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5일 금요일

식(識)이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이유




()이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이유
 
 

자 여러분! 많은 사람들은 이 몸뚱이가 있어서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번에 이야기 했습니다. 이 몸뚱이가 있어서 내가 있다 그래요. 사람들은 이 몸뚱이가 나()인 줄 알거든요. 죽어버리면 이제 자기는 끝나버렸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아닙니다. 그게 아니어요. 그게 아니고, 조금 어려운 교학 용어, 불교 교리로 말하자면 이 몸뚱이를 가진 사람은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오온이라고 해요. 다섯 가지 요소. 이 오온(五蘊)은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물질적인 것은 몸뚱이잖아요.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이 물질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런데 이 정신, 정신적인 것, 수상행식(受想行識)이 있단 말이에요. 여러분은 많이 아실 거예요. 설명할 필요도 없어요. 정신은 수상행식(受想行識)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물질적인 색()-몸뚱이 하고, 정신적인 수상행식(受想行識)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이것을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오온(五蘊)이라고 그래요.

이 오온이라는 놈은요, 의식(意識) ()-식 그러면 눈이 대상을 보잖아요. 그러면서 생기는 식, 그것을 안식(眼識)이라고 그래요. ()은 감각기관이 대상을 보았을 때 생기는 감각 알음알이를 식이라고 해요. 귀가 내 법문 소리를 듣잖아요

들음으로서 어떤 식이 생기는 것을 이식(耳識)이라고 그래. 귀 이(). 귀가 알아듣는다 그 말이어. 귀 이(), 이식(耳識)이라고 그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그럽니다. 이렇게 식()이 여섯이 있어요. 보통 우리가 말하는 마음은 여섯 번째의 의식(意識)을 말하지요. 우리의 마음을 여섯 가지로 나누어 본 거예요.

그런데 이제 불교가 발달하다가 보니까 대승불교로 와가지고 이제 한 1000, 부처님 가신 지 1000년만에 무착이라든지 세친이라든지 호법이라든지 이런 분들이 나와 가지고 유식학(唯識學)을 정립하면서 이 마음의 구조를 말나식 아뢰야식 해서 여덟 개로 말을 해요. 그렇게 사유해서 확정을 해가지고 그런 거예요. 이렇게 전문적인 말을 할 필요가 있는가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유식에서 말하는 말나식하고 아뢰야식은 사실 잘못 본 거예요.


, 이 몸뚱이가 나올 수 있었던 것,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이 의식(意識), 안이비설신의의 제 육식(六識)인 의식(意識), 그 의식의 밑바탕에, 심층부에, 심층부에 있는 어떤 것-부파불교에서는 그것을 여러 가지로 이야기하는데 식() 심식(心識), 이것 때문에 이 몸뚱이가 생길 수 있다 그래요

오온(五蘊)을 아무리 분석해 봐도 색식으로 이루어져 있단 말이에요. 분석을 해보면 5가지로 이루어져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더 분석해 들어가 버리면 다 비어있다 그거예요. 그래서 공()이라고 합니다. 무아(無我)라고 합니다. ()라는 것이 없다고 봅니다. 불교에서는요.

현상세계의 모~든 법은, 사람을 비롯해서 동물이라든지 광물이라든지 무생물이라든지 그 어떤 것도 나()라는 것이 없다. 실체라는 것이 없다. 왜 그러느냐 하면 인연으로 모아가지고 생긴 것이고, 인연이 다하면 흩어져버리더라 그거야. 아무것도 없더라 그거야. 무아다. 무아가 진리다. 안아트만(anatman)이다. 불교는 이렇게 말해.


, 그러니까 힌두교에서는 아트만(atman), 불교는 안아트만(anatman) 그러잖아요. , 실체가 없으면, 나의 실체가 없으면-여러분! 항상 스님이 이야기하지만 이거 문제가 되요. 내가 없다면, 내가 없다면 이거 문제가 되는 거예요. 말이 안 되는 거예요.

