 분은 '광명 만덕'입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것이 정법이오’ 하고 정말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리고 오늘 처음 오신분! 잘 오셨습니다. 지금까지 내 법문을 많이 들으신 분, 오늘도 새로울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와 인연이 있기 때문에 금생에도 잘살아야 되고 다음 생에도 잘살아야 되고 그리고 윤회를 벗어나야 됩니다.



‣윤회 있습니다.


‣육도 있습니다.


‣지옥 있습니다.


‣극락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한 사람은 역사 이후로 없습니다. 이 정도만 말씀드리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내가《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을 쓸 때 이 사람을 소개했습니다. 누구냐? 정북창(鄭北窓)입니다. 책을 많이 읽으신 분은 아마 그냥 알아들을 것입니다. '

정북창', 아시는 분? 아~! 몇 사람 있네! 됐습니다. 이분은 내가 그 때 한두 줄 정도로 소개했습니다. ‘스스로 만장(輓章)을 쓰고 좌탈(座脫)한 유가(儒家)의 큰 도인’ 아마 이렇게 써놓았을 것입니다. 

이 정도로만 설명했습니다. 좌탈이라는 것은 앉아서 죽었단 말이에요. 만장(輓章)을 아시죠? 만장, 여러분 상여 나갈 때 만장 나가지요. 스스로 자기 만장을 써놓고 좌탈한 분입니다.


그분은 엄밀히 말하면 유가(儒家)가 아니라 선도(仙道) 쪽입니다. 내가 오늘 이분의 일생을 여러분에게 간단하게 전하겠습니다. 그 뜻이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한테 왜 이분, 정북창을 소개 올려드리느냐? 이분은 상당한 신통이 있었습니다. 

신통 등을 비롯해서 외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정법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어서 정북창(鄭北窓)이라고 하는 인물을 오늘 여러분한테 소개를 해드립니다.

이조시대의 왕, 중종 다음에 인종, 그 다음에 명종, 그 다음에 선조로 가지요. 정북창은 그 당시 중종 인종 명종 대의 도인이었습니다. 

이인(異人)이었습니다. 그런데 인종이라는 왕은 등극하여 재위기간(在位期間)이 1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인종도 신통을 했습니다. 

정북창(鄭北窓)은 그 인종이 정신적으로 가장 존경한 스승이었습니다. 중종이 승하하고 인종이 등극했는데 인종이 병풍 뒤에다가 스스로 써놓은 것이 있습니다.

‘내가 왕이 되면 영의정은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를 기용할 것이고, 좌의정에는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을, 우의정에는 북창(北窓) 정렴(鄭磏)을 기용한다.’ 이렇게 써놓은 것이 있어요.

이 만큼 정북창(鄭北窓)이라는 인물을 인종이 정신적으로 대단히 존경했습니다. 

여러분이 역사를 배워서 아시겠지만, 정북창이 살았던 전후 의 조선 양반사회는 연산군의 사화(士禍)가 지나갔던 여파 때문에 많은 벼슬아치들이 자기의 목숨을 예측할 수 없었던 때였습니다. 

정북창은 선천적으로 벼슬 길을 싫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았습니다. 

정북창은 공부를 많이 했지요. 유교 불교 선도, 유불선 모두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손꼽을 만한 학덕이 갖춰진 대단한 이인(異人)이었습니다.

인종왕도 학문과 도덕이 상당히 높은 분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제위(帝位)에 오른 지 1년 만에 승하했습니다. 인종왕이 어느 동지(冬至)날 동궁에 있었을 때입니다. 

동지에 팥죽을 쑤어먹지요. 동궁의 관헌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에 별안간 혼자 큰소리로 웃어요. 임금이 실없이 웃는다고. 그러니까 동궁의 관헌들이 ‘어찌해서 그렇게 웃으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아! 글쎄 웃지 않을 수 있겠느냐. 

들어봐라’ 하시거든요. 아마 지금의 북한산일 것입니다. 북한산 아시죠? 북한산에 절이 몇 개 있지요. 그때 북한산에 '북한사'가 있었다고 그래. 비구니 절이었는데 큰 절이었습니다.

‘너희들 들어봐라. 북한사 여승이 동지 팥죽을 이고 댓돌 위로 올라가다가 지금 넘어져버렸다. 넘어져가지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팥죽으로 뒤집어썼단 말이다. 그러니 웃지 않을 수 있겠느냐?’라고 하신단 말이어요. 

그래서 이 사실을 기록해 두었다가 동궁의 관헌들이 나중에 그 북한사를 가서 조사를 해봤대요. 정확한 시간에 그랬다는 거예요. 인종대왕이 그 정도였어요. 그 인종대왕이 가장 존경했던 분이 정북창입니다.  

이제 정북창(鄭北窓)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성은 정(鄭)씨요 이름은 렴(磏), 호가 북녘 북(北) 창(窓)은 창문이라는 뜻의 창(窓)자를 씁니다. 북창(北窓)이어. 아버지가 강원 감사를 지냈던 정순봉이라고 하는 분이었습니다. 감사는 현재의 도지사입니다. 아버지도 대단한 분이어요. 

그분이 강원 감사로 있었기 때문에 정북창이도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에 살았겠지요. 정북창이가 하루는 오대산 월정사 부근에 머물러 있을 때의 일입니다.

날씨는 청명한데 산 아래에 있는 어느 농부 집 울타리에 수많은 참새들이 떼를 지어 앉아가지고 지저귀고 있었어요. 정북창이가 그 지저귀는 참새소리를 가만히 듣더니 ‘큰일 났구나! 저 집에 3일 후면 큰 변이 생기겠구나. 

하지만 전생의 팔자인데 할 수 없지’ 하고 혼자 중얼거리니까 사람들이 의아해 했단 말이오. 미친 소리라고 했지요. 그런데 3일 후 그 집주인인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오른쪽 발을 디딘 돌이 별안간 무너지는 바람에 우물 속으로 빠져서 익사해 죽었습니다.

그제야 모든 사람들이 감탄했지요. 그런데 정북창은 참새 소리 뿐만 아니라 모든 날짐승들의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이해를 했다고 합니다. 대단한 분이죠?

그 북창은 일찍이 심산궁곡(深山窮谷) 깊은 산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의 영통비법(靈通秘法)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영통비법. 나는 거기에 대해서 좀 압니다. 

제법 알지요. 중국에는 대단한 비법이 많습니다. 인도가 비법이 많다고 하지만 중국이 지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비법이 많습니다. 정북창(鄭北窓)이가 이런 영통비법을 한 분이어.

오늘 여러분한테 정법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신통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엄동설한 흰 눈이 산과 들을 뒤덮고 모진 찬바람이 뼈 속까지 스며드는 어느 날, 북창이가 어느 친구 집을 찾아갔답니다. 그 친구는 엄동설한에 너무 추우니까 집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어요. 

옛날 시골집이 허술해서 요즘처럼 난방이나 그런 게 시원치 안잖아요. 북창이가 그 친구 방에 들어가 보니 자기도 춥단 말이에요. 그래서 친구에게 말하길 ‘쇳조각 하나만 구해 오게’ 그랬어. 그 친구가 ‘뭣 하려고?’ 하니까 ‘가지고만 오게’라고 했어.


친구가 밖에 나가서 한참 있다가 호미 조각을 들고 들어왔어요. 호미 알지요? 호미 조각을 들고 들어왔단 말이에요. 북창은 그것을 옆구리에 끼고 얼마 동안 있다가 그 쇳조각을 꺼내서 화로에다가 딱 던졌단 말이에요. 

물론 불이 없는 화로지요. 그랬더니 그 쇳조각이 시뻘건 불덩이로 변했어요. 방안에는 훈훈한 기운이 돌았어요. 

바깥에는 찬바람이 윙윙하는 소리가 들리고 추웠는데, 방안에는 철편이 더욱 열을 가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결국 두 사람의 몸에서 비지땀이 샘솟듯 했답니다. 이제 더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북창의 친구가 ‘너무 더우니까 이제 저 쇳덩어리의 불을 좀 끄소. 너무 더워서 못살겠네.’ 하니까 ‘그런가’ 하고 주문을 외우더니 그 철편을 손으로 딱 드니까 금방 식어버렸어요. 이런 신통이 있었어요.


정북창(鄭北窓)은 자기가 타고난 수명으로 80세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80살 조금 더 살 것이다’ 하는 것을 알았어요. 그런데 정북창은 사는 것이 그렇게 재미가 없어요. 

오래 산다는 것이 정북창으로서는 더욱 심한 고통이었어요. 항상 ‘내가 너무 길게 사는데. 길게 사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하고 자탄했답니다. 어느 날 북창의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그 친구도 선도(仙道)를 한 사람이었어요. 여러분, 선도 그러면 아실 겁니다. 기(氣) 공부 아시죠?

그 친구가 찾아와서 하는 말이 ‘내가 노부모와 자식들을 데리고 제대로 살 수가 없네. 

내가 과거 시험을 봐야 되겠는데 점 한번 봐주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듯이 내가 선도를 그렇게 했어도 욕심이 눈을 가려 흐려지네 그려.

 그러니까 내가 금년에 과거를 보는데 합격하겠는가 불합격하겠는가 점 한번 봐주게’라고 했답니다.


정북창은 그 친구보다도 몇 단계 더 공부가 높이 된 분이거든요. 하는 말이 ‘자네가 선도를 하는데 지금 자네 몸으로는 신선이 될 수도 없고, 인도 환생해서 다음 생에나 가야 신선이 될 것이네. 그리고 지금 자네가 바라는 과거는 금년에 본다고 하지만 신통치 않네.’


그 친구는 자기가 타고난 수명도 길지 않다는 것과 과거에도 합격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낙담해서 돌아갔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여보게 북창! 전번에 자네 말대로 내가 과거에 떨어졌네. 우리 부모는 더욱 늙어가. 자식들은 아직도 미거해. 

그런데 내가 명이 짧다고 하니 죽게 되면 우리 집안은 멸망하는 판국이니 여보게 친구! 나의 명을 좀 잇게 해주소.’ 이렇게 사정을 한단 말이에요. 

북창이 하는 말이 ‘하늘이 정해준 목숨을 어떻게 늘이거나 줄일 수 있단 말인가!’ 하고 딱 잡아뗐어요. 그러니까 그 친구는 그 이치를 알고 더 이상 조르지 못하고 북창을 붙들고 슬피 울었답니다. 다음에 또 왔어요. 또 와가지고 졸라요.

‘날 좀 구해주소. 내 명을 이어줄 사람은 자네뿐이네. 나는 노부모와 우리 자식들을 남겨놓고 죽을 수가 없네.’

그 친구의 명이 가까워졌어요. 그래서 친구는 정북창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간절히 호소를 합니다. 북창이 하는 말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긴 있다네. 또 다시 들러보게. 한번 생각해 보겠네’ 했어요. 그 다음에 찾아온 친구를 향해서 북창이가 하는 말이 이래요.


‘자네 내 말 꼭 명심하게. 돌아오는 새해 정월 보름날 한양의 남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게. 문이 열리자마자 제일 먼저 나무를 싣고 오는 노인이 있을 것이네. 

그 노인에게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달라붙어 살려달라고 해보게. 그 노인이 함부로 떠다밀고 구박해도 끝끝내 애걸해보게. 찰거머리같이 붙어서 애걸해보게. 그러면 수가 있네. 아주 명심하게.’ 이렇게 말을 했어요.

그 당시 새벽3시쯤 되면 파루(罷漏)라고 해서 33번의 종이 울립니다. 수문장이 파루를 쳐요. 그러면 남문이 열려요. 여러분, 남문이 어디에 있지요? 지금의 남대문(숭례문)이어요. 북문은 어디에 있지요? 숙정문(肅靖門)이지. 

그리고 동문이 있지요. 동대문(흥인지문). 서문이 있지요? 서대문(돈의문). 그 남문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아주 고지식하지. 

북창이가 알려준 그 정월 보름날 잠을 자지도 않고 남문 앞으로 갔어. 새벽3시면 자도 되는데, 거기서 꼬박 밤을 지세우고 3시가 딱 되니까 파루가 33번 울렸습니다.

급기야 남문이 활짝 열리니까 와~!하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온단 말이에요. 과연 그때 제일 앞에서 들어오는 노인이 있었어요. 

물론 그 노인이 나무를 싣고 들어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그 친구가 벼락같이 달려가서 그 노인을 붙잡고 ‘노인장님! 노인장님! 저를 제발 한번 살려주십시오. 

저를 제발 한번 살려주십시오.’ 하고 꿇어 엎드렸어요. 그러니까 그 노인이 버럭 화를 내면서 ‘이놈아! 너는 누구길래 남의 길을 막고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느냐! 썩 물러나지 못할까!’

그래도 친구는 더욱 공손한 태도를 보이면서 ‘다 아시면서 뭘 그러십니까? 제발 소인의 목숨을 연장해 주십시오. 소인의 명을 좀 연장시켜 주시옵소서!’ 하고 더욱 공손한 자세로 무릎 꿇고 애원을 했어요.

 ‘이놈아! 도대체 무슨 꿈을 꾸었는지 모르겠으나,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냐? 나뭇단이나 해서 팔아먹고 사는 이 늙은 노인이 그런 재주가 있으면 이 꼴을 하고 다니겠느냐?’

그래도 이 친구에게는 소용없어. ‘영감님! 제발 살려 주십시오. 적선하십시오.’ 하고 사정사정을 했단 말이에요. 이제 노인의 옷자락을 붙잡고 매달립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노인은 대단히 괴퍅해. 뿌리치고 뿌리치고 하는데, 이제는 뿌리치는 것이 문제가 아니어. 채찍을 가지고 막 두들겨 패고 발길질을 한다고. 

친구는 옷이 찢기고 얼굴에 피가 났지만 그를 놓치지 않고 따라갔어요. 온종일 노인을 쫓아다니면서 지성으로 빌고 빌었어. 그럴수록 노인은 더욱 큰소리로 욕설을 퍼붓기만 했지요. 

‘그런데 이 주리를 틀 놈아! 도대체 어디까지 나를 쫓아다니겠다는 말이냐?’ 하니까 ‘황송합니다만 노인장 댁까지 따라갈 것입니다. 노인장의 가복(家僕) 노릇이라도 해서 모시고 지내겠습니다. 

소인의 명을 좀 이어주옵소서!’ 가복(家僕), 종이어요. 종. ‘이놈아! 내가 나무장사나 해서 근근이 먹고사는데 웬 종을 둔단 말이냐?’



노인과 친구는 그렇게 하루 종일 실랑이를 했답니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 한강 나루 백사장까지 왔어요. 그제야 앞서가던 노인의 얼굴이 부드러워진 것을 봤어요.

‘저 모래밭에 좀 앉게.’ 그리고 혼자서 중얼거려요.

‘정북창(鄭北窓)이라는 놈, 매우 고약한 놈이다! 그놈이 함부로 천기를 누설했단 말이야!’ 그러니 친구가 귀가 번쩍하지. 노인이 정북창의 이야기를 하거든. ‘노인장께서는 혹시 정북창을 아십니까?’ 

‘알다 뿐이냐? 그놈이 앞으로 80은 살 놈인데 자기가 안 살겠다니 할 수 있느냐? 그놈 나이 30년을 떼어서 자네한테 주지. 이제 걱정 말고 가거라. 조치는 내가 해놓는다.’

그렇게 말한 후 노인은 어디론지 사라져버렸어요. 그 친구는 오랫만에 정북창이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북창이 하는 말이 ‘오! 잘 왔네. 고맙네. 

내 목숨 30년을 자네가 떼어갔으니 잘됐네. 나는 사실 이 세상에 뜻이 없네. 나는 이 난세의 세상에서 이 이상 더 살고 싶지 않아. 자네는 앞으로 30년 동안 부귀와 영광을 누릴 것이네. 좋은 일 많이 하고 오게. 

그 동안 큰 변란이 여러 차례 일어날 것이네. 그때마다 선비들의 목숨이 초개같이 달아날 것이야. 그때 자네는 높은 관직에 있을 것이네. 부디 공심(公心)으로 나라를 위하고 좋은 일 많이 하게나. 그래서 자네의 수명을 더 늘리게 해준 것이네.’라고 했습니다.

그날 친구와 북창은 얼싸안고 한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섭섭함을 나눈 후 이별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 그 친구는 벼슬이 이조판서까지 올라갔습니다. 이조판서(吏曹判書)이면 지금의 어느 정도인줄 압니까? 

행정자치부, 옛날의 내무부 장관이지요. 그 자리까지 올라갔지만 그 친구는 청렴결백했음은 물론, 나라에 많은 공을 세웠답니다.

 
그런데 정북창은 그 후에도 다른 친구에게 자기의 10년 목숨을 또 선사한 적이 있어요. 30년은 이 친구한테 줬지요. 다른 친구한테 또 10년을 줬는데, 그 이야기가 있습니다.


친구 한 사람이 병이 들어가지고 다 죽어간다고 야단이었어요. 그 친구 아버지가 정북창을 찾아와서 졸라요.


‘내 아들을 좀 살려주게! 내 아들을 좀 살려주게!’ 그렇게 사정사정을 합니다. 노인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던 북창은 이렇게 말해요. ‘천명이 다한 것이니 그것은 인력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오.’


그래도 노인은 북창에게 단단히 달라붙어 사정을 합니다. 노인의 정성이 너무나도 지극해서 북창이 져요.


‘그러면 노인장! 내 말대로 하세요. 오늘 밤 남산에 오르면 두 사람의 중이 바둑판을 벌려놓고 바둑을 두고 있을 것이오. 그 두 중에게 애걸하십시오. 그러면 좋은 수가 생길 것입니다.’


이런 말을 했어요. 노인은 그날 밤으로 남산에 올라갔습니다. 과연 북창의 말대로 두 중이 달빛 아래서 바둑판을 놓고 바둑을 두고 앉아 있었어요. 

거기에 노인이 공손히 인사를 하고서 ‘대사님들! 소인의 아들을 구해 주십시오!’ 하고 또 애원을 해. 애원합니다.


