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5일 목요일

스승의 날 특별 법문중 발췌(부처님의 불신 삼신)


스승의 날 특별 법문중 발췌(부처님의 불신 삼신)

여러분,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제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로 들어 온지가 약 8년 밖에 안됐습니다. 앞으로 인류를 정신적으로 향도할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춘 그러한 종교는 지성인들이 너나없이 불교 그럽니다. 이제 기독교 갖고는 안 된다 그럽니다.

여러분도 이 견해에 대해서는 동의 할 것입니다. 기독교의 옅은 교리 갖고는 21세기의 지성 있는 인류를 이끌고 갈(향도할)수 없습니다. 이제 불교에다가 기대를 하는데, 불교도 부처님의 삼신관 · 불신관 중에서 보신의 사상, 참 법신의 의미를 모르면 우주적인 메타종교가 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을 잘 알아두어야 합니다. 아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부처님이란 어떤 분이고, 부처님은 여러분들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종교가들도 이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하는 불신관 · 삼신관, 그러니까 부처님의 몸뚱이에 대해서 확실히 모르면 우주적인 종교라고 할 수도 없고, 21세기를 끌고 갈 수도 없습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21세기 우주적 메타종교, 신불교가 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불신 · 삼신, 그렇게 중요 합니다. 왜 그러느냐? 이 우주 만물이 어디서 왔느냐? 여러분들은 강의를 많이 들었으니까 스님 법문을 조금 이해 할 것입니다. 어디서 왔느냐? 저기 기독교 같은 일신교(一神敎)에서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존자, 유일하고 절대한 하나님이 있어서(태초에 하나님이 있어서) 만물을 창조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불교에서는 그렇게 이야기를 안 합니다. 우리 현지사에서는 그건 말이 안 된다고 했지요. 그것을 논박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그런 시간이 없고 내가 법문 때마다 가끔씩 문제를 짚고 넘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그걸 공박할 필요성도 없고, 가치도 없습니다. 그건 다음기회에 하기로 하겠습니다.

우주에 편만(遍滿)하고, 편재(扁在, 두루두루 해 있다)하고, 만물에 내재하고(모든 것에 속속들이 있고), 그러한 일심 · 진여 · 마음 · 일원상 · 법성, 이것은 우주 만물에 내재해 있으면서 우주에 주변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절대요 초월이요 하나요 유일입니다. 이것은 미묘합니다.

이것은 정의하기가 대단히 어렵지만 사랑이요, 힘이요, 지혜입니다. 거기서부터 나왔다 그럽니다. 이것을 공(空), 주인공, 원각(圓覺)이라고도 하는 등 이름이 많습니다. 모든 것이 거기서 나왔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나왔느냐? 저 푸른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일듯, 그 구름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갑자기 구름이 일듯, 그 구름이 이제 인연 따라서 중중무진으로 연기(緣起)하기를 20겁, 20겁 토록 진화 한 거요.

그래서 만들어지고, 지금도 유지 되고 있고, 더욱 진화 되고 있고, 그러다가 언젠가는 사멸해버리는, 사멸해버린다 하더라도 또 다시 20겁이 흐르면 다시 생성과 사멸을 반복한다. 이것을 영겁토록 반복한다. 이렇게 봅니다. 이것이 불교의 우주론입니다. 그걸 알아야 되요.

그런데 우주에 편만(遍滿) 해있고, 모든 만물에 내재 해있는 소위 우주의 진리(법성)와 내가 하나가 되는 거요. 계합을 하는 것이 법신불이요. 줄여서 법신이라고도 합니다. 지금 이걸 모릅니다.

대석학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걸 모른다고요. 모르면서 앞에 말한 우주에 주변하고, 만물에 내재한 소위 일심 · 진여 · 자성 · 마음 · 공(空) · 법 · 법성 · 원각, 여기다가 인격화 시켜버린 것을 법신이라고 하는데, 우리 현지사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주의 진리하고 내가 억겁을 수행해서 청정과 무소유를 닦아서, 두타 행을 해서 실로 억겁을 수행을 해가지고 내가 청정하고 밝기가 저 햇빛을 초월할 정도가 되면 순도가 100% 넘어버려. 그렇게 되면 거기가 붓다의 경지인데, 그 경지에 가서 소위 법성과 내가 하나가 되는 거요. 이걸 법신불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우리 석가모니불의 법신불은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인 거요.
모든 붓다는 자기의 법신불이 있는 것입니다. 이게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이 정도를 이해하게 되면 아주 차원 높은 불자인거요. 많은(상당한) 지식이 있는 불자라고 볼 수 있어. 이걸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그래서 법신불을 이룬 자기의 법신불은 무형이어요. 형상이 없어. 이건 빛이야. 빛이지만 자기의 생명체이어요. 대우주의 대생명체하고 자기하고 계합 한 거요.