, 내가 없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육도에 윤회한다고 그러시거든요. 중생이 육도에 윤회한다고 그래요. 지옥에 가기도 하고 축생도 되기도 하고 아귀세계도 가기도 하고 사람으로 올 때도 있고 하늘을 가기도 하고 아수라세계-하늘의 저쪽 일부인데, 아수라세계에 가 나기도 하고, 이 육도 여섯 하늘을 빙빙 돈다 그거예요. 육도를 윤회한다 그래.
 
그러면 윤회를 하는데, 윤회를 하면 어떤 것-이 몸뚱이를, 그것으로 인해 몸뚱이를 생기게 하는 그것, 선업과 악업이 저장되어서 다음생을 불러오는 것, 그것이 마음인데 그 마음 보다 더 심층적인 어떤 것-~의식 깊은데 그 어떤 것이 있어서 이 몸뚱이를 생기게 하는 그놈이 있어야 된다, 이렇게 본 거예요. 부파불교에서.


20개 부파 중에서 특히, 가령 대중부라든지 상좌부라든지 독자부라든지 화지부라든지 경량부라든지 설일체유부라든지... 그 사람들이 굉장히 깊이 연구해가지고 찾아낸 것이 있어요. 그것을 통털어서 심식(心識)류라고 그래요. 어떤 식()이어요 그것들이.

그 사람들은 몸뚱이를 태어나게 하는 것, 윤회하게 하는 그 어떤 것을 식()으로 본 거예요. 어떤 식()이 있어가지고, 그것에 선악업이 저장되어서 그 업연(業緣)으로 이 몸뚱이가 생겨나왔다 그거야. 이렇게 봐요

그래서 이제 부파불교마다 다 이름이 다르고 조금씩 내용이 다르지만, 가령 어떤 부파불교에서는 그 식()을 근본식이라고도 하고, 유분식이라고도 하고, 푸드갈라라고도 하고, 궁생사온이라고도 하고, 의식이라고도 하고, 일미온이라고도 하고... 이러한 심식류를 내세운 거예요. 이것이 없이는 안 된다 그거예요.

이것이 있어서, 이것이 있으면 생명이 유지되고, 이 세상 살아갈 수가 있고, 사후에도 생명의 주체가 되어서 살고 또 후세에 몸을 받을 수도 있고. 아주 근본식이 있어가지고 그런 것이다 해서 그렇게 주장을 했는데, , 부처님께서는 무아(無我)라고 했는데, 실체가 없다고 했는데, ()이라고 하는 실체를 딱 설정을 하다가 보니까 마음에 걸린단 말이어.

이제 또 설일체유부나 경량부 같은 데서는 오온의 상속(相續) 심의 상속(相續) 등을 이야기합니다. 좀 어려운 이야기인데 부처님의 무아설에 맞추어 심식이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찰나설을 주장한 거예요.
 
가령, 강물이나 촛불, 활동사진 등을 보세요. 계속 흘러도 강물은 강물이잖아요. 물방울은 서로 다르지만 끊임없이 이어져 가잖아요. 전깃불 보세요. 여기도 계속 전류가, 전자의 흐름이 이어지고, 또 활동사진도 그럽니다. 순간순간을 찍잖아요. 그것을 모아놓으면 이제 활동사진이 되잖아요. 강물도 그래요.

계속 한 지점에 물이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어. 그냥 지나가버리는 거예요. 또 다른 물이 들어와. 계속 흐름이어 흐름. 나중에는 윤회의 주체도 이 흐름으로 보는 거예요. 의식의 흐름, 마음의 흐름, 흐름 자체를 윤회의 주체로 봐버리면 무아사상(無我思想)에 안 걸려요

흐름 자체를 윤회의 주체로 봐버린 거예요. 흐름은 뭐냐? 의식의 찰나생 찰나멸이어요. 생각도 그렇잖아요. 이 생각, 금방 어떤 생각이 일어났다 하면 그러면 또 없어져버리고 새로운 생각이 일어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잖아요.