그들이 의아해가지고 ‘도대체 누구 길래 이 밤중에 여기 와서 사람을 살려달라는 거요?’ 노인은 그 두 사람의 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정을 합니다. ‘대사님들! 그러지 마시고 한번만 아들의 목숨을 보살펴 주십시오.’ 하면서 간곡히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러자 중들은 이윽고 투덜거렸습니다.

 ‘아! 그 북창이라는 놈이 번번이 이따위 짓을 한단 말이야! 그러면 할 수 없지. 그놈의 목숨을 또 10년만 감할 수밖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해서 또 북창의 목숨 10년이 그 친구한테로 보태져갔습니다. 친구 아버지가 북창을 찾아가서 무수히 사례를 하였답니다. 북창은 얼마 되지 않아 44세의 나이에 죽었습니다. 84살에 죽을 북창이 44세에 죽고, 그 아버지도 곧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빠졌네요. 그 할아버지, 그 나뭇단을 싣고 한강 백사장까지 가 가지고 정북창(鄭北窓)의 목숨 30년을 그 친구에게 떼어준 그 할아버지 말입니다. 

친구가 정북창한테 ‘그 할아버지가 도대체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어요. 그러니까 정북창(鄭北窓)이가 ‘그 할아버지는 하늘의 사명성군(司命星君)이네.’라고 했습니다.



사명성군(司命星君)이란 말은 인간의 수명을 좌지우지하는 성군이다 그거예요. 우리 불교에서 보면 어떤 성군이지요? 칠원성군(七元星君) 중에서 있어요. 제7성군인데... 우리 불교에서는 사명성군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내가 볼 때에는 사명성군은 외도의 성군인데... 여러분,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그 설명은 시간관계상 내가 생략하겠는데, 사명성군도 명을 좌지우지합니다.


여러분, 선가(仙家)나 도가(道家)에 옥황상제(玉皇上帝)가 있잖아요. 줄여서 상제라고 하잖아요. 상제, 상제는 과연 신이올시다. 신의 왕이거든요. 그분은 이 사바세계의 거의 모두를 관장합니다. 그런데 법계에는 주인이 없다고 했지요. 법계에는 주인이 없어요.


누구나 수행을 해서 선정 삼매에 들어서 쭈~욱 가가지고 보살이 되고, 더더욱 공부를 해서 상품보살이 되고 최상수보살이 되고, 불격을 갖춘 최상수보살이 되고 하면 그런 능력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 불교에서는 옥황상제 급하고 똑같은 분을 누구라고 하지요? 제석천왕이어요. 제석천왕도 그런 능력이 있어요. 제석천왕의 능력은 옥황상제보다도 더 위에 있지요. 여러분, 아셔야 됩니다.

칠원성군도 명을 관장하는 제7 파군성군이 그분이어요.

 

※ 칠원성군들이 관장하는 일을 보면,

<제1성 탐랑성군(貪狼星君)>은 자손들에게 복을 주고,

<제2성 거문성군(巨門星君)>은 장애와 재난을 없애준다.

<제3성 녹존성군(祿存星君)>은 업장을 소멸시켜 주고,

<제4성 문곡성군(文曲星君)>은 구하는 바를 모두 얻게 해준다.

<제5성 염정성군(廉貞星君)>은 백가지 장애를 없애주고

<제6성 무곡성군(武曲星君)>은 복덕을 두루 갖추게 해주며,

<제7성 파군성군(破軍星君)>은 수명을 연장시켜준다.

 

외도 쪽으로는 사명성군이어요. ‘그 할아버지가 그런 분이네’ 하고 정북창이가 말한 거예요.

오늘 정북창 이야기를 한 것은, 여러분들이 신통이라는 것에 대해서 궁금해 하고 내가 그 본질에 대해서 말을 했지만 조금 더 말을 해주고 싶고, 또 외도하늘 이야기를 좀 하고 싶고, 정말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이제 여러분에게 대단히 중요한 법문을 해드립니다.

이 정북창의 신통은 하늘사람 수준입니다. 하늘사람은 오통을 갖추니까요. 그 사람의 명을 미리 알아서 예언을 하고, 병을 고칠 수도 있고, 더 큰 신통으로 가면 여기에 있다가 갑자기 없어져버리기도 합니다.


지금 일본에서 우리 신도분들이 왔는데, 가령 저분들이 큰 신통을 하는 분한테 ‘아차! 내가 지금 일본의 우리 집 거실에 있는 내 책상서랍에 일기장을 놔두고 왔네.

 그 일기장에 우리 자재 만현 큰스님의 법문을 꼭 적어야 되겠는데 이거 갖다 줄 수 없겠느냐?’고 하면 순식간에 가서 갖다 줄 수도 있습니다. 대단하지요?


물위를 걸어갈 수도 있어요. 바다 위를 걸어갈 수도 있고, 비를 오게 할 수도 있고, 하늘을 다닐 수도 있고, 땅속을 다닐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이 큰 신통인데요, 이러한 신통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스님이 여러분들한테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신통을 부리는 것은 외도입니다. 신통은 외도입니다. 그것은 정법이 아닙니다.’ 우선 그렇게 말씀드립니다. 신통이 오는 이유가 있습니다.

몇 가지만 말하겠습니다.


▸용신, 사신이 빙의되면 올 수 있습니다. 이건 저급 신통이지요.


▸외도 하늘사람이, 천마(天魔)라고 하지요. 외도하늘이니까 천마가 붙어서 통하면, 그 외도 하늘들과 통하면 그들의 협조를 구해서, 쉽게 말하면 그들이 도와주면 신통을 부리는 거예요. 그래서 중국이나 인도 같은 데는 많은 신통을 얻는 법이 있어요. 그걸 영통법(靈通法) 또는 통영법이라고 해요. 온갖 법이 많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독사한테 물렸다?

시골에서 독사한테 물려서 곧 죽어. 독사를 부리는 그러한 신통도 있어요. 어떤 진언을 읽으면 그 물은 독사 놈부터 그 근방의 독사들이 다 와서 그 사람 주변을 돌아요. 어떤 진언을 딱 하면 물은 놈만 남아요. 

그래서 ‘사람을 물은 죄로 너를 반드시 죽여야 되는데, 이 정도로만 하고 살려준다’ 해가지고 그 독사의 머리를 잡고 이빨을 빼내고 보내 주는 것이지요. 이런 신통도 있고.


가령, 어느 집이 오늘 제삿날인데 떡을 할 거 아닙니까? 그런데 떡이 먹고 싶단 말이어요. 신식법이라고 해가지고 떡을 가져오는 법이 있어요. 떡시루 채로 온단 말이어요. 바깥에서 '쿵!' 소리가 나서 열어보면 떡시루가 와 있단 말이어요. 

그런 법을 위시해서 많은 법이 있습니다. 호풍환우(呼風喚雨)하는 법도 있고, 둔갑하는 법도 있고요...많습니다. 인도가 그러더라고요. 인도에 많은 비법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 많은 신통법을 조금이라도 부러워하거나 선망의 눈으로 보지마시라고요. 신통한다고 해서 그렇게 대단하게 보지 마시라고요. 그건 정말로 몹쓸 것이니까요. 거기에 혹하지 말라고요.


신통을 얻으면 예언도 할 수 있고, 병을 낫게 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용신이나 사신, 이것들과 통하게 되면 몰래 많은 여자를 간음합니다. 또한 사람을 죽입니다. 이런 무서운 업을 짓습니다.


다른 하늘신을 통해서 하는 신통도 우주질서를 어기는 것이고, 역행하는 것이고, 천기를 누설하는 것입니다. 이건 안 됩니다. 이런 신통을 하다 죽으면 지옥으로 간답니다 여러분. 사람의 몸을 받아 오더라도 신통이 있어가지고 쓸 데 쓰고, 절대로 사람들에게 해를 주지 않고 깨끗이 살았으면 정북창이처럼 앉아 갈 수도 있지요.



그러나 정북창 같은 사람도 정법 문중으로 못갑니다. 선도 하늘 쪽으로 갑니다. 여러분, 그걸 아셔야 됩니다. 제3하늘 정도 갑니다.

 

여러분이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어요.

우리는 외도의 권속이 되면 안 되어요. 정법, 정법의 문중으로 들어와야지, 외도의 권속으로 빠지면 절대 안 돼. 희망이 없고 미래가 없어요. 

그 이유가 있어요. 신통을 하게 되면 외도의 권속이 된다고요. 그 외도 쪽 하늘신하고 통하기 때문에 그쪽 계열의 권속이 되어버린다고요. 이것이 문제예요.



용신이 빙의 되었다?



어제 어느 신도분 천도재를 올려드렸는데, 그 여자분이 용신에 빙의되어 있어요. 용신 빙의는 여러분이 많이 아실 겁니다.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은 모르시지요. 구렁이 신이 그 여자의 음문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그래서 물어보니까 몸을 감고 있는 감이 있다 그래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그 용신 집단이 있습니다. 외도신들도 외도 하늘 집단이 있습니다. 집단을 이루어 삽니다. 하늘에는 외도하늘이 많아요.



사신(蛇神), 사신하고 신통이 되었다? 통했다? 사신 집단이 있어요. 그것하고 통해요. 사신이 빙의하지요. 그 빙의가 오래가면 이 몸에다가 그들의 기를 뼈 속 피 속까지 전부 심어놔요.



그래서 용신이 빙의 되어서 죽으면 반드시 구렁이 지옥으로 가요. 축생 몸을 받으면 구렁이가 되어요. 사람의 몸을 받으면 사람으로 오지만 또 그것들하고 인연이 되어서 그것들이 빙의 합니다. 그것들의 권속이니까요. 

그래서 이러한 용신이나 사신이나 하늘신한테 빙의되면 이거 떼기가 어려워요. 뗄 수가 없어요. 용신에 빙의되면 그놈 하나를 꺼내면 되거든요. 꺼내면 되는데, 그 권속의 집단이 수천만이어요. 그것들이 달려들어요.



여러분, 얼마나 무서운 줄 압니까? 그러니까 떼어줄 수가 없어요. 떼어줄 수 있는 법력을 가진 사람이 이 세상에는 없어요. 우리 현지사 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것을 천도재 한번 했다고 해서 떼어줍니까? 

이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이걸 떼어주려면 부처님이 나서야 돼요. 부처님이요. 부처님이 나서는데, 그 수천만의 떼거리하고 결투를 하게 되어 있어요. 이겨야 되요. 조복을 받아야 되요. 그래야 빠져나가요.



하늘신도 마찬가지예요. 저 사람이 신통을 한다? 신기가 있다? 뭐 아는 소리를 하고 신통이 좀 있다? 거의 빙의거든요.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안 해주려고 해요. 못해줘요. 하나를 떼어내면 또 들어와요. 

또 떼면 또 들어오고요. 그래서 아주 그냥 뿌리를 뽑으려면 그 집단하고 대결해서 조복받는 수밖에 없어요. 그런 일을 누가 해줍니까? 우리 현지사와 큰 인연이 있고, 크게 선근 공덕이 있다면 해줘요.




출처/현지궁 현지사 2011.11.20.일 자재 만현 큰스님 부산 법문 중 발췌

2022년 4월 25일 월요일

우리는 죽어서 어디로 가며 어떻게 살아야 하나?*영산불교 현지사

 우리는 죽어서 어디로 가며

      어떻게 살아야 하나?


1. 우주만물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우주 만물은 우주 본성이며 자존자인 공(空)으로부터 창조되었다.

  우주만물이 창조되기 전의 상태를 불교에서는 공이라고 한다.

이를 보선, 자성, 마음 도, 범, 하느님 등으로 다양하게 부르고 있다.

시작을 알 수 없는 언젠가 어떤 인연작용에 의해 공에서 최초의 움직임이 있어,

마치 푸른 하늘에 구름한 점 일듯 그렇게 최초의 존재가 창조되었고,

이 최초의 존재가 인연에 인연을 거듭하여 중중 무진연기의

그물망을 이루면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였다.  인간도 그렇게 창조 되었다.

우리 인간은 실로 무시겁 이래 영체가 본체계에서 현상세계로 나와

생사윤회를 거듭하고 있다.  이번 주겁(住劫) 중에서도 약 6천만년 전

사람이라는 육체 인간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깨달으시고 가르쳐주신 인연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만물을

창조한 인격적 하느님은 없다.


▶우주만물은 80겁을 주기로 20겁 단위로 생성 운행 파괴 공성유지를 반복한다.

   인연법에 의해 최초 존재의 생성에서부터 우주만물이 생겨나기까지

20겁의 기간이 소요된다.  이를 성겁(成劫)이라고 한다.

그 다음 20겁 동안 우주는 유지되다가(주겁,住劫) 다시 20겁에 걸쳐

파괴되어(괴겁,壞劫) 공겁(空劫)으로 돌아간 채 20겁 동안을 있게 된다.

괴겁이 될 때 우주는 수재 화재 풍재로 인해 파괴가 된다.

이 때 지구도 파괴되고 지옥 아귀 아수라 욕계하늘까지 모두 없어진다.

색계 4선천 18하늘 중 초선천 3하늘까지 모두 파괴 된다.

요약하면, 우주는 80겁을 대주기로 20겁을 단위주기로 하여

성주괴공(成住壞空)을 무한히 되풀이 한다.

2022년 4월 6일 수요일

우주 만물은 어떻게 생겨났을까?*영산불교 현지사



 우주 만물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우주 본성인 공의 인연 작용으로 우주 만물 생겨-창조주 인격적 하느님은 없어
우주 만물을 창조한 인격적 하느님은 없음을 선언한다. 그래도 있다고 우긴다
면 스스로 깨달음의 수준을 점검해보기 바란다. 
여기서는 그 많은 모순들을 모
두 나열할 시간도 지면도 부족하다. 그러면 우주 만물이 존재하게 된 배경은 무
엇일까? 존재의 고향, 존재의 원천은 무엇일까? 존재 이전 -- 그것을 불교에서
는 '공'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는 자성, 본성, 진여, 마음, 하느님, 범 등 다양하게 부르고 있다.
그런데 이 공을 인격화 시키는 순간 진리는 뒤죽박죽이 되고 모순투성이가 된다.
공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존자이다.

<<능엄경>>에서 '나는 어디서 왔으며,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대한 아난
존자의 질문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우주는 푸른 하늘에 갑자기 구름 한 점 일
듯..... 이 세상 천지 만물. 우주가 생겨났다'고 하셨다. 

여기서 푸른 하늘은 공을 말한다. 공을 수많은 말로서 설명할 수 있지만 앞에서 
본 대로 '모든 가능성의 씨앗을 품고 있는 절대 정보체' 또는 '전지전능성을 가진 
절대 정보체' 로 표현해 볼 수 있다.

시작을 알 수 없는 언젠가 우주 대생명체의 원천인 이 공이 어떤 인연 작용에
의해 움직임으로써 부처님 말씀대로 '청천 하늘에 갑자기 구름 한 점 일 듯' 그
렇게 최초의 존재가 생성되기 시작하였다. 

이는 공에서 우주 창조의 발단이 되
는 최초의 숨쉬기가 이루어지 것이라 볼 수 있다. 일단 존재가 시작되면 그 존
재는 다시 인연에 의해 다른 존재를 생성하고 그들 존재가 다시 상호 인연이
되어 또 다른 존재를 생성하고 이렇게 상호 인연의 그물이 중첩하여 수없이 뻗
어나가면서 우주 만물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연기법이라고 하는 우주 진리다.



출처/우주적 진리의 신불교
영산불교의 법세계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제1권 제2권 축약판)

연기법에 대해서 여러분이 이해를 했으면 해서 이야기를 해드립니다.*영산불교 현지사

 연기법에 대해서 

여러분이 이해를 했으면 해서 이야기를 해드립니다.


어느 큰스님이 행자 승을 데리고 만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 때 어떤 신랑이 장가를 가면서 검정 수소를 타고 간단 말이에요. 옛날에는 장가 갈 때 그랬던가 봐요. 말타고도 가고, 소도 타고 가기도 하고 그랬어요. 검정 수소를 타고 장가를 가는 행렬을 보고 큰스님이 빙그레 웃거든요.

그래서 행자 승이 '큰스님 왜 웃습니까?' 라고 하니까, 큰스님께서 '너 내말 들어 보렴. 저 검정 소는 신랑 전생의 아버지다. 또 신부를 관해 보니까 신부는 전생의 저 신랑의 어머니이다.'

자, 신랑은 지금 아버지를 타고 가요. 어떻게 됩니까? 이렇게 됩니다. 가까운 인연, 이렇게 자꾸 뒤바뀝니다. 자꾸 뒤바뀌어. 그러니까 남편이 아들로도 오기도 하고, 부인이 딸로도 오기도 하고, 부인이 어머니로 오기도하고 그럽니다.

중생세간은 이렇게 뒤바뀌는 거요. 뒤바뀌어 오는 그 이유가 있어. 정법을 알고 법답게 살면 절대 그렇게 안됩니다. 이 법을 모르다가 보니까 행에 있어서 준칙이 없어. 기준이 없어. 막행막식을 해. 그러니까 뒤바뀌어 옵니다.

자, 아버지가 검정 소 되었어. 아버지가 검정 소 된 이유가 있지. 동물로 떨어진 이유는 뭐라고 했죠? 인간이었을 적에 평생 사견(邪見)에 빠지고, 우치(愚癡)하고, 바람직한 성행위(性行爲)를 안한 과보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동물계로 떨어지는데 빚도 졌기 때문에 검정 소로 태어난다고요.

또 전생의 어머니가 신부로 왔는데 그 아드님하고 모자의 정이 굉장히 끈끈했던 가봐. 그러면 또 이렇게 뒤바뀌어 온다고. 그래서 이 세상 모든 것은 인연으로 되고, 또 인과의 법칙에 따라서 됩니다.

이걸 합해서 연기법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있어서 이렇게 한 것이 아니어. 전생의 어머니를 마누라로 만들어 준 것이 아니어. 내가 지어서 내가 받습니다. 우리가 지어서 우리가 받는 다고요. 그리고 여러분들의 행동 하나하나 생각 생각이 그 업이 모여지고 이 중생, 이 국토, 이 세상을 만든 거예요.

그래서 '인연은 모든 것을 만든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 거예요. 인연은 모든 것을 만든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제법종연생諸法從緣生이요 역종인연멸亦從因緣滅이라' 그럽니다.