자기는 이미 억겁을 수행한,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업장도 없고(녹아져버리고), 번뇌도 녹아져버리고, 습도 녹아져버리고, 기도 녹아져버린, 불지(佛智)에 올라간 나(我)가 법성(法性)과 계합 할 수가 있는 거요. 그렇지 않으면 계합이 안돼요. 우주 자체인 법성, 우주 진리와 계합하려면 내가(수행자가) 그만큼 순도 100%가 되어야 돼. 청정무구해야 돼. 그래야 법성과 계합이 되는 거요.

계합이 된 그 몸뚱이를 법신불(법신)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만이 우주적인 종교인 거요. 그래서 불교의 교리(부처님 말씀)는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시공을 막론하고, 초월해서 까지 보편타당 한 거요. 부처님 말씀은 진리인거요. 불교의 계율에도 첫째가 불살생 이렇게 나오잖아요.

다른 종교는 안 그럽니다. 우주적인 종교인 우리 불교의 계율은 첫 번째로 불살생입니다. 생명이상 소중한 것 없는 거요. 두 번째, 생명 다음으로 소중한 것은 재물이어. 그래서 도둑질 하지 말라 이렇게 나가잖아요. 완전히 우주적인 종교는 그렇습니다. 계율만 보더라도 안단 말이어요. 이 법신불에 대한 이해를 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 다음에 억겁을 수행해서 업장을 녹이고(태산만한 자기업장을 녹이고), 탐 · 진 · 치 삼독내지 모든 108번뇌의 뿌리를 다 녹여버리고, 습 · 기도 녹여버리고, 이정도로 수행한 분은 이제 붓다의 경지에 간 분들인데, 그 정도 가게 되면 저기 무아속 절대세계에 자기의 유형의 몸을 두게 됩니다.

그 때는 유형의 몸이어. 법신은 무형의 몸이지만 이건 유형의 몸을 둔단 말이어요. 32상 80종호의 유형의 몸을 두어. 유형의 몸을 두는데, 우리 업 덩어리인 우리 중생들은 물질로 몸뚱이가 이루어져 있지만, 그리고 하늘 사람(윤회안의 하늘사람, 몸뚱이 없는 저 하늘사람)도 미립자입니다.

공(空)을 지나가지 못한 미립자(초미립자)로 이루어져 있지만, 절대계에 계시는 저 부처님의 몸뚱이는 빛으로 이루어져 있어. 빛도 보통 빛이 아니어. 앞에 말했던 법성의 빛도 아니어. 법성의 빛, 그걸 자성광이라고 하는데, 앞에 이야기 한 우주에 편만하고 내재한 것은 자성광(법성광)인데, 붓다의 빛은 그걸 넘어서 무량광(억종광)이라고 그래. 이건 빛의 빛이라고요.

그 빛(억종광 · 무량광)은 여름 한 낮 햇빛 속에 시려서 볼 수 없는 그런 빛 까지도 초월해 있습니다. 억종광으로 이루어진 몸뚱이를 절대세계에 둔다 그 말이어요. 또 절대세계의 몸뚱이는 항상 대적정삼매를 수용하고 있다고요. 대적정삼매는 모든 삼매의 삼매입니다. 대적정삼매에 들어가야(통과해야) 절대세계에 들어 갈 수가 있어.

그러니까 거기에 있는 보신 부처님은(지복의 몸뚱이는) 항상 대적정삼매를 수용하고 계신단 말이어요. 형상도 있는 32상 80종호를 갖추고 있고, 몸뚱이는 억종광으로 이루어져 있고, 정신적으로는 환희 환희입니다. 환희라는 말을 함부로 쓰면 안 되는데, 부처님의 법열을 환희라고 해. 환희를 맛 볼 수 있는, 항상 환희 속에 있어요. 대적정삼매의 세계가 환희의 세계입니다.

