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일 목요일

스님들의 음행죄.음계





스님들의 음행죄 


출가하여 수행하는 스님들이 음행죄를 짓거나 한번이라도 사음죄를 범하면 일단 중지옥이나 무간지옥에 떨어집니다.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생에 선근공덕이 있어, 온갖마장을 이겨내고 정진을 멈추지 않아 크게 도를 깨진 이라 하더라도 음행을 저지르며 또는 불 보살과 지옥 극락이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다는 등 부처님과 법을 왜곡해서 모독하고, 능멸한다면 무간지옥에 떨어져 빠져나올 기약이 없습니다.  이말씀은 여러 불 보살님들께서 누누이 강조하신 내용입니다.

붉교에서는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여러 선행을 하라 제약막작 중선봉행'고 가르칩니다.  궁극에는 자정기의해서 생사의 해탈을 바라는 위대한 종교입니다.

여기에는 자력수행과 타력 곧 부처님의 위신력, 우주적 구원의 힘이 있습니다.  함께 수반되어야 합니다.

먼저 자기를 구제한 후에 남을 제도하는 게 올바른 순서입니다. 중생은 불성를 지니고 있으므로 도아라한를 이룰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무명의 껍질이 벗겨져 자성이 드러나 견성한 후 보림을 잘 마친 이를 가리켜 '아라한성중'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라한의 성과를 얻으면, 생사의 뿌리가 끊어져 윤회를 벗
어난 세계에서 납니다.

그런데 인간은 구조상 아라한 이상은 오를 수 없습니다.  중생은 아라한이 한계입니다.  사과를 증득해 아라한이 되고나면 다시 대비심을 발해서 원력 따라 이 세상에 몸 받아 올 수 있습니다.

보살은 아라한이 몸을 받아와 수행, 정진한 후 타력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 얻을 수 있는 성과입니다.  사람이 번뇌망상만 털어버리면 본래 부처라고 하는데 이치상으로는 틀린 말은 아니지만, 부처 붓다란 자기의 불신을 얻어 삼신을 구족해야 합니다. 

신라의 자장율사는 대아라한과를 중하셔서 윤회 밖의 성중 제1하늘에 나셨습니다.  자성마음자리이 드러나는 것은 간화선, 위빠사나, 밀교 수행으로도 가능합니다.  경계가 뒤지혀 온 세계가 안팎이 훤하여 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깨침에도 강약이 있습니다.  크게 깨쳤다하면 오매일여가 되어 꿈에도 법문합니다.  이때부터 더욱 계율특히 음계을 견지하면서 두타행으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나를 죽이는 무아의 공부로 들어가야 중생의 구경각 인 아라한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아라한성중은 붓다가 아니라는사실을 거듭 밝히는 바입니다.

'견성즉성불' 이란 말은 위험한 표현입니다.  화두참구를 통해 얻은 견성은 이제 공부의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자성은 단박에 깨달을 수 있으나 시작도 없는 옛날부터 무시겁으로
내려오면서 쌓아온 기와 습은 그렇게 단박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업장도 자기 힘만으로 소멸되는 것이 아닙니다.

'백겁 동안 지은 죄업이라도 한 생각 깨쳐 광명을 보면 찰나에 없어진다 백겁적집죄 일념돈탕제' 하는 말도 이치상으로는 맞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돈오돈수는 오직 붓다의 화신에게만 가능한 것입니다.  나는 이 사실을 분명히 선언합니다.

아라한이라도 성중하늘에 났다가 남섬부주에 다시 오면 잘못된 길에 빠져 악도에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무량광을 보고서도 안으로 육종진동이 없으면 부처님을 뵈어도 법문을 직접 들을 수 없고 무아 속의 삼매에 들 수도 없습니다.  십지 보살도 붓다의 진신을 볼 수 없습니다.  도를 이루었다는 분들도 이러한 경지 이르지 않고서 함부로 법을 설하면 안됩니다.

아라한 성자는 작은 열반에 만족치 않고, 법화경에서 가리키는 대로 부처님의 가르침과 뜻에 따라, 보다 높은 위인 보살, 붓다가 되기 위해 이 사바세계에 몸 받아 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보살 8지가 되어야만 '보살' 이란 칭호를 붙이십니다.  이 경지에 올라야 신장2명이 호신하고, 극락정토에 왕생하게 됩니다.  여자라면 남자 몸으로 바꾸어 극락세계에 납
니다.

인도의 용수 마명 무착 천친 호법, 중국의 현장 법사, 혜원 연종 조사우리나라의 원효 의상 서산 함허 스님이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한 보살들입니다.  티베트의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극
락세계 상품보살의 후신이며 11세기 전설적인 성자 미라래빠는 정토북방정토에 상품상의 보살로 왕생한 분입니다.

보살이 남섬부주에 여러 번 생을 받아와 붓다를 이루는 데 있어서는 억겁다생의 업장과 습기, 악연, 빚 그리고 탐 진 치 삼독의 뿌리가 녹아 없어져서 털끝만큼이라도 그 찌꺼기가 남아 있지 않아야 무아 속 절대세계에 자기의 불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아니하면 불과를 증할 수 없습니다.

불신은 열반광무량광이라고 하는 빛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붓다는 빛으로 계십니다.  빛이시기에 삼세의 여래는 한 티끌, 한 생각이 모두 같습니다.