모든 것은 인연을 따라서 생기고 또 인연을 좇아서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것은 인연을 따라서, 인연은 모든 것을 만든다' 이런 말이 돼. '제법종연생 역종인연멸' 이라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어.

연기의 공식이라고 까지 말을 해. 그러니까 인연으로 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우리 불교의 인연법 · 연기법을 진리로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출처/2008.6.26.목(음5.23) 큰스님 부산 법문중 발췌




인과법과 인연의 도리*영산불교 현지사

 


인과법과 인연의 도리


부자가 있으면 가난한 사람이 있지요.
왕우장상이 있으면 말단에서 평생을 보내는 사람도 있어요.
과거생에 많이 베풀었으면 다음 생은 반드시 부자로 와요.
이것이 인과입니다.

베푼 것 없이 남의 덕으로만 한평생을 산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은 다음 생은 먹을 것이 없어요.
지질이도 가난하게 태어나는 거요.

아무리 사업을 해도 성공할 수가 없어요.
부처님 계율로 깨끗이 살았으면 다음 생은 건강해요.
이 세계, 이 우주는 착한일 했으면 착한 것으로 보답을 해줘요.
악하게 살았으면 형벌, 온갖 액난(재앙)으로 갚아줘요.
이것을 악인악과(惡因惡果)라고 해요.
이것을 인과법이라고 해요.

이 세계는 이런 인과법과 인연의 도리로 굴러가요.
여러분과 내가 이렇게 한자리에서 만난 것은 인연이 있어서 그래요.
인연의 도리가 무서워요. 부부간, 부자간, 모자간,
모녀간 등은 대단한 인연이 있어요.

우리가 업을 지으면 과보를 받을 그 업의 종자는 절대로 썩거나 부패하지 않아요.
업을 지으면 그 종자는 곧 여러분의 영혼체 안에 뿌리 내려요.

다른데 뿌리 안 내려요. 영혼체에 뿌리 내린 그 종자가 싹이 트고
뿌리를 내리고 해서 자라게 돼요.

그건 시절 인연이 닥치면 그래(영혼체에 드러나요).
그러니까 교통사고를 당할 사람, 중풍을 맞을 사람...
영혼체를 보면 다 아는 거예요. 영혼체에 드러나요.

쇠사슬로 묶여 있다든지, 족쇄에 채워져 있다든지, 수갑에 채워져 있다든지,
납덩어리가 그 영혼체를 다 덮어씌웠다든지 하게 되면 징역을 가거나,
혹은 반신불수가 되거나, 혹은 식물인간이 되는 거예요.

영혼체에 이렇게 드러나요. 저 사람은 죽어서 지옥을 가겠구나,
또는 아귀·축생의 보를 받을 것 같구나 하는 것도 영혼체(영체)에 드러나요.

그 사람들의 영체는 거무튀튀해요.
부처님께서 항상 그 영체 작업을 해서 업장을 씻어줘야
먹물 같은 것이 한없이 도랑을 이루어 나가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그 영혼체가 깨끗해지면 지옥의 보가 끊어졌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불교의 수행은 업장소멸에 있는 거예요.

다겁생의 악·습의 기를 뽑아내야 되고, 탐·진 삼독 등 번뇌의 뿌리도
뽑아내어야 되고, 과보를 받을 부분도 다 소멸시켜야 되고,
그리고 수행자들은 악연을 단절해야 돼요.

다음생에 여자를 만나면 큰일이거든요.
원결(怨結)도 단절해야 돼요. 전생, 어느 생엔가에 우리가
사람을 안 죽였다고 보장 못해요.

그러면 반드시 죽임을 당한 그 상대는 사람 몸을 받아와서
나를 노립니다. 또는 독사로 태어나서 나를 노리는 거요.
기어이 나를 죽이는 거예요. 이게 인과예요.

그리고 우리 몸에 천마라든지, 여러 귀신마라든지, 용신·사신의
마가 빙의 되는 거요. 이런 것을 전부 정리를 해야 돼.
이게 불교 수행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을 만나지 못하면 이건 불가능 합니다.
모두가 불가능 해요.
자력으로는 불가능 합니다.



출처/2009.02.02.월(음1.8)큰스님 춘천 법문 中 발췌




팔정도의 설명*영산불교 현지사

 팔정도의 내용을 간략히 설명드립니다.


1, 정견은 바른 견해로서 세상과 인생에 대한 올바른
관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연기법, 사성제 등 부처님의 진
리의 가르침을 올바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불교 수행의 토대가 됩니다.

2. 정사유는 바른 생각을 의미합니다. 삼독심과 번뇌를
경계하고 청정심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의업의 원인이 됩니다. 생각 한 번 잘하
면 생사를 해탈할 수도 있고 잘못하면 지옥의 나락으로 떨
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법 아닌 생각이 들 때는 손
에 불덩이를 쥔 듯 놓아버려야 합니다.

3. 정어는 올바른 언어, 진실된 말을 말합니다. 거짓
말, 간사한 말, 악한 말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구업을 짓습니다. 부처님께서도 한 입으
로 두 말 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한 번 말을 했으
면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4. 정업은 올바른 행동을 말합니다. 살생과 도둑질,
음란한 행위 등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신업의 원인이 됩니다. 짐승같이 행동하면 필히
짐승이 되는 과보를 받습니다.
5. 정명은 올바른 생활을 말합니다. 바른 직업을 갖고
의식주를 위한 건전한 활동을 해야 합니다. 직업은 매우 중
요합니다. 내가 어떤 직업을 갖게 되는지는 기본적으로 전
생의 업에 따라 결정되지만 불법의 이치를 알면 피해야 할
직업이 있습니다. 살생, 투도, 사음, 음주 등 중죄업과 직간
접적으로 관련되는 직업이 바로 피해야 할 직업입니다.

6. 정정진은 올바른 노력을 말합니다. 나머지 칠정도를
구현하고 지키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용맹스럽게 수행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7. 정념은 올바른 신념, 늘 깨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올바른 생각, 그 생각이 끊어지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주관
을 이루어야 합니다.

8. 정정은 바른 선정, 진정한 삼매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무기공에 빠져서도 안 되고 삿된 기운에 몰
입되어서도 안 됩니다. 앞의 칠정도를 열심히 하면 자연히
바른 선정, 바른 삼매에 들어갑니다.

이상의 팔정도를 압축하여 표현하면, 불교 교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청정 계율을 엄격히 지키며, 실천 수행을 철저히
하라는 것으로서, 계정혜의 삼학을 생활 속에서 바르게
닦으라는 이야이가 됩니다.

이 팔정도의 생활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불자들이 가
슴에 새기고 염염불망 실천해야 할 과제입니다. 이 팔정도
수행을 완성함으로써, 그리고 이 팔정도의 종합실천 판인
칭명염불을 함으로써 우리는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 괴로움을
영원히 소멸시키고 생사 해탈의 저 언덕에 도달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주의 진리와 인생의 문제를 알고 그 해답도 알았으니,
우리의 현실적인 문제로 들어가 보기로 합시다.

아무리 좋은 진리라도 우리 인생에 유익하게 적용할 수
없다면 죽은 진리입니다. 부처님의 진리는 생생하게 살아서
여러분을 구원의 길, 생사 해탈의 길로 인도하는 진리임을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영산불교 현지궁은 부처님 진불께서 상주하시고 금
생에 불과 이룬 두 분 큰스님께서 계시는 성지입니다. 인연
되어 찾아오는 여러분의 모든 괴로움을 제거하고 열반적
정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드리고 완벽한 처방을 해드립니
다. 이런 천금같은 소중한 기회, 천만 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희유한 이 인연을 한 분도 놓치지 마시고 되도록
많은 분들이 인생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영원한 해탈의 언
덕에 이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나머지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
니다. 현명한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요해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



연기법과 사성제와 인생 문제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우주적 진리가 '연기법'이라
면 인생에 관한 진리는 '사성제'입니다. 이 연기법의 바탕
위에서 인간의 생노병사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한 모범답안
이 사성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연기를 보면 법을 보는 것이고, 법을 보면 나를 보
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연기법은 불교의 모든 것
입니다.

불교 모든 교리의 사상적, 이론적 기반이 되는 것이 바로
연기법입니다. 연기법은 한 마디로 '모든 것은 인연에 따라
생기고, 인연에 따라 소멸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인연은
원인과 조건을 말합니다. 이 연기법은 모든 존재가 다른 존
재를 의지하여 존재하고 소멸하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어떤 존재도 나 홀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
은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우주 만물은 인연이라고 하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도의 용수보살니가르주나은 그의 저서 <중론>에서 '무
자성無自性'과 '공사상空思想'의 개념을 도입하여 연기법을 논
리적으로 뒷받침하였습니다.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N. 로렌츠라는 사람은
연기법을 몰랐지만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라는 이론을 최초
로 발표하여 연기법의 일단을 과학적으로 밝혔습니다. 그는
컴퓨터로 기상 현상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초기
조건의 미세한 차이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커져서 결
국 엄청난 차이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분석을 토대로 그는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개 짓
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
합니다. 이것이 '나비효과'라는 것인데, 이렇게 처음에는 사
소한 사건 하나가 나중에는 커다란 결과를 가져온다는 의
미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연기법에서 보면 처음 나비의 날개 짓은 인因이 되고 주
위의 조건들과 만나 연緣을 이루면서 중중연기重重緣起를 하
여 결국은 태풍토네이도이라는 결과를 발생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연기법이 아무리 우주적 진리라 하더라도
그 자체가 인생의 문제를 자동적으로 해결해주는 이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생의 문제는 연기법의 토대 위에서
또 다른 차원으로 그 실상을 진단하고 처방을 해야 할 특
별한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 부처님께서 출가를 하시게 된 동기를 제공한 것도
바로 이 인생에 관한 문제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출가를 만
류하시는 아버지 정반왕에게 출가하겠다는 최후의 결연한
의지를 표명합니다.

<<불설보요경>>과 <<과거현재인과경>>에 나와 있는 내용
을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아버지! 제가 늙고, 병들고,
죽으면 아버지가 책임지시겠습니까? 책임 못 지신다면 저의
출가 길을 막지 마십시오."입니다.

그러므로 사성제는 바로 우리 인간들의 현실적인 문제이
고 불교 교리의 실질적이고 실천적인 핵심 사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인도에서 45년간 설법한 내용을 한
마디로 집약하면 바로 '사성제四聖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
므로 불교 교리는 모두 이 사성제와 연기법을 중심으로 전
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자, 이제 여러분은 연기법과 사성제, 그리고 삼사법인, 팔
정도 등 불교의 핵심교리들을 인생의 문제를 통해 하나로
연결 지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인생을 정확하게 진단해 보시고 인생이 앓
고 있는 병명이 무엇이고고성제, 그 발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집성제,그리고 어떤 상태가 병이 치유된 상태이며멸성제, 그
치유 방법은 무엇인지도성제를 완벽하게 밝혀내셨습니다. 이
것이 바로 인생에 관한 네 가지의 거룩한 진리인 '사성제'
라는 것입니다.

사성제는 연기법을 인생에 적용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연
기법의 실천적 응용이 사성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인생이 앓고 있는 병을 면밀히 진
단해 본 후 그 병명을 한 마디로 괴로움, 즉 고苦라고 결론
내리셨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거룩한 진리인 고성제
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성제의 출발점이자 바로 불교의 출
발점입니다. 4법인사법인,제행무상, 재법무아, 열반적정,
일체개고를 더해 4법인이라고도 한다 중의 하나인 '일체개고'를
말합니다. 흔히 생노병사生老病死의 4고四苦를 포함하여 8고八
苦를 이야기하지만 어찌 인생에 8고八苦만 있겠습니까? 무엇
하나 괴로움 아닌 것이 없는데 말입니다.

여기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
람이 살다보면 물론 괴로울 때가 많지만 더러는 기쁠 때도
있고 즐거울 때도 있는데 왜 모두 고苦라고 합니까? 그리고
사후에는 천상세계의 안락함도 있지 않습니까? 당연히 있음
직한 질문입니다.

두 가지로 그 이유를 설명드립니다. 하나는 즐거움이란
자체가 일시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즐거움은 곧 고통의
씨앗을 간직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더러 즐거울 때도 있다지만 그 즐거움의 과보가 다하면 다
시 고통의 과보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늙고, 병들고, 죽
는 고통을 피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즐
거움은 결코 진정한 즐거움이 아닙니다.

다른 하나는 이 고苦는 육체를 가진 우리 인생에만 한정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죽어서 영체로 가는 윤회세계는 전부
고苦라는 것입니다. 지옥, 아귀, 축생으로 가는 삼악도三惡道
의 끔찍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천상天上같은 삼
선도三善道의 즐거움도 있다지만, 앞의 즐거움의 경우와 마
찬가지로 천상세계에서의 복력이 다 떨어지면 다시 인간으
로 삼악도로 그 고통의 생을 시작해야 하고, 이런 순환은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영원히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 모든 세계를 끝까지 꿰
뚫어보시고 '인생은 고苦'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사자후 하
신 것입니다. 이렇게 글로 표현하니까 간단해 보이는 이 명
제가 얼마나 위대한 진리인지, 얼마나 깊은 의미가 있는지
를 우리들은 가슴깊이 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이 위대한 진
리를 최초로 발견하신 우리 부처님께 감사드려야 할 것입
니다.

인생이 고苦라고 진단되는 것은 바로 인연법에 따라 생노
병사와 윤회전생의 괴로운 여정을 되풀이하면서 항상 변하
기 때문입니다. 변화한다는 것은 변화하는 요소들이나 속성
들 간의 충돌과 갈등을 일으키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
다. 일례로 여러분이 불자로서 이제부터 착한 일을 많이 해
애 되겠다고 생각하고 거액의 기부를 하기로 결정하고 실
행한다면 여러분 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악의 씨앗, 즉 탐
욕심은 자기의 영역을 지키려고 반발을 하게 됩니다. 둘 간
의 갈등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가 우리 몸이나 마음에서 일어날 때 우리들은
이것을 고통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물론 변화를 통해서 우
리는 긍정적인 발전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생들은 그
수많은 변화 현상을 갈등 없이 통제할 방법도 없고 근본적
으로 대응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다 그런 변화들이 누적되어 늙고 병들고 죽고 윤
회전생을 하게 되는 변화는 더 큰 고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변화의 삶 자체가 이미 고苦를 배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3법인三法印 중의 하나인 '제행무상'
의 원리입니다. 무상無常이 아닌 상常의 해탈세계에서는 고苦
의 씨앗조차 찾을 길이 없습니다. 안온한 즐거움만이 여여
할 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고苦라는 병이 왜왔을까 하고 원인
을 깊이 사유해보니 탐욕과 집착 때문이고, 탐욕과 집착이
일어나는 것은 무명無明이 근본 원인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의 거룩한 진리인 집성제集聖제라고 하는 것
입니다. 이제 병의 원인을 알았으니 치유가 가능한지를 다
시 정밀진단을 해 보아야겠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고苦는 인연법의 존재의 실상 측면에서 보
면 고유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용수보살의 논
리대로 자성自性을 가지지 않은 무자성無自性의 공空한 존재이
기 때문에 원인과 조건을 제거하면 없앨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즉 3법인 중의 하나인 '제법무아'의 원리입니다.

이 무아에 대하여 현재 불교계에서 해석을 잘못하여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이 부분은 항을 달리하여
명쾌하게 설명해드립니다.

그리고 고苦가 발생, 소멸하는 과정을 12단계로 분석해
놓은 것이 바로 12연기十二緣起입니다. 이 12연기는 여러 가
지 의미로 설명할 수 있지만, 바로 고苦의 발생 원인을 말
하는 집성제를 단계별로 자세히 풀어놓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12연기는 1무명, 2행 3식, 4명색, 5육입, 6촉,7 수, 8애, 9취,
10유, 11생, 12노사의 열두 단계 과정입니다.

무명이 원인이 되어 행이 생기고.............. 수가 원인이
되어 애가 생기고, 애가 원인이 되어 취가 생기고, 취가
원인이 되어 다시 유가 생기고 유가 원인이 되어 생과
노사가 생깁니다. 여기서 생과 노사가 고통 이라고 보면
앞의 10가지가 순차적으로 고苦의 원인을 제공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무명이 근본 원인이 되
어 탐욕과 집착을 일으키게 되고, 그것은 업을 지음으
로써 생과 노사라는 고통을 발생시키는 것입니다.

이 12연기를 과거 현재 미래의 인과관계에서 설명하면,
과거 전생에 진리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업을 짓고 1,2,
그 업의 씨앗을 가진 영혼체가 어머니의 자궁 속 수정란과
결합하여 태아가 되고 3, 4, 태아가 자라면서 눈 귀 코 등
6개 지각기관이 생기고 기능이 성숙되며, 열 달이 지나 세
상에 태어나서 외부의 사람과 사물들을 지각하고 고락을
느끼며 성장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탐욕과 집착이 생겨
다시 금생의 업을 짓게 되고 5,~10, 이 업으로 인해 다시 다
음 생을 받아 늙고 죽는 고통을 겪게 되는 11, 12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고행을 한
끝에 이 병의 원인無明을 완전히 제거하고 보니 고苦는 눈
녹듯 사라지고 심신이 그렇게 안온하고 즐거울 수가 없다
는 것을 체득하셨습니다. 영원한 환희의 세계를 발견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세 번째의 거룩한 진리인 멸성제라는
것입니다. 이 상태는 바로 3법인중의 하나인 '열반적정'을
말합니다.

일체의 번뇌苦가 사라진 최상의 안락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은 12연기의 고리를 끊음으로써 가능했습니다.