이렇게 의식이 계속 흘러가잖아요. 이 의식의 흐름, 마음의 흐름, 이것을 윤회의 주체로 보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무아의 사상에 맞단 말이에요. 그 흐름을 실체로 볼 수는 없잖아요. 무아(無我). 실체가 없어. 주체가 없단 말이에요. 이 흐름은 주체가 아니니까 무아 사상에 맞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제 그런 것 저런 것 다 정리가 되요, 유식학에서는.

용수 때에 와서는요, 부처님 가신 지 600년 정도 되어서 용수라는 대학승이 나왔잖아요. 용수라는 분은 , 이거 뭐 부파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이거 무아사상에 어긋나. 부파불교에서는 법()을 실체시 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이건 말도 아닌 것이어 이것은.’ 그래서 완전히 공()을 이야기한 거예요

너희들 잠에서 깨어나라 그거요. 삿된 생각 하지마라. 파사현정을 부르짖고 나와. 용수가. () ()으로 나가는 거예요. () () 해버리니까, 뭐든지 없다고 해버리니까 이거 이제 불교가 허무주의란 말이어.

그래서 이제 유식(唯識)이 나오는 거예요. 공 공 할 게 아니고 긍정할 것은 긍정하자 그거요. 그래서 유식이 나오는데, 유식학에서는 이 모든 것을 종합해가지고 더욱 발전시킨 것이 아뢰야식이론이어요. 윤회의 주체를 아뢰야식으로 봐요. 아뢰야식을 윤회의 주체로 봐요.
 
무착(아상가), 세친(바수반두), 호법 등 이 유식학파 사람들이 이제 아뢰야식을 내놓은 거예요. 왜 그러느냐?

, 부파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저 식(), ()은 문제가 있다 그거야. 이건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어. ? 윤회의 주체가 되려면 자, 불교는 뭡니까?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다고 했지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 한 거예요. 내가 나쁜 짓하면 고통스러운 과보가 오고, 착하게 살았으면 즐거운 과보가 온다고 되어 있어요.

 , 그러면 내가 짓는 자기 업, 내가 짓는 업이 자업자득 할 수 있도록 어딘가에 저장이 되어야 돼. 내가 짓는 업이 어딘가에 저장이 되어야 돼. 내 마음 밭에 뿌려져야 된다 그거라. 부파불교의 심식사상은 그러한 것이 빠졌다 그거요. 그래서 아뢰야식을 내놓습니다.

, 아뢰야식은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업력도 거기에 보존이 되어 있고, 그것이 종자(種子)로 보존이 돼. 금생에 와서 지은 업도 다 아뢰야식으로 가서 종자로 저장이 되고... 이런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서 어떻게 피해 가느냐? 아뢰야식은 찰나생 찰나멸이라 그거예요. 아뢰야식도. 그래가지고 무아사상에도 위배 안 되고. 그래서 아뢰야식이 정말로 윤회의 주체다하고 내세운 것이 유식학(唯識學)입니다.
 
지금도 그럽니다. 지금도 이 대승불교 이 불교계에서는 아뢰야식을 이야기해요. 이건 뭐 아주 그 어떤 사람도 손 댈 수가 없어요. 이것은 언급할 수도 없어. 너무너무도 당연하고 너무너무도 진리다 그거요

그래서 말을 못해요. , 그 옛날의 용수 마명 무착 세친 호법을 그 후에 따라갈 사람이 없어. 내가 가끔 이야기하지만 우리나라 원효라든지 의상이라든지 서산 등은 그분들한테 델 수가 없어요. 지금까지는 아뢰야식설에 대해서 반기를 든 사람이 없어요. 감히 들 수가 없어요.

그런데 현지사에서는 내 책을 보면 알지만 아니다그거야.해심밀경에서 이야기하는 아뢰야식은 불설(佛說)이 아니다 그거라. 아니다. 아뢰야식은 윤회의 주체 자격이 없다 그거야. 아뢰야식은 주인공 자격이 없어. ?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가 있어.

첫째, ()이다 그거라. ().
여러분! ()이라고 하면 그 식()이 죽어서 극락가고 지옥을 간다고 할 때, ()이 극락에 가서 지옥에 가서 아이구! 무섭다, ! 정말로 살만하다고 합니까? ()? 이 식()이 윤회의 주체라고 하는 것은 아니어요. 이건 아니어요.