불과를 증한 이는 자기의 거짓 몸뚱이 속 네 개의 영체가 모두 빛덩어리가 되어서 자기 불신과 계합합니다.  더 깊은 말씀은 여래의 밀장이기에 함구하겠습니다.

선가에서,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별을 보고 깨쳐 붓다가 되었다' 고 말합니다.  그러나 확철대오 했다고 해서 붓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랜 생 동안 여러 단계와 관문을 통과해서 불신을 얻어야 붓다가 되는 것입니다.  대오견성은 아라한 자리에 이른 것에 불과함을 분명히 알아야겠습니다.

불신은 백천만억 화신으로 나툴 수 있습니다.  백천 삼매를 임의로 하시고 팔만사천 신통을 구족, 일체에 자재하십니다.  지혜와 복덕, 자비 그 자체가 됩니다.

현신할 때의 불신은 상모 단엄하셔서 32상 80종호 그 이상입니다.

그 모습과 일거수일투족은 자비의 극치이시며, 한 순간 뵙기만해도 모든 재난과 업장이 소멸될 만큼 엄청난 위신력을 지니고 계십니다.  교종에서는 이 불신을 보신이라고 합니다.  바로 '지복의 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대적정삼매에 항상 들어 계시고 빛으로 있어서 미래제가 다하도록 멸도하지 않습니다.  붓다 이룬 이가 혹 출타할 때에는 백천의 신장님들이 앞뒤를 호위하므로 그 광경은 실로 대단한장관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진정으로 삼계의 지존이시자 남섬부주의 대교주이시며, 구원실성 최초불 이십니다.

생사의 윤회고를 벗어나려면 계율을 잘 지키고 그 중에서도 '음행' 을 저질러선 안 됩니다.  설사 크게 깨쳐서 보림 중인 수행자라도 음행을 저리른다면, 마치 한 컵의 물에 똥물이 한 방울 떨어져 그 물을 마실 수 없는 것처럼 윤회생사의 고를 벗어나기는커녕 악도까지 퇴전할 수 있습니다.  출가자는 반드시 무소유와 청정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해 둡니다.

그리고 수행자는 온갖 마장을 막아 줄 수 있는 대선지식 밑에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또한 효를 다해야 하며 경전을 읽고 염불을 해나가되, 가능하면 두타행으로 착과 상을 떼어가야 합니다. 
  
출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음 계  

큰스님의 법력이 실린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그 무엇보다도 구도자와 불제자에게 음계를 목숨 걸고 호지할 것을 혈토하시는 심정과 준엄한 어조로 당부하고 계십니다.  오늘날 불가에서는 불제자라는 분들이 내밀하게 음행을 일삼고 있다는 것이 세속인들에게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신심 깊고 선근이 깊은 청정한 수행을 위해 정진하시는 많은 스님들과 불제자님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과거보다도 오늘날 많이 음계의 중요성에 대해서 망각하고 있는 것이 불가의 현실이라고 봅니다.

음계를 범하는 것은 자신을 단두하는 죄임을 알아야 한다는 큰스님의 사자후는 바로 음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에 대해 불제자들에게 중대한 경각심을 제공해 줍니다.  우리는 음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명각해야 합니다.  


음계를 범하면 수행자에게는 치명적임을 환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 또한 마음에서 미세한 음욕이 일어난 후 하루 종일 일이 안 되고 괴로움에 시달린 적이 있어 이를 잘 압니다.

한국의 유명한 스님이 말씀하신 대로 "계율을 어기면 위험이 따른다."는 말씀을 잘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재차 강조하는 바<<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음계가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음계를 범하기 때문에 살생을 하게 된다고까지 하신 큰스님의 말씀은 만고불변의 진리임을 우리는 명각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음계를 범하게 됨으로써 탁한 에너지와 탐,진, 치 삼독에 물든 중생심에 의해 청정심이 가리워지고 번뇌망상에 빠져 결국 다른 계율까지 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음계의 중요성을 무엇보다도 역점을 두어 피력하고계신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의 가르침은 그 어떤 명상 수행 서적과 종교 수행서적에서 보다도 실제적이고 대면하기 극히어려운 내용임을 우리 불제자들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음계를
내밀하게 도외시하고 외면하고 급기야 헌신짝처럼 무시하고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불교계를 향한 큰스님의 사자후를 우리는 뼈 속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첨언해서 불제자가 걸러가야 할 길, 그리고 구도자가 걸어가야 할 길은 동일합니다.  즉 자신의 에너지 시스템을 환골탈테하여 청정한 공심을 증득해야 합니다.  공심을 증득하면 그것이 바로 견성의 경지요 선가에서 말하는 깨달음으로 증입해 들어가는 경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그 후 보임을 잘하면 무아적인 청정심이 더욱 맑고 깨끗하게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견성 후 보임을 완성하는 경지가
아라한 자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영적 하이어라키(위계)에서 청정심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음계를 파하는 행위로 자신의 에너지 시스템을 똥물로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큰스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청정한 물이 담긴 컵에 똥물이 한 방울 떨어지면 마실 수없는 것처럼, 구도자는 계율을 엄격하게 지켜야하며 음계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보임을 제대로 할 수도 없으며 아라한의 공과는 이룰 수 없습니다.  보임은 육체를 벗어버리고 마음이 육체를 떠날 때까지 지속됩니다.  큰스
님께서 설하신 '음계와 청정수' 비유 말씀은 촌철살인적인 가르침으로서 우리 불제자는 이를 뼈 속 깊이 사무치고 두뇌깊숙이 각인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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