그러므로 12연기는 고의 소멸 과정으로도 볼 수 있습니
다. 위의 12연기의 단계중에서 모든 고통의 뿌리인 무명
을 제거하면 순차적으로 탐욕과 집착이 없어지고 업이
소멸되어 생과 노사라는 고통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탐욕과 집착을 버리고 무명을 없애는 수행
을 하여 업을 소멸시키면 멸성제의 상태인 해탈세계의 열
반적정에 이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고라는 병의 원인을 제거하는 방법
을 하나하나 검증하고 정리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최선의 치
유 방법을 도출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도성제라는 8가지
처방으로서 '팔정도八正道'를 말합니다. 연기법에서 보면
팔정도의 수행은 바로 연기의 고리를 끊기 위한 방법인 것
입니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열심히 팔정도를 닦아야 할 이
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수보리 사리불 존자/우주와의 계합*영산불교 현지사

 

우주와의 계합



억겁토록 익혀온 나쁜 습과 기, 천만 생 동안 내려오면서 신구
의 삼업으로 지은 업장, 악연, 삼독 번뇌의 뿌리를 다 녹여
야만 나와 우주가 일체로 계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있어서 자기가 지은 업, 정업
은 소멸시킬 수 없습니다. 물론 본성을 깨달은 후 보림을 잘해
업장을 정화한다면 아라한소위 선종에서 말하는 조사, 부처님께서는
성중 이라고 이르심이라는 성과를 얻어 윤회생사를 뛰어 넘습니
다. 또한 영원히 인간의 몸을 안 받고 싶으면 안 받게 되며 윤회를
벗어나 해탈의 세계에 태어납니다.

아라한을 뛰어 넘어 보살지에 오른 성자들은 서방극락정토에
왕생합니다. 중국 당의 현장삼장 법사와 일본의 니찌렌, 한
국에도 잘 알려진 월남의 틱닛한, 대만 불광상사의 회주 성운 스님
등은 모두 극락정토에서 온 보살들입니다.

한국이 낳은 원불교의 대조사 소태산과 숭산행원 스님도 극락에
왕생한 보살입니다. 그리고 경기도 평택의 모 비구니, 세계를 돌아
다니며 보살행을 하고 있는 한국의 어는 남자 스님, 이곳 현지사의
무량 스님 역시 정토에서 온 보살입니다.




수보리 사리불 존자

불과를 이룬 어른은 2500년 전 석가모니부처님 이후 두 분이 있
습니다. 바로 영산 당시 10대 제자였던 수보리 존자와 사리불 존자
이십니다.

그 분들은 각기 세존께서 열반하신지 일천 년과 일천이백오십
년 만에 각각 중국과 한국에 나셔서 적정삼매를 통과하고, 각자의
불신을 얻어 붓다가 됐습니다.

불과를 이룬 성자에게는 좌우보처가 배정되고, 대아라한 급의
금강역사 50명이 항상 호신합니다. 그리고 보살과를 이룬 이에겐
두 명의 금강역사가 따릅니다.

여러분, 마음에는 안팎이 없고 공에도 안팎이 없습니다. 마음
밖 운운하는 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얼마 전 서울에서 발행되는 모 불교신문의 기사에서 읽은 내용
입니다.

참선을 지도하는 어는 법사가 우리 불자들이 즐겨 독송하는 <법
화경> <관세음보살 보문품>가운데 나오는 족쇄, 독충, 도둑, 귀신
등을 비유와 상징으로 해석해서 모두 중생들의 마음속에 들어 있
는 번뇌, 미혹, 악심, 삿됨이라고 말했습니다.

공을 깨쳐보니 공성에는 지옥도, 천상도, 부처도 아무 것도
없더라는 법문은 맞습니다. 그러나 차별 세계에서까지도 마치 지
옥을 마음 속 번뇌로 보아 실제 지옥의 존재를 부정하는 선불교의
주장을 옹호한 법설은 결코 옳지 않습니다. 이것은 아닙니다. 옳
은 주석이 아닙니다. 바깥의 재난까지도 모두 마음 속 삼독번뇌 등
으로 해석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수긍 못할 일입니다.

용맹정진 관음기도를 잘해서 경전의 말씀처럼 족쇄가 두 동강
나고 독사나 전갈 등 독충들이 피해 달아나며, 도둑의 흉난을 면하고
악귀를 물리친 영험사례가 불교 역사 이래로 수없이 많았습니다.

상징 운운하는 식의 해석은 관세음보살님을 모독하고 경전을 능
멸하는 망어요, 불자들을 오도하고 관음신앙을 흔드는 마설입
니다. 이것을 법문이라고 지면을 할애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 아
닐 수 없습니다.

남방불교의 위빠사나 수행초기 근본불교 경전들에서는 관법선(위빠사나
선)을 해탈의 깨달음에 이르는 '오직 하나의 길'로 말하고 있다이나 티베트의
밀교 수행은 보다 휼륭한 수행법입니다. 그 수행법은 부처님 경전
에 철저히 근거했고, 경전공부를 중요시하며, 음계와 중계를
지키는 것을 자기 목숨같이 압니다. 법을 능멸하는 그런 법문도 하
지 않습니다. 존재의 속성.진상인 무상 고 무아를 깨쳐
아라한이 된다는 것이며, 불 이라거나 조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불교는 위대한 종교입니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보는 정도
로 깊숙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외도나 악지식에 일갈할 수 있
습니다. 104위 화엄성중도 부릴 수 있습니다.

불자들은 죄를 지으면 과보가 따른다는 점을 꼭 알아야겠습니
다. 죽으면 가지고 갈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욕심을 놓고 부처님
계율을 잘 지키면서 염불을 많이 해야 합니다.

큰스님이라면 죽을 때 잠자듯 고요히 떠납니다. 스님들이 경각
심을 가져야 할 계는 여자와의 사음계입니다. 깨쳤다면 이제 보림
만 잘하면 윤회를 벗어날 수 있지만 만약 단 한번이라도 사음계를
파한다면 결국 악도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한 바가지 청정수에 똥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면 그 물을 과연 누
가 마시려 들겠습니까?

출처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우주의 진리_인과의 법칙Karma*영산불교 현지사



 우주의 진리_인과의 법칙Karma



세계는 신, 하느님의 섭리나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의 힘과 인과의 법칙Karma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신은 없습니다. 

신은 인간이 만들어낸 우상입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실재, I AM은 비인격입니다. 우주의 이법입니다. 영혼체1번의 역사도 무량겁 이전이며 그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닙니다.

지난 날의 죄과를 깊이 참회하며 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하고 악을 멀리하며 착하게 살면서 팔정도에 맞게 염불수행을 하여 선정에 들고 나아가 삼매에 들어 숙명을 얻고 보니,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한 하느님이 없는 줄을 알게 됐다 이 말입니다.

뇌성마비나 정신병자, 문둥병, 삼중고소경, 귀머거리, 벙어리를 함께 앓는 고통를 앓는 사람을 삼매에 들어 관觀해 보니 그것의 분명한 이유를 알게 되고, 부자가 되고 가난하게 사는 것도 과거 생으로 소급해서 들여다보니 합당한 원인이 있고, 미인이 있고 추한 사람 되는 것도 모두 과거 생에 지은 업 때문이라는 인과의 이치를 발견하게 되더라는 말입니다.

오늘의 결과는 반드시 어제의 인因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인과법, 곧 카르마Karma의 법칙과 인연의 도리가 이 세계와 이 우주를 만들어 내고 유지하고 상속하며 사멸하는 유일한 이법이라는 것입니다.

푸른 하늘에 갑자기 구름 한 점 일어나듯, 중생 또한 그렇게 생겨난 것입니다. 그 누구도 구름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인연법 따라 시․공간적으로 중중무진重重無盡 연기緣起를 거듭, 20대겁이 지나 성겁에 이르러 우주가 진화되고 오늘의 세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아난존자의 물음에 답한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오안五眼을 갖추신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생겨나고 없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 연기緣起라고도 합니다.

“설사 저 허공을 땅으로 만들고 땅을 허공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이미 뿌려놓은 인因, 연緣의 씨앗은 녹여 없앨 수 없는 것, 그것은 썩어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으니 인연이 무르익는 날 그 결과는 드러나리라.”

부처님의 말씀이십니다. 인연이 모두를 만드는 것입니다.




출처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 광명 만덕, 자재 만현 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연기법_현상세계의 지배 원리



 연기법_현상세계의 지배 원리




진리란 설명할 수 있는 이치라야 하고 보편타당하면서도 사유
필연성을 갖춰야 합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은 인간이 만들어 낸 우

상입니다. 오히려 우주를 창조 유지 파괴하게 하는 비인격적
인 원리를 창조주라고 보는 힌두교의 설이 일리가 있어 흥미롭습니다.

착한 사람이 불행하게 사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것
은 일신교의 교리로는 설득력 있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오직 삼

세윤회설로서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인도에서 발상한 힌두교나

자이나교, 불교에서 받아들인 업보윤회설은 사실이요, 진리입

니다.

사실 붓다의 오안 으로나 대보살십지보살의 법안으로서만이

중생이 각자 지은 업을 따라 육도에 몸 받아 나고 또한 죽는 과정

을 볼 수 있습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납니다. 착한 일을 하

면 상이 오고, 아침에 죄를 지었으면 저녁에 벌을 받습니다. 악인

악과요, 선인선과입니다. 자업자득아니, 이것이 진리입니다.
이것을 인과법이라고 하고, 연기법칙, 카르마법칙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불교의 진리는 영원합니다. 중생의 악업이 지옥을 만들

어 놓았고 선업이 하늘의 천상세계를 건립한 것입니다. 따라서 중

생이 악업을 지어가는 한 삼악도는 없어질 수 없습니다.
 불전의 부처님 말씀이나 공부가 깊은 큰스님의 법문 말씀을

믿어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은 도를 이루는 근원이 됩니
다. "믿음이 모든 공덕을 짓는 어머니' 라고 <<화엄경>>에서는 말씀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옥에 갈 종자는 진짜 큰스님의 말
씀도 믿질 않습니다. 삼악도의 종자는 의심만 합니다.

불교는 시공을 초월한 최고의 가르침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 4

월 초파일에 나는 합장하고 노래를 부릅니다. 부처님 은혜에 조금

이라도 보답하고자 하는 성취의 노래입니다. 일체에 초월하여 여
여한 마음과 하나로 계합하여 부르는 게송입니다.


허공을 향한 무성한 가지와 잎들,


아 이제 그 나무뿌리를 뽑았노라.

뽑힌 뿌리 하늘을 향했고

내 앞엔 이미 그 어떤 대상도 있을 수 없네.

분별이 끊어진 자리

허망함이 드러난 자리

탐, 진, 치 삼독이 녹아버린 자리엔

여여하고 청정한 신령스런 빛만이

적적하여

환희심 가득

청정하여 대상으로부터

물들지 않는다.

하늘이 평지가 되고

땅이 하늘이 되어도

산이 바다 되고

바다가 산봉우리 되어도

내 본래 마음과는 이렇듯 무관하도다.




생사윤회에서 해탈을 구하고자 출가하여 스님 된 이여! 음행이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중국의 혜원 큰스님 이나 대전 선사 같이 이 음계

를 목숨과 같이 여겨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왕생극락도 못

할리 없습니다. 만일 수행승이 음계를 파하면 악도에 떨어진다는
것을 부처님을 대신하여 거듭거듭 분명히 전합니다.

그 어려운 공부를 해서 천에 하나, 만에 하나 깨달음을 얻은 후,

무애라 생각하여 여자를 보면 악도로 갑니다. 타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깨친 이후에도 음계는 더욱 중요합니다. 여자를 알면 절대 깨달

음을 얻을 수도 없고 삼매에도 들 수가 없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여러분은 인연법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주의 이법이요, 진리입니다.*영산불교 현지사



 여러분은 인연법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주의 이법이요, 진리입니다.




이 광대한 우주는 물질과 에너지, 두 가지 재료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에너지空大는 뿌리이고 만물은 나무와 같습니다. 

모든 우주의 근원은 공입니다. 에너지와 물질은 무시무종의 공간 속에 존재하면서 연기의 법칙에 따라 생성·소멸을 반복합니다.

우주에서 생겨난 만물들이기에 크기나 모양이 다르더라도 모두가 제각기 하나의 소우주입니다.

맑은 하늘에 갑자기 구름 한 점 생기듯 인연 따라, 다만 인연 따라 일월성신日月星辰 천체가 생성되고 사람이나 초목 군생까지 생겨났습니다. 

물질만물은 오랜 세월을 거쳐 마침내 가루가 되고 가스가 되고 에너지로 돌아갑니다. 거기서 다시 싹이 돋아나 성·주·괴·공의 순환이 반복됩니다.

우리 인간은 실로 무시 겁 이래 1번 영체가 본체계에서 상대 경험세계로 나와 윤회생사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겁住劫 중에서도 약 6천만 년 전 신생대 이후 사람이라는 육체 인간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지구는 그동안 많은 변화와 함께 진화를 거듭해왔습니다. 하늘 세계에서 인간계로 화생한 사람은 삶을 거듭하면서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라는 나쁜 습성이 깊게 자리하게 됩니다. 

물론 사람이나 만물의 불변의 본체는 일심진여요, 자성이요, 공입니다.

그것은 실체가 없어 가고 옴이 없습니다. 여여부동입니다. 분별 사량하는 생각이 없는 비인격입니다. 비인격인 우주의 이법입니다.



출처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 24장 광명 만덕, 자재 만현 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인연법은 우주이법 붓다도 연기법을 따른다*영산불교현지사

 

인연법은 우주이법 

붓다도 연기법을 따른다


광명 만덕 큰스님, 나는 금생에 불과를 이루었습니다. 무아 속 절대계에 불신원만보신불을 두고 있습니다. 

가슴에는 만卍자가 빛을 방광하고 양미간에는 옅은 청색, 지혜의 무량광 빛이 분사噴射되고 있습니다. 

또한 상적광세계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속에 청정법신불을 두고 계십니다. 

원만보신불은 때로는 백천만억의 화신을 나투어 여러 중생 국토에서 보살행하고 있습니다. 

모든 부처님들은 빛무량광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서로 서로는 빛으로 상속이 됩니다.

응화신佛이신 광명 만덕 큰스님은 언제나 일행삼매 속에서 모든 원만보신부처님을 뵙고, 이야기를 나누십니다.

법·보신과 하나 될 때도 있고 광명보신불께서 여기 광명 만덕 큰스님 속으로도 드십니다. 

인연이 다해서 사바 세상을 떠날 때는 광명불보신불 속으로 흡수, 계합이 됩니다. 네 영체는 다 빛덩이가 되어 있습니다. 

천둥 벼락을 칠 때의 섬광을 흡수해버릴 정도입니다. 삼명육통 나아가 백천 신통을 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부처님께서는 금기로 못하게 하십니다. 업을 짓기 때문에 신통을 막습니다. 

가령 어느 재벌에게 꿈으로 계시를 내리거나, 영체가 나가서 현대 의학이 치료할 수 없는 고통을 주어 이곳으로 오게 할 수도 있습니다. 

큰 시주를 받고 치료해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강압적인 행위는 우주 이법에 반하는 것입니다. 철저히 인연 따라 불사를 하고 있습니다.

붓다도 우주의 이법, 연기법을 따르는 것입니다. 연기법에 반하는 신통을 부리면 부처도 과보를 받습니다. 그 과보는 무섭습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 20장

광명 만덕, 자재 만현 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2022년 4월 4일 월요일

무량광을 보다*영산불교 현지사




무량광을 보다


조사선을 공부하는 이는 의단이 자리 잡아 화두타파하는
순간 경계가 확 뒤집히는 과정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때 드러나는 것은 자성광명뿐, 내 앞의 모든 게 공이
되어 나도 없고 나라는 생각까지도 사라집니다. 아공, 법공,
구공입니다. 생각 이전의 본래 면목, 진여자성입니다. 태양
광과 달라서 여여하면서도 신령스런 빛이요, 공정 영지
입니다. 법계를 비추는,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정화된 마
음의 빛' 입니다.

여기가 견성경계입니다. 이후에 보림을 마치면 아라한의 반
열에 듭니다.

이제 보살의 경지부처는 타력, 곧 부처님의 절대하신 가피력
이 없이 자력만으로는 결코 오를 수 없는 경지라는 것을 선언
합니다!

<<열반경>> (여래성품)의 '대열반광명이 중생의 털구명으로 들어
가는 자는 반드시 불도를 이루리라'는 말씀대로, 수행인이 공부하
는 중에 선정에 들어 빨강가사, 장삼을 수하신 문수 보현보살 그
리고 관음 세지보살께서 방사하시는 부처님의 광명대열반광명
을 온몸의 털구명 속으로 받아들이는 경계를 종종 만나면 보살의
위에든 것으로 봅니다.

부처님의 광명으로 씻겨진, 보살영체의 빛은 자성광명과는 차원
이 다릅니다. 자성광명이 보름달의 하얀 은백색이라면 보살의 빛
은 아침에 떠오르는 햇살 정도이니 비교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보살의 마음은 그지 없이 청정합니다. 상품의 보살이
붓다의 경계에 들 때에는 무량광이라는 수백 수천의 태양
을 합한 것 이상의 광도를 띤 빛덩어리를 보게 됩니다.

무량광은 부처님의 본원엑기스광 입니다. 경계에 오염되지
않고, 영원히 손상되지 않습니다. 내외명철이 특징입니다.

안팎이 수정처럼 드러나 영롱하기 그지없습니다. 백종오색광
이요, 억종광입니다. 햇빛에 반짝이는 금강석의 빛과 같습니다.

무량광이라는 빛덩어리는 붓다만이 볼 수 있기 때문에 불의
경계입니다. 붓다 되는 관문이 바로 무량광입니다. 보살에서 붓다
로 뛰어 오르는 유일한 관문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공을 깨친 후 무량광을 보기 이전에 불 보살이 있다
없다 말하는 것은 한낱 범부가 지껄이는 망언일 뿐입니다. 무량광
은 불과를 등하는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분명히 만고에 공부인의 발길이 닿지 않은 처녀림
이지만, 이 경계를 발견한 수행자는 2500년전 부처님 이후
오직 수보리 사리불 존자뿐입니다.

부처님께서 스스로 깨달은 법이 매우 깊고 미묘해 알기 어렵
고 들어가기 어렵다 생각하셔서 전도를 포기하려 하셨지만, 범
천의 강력한 권청에 따라 법을 설하기 시작하셨던 것처럼, 나
는 이땅에 부처님의 정법을 세우기 위하여 그동안 부처님들을 친
견하고 들은 여러 소식을 조심스레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무량광의 경계를 지나면 드디어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습니다.
중생과 성중아라한이나 보살은 절대로 불신이나 부처님을 뵐 수 없
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온몸이 천문학적인 광도를 띈 무량광으로
이루어젺기 때문입니다.