그 환희의 세계에서 있을 수 있는 자기의 몸뚱이를 저 연화장세계(유 · 무를 초월한 절대세계)에 둔다 그 말이어. 이걸 알아야 돼. 이걸 보신의 사상, 보신이라고 그래. 절대세계의 몸뚱이를 보신불(보신)이라고 합니다. 보신만 있느냐? 앞에 말한 법신도 있단 말이어요. 보신은 법신이 없으면 안 돼. 법신이 없으면 보신이 자랄 수가 없어.

그런데 법신이나 보신이나 이 몸뚱이가 없으면 안 돼. 이 몸뚱이가 억겁으로 내려오면서 수행한 결과로 해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법신불이 생기고, 보신불이 생기고 그래. 요놈(육신은)은 거짓 몸뚱이지만 불과를 이룬 분을 화신(화신불)이라고 그래.

인간 세상에 사는 그러면서 교화하는 몸뚱이를 화신불이라고 그래. 그리고 하늘, 성중하늘, 극락세계에 다니면서 교화하는 것을 화신이라고 그래. 그 화신은 보신에서 나와. 자기를 백 천 만억 동시에 낼 수 있어.

그 낱낱 부처가 또 낱낱 불국토를 가서 교화를 한다고요. 그러니까 수백천만 자기 몸뚱이를 낼 수 있는 몸뚱이는 보신이어. 법신이 아니어. 보신에서 나와요. 보신에서 나오는 이유가 있어요.

보신불 · 화신불(응화신불) · 법신불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삼신관, 삼신설 혹은 불신관 그럽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의 삼신설(불신관)을 모르면 21세기 메타종교, 신불교란 있을 수 없습니다.

보신(지복의 몸), 우주적인 무형의 몸은 법신불이지요. 이걸 모르고서는 불교를 모릅니다. 진짜 불교를 모르는 거요. 지금까지 많은 스님들, 많은 불교학자들이 법신을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법신의 뜻이 아닙니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대단히 소중히 하고, 깨달음을 목표로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맞지 않는 말입니다. 전혀 틀리는 말은 아니지만 깨달음은 이제 시작입니다. 깨달아서 계율을 엄정히 지키면서 자기 없는 수행(두타행)을 함으로서 이 몸의 착(着)을 떼어버리고 , 이 우주의 무상(無常) · 고(苦) · 무아의 성품을 체득한 데가 아라한입니다.

아라한은 다시 타력으로 보살이 되는 것이고, 보살은 다시 타력으로 보살도를 완성하고 보현행원을 실천하고 완성을 해야 붓다가 되는 것이고, 붓다가 되면 저기 상적광세계에 자기 법신불을 두고 동시에 연화장세계(무아속 절대세계)에 보신불을 두고, 그 세 몸뚱이는 하나이고, 언제라도 하나로 계합이 되고 떨어지고 이렇게 한다 그거요.

그러니까 이 몸뚱이가 죽을 때는 이 몸뚱이를 놔둬 버리고 이 몸속에 있는 네 개의 영체 모두가 자기 불신으로 들어가 버리는 거요. 저기 법신불한테는 안 들어갑니다. 보신불로 들어간다고. 보신불이 중심이니까 보신불로 들어가 버려. 그래서 만년 후에 다시 사람 몸을 받아오고 싶다 할 때 이 속에 들어있는 본래 네 개의 영체가 다시 사람 몸을 받아 옵니다.

힌두교의 교리를 보면 바라마라고 하는 범(梵)에서 벌써 아홉 분의 화신이 나왔다고 하거든요. 9번째가 붓다이고 8번째가 크리슈나이고, 그건 말이 안 돼. 범(梵), 저 법신에서 못나오는 거요. 더구나 법성 · 일원상 · 일심 · 진여, 거기서는 나올 수도 없어. 나하고 계합해버린 법신불에서도 나올 수가 없어. 여기는 초월 평등 한 곳(세계)입니다.

그래서 여여의 이(理)와 여여의 지가 계합했다 그래. 법신불은 생각이 없고 판단이 없어. 전부 평등이어. 거기는 대원경지상 평등해. 이제 네 개의 영체가 들어간 보신불 쪽으로 오게 되면 그 보신불은 여러분과 같은 망상을 피우는 것이 아니고, 오직 지혜와 자비로서 중생을 교화하니까 판단은 대단히 명석하지요. 보신불에서는 판단도 하고 구상도 하는데 법신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법신은 그걸 초월해 버린 거요. 여러분들이 그러한 사상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깊은 사상을 갖고 있는 종교만이 세계(인류)를 인도(지도)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그 왜소한 사상가지고는 절대 안 됩니다.