불과를 증한 대성자는 이런 엄청난 빛으로 이루어진 자기의
불신을 무아 속의 절대계, 곧 상적광토인 부처님 나라에 둡
니다. 그분의 불신이 있다는 것은 곧 그분이 불과를 증했다는 의미
입니다.

불신을 교가에서는 원만보신 또는 보신 이라고 하거나
지복의 몸 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서 나는 불신을 종래의 법신
개념에서 벗어나 보신 개념으로 과감히 대치하고자 합니다.

'이 마음이 곧 부처' 라는 가르침이 보편화되어 있는 오늘날의
불교계에서 부처님들이 '무아 속 절대세계에 빛으로 계신다'는
이 법설은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소폭탄과도 같을 것입니다.

이 엄청난 발견으로 수없이 왜곡된 부처님의 가르침들이 재조명
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부처님들은 모두 무량광으로 이뤄진 몸을 지니셔서 무량수가
되므로, 삼세의 여래가 똑 같습니다.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불신에서
백천만 억의 화신이 현현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거짓몸뚱이와 그 안에 불성이라는 보물창고를 가지고 있
습니다.
하이데거는 그의 존재와 시간 이라는 저술에서, '인간존재' 를
존재해명의 실마리로 삼았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만이
인간존재 안에서 본각심체의 진상을 구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야말로 진여 곧 존재를 깨우친 몇 안 되는 철학자 가
운데 한 분입니다. 자성광을 보왔으나, 열반광이나 무량광을
알지 못한 것은 못내 안타까운 일입니다.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불신에서 법보화삼신, 부처님의
8만4천 신통, 백천 삼매, 지혜와 자비, 복덕이 우러나옵니다. 바로
무량광이 지혜 자비 복덕 삼매 신통능력 자체인 불가사의한 빛덩
어리기 때문입니다.

무량광을 꿈에도 모르는 무당이나 공부수행인이 부처님을 뵙고
부처님과 대화한다고 말한다면, 하늘 마에 속아 그리 말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늘 마가 얼마든지 불 보살님의 모습으로나투어
현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량광명만은 절대로 방광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빛을
거둬들이고 난 이후에 현신한 부처님이라도 두광, 배광, 신광의
광휘가 나타나기 때문에 변화술에 능한 천마라도 그 것만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안팎이 드러나는 억종광명
백종오색광명 그리고 눈과 몸에서 방사하는 자비 선정의 빛도
만들어 낼 수가 없습니다.

내 가진 것 일체를

다 버렸더니

일체를 소유했더라

하나가 여럿 되고

여럿이 하나 되어

하나까지도 없는 것

무아 속 절대세계는

청정하고 깨끗하고

영롱한 빛무량광명 뿐~



출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불 법신 즉 우주적인 몸*영산불교 현지사

 불 법신 _즉 '우주적인 몸'


사실은 부처님의 법신이야말로 진불입니다. 거래도 없고
머묾도 없습니다. 법계를 비추는 대지의 광명체로서 초월이요 평
등입니다. 초월적 인격적 실존이신 보신의 근본이 되어 이미 인
격이 아닙니다. 대우주아입니다.

전생에 이미 불과를 이룬 붓다가 이 사바세계에 사람 몸을 받아
오실 경우가 있습니다. 그 몸을 응화신이라 합니다. 붓다는 원력
수생하기 때문에 주로 왕궁으로 몸을 받아 나십니다.

이때에도 자기의 불신은 거기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한번 얻
은 불신은 그 생명이 영원합니다. 보신은 유시무종합니다.

붓다세계에 계신 불신이 보신입니다. 보신은 무아 속 절대계
에 자기의 법신을 둡니다. 그래서 법신은 보신과 화신의 근본체입
니다. 삼차원 세계에 사는 우리들의 의식구조로서는 이해하기가
다소 어려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마디 더 부연해서 해설해 보겠습니다.

아미타불은 지금 서방극락세계의 교주이시며,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한 보살들을 붓다 될 수 있도록 교화하고 계십니다. 아미타불
의 불신을 <보성론>의 개념으로 보면 보신이라는 것으로, 원만보
신입니다. 색상이 단엄한 32상 80종호를 구족 하시고 광휘가
현란합니다.

그런데 그 부처님은 10겁 전이 아니고 실로 무량겁 전에 불과를
이루신 오여래 부처님 가운데 한 분이십니다. 당신의 법신을
무아 속 절대계에 두고 계십니다.

관세음보살은 무량겁 전에 불과를 이루셨고 붓다 이름이 '정법
명왕' 입니다. 무아 속 절대계에 법신을 두시고 원만보신을 나투어
극락세계에서 아미타부처님의 좌보처로 계십니다.
관세음보살이 남섬부주 중생을 교화하시려 변화신으로 오실 때
는 자모의 모습이십니다. 머리엔 아미타불을 정대한 화관을
쓰시고, 목엔 영락을 두르시고 하얀 실크드레스 같은 옷에 가끔은
버들가지를 드신 백의관음의 모습이십니다. 남선부주에 와서 불
과를 이룬 붓다의 대법회에 가끔 현신하셔서 천수천안1천의 화신을
나투실 때도 종종 있으며 이때에는 백종오색광명을 놓아 축복해
주십니다. 32응신을 나투시어 불법과 인연 있는 불자들을 교화해
서방극락정토로 인도하시기도 합니다.

관세음보살의 좌우보처는 해상용왕과 남순동자가 아닙니다. 큰
부처님이시기에 불격을 갖추신 상수보살인 해수관음과 육관음이
좌우 보처가 됩니다. 해수관음은 여인상이지만, 육관음은 때에 따
라 여섯 몸으로 나투시는 남자상입니다.

불정심 관세음보살 모다라니 진언은 해수관음 진언이며, 육관음
진언은 "옴 마하 가로니가 사바하"로서 부사의한 힘이 있음을 전
합니다.

따라서 관세음보살은 지금 불가에서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일생보처 보살이 아니라 이미 붓다를 이른 부처님
으로 바로 잡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무량광을 보다

조사선을 공부하는 이는 의단이 자리 잡아 화두타파하는
순간 경계가 확 뒤집히는 과정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때 드러나는 것은 자성광명뿐, 내 앞의 모든 게 공이
되어 나도 없고 나라는 생각까지도 사라집니다. 아공, 법공,
구공입니다. 생각 이전의 본래 면목, 진여자성입니다. 태양
광과 달라서 여여하면서도 신령스런 빛이요, 공정 영지
입니다. 법계를 비추는,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정화된 마
음의 빛' 입니다.

여기가 견성경계입니다. 이후에 보림을 마치면 아라한의 반
열에 듭니다.

이제 보살의 경지부처는 타력, 곧 부처님의 절대하신 가피력
이 없이 자력만으로는 결코 오를 수 없는 경지라는 것을 선언
합니다!

<<열반경>> (여래성품)의 '대열반광명이 중생의 털구명으로 들어
가는 자는 반드시 불도를 이루리라'는 말씀대로, 수행인이 공부하
는 중에 선정에 들어 빨강가사, 장삼을 수하신 문수 보현보살 그
리고 관음 세지보살께서 방사하시는 부처님의 광명대열반광명
을 온몸의 털구명 속으로 받아들이는 경계를 종종 만나면 보살의
위에든 것으로 봅니다.

부처님의 광명으로 씻겨진, 보살영체의 빛은 자성광명과는 차원
이 다릅니다. 자성광명이 보름달의 하얀 은백색이라면 보살의 빛
은 아침에 떠오르는 햇살 정도이니 비교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보살의 마음은 그지 없이 청정합니다. 상품의 보살이
붓다의 경계에 들 때에는 무량광이라는 수백 수천의 태양
을 합한 것 이상의 광도를 띤 빛덩어리를 보게 됩니다.

무량광은 부처님의 본원엑기스광 입니다. 경계에 오염되지
않고, 영원히 손상되지 않습니다. 내외명철이 특징입니다.

안팎이 수정처럼 드러나 영롱하기 그지없습니다. 백종오색광
이요, 억종광입니다. 햇빛에 반짝이는 금강석의 빛과 같습니다.

무량광이라는 빛덩어리는 붓다만이 볼 수 있기 때문에 불의
경계입니다. 붓다 되는 관문이 바로 무량광입니다. 보살에서 붓다
로 뛰어 오르는 유일한 관문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공을 깨친 후 무량광을 보기 이전에 불 보살이 있다
없다 말하는 것은 한낱 범부가 지껄이는 망언일 뿐입니다. 무량광
은 불과를 등하는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분명히 만고에 공부인의 발길이 닿지 않은 처녀림
이지만, 이 경계를 발견한 수행자는 2500년전 부처님 이후
오직 수보리 사리불 존자뿐입니다.

부처님께서 스스로 깨달은 법이 매우 깊고 미묘해 알기 어렵
고 들어가기 어렵다 생각하셔서 전도를 포기하려 하셨지만, 범
천의 강력한 권청에 따라 법을 설하기 시작하셨던 것처럼, 나
는 이땅에 부처님의 정법을 세우기 위하여 그동안 부처님들을 친
견하고 들은 여러 소식을 조심스레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무량광의 경계를 지나면 드디어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습니다.
중생과 성중아라한이나 보살은 절대로 불신이나 부처님을 뵐 수 없
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온몸이 천문학적인 광도를 띈 무량광으로
이루어젺기 때문입니다.

불과를 증한 대성자는 이런 엄청난 빛으로 이루어진 자기의
불신을 무아 속의 절대계, 곧 상적광토인 부처님 나라에 둡
니다. 그분의 불신이 있다는 것은 곧 그분이 불과를 증했다는 의미
입니다.

불신을 교가에서는 원만보신 또는 보신 이라고 하거나
지복의 몸 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서 나는 불신을 종래의 법신
개념에서 벗어나 보신 개념으로 과감히 대치하고자 합니다.

'이 마음이 곧 부처' 라는 가르침이 보편화되어 있는 오늘날의
불교계에서 부처님들이 '무아 속 절대세계에 빛으로 계신다'는
이 법설은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소폭탄과도 같을 것입니다.

이 엄청난 발견으로 수없이 왜곡된 부처님의 가르침들이 재조명
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부처님들은 모두 무량광으로 이뤄진 몸을 지니셔서 무량수가
되므로, 삼세의 여래가 똑 같습니다.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불신에서
백천만 억의 화신이 현현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거짓몸뚱이와 그 안에 불성이라는 보물창고를 가지고 있
습니다.
하이데거는 그의 존재와 시간 이라는 저술에서, '인간존재' 를
존재해명의 실마리로 삼았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만이
인간존재 안에서 본각심체의 진상을 구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야말로 진여 곧 존재를 깨우친 몇 안 되는 철학자 가
운데 한 분입니다. 자성광을 보왔으나, 열반광이나 무량광을
알지 못한 것은 못내 안타까운 일입니다.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불신에서 법보화삼신, 부처님의
8만4천 신통, 백천 삼매, 지혜와 자비, 복덕이 우러나옵니다. 바로
무량광이 지혜 자비 복덕 삼매 신통능력 자체인 불가사의한 빛덩
어리기 때문입니다.

무량광을 꿈에도 모르는 무당이나 공부수행인이 부처님을 뵙고
부처님과 대화한다고 말한다면, 하늘 마에 속아 그리 말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늘 마가 얼마든지 불 보살님의 모습으로나투어
현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량광명만은 절대로 방광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빛을
거둬들이고 난 이후에 현신한 부처님이라도 두광, 배광, 신광의
광휘가 나타나기 때문에 변화술에 능한 천마라도 그 것만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안팎이 드러나는 억종광명
백종오색광명 그리고 눈과 몸에서 방사하는 자비 선정의 빛도
만들어 낼 수가 없습니다.

내 가진 것 일체를

다 버렸더니

일체를 소유했더라

하나가 여럿 되고

여럿이 하나 되어

하나까지도 없는 것

무아 속 절대세계는

청정하고 깨끗하고

영롱한 빛무량광명 뿐~

출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불 보신 억종광의 불신, 지복의 몸*영산불교 현지사

 


불 보신 _억종광의 불신, 지복의 몸


 
나는 이제 부처님에 대해 법문을 하고자 합니다.
모두들 '마음이 곧 부처'라고 말하는 세상이 됐습니다. 이 말은
문제를 안고 있는 말입니다. 나는 위대한 부처님의 소식을 세상에
알림으로써 정법을 바르게 세우고 싶습니다. 그래서 불의 삼신
설을 바르게 법설하겠습니다.

우선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아라한
성중은 보살과를 증득하고자 남섬부주에 원력 수생하고 극락정토
의 보살들은 붓다가 되기 위해 선근공덕을 쌓고자 스스로 사람 몸
을 받아 온다는 것입니다.

상품보살도 삼신을 갖추지 못합니다. 삼신을 말씀하신 경으로
는 <<금광명 최승왕경>>등이 있습니다. 제2권 <불별삼신품>에서
"모든 부처님에게 세 가지 몸이 있다. 화신, 응신, 법신
이니라", "법신은 화신, 응신의 근본이 되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일찍이 삼신설은 인도의 무착, 천친 큰스님들에 의해서 확립되
었습니다.

다음에는 보성론의 삼신법신, 보신, 화신을 들 수 있습니다.
삼신설은 불교의 핵심 중 핵심이 되는 부분입니다. 나는 <보성론>
의 삼신개념을 원용합니다.

여기서는 불신 곧 원만보신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무량
광을 몇몇 대승경전에선 억종광, 백종오색광, 열반광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불신은 무량광으로 이루어집니다.

불신을 얻지 못하면 붓다가 아닙니다. 사바세계에 한분의 붓다
가 나오려면 삼계왕이신 석가모니부처님의 선택이 있어야
합니다. 주로 선근보따리가 붓다 되기에 충분한 수행승이 낙점됩
니다. 선택된 이가 바로 상품상의 보살입니다.

이 수행승은 공부 중에 무량광을 봅니다. 그런 다음 또 하나의
큰 관문을 거쳐서 자기를 찾아 온 많은 부처님들을 뵙고 직접 법문
을 듣게 됩니다. 거룩하신 부처님들의 법문을 듣고 공부를 지도 받
는 것입니다. 보다 자주 깊은 삼매에 들어가서 붓다로서의 공부를
마치게 됩니다.

이 경지에 도달하면 이미 자신의 네 개의 영체는 수정같이 맑은
상태를 지나서 빛덩어리 자체가 됩니다. 햇빛의 백천 배와도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밝은 빛덩어리입니다. 이것은 청정의 극치입니
다. 그래서 불과를 증한 어른의 마음은 수정보다 청정합니다.

<유마힐경>의 "심정이면 불토정" 이라는 표현처럼, 생각정신은
청정하고 깨끗하다 못해 눈이 뒤집힐 정도의 깨끗함 그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더러운 것을 보아도 깨끗하고, 똥을 보아도
깨끗합니다. 온 천하가 다 깨끗합니다.

어떤 생각도 일어나지 않고 모든 생각이 깨끗합니다. 더러움과
깨끗함을 초월한 절대적인 깨끗함이요, 불이의 실상입니다.

일행삼매가 되어 잠들지 않고 늘 선정으로 깨어 있습니다.

또한 <금강경>의 '응무소주'가 됩니다. 마음은 머묾이없어서
그 자리를 떠나면 잊습니다. 마음에 애증이 없고 털끝
만큼의 착도 없습니다.

불과를 이룬 이의 4개의 영체는 각기 독립해서 분리하여 활동합
니다. 바람과도 같이 이 거짓몸뚱이에서 빠져 나와서 말입니다.

죽을 때는 4개의 영체가 자기 불신, 부처님 세계에 있는 자기 불
신과 하나로 계합합니다. '지복의 몸'과 하나가 됩니다. 그 불
신은 무아 속 절대세계, 즉 상적광토에 청정법신을
둡니다. 자기의 법신, 곧 '우주적인 몸' 을 둡니다. 이제 우주 자
체'시공을 자체화함'인 것입니다.



무량광명 빛 억종광*영산불교 현지사

 


부처님의 깨끗하고 청정한 무량광명 빛_억종광,

백종오색광, 대열반광



≪10만송 반야바라밀다경≫에는 여러 페이지Pages에 걸쳐 붓다보신불 몸의 각 부분들에 대한 묘사가 등장합니다. 그의 머리, 양손, 두 발 심어지 열 손가락에서 빛이 방사되어 세계 구석구석까지 도달한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 경에서는 전 우주적인 몸이 육체적인 형태를 띠고, 절대계에 반영된 32상 80종호를 갖추고 있는 지복의 몸보신불을 그리고 있습니다.

보신부처님에 대한 신체상의 거룩한 특징과 깨끗하고 청정한 억종광명 빛으로 이루어진 불신에서 대적정삼매의 힘으로 빛을 방사하시는 희유하신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무를 초월한 무아 속 절대계에 여여히 계시는 붓다님들의 불신은 무량광명‧억종광명‧대열반광명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누차 법문한 바 있습니다.

붓다는 그 티끌 수 같이 많은 색깔의 광명을 마음대로, 가령 단색으로든 오색으로든 억종의 색깔로든 필요한 용도에 따라 방사할 수 있음은 물론입니다. 안팎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투명하고 영롱한 광휘를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원광圓光과 배광背光 - 신광身光 역시 임의로 크게도 작게도 하며 광도를 천문학적 수준으로 밝게 할 수도 있습니다. 불신 그대로가 억종광명의 빛덩이가 되기도 합니다. 어떠한 외도의 수장들도 붓다의 억종광은 흉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도 원광, 배광, 신광을 냅니다. 그러나 외도의 빛은 투명하지도 않고 단색일 뿐입니다.
붓다는 완전한 빛의 존재이십니다. 그것도 투명하여 예쁘고 청정한 백종오색광명 자체인 것입니다.

외도의 수장首長들이 인신을 받아와서 그들의 최고 수행을 통해 허공에다 빛으로 된 자기의 체외신體外身_허공신, 양신을 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체외신은, 밀교 바르도의 보신정광명과 화합한 의생신과도 같이 정법佛法의 진정한 보신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허공이나 바르도 중음계中間界는 시공時空 안의 공간입니다.

시공을 초월한 무아 속 절대계, 곧 연화장세계에 두는 무량억종광명으로 이루어진 붓다의 지복의 보신과는 천지 차이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주에 편만해 있는 대생명, 공, I AM - 과 계합, 합일한 붓다는 그 공空 속에 있는 우주의 무진장한 보물을 내 것으로 했기 때문에 항하사의 신통 묘용으로 이를 화학적으로 조합해서 무엇이든지 만들어낼 수 있으십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무량광을 보고 붓다를 이루는 과정*영산불교 현지사

 


무량광을 보고 붓다를 이루는 과정



이뿐이랴! 큰스님께서는 더 상세하고 자상하게 무량광을 보고 붓다
을 이루는 과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이 수행승은 공부 중에 무량광을 봅니다. 그런 다음 또 하나의 큰
관문을 거쳐서 자기를 찾아온 많은 부처님들을 뵙고 직접 법문을 듣게
됩니다. 

거룩하신 부처님들의 법문을 듣고 공부를 지도 받는 것입니다.
보다 자주 깊은 삼매에 들어가서 붓다로서의 공부를 마치게 됩니다."

큰스님께서 법회에서 설법하신 바에 의하면 또 하나의 큰 관문은 바
로 육종진동을 맞아야 된다고 하신다. 그래야 부처님의 법문을
들을 수 있으며 지도를 받아 보다 깊은 삼매에 자주 들게 된다고 말씀
하신다.

여기서의 가르침은 서양의 신지학에서도 거론되는 이야기이다.
즉, 서양의 뉴에이지 문명과 신비주의 학파의 구심축을 이루는 신지학
에서도 수행자가 정신계의 스스로부터 공부를 배워야 수행이 무르익고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다.

큰스님의 법 세계는 이미 서양의 정신 세계의 흐름과 위상을 근원적
인 측면에서 포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불교는 전 세계의 모
든 수행 문화의 지조이자 원류라고 할 수 있다.

큰스님의 불신사상에 대한 법 세계가 얼마나 원대하고 통합적인지는
다음의 가르침을 보면 잘 해의할 수 있다. 

즉 큰스님께서는 "불과를 이룬 이의 4개의 영체는 각기 독립해서 
분리하여 활동합니다. 바람과도 같이 이 거짓몸뚱이에서 빠져 
나와서 말입니다. 

죽을 때는 4개의영체가 자기 불신, 부처님 세계에 있는 자기 불신과 
하나로 계합합니다. '지복의 몸'과 하나가 됩니다. 

그 불신원만보신은 무아 속 절대세계, 즉 상적광토에 청정 법신을 둡니다. 

자기의 법신, 곧 '우주적인 몸'을 둡니다. 이제 우주 자체시공을 
자체화함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원만보신의 세계를 밝히신다.

신지학에서 에텔체, 아스트럴체, 멘탈체, 코절체로 일컫는 4대 영체
의 존재 의미를 그 어떤 문헌이나 서적보다도 극명하게 설하신다. 즉
4대 영체의 존재 의미는 불신과의 계합을 위해서이며, 4대 영체가 경
험한 모든 인생 도정의 공부 내용이 불신 속으로 녹아든다는 사실이다.

이 얼마나 미증유의 사실이며 심오한 법 세계인가 말이다. 우리의
영혼체는 사바세계를 통해서 리모털(재운명화)의 과정을 겪어가
면서 새로운 배움과 체험을 얻는다. 하지만 그러한 배움과 체험이
죽음으로써 모두 허망하게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 수행자
들의 세계이다.

하지만 큰스님의 법문을 잘 해의하면 그렇지 않음을 여실히 알 수
있다. 즉, 불과를 이루게 되면 배운 내용을 가지고 간다는 것이다. 바
로 지복의 몸인 원만보신에 보존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휼륭한 가르침이 아닌가 말이다! 이는 정말 가히 큰스님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경천동지의 사자후가 아닐 수 없다.

하이테거가 이야기한 바처럼 인류의 무수히 많은 역사를 통해서 면
면히 내려오면서 우리는 끊임없는 내적 투쟁을 해왔다. 무엇을 위해서
내적 투쟁을 해왔단 말인가?

만약 큰스님이 안 계셨다면 우리는 불신사상, 즉 붓다의 삼신불에
대해서 알 수도 없고 제대로 파악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류가 유구한 역사 이래로 내적 투쟁을 해온 이유를 몰랐을 것이다.

아니 전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답은 나왔다.
인류가 유구한 역사를 통해서 내적 투쟁을 해 온 것은 다름 아닌
영원한 생명으로서의 우주적인 몸을 구현하기 위함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이다.

재삼 강조하는 바, 이는 가히 큰스님이 친히 증험한 붓다의 경지가
아니고서는 어는 누구도 친히 설할 수 있는 법문이 아님을 우리는 명
각해야 할 것이다.

무량광은 본원광이요, 부처님 광 다음의 불신에 대한 말씀은 법성으
로서의 자성광과 구별하여 무량광을 밝히고 계신다.

"불신보신은 '지복의 몸'이라 하겠습니다. 지혜와 복덕을 완전 구족
하기에미래제가 다하도록 진락을 누리기에그런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청정법신 곧 '전우주적인 몸'이 육체적인 형태를 띠고 경험세계 속에
반영된 몸이 바로 불신입니다.

부처님의 몸, 곧 불신은 거듭 말씀드리지만 엄청난 광도를 지닌
무량광으로 이루어집니다. 무량광은 우주의 근원인 빛(성광)이 아
니라 그것의 본원(엑기스)광이요, 부처님 광입니다."

자세히 이 말씀을 해의해 보면 상당히 심원한 가르침들이 녹아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원만보신은 유시무종으로서 미래제가 다하도록 진락을 누린다는 점,
둘째 원만보신은 청정법신의 육화된 형태로 경험 세계에 반영된 몸이라는 점,
셋째 견성이나 깨달음을 얻은 후 드러나는 자성광이 아니라 자성광의 본원광인
부처님 광이 바로 불신이 발하는 무량광이라는 점이다. 자성광이 나무의 한 조각
잎파리라고 하면 무량광은 바로 나무의 중심 줄기가 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큰스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불신을 얻지 못하면
붓다가 아니며 사바세계에 한 분의 붓다가 나오려면 삼계왕이신 석가
모니부처님의 선택이 있어야 합니다. 주로 선근 보따리가 붓다 되기에
충분한 수행승이 낙점됩니다. 선택된 이가 바로 상품상의 보살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항은 첫째, 불신을 얻어야 붓다가 된다
는 사실이다. 기존 선불교에서는 부처는 마음이고 마음이 부처
라고 한다. 그렇게 불교의 위상을 격하시키고 실추시켰다. 또한 선불교
는 위빠사나 명상, 안반수의(아나파나시띠), 염불선 등 다양한 불교 수행
체계를 외면하고 오로지 간화선으로 불교 수행체계를 정형화시키고
박제화함으로써 불교의 지고지순한 생명감을 멸실시키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큰스님께서는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 분연히 붓을 들으신 것이다. 우리는 이 점 큰스님께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둘째, 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선근 보따리가 중요함을 여실히 강조하
고 계신다. 수행자가 우주적으로 무한한 선근을 지었을 때 붓다가 될
수 있다는 점, 매우 합리적이고 보편 타당한 가르침이다.

하지만 큰스님이 아니 계셨다면 우리는 이 점을 명료하게 알지는 못
했을 것이다.

셋째, 상품상의 보살이 붓다 되기 위한 후보가 된다는 점이다.
큰스님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는 하나 수행 비결 내지
수행 요결이 아닌 것이 없다.



출처/ 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무량광이란*영산불교 현지사

 


무량광이란




무량광이란 깨끗하고 청정한 부처님 광명을 말합니다. 두 눈썹 사이에서, 두 발바닥 법

륜무늬에서, 온 몸에서 방사하는 억종광億種光, 열반광涅盤光, 백종오색광百種五色光입니다.

≪화엄경≫ 등 대승경전에서는 이를 티끌 수 같은 광명, 아승기 나유타 광명, 백천억 묘

한 빛 광명…… 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이는 안팎이 없이 드러나는 아름답고 영롱한

빛입니다. 한없이 방광해도 끝이 없습니다.

중생들의 앞에 있어도 그들이 볼 수 없는 희유한 빛입니다. 그리고 밝기는 섬광 이상입

니다. 중생이 보게 된다면 가루가 돼 버릴 부사의한 부처님 광명입니다.

자성‧진여의 광명부터는 태양빛과 달라서 밝고 어두움, 멀고 가까움, 땅 속, 물 속, 사람

들의 마음 속까지 비추는 것입니다. 

특히 무량광부처님광명은 부처님의 우주적인 힘이

뒷받침되는 지혜의 빛입니다. 

삼천대천세계 어디라도 비출 수 있고 천마, 외도 수장

모두를 조복할 수도 있고 중생의 업장을 씻고 소멸할 수도 있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Ⅱ 中에서 발췌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2022년 4월 3일 일요일

윤회로 부터 벗어나라!*영산불교 현지사

 


윤회로 부터 벗어나라!



금생에 불법을 만나 생사를 벗어나고 윤회를 벗어나려면 시공을 초월
위에서 강조했듯 몸과 마음이 청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중아라한이
됩니다.

나아가 성중하늘에서 와서 보살을 목표로 수행하는 대수행인들
은 고기와 술, 담배도 멀리해야 합니다. 몸에 이런 이물질이 들어
오면 탐진치 삼독이 정화되지 않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탁해
져서 공부가 되지 않고 청정한 정토에 날 수 없습니다.

물론 6하늘이나 5하늘 정도에 태어나고자 하면 술, 고기, 담배
피우는 정도는 상관없습니다. 부부생활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 경
우에도 개나 뱀의 고기만큼은 절대로 먹는 걸 금해야 합니다.

출가자와 재가 사부중들에게 말씀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업을 지어 삼악도에 갑니다. 그 중 절반 정도는
지옥에도 못가고 중천을 떠도는 무고혼이 됩니다. 처자와 재물에
대한 미련과 착심 때문입니다.

고혼이 되면 너무 춥고 배고픕니다. 효성이 지극한 자손이 큰스
님을 만나 천도해주지 않는 이상, 수백 년 혹은 그 이상이 지나도
록 중음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옥이나 짐승세계에 난다는 경고를 남의 일쯤으로 생각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세계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고 삼
악도로 떨어진다는 큰스님 말씀도 새겨듣지 않습니다. '그런 게
어디 있느냐' 는 식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삼악도의 세계가 있고, 천상도 있습니
다. 진실로 있습니다!

육도의 세계가 실재하고 중생들이 삼세를 통해서 윤회전생한다
는 이 말씀을 거듭거듭 힘주어 말씀드립니다. 아직도 지옥, 축생
종자들은 의심하고 이 진실의 외침을 비웃는 분도 계시겠지만 순
박하고 믿음 있는 불자들이라면 나의 법문을 경청하시리라 믿습
니다.
허물을 벗고 날아가는 매미가 진짜이듯, 이 거짓 몸뚱이를 벗어
던지고 빠져나가는 영혼체가 진짜입니다. 오히려 그 영체가 느끼
는 감도가 이 육신의 그것보다 더욱 생생합니다. 지옥이나 아
귀세계로 떨어진 이 영제가 고통을 받을 뿐 아니라 배고픔도
느낍니다. 이 거짓 몸뚱이가 고문당할 때의 고통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 않습니다.

죽어서 지옥이나 짐승이 될 때 우리의 4번 영체가 짐승의 뱃속
으로, 그 악도로 가는 것입니다. 4번 영체는 우리 몸뚱이와 털구멍
하나까지도 다르지 않습니다. 꼬부랑 할머니가 죽어 지옥으로
떨어지면 그 4번 영체는 꼬부랑 할머니 그대로 입니다. 살았을 때의
기억이 그대로 영혼체로 옮겨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코 악도로 가면 안 됩니다. 그러려면 죄를 짓지 마
십시오. 절대로 부처님과 법을 능멸하거나 모독해선 안 됩니다. 그리
고 5무간업, 4바라이죄, 10악업을 차례로 경계해야 합니다.




불교_오도증입을 요구

불교는 실천을 요구합니다. 아무리 학식이 있고 변재라 해도 실천
수행이 없으면 안 됩니다. 세계적인 대석학이라 해도 믿음이 없고 행
이 없으면 악도행입니다.

마음공부해서 깨달아야 하고 깨달음을 완성해서 아라한이 되고,
보살지에 오르고, 궁극에 이르러 붓다가 돼야 합니다.

불교는 오도증입을 요구합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육도의세계*영산불교 현지사

 


육도의 세계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고 빠져나가는 놈이 진짜 매미이듯, 우리 사람도 죽으면 몸뚱이라는 허물을 버리고 자기의 영혼이 빠져나갑니다. 이 영혼은 몸뚱이가 있어 영혼체라 합니다.

영혼체는 네 개의 영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4번 영체는 자기 몸뚱이의 복사체입니다. 명부에 들지 못한 이들은 자기의 몸뚱이에서 빠져나가 중음계에 떠돕니다. 

죽어서 바로 명부에 들어간 이들은 영체의 껍질 부분4번 영체 겉부분_영체에 대한 법설은 다음 장에서 한다을 이승에다 버리고 사자를 따라 저승에 들어가 49일간 대기해 있습니다. 그 사이 열시왕의 논죄를 받습니다.

이 49일간을 중유中有라 합니다. 위에서 말한 명부에 들지 못하고 떠도는 중음中陰과는 다릅니다. 중유와 중음세계는 엄연히 다릅니다. 논죄를 받고 판결대로 육도六道에 가서 나게 됩니다.
대개 사람들은 업을 짓고 살기 때문에 지옥에 갑니다. 자신이나 남의 삶을 파괴한 악행, 그리고 부모님께 불효하고, 부처님의 교법Dharma을 비방하는 등 죄업을 지으면 지옥에 떨어집니다.

지옥 벌은 빙한氷寒과 화염火炎, 기타…… 로 가해옵니다. 화탕지옥, 흑암지옥, 독사지옥, 도산지옥, 분뇨지옥 등……. 모두 있습니다.

한 가지 벌을 받는 지옥도 이 사바세계만합니다. 중지옥 이상의 무서운 지옥에서 형벌을 받고 있는 장면을 보면 성자라도 너무 끔찍하여 자지러지고 까무러칠 정도입니다.

불바다 지옥,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뗄 때마다 괴로워하는 죄수를 보면 간이 다 녹아질 지경입니다. 물 없는 사막, 태양이 작열하는 열 지옥을 걸어가는 죄수, 입이 다 마르고 목이 탑니다. 냉동실의 냉각기 바람의 온도가 영하 수십 도로 내려갑니다.

벌거벗은 몸뚱이가 순간 얼어붙어 괴로움에 괴성을 지르며 숨이 넘어갑니다.

날카로운 대꼬챙이가 열 손가락의 손톱 사이를 서서히 파고듭니다. 지네지옥에서는 지네가 사람 몸뚱이의 구멍구멍마다 파고들어 물어뜯습니다. 

이하 중략
이것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보는 이는 오장육부가 다 끊어지는 듯합니다.

형벌의 무서운 정도와 지옥 수명을 기준으로 나누자면 극무간지옥, 무간지옥, 중지옥, 하지옥, 대기지옥으로 구분하고 이들 다섯 지옥마다 각 지옥의 형벌 수준에 해당하는 지옥이 각기 수백이 됩니다.

《지장보살본원경》의 지옥 수는 그 일부라고 어느 날 대세지보살께서 법문해주셨습니다.
지옥의 형벌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것이 사실입니다. 가련하고 불쌍해서 볼 수 없습니다. 지옥 중생은 고통으로 인해 넋이 나가 자기가 누군지도 모릅니다. 고통이 시작되면 자지러질 듯 놀라고, 그 질려있는 모습은 차마 눈뜨곤 볼 수 없습니다.

심장이 터져버릴 듯하여 보는 자가 오히려 가슴 조여 두 번 다시 보기 무섭습니다. 지옥의 벌은 옥졸은 있으나 자동으로 집행됩니다. 지옥의 공기는 탁합니다. 안개 낀 날처럼 음산하고 맑지 않습니다. 낮과 밤도 없습니다. 항상 희미할 뿐입니다. 지은 죄업이 많으면 많은 지옥을 돕니다. 지옥에서 받는 벌의 아픔은 몸뚱이가 고문 받을 때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나의 진짜 몸, 영체는 거짓 몸뚱이를 벗고 빠져나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옥 중생은 고통으로 혼절하기 때문에 1초도 참회할 정신적인 여유가 없습니다. 지옥문에는 옥졸 수백 명이 밀어서 여는 철대문도 있고 작은 문도 있습니다.

 에스컬레이터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지장보살은 지옥을 관장하십니다. 명령은 10시왕으로 그것이 판관에게로 옥사장 앞으로 옥졸로 하달됩니다.

무간지옥의 죄수는 우리 교주 불 세존의 하명Order 없인 구제가 안 됩니다. 붓다의 경지에 올라야 지옥을 보고, 또 거기에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장보살의 위신력으로 꿈 속에서나 염불 공부 중에 지옥의 한 장면을 언뜻 볼 수도 있습니다.

지옥의 벌을 다 받고 나온 이들은 축생이나 아귀세계로 떨어져 그 곳의 업보를 채웁니다.
항상 굶주림과 갈증으로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 아귀계가 있습니다. 간탐, 진심瞋心과 질투가 아귀세계에 나는 주원인입니다. 배는 엄청나게 큰데 목구멍은 너무나 작습니다. 물을 마셔도 속에 들어가면 불로 변해버린다 합니다.

그리고 주로 바람직하지 않은 성행위로, 또한 사견邪見과 우치愚癡의 업으로 말미암아 태어나는 축생, 동물세계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영체靈體가 축생류 전부를 대상으로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포유류에는 영체가 들어갑니다. 열두 디에 속하는 동물에는 모두 들어갑니다. 

조류 중에서 비둘기, 독수리, 학, 꿩, 제비, 공작, 앵무새, 구관조, 까치, 까마귀는 윤회의 대상에 들어갑니다.

파충류로는 열두 띠에 드는 뱀 외에 거북이가 들어가고, 양서류인 두꺼비에도 영체가 들어갑니다. 어류로는 상어, 잉어에 영체가 들어갑니다. 