모든 사람들한테는 불성이 있다 그러거든요. '모든 사람뿐만 아니라 준동함령이 다 불성이 있느니라' 라고 경에 쓰여 있지만, 그 불성, 여래장, 이것은 씨앗(씨)이지 열매가 아니다. 이 씨앗을 틔워가지고 줄기 · 가지를 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려면 이건 자력과 타력으로 가능하다.

'모든 움직이는 동물들, 만물의 영장인 우리 안에(이 마음속에) 모두 불성이 있다.' 이러한 경의 말씀을 너무 지나치게 해석해 가지고, '중생은 본래 불(佛)이다.' 이렇게 과장 해석해가지고, 내가 본래 불인데 적당하게 불교도 믿고 적당하게 살면 되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하면 큰 착오다. 위험한 생각이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씨앗이다.

씨앗이니까 이 씨앗을 열매로 만들려면 많은 타력이 필요하다. 비옥한 땅속에 씨앗을 뿌려야 되고(심어야 되고), 싹이 나오면 잡풀도 뽑아주는 사람, 물주는 사람, 필요하다면 거름도 주고, 가지도 쳐 주고, 병충해를 없애는 약도 뿌려주고, 햇볕도 쪼여야 되고, 비도 내려 주고, 바람도 불어주고... 이렇게 해서 씨앗이 싹이 나고, 줄기와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거요. 절대 타력이 필요합니다.

타력이 없으면 안 되는 거요. 그런데 오늘날 한국불교는 완전 자력불교입니다. 그리고 세게불교도 미얀마 저쪽의 남방불교는 완전 자력불교입니다. 그러나 미얀마 불교는 여기 선불교 보다는 우수합니다.

어떤 점이 우수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시간 관계상 말 할 수 없으나 어쨌든 자력불교입니다. 저기 티베트 밀교는 어느 정도 주력에 의지하고, 밀장을 의지하기 때문에 조금 평가를 하지만 티베트 밀교는 붓다의 삼신을 모릅니다.

그 쪽에서 삼신, 사신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아닙니다. 어떤 것이 법신인줄도 모르고, 어떤 것이 보신인줄도 몰라요. 보신을 바르도(중음)세계에 두는 그런 수행법이 있습니다. 그걸 보신으로 아는데, 아닙니다. 보신은 어디까지나 중음이 아니고, 하늘도 아니고, 성중하늘도 아니고, 정토도 아니고, 극락도 아니고, 저기 '무아속 절대세계' 에다 두는 거요.

'상적광 세계' 에다가 두는 거요. 보신을 중음세계에다가 두는 것이 아니어.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밀교 갖고도 안 되고, 밀교는 또 신통이 많이 나오지요. 신통을 부리면 안 되는 것이고(업만 짓는 것이고), 신통을 부리면 무서운 죄업의 과보가 있는데 과보를 받기 때문에 큰일 날 일입니다.

그래서 오직 타력이 필요한데, 오직 절대하신, 엄청난 능력을 지니신, 진정한 하나님이신 우리 부처님의 타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붓다는 우주에 주변하고 내재해 있는 그것과 하나가 되어버렸잖아요. 하나가 되어 있는데 보신이 그리 들어 갈 때가 있어요. 법신불로 들어갈 때가 있는데 그때는 정말 우주적인 능력을 쓸 수 있는 거요.

우주에 편재하고 내재한 그 공(空)과 하나가 되어 버렸는데, 하나가 되어버린 그 법신불 속으로 다시 삼신의 중심인 보신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이건 우주적인 온갖 질료(質料)와 지혜등 모든 것을 잡아 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붓다는 사실상 하나님이지만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인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이야말로 그 법신불(청정법신비로자나불)로 모든 붓다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 능력은 진정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러하지 이러한 빛 이전의 하나님은 없었던거요. 공(空) · 법(法) · 법성(法性)이 먼저 있었다니까요. 모든 것에 먼저 있었어. 천지 나기 전에 있었어. 그걸 천지 미분전이라고 그래. 이것은 시간 공간 이전에 있었어. 그런데 하나님이 어떻게 있어. 법이 하나님보다 먼저 있었다니까요. 법이라는 것은 하나님보다 먼저 있었어요.

출처/ 2008.5.15. 목(음4.11) 현지궁 현지사 자재 만현 큰스님 춘천 법문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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