물개, 물표범, 고래는 물에 살지만 어류가 아니고 포유류이기 때문에 영체가 들어갑니다.

곤충류에는 들지 못합니다. 엄밀히 말해서 영체가 들어가는 축생류만이 불성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축생의 보를 다 받고 나서 다시 인간 몸을 받아오는 것이 정석입니다. 사람 따라 축생보를 먼저 받고, 지옥에 가는 이도 있습니다. 사람 사람마다 지은 업은 명부에서 논죄합니다.

무슨 지옥 몇 겁 또는 다른 지옥 몇 겁, 축생보로 구렁이 몇 생 다른 짐승으로 몇 십 생, 아귀보로 몇 겁, 이렇게 지은 업대로 산계소작算計所作하여 컴퓨터 이상으로 정죄定罪가 됩니다. 그럼 추호도 사私가 없이 집행됩니다.

우주 공간 안의 수많은 별나라에는 기체 인간들 소위 외계인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죄업의 원인이 되고 근본이 되는 육신이라는 것이 없고 다만 기 영혼체로 살기 때문에 큰 죄를 짓지도 않고, 크게 착한 일도 하지 않습니다.

사는 것이 비교적 안정돼 있어서 악업이 없고 마장이 적어 부처님 공부도 잘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적 진화가 느립니다. 가끔 외계인이 인간 몸을 받아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수라阿修羅의 세계도 실제로 있습니다. 1하늘 하下급의 별도의 하늘입니다. 복을 많이 지었으나 시기·질투심이 있어 싸우기를 좋아합니다. 

제석천왕에게 여자를 달라고 싸우게 됩니다. 편싸움으로 부상을 크게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죽지는 않습니다. 영체는 죽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하늘세계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립니다.

하늘도 크게는 여섯 하늘로 나누고 자세하게는 54품의 구분이 있습니다. 하늘 천국도 54하늘이나 된다는 말입니다. 오계五戒·십선十善으로 산 이들이 갑니다.

사람이 죽어 하늘에 갈 때는 3번 영체로 가 납니다. 3번 영체의 설명은 다음 장에서 하겠습니다. 하늘천상, 천당은 올라갈수록 수명도 길어지고, 복 수용도 더 합니다.

하늘의 복이 다하면 인간으로 오게 됩니다.
죄업도 지었지만 착한 일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먼저 지옥에 가서 업보를 다 받고 하늘에 오르기도 합니다. 

삼계·육도를 윤회하는 한 죽음을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하늘 꼭대기에 올라간다 할지라도, 바다 속 들어가거나 산을 쪼개고 그 가운데 몸을 숨긴다 할지라도 죽음은 반드시 그 자를 찾아냅니다.

중생은 윤회생사합니다. 육도의 윤회생사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윤회를 벗어난 아라한·보살·붓다의 세계, 여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로 1하늘을 지나면 제석천왕의 거소가 있고, 사천왕의 거소도 있습니다. 

제석천왕은 1하늘~6하늘 사람들을 관장합니다. 불격을 갖춘 최상수보살입니다. 바로 위에 성중하늘도 셋으로 자세히는 27품으로 나눔 구분합니다. 

성중하늘을 여기서 언급하는 이유는 성자의 반열에 든 이들이라 마음 공부를 할 줄 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들은 그래서 거의 퇴전하지 않고 윗 성중하늘로 오릅니다. 성중하늘에 태어나려면 착하게 살고, 불법 공부 잘해서 선정에 들 수 있어야 합니다.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이 가는 세계입니다. 성자의 반열에 듭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
13장 사람이 죽으면 어찌되나-불교의 생사관 - 광명 만덕 자재 만현 저







지옥 지장보살과 열시왕이 관장*영산불교 현지사

 


지옥 지장보살과 열시왕이 관장


지옥은 지장보살이 관장하는 곳으로, 남방의 지장궁 옆에 위치
해 있습니다.

상품보살 이상 붓다권 내에 든 대수행인은 삼매 속에서 지옥을
봅니다. 공을 깨친 후 무아 속 삼매에 들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착이 남아 있어서 망상을 떨치지 못하는 수행인이라면 선
정에 들어서도 지옥의 진상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런 수준의 선정으
로 보여지는 것은 요술쟁이의 마음이 그린 거짓 지옥 에 불과하
고, 진짜 지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장보살은 '붓다 중의 붓다' 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붓다
이십니다. 열시왕은 상품보살들이십니다. 무독귀왕, 도명
도명존자는 상품보살 이상의 불격을 갖춘 상수보살급이십니다.

무간지옥이나 극무간지옥에서 온 영가는 지옥의 옥졸이 쇠사슬
로 묶어서 데려옵니다.

보통 천도재의 결과는 수일 후에 나옵니다. 부처님들의 위신력
으로써 올리는 천도재는 영가 모두를 특별히 지장궁 별당으로 구
인해 갑니다. 그러나 죄업이 지중해 무간지옥에 떨어진 영가는 천
도가 거의 안 됩니다.

오직 부처님은 대자대비하시고 우주적인 무한한 능력을 구족하
시지만 사바세계 남섬부주의 당대에 붓다 이룰 그 제자의 집전 발
원에 의해서만이 악도에 빠진 중생을 건질 수 있습니다. 태양빛이
쨍쨍 내리 쬐더라도, 화경불록렌즈을 조정해야만 검정 헝겊을 태우
듯, 큰 제자라는 인연을 만나야 지옥중생이 구제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전제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영가의 이름으로 공덕을 짓
도록 많은 불 보살께 먼저 공양을 드리는 겁니다.

이런 천도재를 모셔드리는 공덕은, 그 어떤 공덕보다 수승합니
다. 영가 당사자들의 지은 업장이 씻어져서 보다 나은 세계로 천도
될 뿐 아니라, 천도재를 모신 이는 자손으로서 그만큼 큰 효를 해
드려서 더욱 좋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직도 중천을 떠도는 조상의
고혼들을 명부에 넣어줌으로써 후손이 나쁜 병을 얻지 않고, 자살
또는 횡사하지 않아서 다행인 겁니다.

물론 모든 나쁜 재액, 천병이 영가의 빙의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는 우리들 사람이 전생에 지은 큰
악업으로 인해 여러 재앙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분명히 알아두셔야 할 점은, 천도재를 집전하는 스님이 최소한
청정한 비구스님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도 청정이고, 둘째
도 청정입니다.

이제 승려의 양심으로 돌아가 상업화 되어가는 천도재는 즉각
중단해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의 죄업을 짓지 않기를 바랍니다.

능력 없이 천도재를 많이 하는 사찰은, 저급 영가들의 역겨운 냄
새와 사악한 기가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귀신들이
꽉 차 있고, 귀신들이 득세하여 이미 성지가 아닙니다. 사찰은 청
정도량이어야 합니다. 절을 위해서도 상업화딘 천도재를 멈춰줄
것을 간절히 당부 드리는 바입니다.

적어도 아라한과에 증입할 때까지는 사생결단 외길을 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 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나옹 혜근-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불교의 생사관

"무협에도 신검 합일, 화경, 현경, 생사경 단계로 나눈다고 합
니다. 신검 합일은 검과 몸이 하나가 되는 단계이고 화경은
여기서는 붓다가 되기 위한 필수조건인 생사관 확립에 대한
내용입니다. 인터넷을 주유하는 어는 강호 네티즌께서 좋은 글
을 올려주셔서 여기에 인용합니다. 네티즌님의 대의는 그
대로 하되 제가 그 내용을 약간 각색하여 정리를 해봤습니다 검
기를 다루는 것이며 이때 육체적인 뼈와 살이 바뀌는 환골탈태
가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으며 현경은 검과 마음이 하나가 되
어 어검술(검을 심기로 날려서 적을 공격하는검술)을 부릴 수 있
다고 하며 이때도 환골탈태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물론 이
때는 영적인 환골탈태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생사경은 몸이
사라진다 해도 보이지 않는 영적 몸만이 살아있다면 언제든지
부활이 가능한 단계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생사경에 도달하
신 분이라고 합니다."

생사를 초월하는 경지, 즉 부처님의 경지에 대한 생사관 내
용은 큰스님께서 최상위 존재계인 절대 법계에 거주하시는 석
가모니불의 가르침을 전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 잘 나
와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불교계의 사활이 바로 올바른
생사관 정립에 있다고 하실 정도로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지적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백 번 옳다고 생각합니다. 견성을 한다
고 해서 생사관을 확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즉 불과를 증위
해야만 생사관을 얻을 수 있다는 점, 누차 강조해도 지나친 말
이 아니라는 점을 명료하게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무주고혼영가*영산불교 현지사

 


무주고혼 영가




죄업을 많이 지은 사람들이 죽으면 상당수가 명부에 들어가지
못하고 무주고혼으로 지냅니다.

객사한 사람, 자살한 분들, 몹쓸 병을 얻어 대소변 가리지 못하
고 죽은 이들, 처자에게 착이 많은 영가들의 대부분은 윤회에 들
지 못하고 명부에도 들지 못합니다.

이런 영가들은 반은 사람, 반은 귀신이기에 춥고 배고픕니다. 이
런 고혼들은 식색등의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인연 있
는 자손의 몸에 빙의 합니다.

여기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런 조상의 영가가 빙의
된 자손은 객사하고, 자살하고, 몹쓸 병을 얻습니다.

이런 불행을 막기 위해서 천도재가 필요하지만 완벽한 천도재를
감당할만한 큰스님이 없는 게 문제입니다. 인간이나 하늘천상에
태어나도록 할 수 있는 길이 있는 데도 말입니다.

부처님 당시 10대 제자인 목건련은 당신의 어머니를 4번 천도해
드림으로써 하늘천상에 태어날 수 있게 했습니다. 이 일은 거룩하
신 부처님께서 주관하셨던 천도재였기에 가능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지은 업을 소멸시킬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의 수
행이나 참회 보살행에 의해 정화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서만이 중생의 죄업이 소멸됩니다.

또한 부처님만이 지옥 축생의 중생을 건질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위신력, 우주적인 구원의 힘에 의해서만 중생이 제도되는 것
입니다. 아라한도, 보살도 이 일만은 못합니다.







생사관*영산불교 현지사

 

생사관



우리가 사는 이 지구, 남섬부주가 소속된 태양계, 우주는 수명이 무한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생겨났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정확한 수치를 알고 있지만 말할 필요 없습니다. 어쩌면 영겁을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생성소멸을 반복합니다. 사람도 그럽니다.

여러분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무시 이전부터,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옛적부터 겁이 문제가 아닙니다. 영겁이 문제가 아닙니다. 

무시 이전부터 여러분은 생명을 받아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고 죽고를 반복하고 있어요. 앞으로 미래제가 다하도록 그럽니다.

이때 사실이 이러하니까 여러분은 큰스님의 법문을 꼭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떠한 일이 있느냐.. 어떻게 나고 죽고를 반복하느냐.. 사람으로 와서 업, 죄업을 많이 짓습니다. 아무리 죄업을 지으면 안 된다고 해도 죄업을 짓습니다. 

죄업을 지으면 반드시 과보는 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 보니까 내가 항상 말이지만 오늘 처음오신 분도 계시고 해서 또 말씀드립니다.

이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확실한 교법입니다. 이걸 부인하면 확실한 사설(邪說)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어서 죽죠? 죽으면 아주 죽는 것이 아닙니다. 

지은 업이 있어서 그 업대로 받습니다. 그런데 40, 50%는 명부에도 들지 못한다는 겁니다. 명부에도 들지 못한다는 말을 이해 못합니다. 

세상사람 이해 못하고 불교인도 이해한 사람이 거의 없고 부처님 이후로 큰 스님도 거의 백지상태입니다. 

그런데 우리 현지사는 대단히 그 부분에 대해 잘 압니다. 아함경에서 약간 설명해놓았지만 우리 현지사 법설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그래서 많은 종파가 분열이 됐습니다. 원시불교에서 29파로 분열된 원인이 그것입니다.

왜 명부로 들지 못하느냐? 집착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집착! 욕심! 사랑하는 사람의 정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놔두고 명부로 못 갑니다. 

돈에 대한 집념이 강하다면 돈 번 것이 몇 천억이라면 못 들어갑니다. 
자살하면 명을 다하지 못했기에 명부에 못 들어갑니다. 
하늘이 내린 병을 받고 죽으면 명을 다 못살아서 명부에 못 들어갑니다.

집착입니다. 집착 때문에 명부에 못 들어가는 사람들이 40, 50% 지난 10년 통계로 알았습니다. 그러면 명부에도 못 들어가고 자기 몸도 한줌 재가 되고 흙이 되었기 때문에 자기 몸은 이미 기능을 발휘 못 하기 때문에 죽었거든요. 

그래서 반틈은 귀신이고 반틈은 사람입니다. 이것이 무주고혼입니다. 무주고혼도 생명체여서 먹어야 하는데 기독교 자손을 둔 조상은 1년에 1끼도 못 먹어, 그러니 친구 따라서 이쪽 가서 얻어먹다가 얻어먹기도 하고 저쪽 가서 얻어먹으려다가 맞기도 하고 배가 고프고 추워서 너무너무도 가련합니다.

어떤 영가는 지옥보다도 더합니다. 명부에 꼭 넣어야죠. 그런데 명부에 넣어주려면 큰 법력 있는 스님을 만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혹 명부에 들어가더라도 거의 절대다수가 지옥을 가기 때문에 지옥은 분명히 있는데..

그 지옥의 실상은 등골이 오싹할 정도가 아니고 너무너무도 무섭기 때문에... 나를 낳아서 길러주고 가르쳐주고 결혼, 분가시켜준 어머니, 아버지, 그 부모님을 낳아준 조상님들이 갔어. 

그런데 효를 모르는 자식들은 또 배웠다고 자기가 다 아는 줄 알고 저 세상 없는 줄 알고 큰 스님이 법문하는 것을 듣지도 않으려고 하고 들으면 창작 이야기라고 하고... 그렇게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에 대해 나몰라라 합니다. 그러면 부모, 조상님들 지은 업대로 다 과보를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 현지사는 그걸 알기 때문에 공부를 다 마치면 불과를 증한다고 하죠? 불과를 증한 분은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 불쌍한 중생을 구해주는 거예요. 명부에도 들지 못한 중생, 지옥도 다섯 구분 되어있는데 아주 무서운 지옥 미래제가 다해도 못 나오는 지옥이 있어요.

그 다음 조금 낫다고 하는 지옥이 무간지옥, 더 나은 지옥이 중지옥, 더 나은 지옥이 하지옥이고 벌이 없는 대기지옥이 있다고 부처님께서 구분하십니다.

그런데 이곳을 지은 업 따라서 도는 사람이 있어요. 무간지옥이나 급무간지옥에 가면 거의 못 나오지만 어쩌다가 나오기도 합니다. 

아귀, 축생을 거쳐서 옵니다. 사람 몸을 받아도 정신적, 신체적으로 불구로 삼중고, 사중고 받아서 옵니다.

대성자는 그것을 볼 수 없습니다. 열반할 때까지 가능한 많은 중생을 구하고자 하는 그 서원! 중생 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내가 짧은 한 시간에 그 생사관을 (현지사처럼 생사관이 뚜렷한 곳이 없습니다.) 서구 지성인들이 생사관에 갈망하고 목말라하고 있어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한데.. 성경, 코란을 봐도 없죠.. 간단하게 돼있죠.. 죽으면 지옥 천당. 죽으면 또 오는데 그걸 모릅니다. 현지사는 완벽한 생사관이 있습니다.

지금 내 책이 영문으로 고급스럽게 번역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미국으로 가서 출판될 겁니다.




출처/법문집 2권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육도윤회~~2*영산불교 현지사

 


육도윤회-2



붓다는 가장 중요한 불신을 포함해서 몸이 여섯입니
다. 인간은 몸뚱이가 다섯입니다. 20세기말 신지학에서
사람은 이 육체와 4개의 영체가 합해져 이루어졌다고
발견해 냈습니다. 탁월한 성과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몸뚱이, 이 거짓 몸뚱이는 여러 물질, 불교에서는 지.수.
화.풍이라고 합니다. 그 사대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이 거짓'나'는, 이 몸뚱이 집은 백년을 못 살
고 죽습니다. 땅 속으로 묻힙니다. 지.수.화.풍 사대로
돌아갑니다.

사람이 죽으면 대부분 악도로 가기 때문에 네 개의
자기 영체중 4번 영체가 영계에 듭니다. 그때 1, 2, 3
번 영체는 4번 영체 속에 겹쳐져 있습니다. 4번 영체는
이 거짓 몸뚱이와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 사부대중 불자님들. 다시 말씀하노니, 사람은 죽
으면 완전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은 업에 따라 가는
곳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나 재물이나 자기 몸뚱이, 처자 등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집착이 대단한 사람은 죽어 명부
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저 세상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들은 곧 윤회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 말입니다. 천명
天命에 가더라도, 명命이 다해 죽어도 저승사자를 따라
가다가 되돌아오는 수가 있습니다. 저승에 들지도 못하
고, 이 몸뚱이도 이미 땅속에 들어갔으므로 중천을 헤
매는 고혼이 됩니다. 그 세계를 중음계라 하는데 이 세
계는 춥고 배고픕니다. 어둡고, 무섭고 외롭습니다.

그리고 천수, 천명이 남았는데도 도중에 요절한 사람
들, 그 영가들은 또한 중음계에 떨어집니다.

교통사고나, 스스로 음독이나 다른 수단으로 자진. 자
살한 사람들, 전쟁에 나가 총, 칼 맞아 객사해 죽었다
든지, 횡사 객사한 그런 사람들, 거의 대부분 중
음계에 들어 중음 고혼으로 떠돕니다.

다음으로 무서운 질병으로 많은 세월을 신음하다 죽
은 영가도 즉, 암이나 간질, 중풍, 에이즈 같은 하늘이
준 천질로 죽은 사람들 그 영가들도 거의 중음계에 듭
니다.

저의 소견으로는 사망한 사람의 70~80%정도가 중음
고혼이 됨을 말씀드립니다. 사부대중 여러분! 저 이 법
문은 진정 사실입니다. 그런데 새상 사람들은 물질만
능, 황금만능 사상에 젖어 보고, 듣고, 느끼는 바깥세상
만을 전부로 알고 살죠. 성을, 이성을 탐하고, 스포츠를
즐기고, 돈 버는 데만 골몰하죠. 명예와 권력을 쫓고
삽니다. 이 몸뚱이가 진짜 자기로 알고 죽으면 끝이라
생각합니다.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위해
온갖 죄업을 짓고 삽니다. 피땀 흘려 벌어 놓은 돈, 한
푼도 죽어 가져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명예도 사랑하는
이도 저승에 같이 따라가 주지 않습니다. 죽으면 끝나
는 것입니다. 물론 이 육체는 땅속으로 들어가 흙밥이
되죠. 그러나 이 몸뚱이를 집으로 삼고 한평생 살았던
자기는 주인공은 명이 다하면 의식이 그대로 남아있는
4번영체로 지옥이나 축생 혹은 아까 말했던 중음영가
로 새로운 고달픈 생을 살아갑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죽어 상당기간 4번영체로 살아가는
데 4번영체는 이 몸뚱이의 털구멍하나 다름없이 꼬부
랑 할머니가 목발 짚고 살다 죽었으면 목발 짚고 악도
에서 지냅니다. 그때 3번, 2번, 1번영체는 4번영체 안
에 겹쳐져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큰
죄업도 짓지 않고, 남에게 폐도 끼침이 없이 오히려 착
한일 많이 하고 살다 죽으면 틀림없이 하늘 천상에 납
니다. 앞에서 말한 4번 영체는 하늘천상엔 적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4번 영체는 죽어버립니다. 3번 영체
가 가서 납니다. 이때 2번, 1번 영체는 3번 영체 속으로
로 겹쳐듭니다.

90살에 죽었어도 3번 영체의 나이는 40대입니다. 몸
은 건강하고 얼굴은 미스코리아보다도 더 아름답습니
다. 아라한 성과를 이룬 성자는 성인이 나는 하늘에 2
번영체가 가서 납니다. 보살과를 이룬 성자는 서방정
토 극락세계에 1번 영체로 가서 납니다. 그때 2번, 3번
영체는 1번영체 속으로 깃듭니다. 중생의 1, 2, 3번영
체는 영원히 죽지를 않습니다.

화두타파하여 자성이 드러나 견성하여 다생의 습기를
녹이는 보림공부를 잘 마친 이는 비로소 아라한이 됩니
다. 중생은 아라한 이상 될 수 없습니다. 구조상 그렇
습니다. 전생에 아라한이나 보살과를 이룬 이는, 그런
선근이 있는 이는 금생에 잘 하면 보살이나 붓다까지
이룰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 드렸듯이 중음계 영가들, 소위 중천을
떠도는 영가들, 그 고혼들은 대단히 불쌍합니다. 그리
고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고혼 영가들은 배고픔이나
이성 욕구 해결을 위해서 가까운 인연을 따라 빌붙어
해결합니다. 그래서 업을 짓고 지냅니다. 중음세계에
오래있는 영가 일수록 업이 지중해져서 큰 스님을 만나
천도 되어 간다해도 지옥 중에서도 무서운 지옥으로 떨
어집니다.



출처/법문집1권중 라디오 법회 1집 (2001.6.24)에서 발췌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기자의 질문



 ○기자의 첫 번째 질문입니다.



불교에서는 육도윤회를 한다고 하는데
사람이 죽어서 가는 그런 세계가 정말 있습니까?


(이 문제만 해도 대부분의 지금 불교는 이 부분에 대해서 말을 유보하고 있습니다.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부처님만이 이 말씀을 하셨거든요. 힌두교, 자이나교에서도 이걸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 부처님처럼 자상하게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해탈세계 이후의 법위에 대해서는 일체 모르고 있습니다. 영산불교에서는 잘 알고 있잖아요. 

깨달음, 아라한, 저들은 아라한 위인 보살, 붓다의 세계를 모릅니다. 우리 영산불교는 더 자세하게 나누어서 이야기합니다.

아라한 위에 무루대아라한을 이야기하고, 천녀세계를 이야기하고, 무루대아라한도 상 중 하품이 있고, 천녀세계도 9품이 있고, 더 가면 정토세계 대기가 있고(정토대기, 저 정토 극락세계 대기 하늘이 있고), 거기를 넘어가야 극락세계이고, 경전에서는 9품을 이야기하지만 영산불교에서는 27품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극락세계를 마치고 저기 약사부처님이 교주로 계시는 약사궁 약사유리정토에 가서 또 공부를 해가지고 보살수업을 다 마치는 거예요. 이건 우리 영산불교 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이제 대답한 거예요.)

▸답 : 매우 적절한 질문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는 죽지만 영혼체는 영원히 죽지 않고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하늘의 여섯 세계를 돌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육도윤회입니다. 이 육도윤회세계는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존재합니다.

(영산불교 이야기예요. 지금 불교에서는 극락도 지옥도 마음속에 있다고 해요. 지금 이렇게 되어버렸어요. 이것은 사마외설입니다. 그렇게 말하면 대망어입니다. 다시 또 이야기하지만 죽어서 가는 세계가 여섯 개의 하늘세계가 있어요. 

윤회 안의 세계가 여섯 개가 있어요. 이것을 이야기 한 것은 세계의 종교 중에서 세 개 밖에 없습니다. 이건 맞는 말인데, 이만큼 깊이 못 들어간 종교들이 세 개만 빼놓고 전부 다 예요. 세 개가 어떤 종교냐?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예요. 

여러분, 비교종교에 대해서 많이 공부하셨기 때문에 스님이 이렇게 말씀하는 거예요. 다 이해 하시겠지요? 육도를 이야기한 거예요. 어디 기독교에서 육도를 이야기 합니까? 

여러분, 안 하지요? 할 수 없어요. 이것은 불과(佛果)를 증해야 알아요. 그러니까 우리 식구만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그 경지가 아니올시다. 보살의 경지도 아닙니다. 그 말만 합니다.)

죽어 저승(명부)에 들어간 영혼체는 (이 영혼체 이야기를 내가 처음《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렇게 하다가 지금은 이 영혼체를 윤회의 주체라고 확실히 해준 거예요. 이 영혼체가 윤회의 주체입니다. 

그런데 이 영혼체에 대해서 자이나교나 힌두교에서 알았어요. 그 정도가면 알지요. 그러나 우리 영산불교에서 처럼 영혼체에 대해서 밝게 모른다 그거지. 

밝게 이해를 못했다 그거지. 영혼체, 힌두교에서도 영혼체가 1․2․3․4번이 있는 것까지도 알았어. 그러나 1․2․3․4번의 기능에 대해서는 몰라요. 더 깊은 것은 영산불교 밖에 몰라요)
49일간의 열시왕의 심판을 받고 그 결과에 따라 갈 곳이 정해집니다.

(이것이 맞습니다. 여러분, 이 말이 맞습니다. 이 말을 듣고, 공부하고, 이제 밀교를 보십시오. 밀교를 공부해보라고. 이 말에 어긋납니다. 

그리고 밀교는 즉신성불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건 아닙니다. 즉신성불이 될 수 없는 거예요. 금생(한생) 가지고 불과(佛果)를 이룰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즉신성불의 원리와 교리를 보니까 이건 아니어요. 이거 큰일 날 말을 하고 있어요. 아니어요. 그것은 이제 시간을 두고 이야기 하겠습니다)

살생 등 중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지옥으로 갑니다. 지옥도 그 고통의 강도에 따라 극무간지옥, 무간지옥, 중지옥, 하지옥, 대기지옥의 다섯으로 나누어지고 그 각지옥의 부분지옥들도 무수히 많습니다(여러분, 이것도 맞습니다). 

중지옥 이상은 영혼체가 까무러칠 정도의 가혹한 형벌이 자동으로 집행됩니다(이게 맞습니다. 지옥사자들이 직접 찌르고 하지 않습니다. 자동적으로 집행이 됩니다. 이게 맞습니다. 

힌두교에서 지금 이것까지는 모릅니다). 간탐하고 인색한 사람은 지옥을 거쳐서 항상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귀보를 받습니다. 짐승처럼 행동하면 반드시 축생보를 받습니다(이것을 알아두십시오). 

그리고 착하게 산 사람은 인간으로 태어나거나 아수라, 천상의 삼선도에서 즐거움을 누립니다(이것도 맞습니다). 물론 윤회를 벗어난 성자는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는 해탈계로 갑니다(이것도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람이 죽으면 절대다수가 중지옥으로 갑니다.

(여러분, 이제 이것이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중지옥으로 갑니다. 그리해서 불과를 증한 성자가 이 사실을 알려 주려고 열반에 들지 않습니다. 

이런 중지옥으로 떨어지면 큰일 나기 때문에 그런 죽음의 길로 가는 중생들을 붙들고 ‘너 지금까지 이렇게 못 된 짓하고, 이런 못 된 생각을 했는데 이러지 말라. 

참회하고 부처님 말씀을 들어라. 사는 길이 있다. 산다. 사는 길로 가야지, 너 지옥가면 큰일이다’하고 교화를 하는 거예요. 포교를 하는 거예요.

그랬더니 우리 신도 분들 수백천명은 죽어서 지옥을 안 가겠더라 그거예요. 왜냐? 이렇게 법문할 때 부처님께서 쭈~욱 청정한 억종광의 빛을 방사해 주게 되어있습니다. 

이것도 겁에 하나예요. 지금 부처님 교단의 법문 때만 그래. 그러면 여러분 그 더럽고 더러운 때(마음의 때, 죄의 때)가 씻겨져 나간다고요. 

이런 많고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시커먼 영혼체가 자꾸 씻겨나가고 씻겨나가고 하기 때문에 이제 하얗게 된다고. 하얀색으로 말입니다. 아주 말쑥하고 청정하게 돼. 이 정도 되면 하늘을 가는 거예요.

그런데 자력으로는 안 돼. 자력으로 수행을 그렇게 해본 사람들을 봐도 못해. 그것이 씻겨 지지를 않아. 어느 정도 정화는 되지만 소멸은 안 되더라고. 

그래서 우리 영산불교의 법문을 한 달에 두 번 와서 들어주시기 바라고, 또 여러분들이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들께 진정한 효를 해드려라. 그것이 뭐냐? 천도재입니다. 

불교에는 어느 종교에도 없는 천도재가 있다. 그런데 다른 절 천도재는 안 되더라. 아니다 그거예요. 아니다. 이건 험담하는 것이 아니어. 진실이 안 돼. 안 돼. 이유가 있지요. 뒤에 나옵니다.

그동안 내가 법문을 많이 했으니까 읽어보시면 알 것입니다. 지옥에 있는 조상님을 어떻게 데리고 옵니까? 데리고 와야 돼. 

천도 해 드리는 이 법석으로 데리고 와야 돼. 데리고 올 사람이 없어. 지옥을 누가 가서 찾아 갈 사람도 없고, 역사 이후로 그런 큰스님도 없고. 아무리 큰스님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법력이 없었어.

그래서 오직 부처님이 주관하는 천도재라야 되는 것이어. 그래서 지옥에 있는 그 조상님들을 지옥사자들이 데리고 오고, 축생 몸을 받은 그 조상들을 데리고 오고, 이건 도인 100명 1,000명이 모여도 안 돼. 

그런 힘이 없어. 또 무주고혼으로 있다 하더라도 죽은 지 10년 20년 30년 되면 신통이 대단해. 그러나 빛으로 쏴버리면 가지도 못해. 허공중으로 물속으로 해서도 솟구쳐. 

땅속으로 숨어도 솟구쳐버려. 그 빛의 힘으로 가지도 못해. 그래서 잡아 온다 그거예요. 이런 천도재는 영산불교 밖에 없어. 그래서 네(4)번을 하면 그 부처님의 자비와 위신력으로, 그 빛의 힘으로 하늘까지 가는 거예요)



출처/2010.9.1.수(음7.23) 큰스님 대전 법문내용중 발췌
추신/현대불교신문에 실린 내용을 토대로 다시 보충해서 법문하신 내용입니다






2022년 4월 2일 토요일

한 생각을 놓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염불선*영산불교 현지사

 


한 생각을 놓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염불선



이렇게 한 생각을 놓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큰스님 말씀대로
‘석가모니불’을 찾는 것이다. 염불선이 강력한 이유는 무성하고도 불과 같이치성(熾盛)하게 일어나는 생각들을 ‘석가모니불’명호를 사용해서 녹일 수 있다는데 있다. 

고도의 집중 상태에 들어가게 되면 큰스님께서 비유하신 바대로 용광로라는 삼매에 잡념들이 녹아버린다. 집중이 제대로 안 되면 불처럼 치성하게 일어나는 중생심에게 ‘금강반야바라밀’을 외우게 하는 것이다.중생심이 발동하려고 해도 ‘금강반야바라밀’을 중생심에게 먹이면 석가모니불을 보다 뚜렷하게 할 수 있다.

한편 스토아학파(금욕주의학파)의 현자 에픽테토스는 “인간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은 일어나는 일 자체가 아니라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생각이다”라고 하였다. 

매우 정확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조용히 생각을 지켜봄으로써 생각이 힘을 잃고 사라지도록 하는 위빠사나선이나 염불선을 통해서 일념삼매에 들어가는 방법 그리고 화두를 들어 오직 화두에만 전심전력하는 화두선 모두가 선 수행법이다.

불교는 여하튼 선을 모르면 안 된다. 선(禪)의 글자 뜻은 하나(單)를 보는 것이다. 그 하나라는 것은 허공처럼 충만하고 충일한 마음이다. 중생심과 대비되는 청정심이 그것이다. 생각을 지켜보는 마음을 볼 수 있다면 그 주시하는 마음을 강화하여 청정심을 이룰 수 있다.

이 청정심을 얻는 것이 견성(見性)이다. 큰스님의 염불선은 위빠사나선이나 화두보다 안정적이고 부작용이 없다. 그러므로 구도자는 항상 큰스님 말씀처럼 ‘행주좌와 어묵동정’ 어느 장소 어느 순간이나, 즉 일체 처, 일체 시에 석가모니불을 억념해야 할 것이다.

사실, 잡념과 망상이 있기 때문에 불교 공부가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잡념과 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된 생각들, 즉 망상이 없다면 공부감이 없는 것이다. 

공부감이 없다면 배움도 없다. 사바세계는 인고의 땅으로서 우리의 본성을 깨우치고 세상의 이치와 우중의 섭리를 배우기 위해 태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도자는 비록 견성이라는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이 상당한 인고의 세월을 요구한다고 해도 용기를 갖고 정진해야 할 것이다. 공자님 말씀대로 공부를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더 훌륭하다는 점을 상기하고 이 불교 공부가 힘들지만 이왕이면 즐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적은 내면에 있다’라는 가장 기초적인 마인드를 잘 숙지하고 항상 내면을 성찰하고 염불선을 생활화하면서 지내야 할 것이다. 

물론 내면에서 일어나는 중생심을 너무 과소평가하지는 말아야 하며 항상 진지한 마음과 긍정적 마인드로 염불선에 임해야 할 것이다.

달마 조사는 견성, 즉 깨달음을 위해서 이입사행을 역설했는데 이입사행이란 이입(二入)과 사행(四行)을 합한 말이다. 이입(二入)은 이입(理入)과 행입(行入)을 말하며, 사행은 행입의 내용으로 보원행(報怨行)·수연행(隨緣行)·무소구행(無所求行)·칭법행(稱法行)을 말한다.

여기서 이입(理入)은 경전에 의해 그 근본 정신을 파악하고 일체 중생의 마음이 진성(眞性)임을 알아서 도리와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즉 이입사행은 수행의 근본을 설명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행입에 대해서만 거론한다.

행입 중 보원행은 현세의 원망과 증오가 모두 과거에 자신이 지은 업(業)의 대가이므로 인간 본래의 도를 닦는 데에만 전념하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보원행이 바로 전생과 현생에 지은 타인에 대한 원망을 갚는 수행이다. 이것이 수행자에게 가장 큰 문제이며 여기서 수행의 시작이 이루어진다. 

남이 나를 원망하건 내가 남을 원망하건 그 원망심을 없애는 것이 보원행(報怨行)이다.

서양에서는 용서(forgiveness)로서 알려져 있다. 타인을 용서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죄업을 사할 수 없다. 

즉 보원행을 행하지 않고서는 자신이 전생부터 지어온 악업과 빚을 청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원결을 소멸시키고 원망을 제거해가는 행(行)을 수도(修道)로 삼아야 한다.

수연행은 순리에 따라 도에 합치되도록 하라는 말, 즉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인연을 잘 살펴 삶을 살아가라는 뜻이며 인연에 거부감을 갖거나 지나치게 인연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다. 한편 무소구행은 구하는 것을 없애서 애착과 집착·탐욕을 일으키지 말라는 말이다. 

또 칭법행이란 모든 불법을 항상 공경하고 찬탄하라는 가르침이다. <<법화경>>에도 부처님의 법을 찬탄하는 공덕은 그 어떤 공덕보다도 수승하다고 전하고 있다.

스승에 대한 지극한 공경과 감사 없이는 수행은 불가능하다. 공경과 감사가 무르익을 때 스승의 가르침을 찬탄하고 믿을 수 있으며 그렇게 됨으로써 석가모니부처님에 대한 귀의, 귀명하는 마음이 더욱 강화된다. 

사실 죄업이라는 것이 알 수 없는 먼 과거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심지어 멸시한 죄업이 아닌가 생각한다.

무명(無明)이라고 하여 가장 원천적인 연기(緣起)의 시작은 부처님의 12연기의 처음이자 고통의 근원이다. 이 무명(無明)은 다른 말로 말하면 ‘어두움’이다. 

어두움은 공포, 두려움, 불안 등을 말하며 이러한 두려움은 결국 부처님에 대한 믿음의 결여에 있다고 알고 있다.

무시 이래의 헤아릴 수 없는 과거시절부터 불과를 이루지 못한 우리 모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기도 했지만 진실로 받아들여 목숨을 걸고 매진하고 정진하여 완전한 죄업을 다 사하지는 못했다고 본다. 

가장 큰 죄는 바로 부처님을 믿지 않고 세속적 욕락(慾樂) 속에서 살아가면서 얻은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집착이 아닐까 한다.


출처 / 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