 그 쪽에서 보더라도 아니어요. 윤회의 주체는 반드시 안의가 갖춰 있어야 되요. 그래야 눈으로 보고 아이구! 무섭다. ! 참 절경이구나

이 얼마나 살기 좋으냐!’ 하는 거지요. 눈이 있고 귀가 있고 코가 있고, 그쪽 세계의 음식을 먹어보고 캬!~ 감촉할 수 있고... 어쨌든 안의의 육근(六根)이 갖춰져야 되는 거예요. ()에 육근이 갖춰져 있습니까? ()? ()이 무슨 육근이 갖춰져 있습니까? 내가 그래서 아뢰야식은 아니다하는 거예요.
둘째, 수명이 영원해야 되요. 영원해야 되요.

단절하면 안 되는 거예요. 아뢰야식의 업의, 업식(業識)의 종자는 찰나생 찰나멸 한다고 하거든요. 먼저 종자와 이어지는 종자는 동일성이 유지된다고 말해. 어쨌든 이 찰나생 찰나멸, 이건 단절이잖아요

이건 자격이 없는 거예요. 이 중심 생명체가 영원해야 되요. 영원해야 되요. 우리 중생은 업을 짓고 살기 때문에 윤회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 영원히 육도를 윤회하는 거예요. 영원히 그래요.

무시 이전부터 지금 미래제가 다하도록 그래요 여러분. 죽는다고 해서 슬퍼하지 마세요. 또 새로운 생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어요. 새로운 생이 가다리고 있어요. 영원해야 되요. 그 생명체는 단절이 있으면 안 되어요. 영원해야 되요.

셋째, 주인공 자격이 있으려면 우주의 본체를 지니고 있어야 되요. 쉽게 말하자면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어야 되요. 그러니까 성겁(成劫)시에 튕겨나올 때에 본성(本性)본체(本體)를 지니고 나옵니다

거기서 나왔기 때문에 모든 것은 본체하고 결합이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은 그래요. 본체를 지니고 있지 않으면 안 되어요. 본체는 힘이어요. 지혜이고 사랑이어요. 이것이 빠져버리면 안 되는 거예요. 본체를 지녀야 되는 거예요.

넷째, ()은 몸뚱이가 있어야 되요. (-감각기관)이 없어버리면 식()은 죽어버려요. ()이 있는 몸뚱이가 있어야 되요. 대상(對象), ()-경계 경(), 또 대상이 있어야 돼. 몸뚱이와 대상이 있어야 식()은 존립해요. 몸뚱이가 죽어버리면 즉 근()이 죽어버리면 식()이 어떻게 살아남습니까? ()이 어떻게 존립할 수 없는 거예요. 식이 존립할 수 없으면 또한 아뢰야식도 존립할 수가 없어요.

다섯째, 아뢰야식은 진여(眞如) ()-진여를 일심진여(一心眞如)라고도 해요. 진여에 무명이 훈부해서, 무명이 진여하고 작용해가지고 아뢰야식이 생긴다고 그래요.

이때에 자, 아뢰야식이 이렇게 조건적으로 생긴 것이다고 하면 아뢰야식은 없어질 때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조건이 맞을 때에는 없어져야 되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 다섯째 항목도 말이 안 됩니다

아뢰야식은 진여에 무명이 훈부 되어 가지고 생긴 것이다? 이건 아닌 거예요. 이렇다면 없어질 때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영원한 생명체가 아니지요. 그런다면 영원한 생명체가 아니죠.
 
그런데 우리 현지사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뭐냐? 윤회의 주체인 주인공 은 뭐냐? , 영혼체입니다. 서구 지성인들이 그렇게 알고자 한 것이 영혼의 실체예요. 우리 현지사의 이 책이 나가면 그렇게 좋아라 할 거예요

영혼의 실체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 해놓았으니까 아주 좋아라 할 거예요. 이 영혼의 실체, 영혼체가 윤회의 주체이고 생명의 주체이고 연기의 주체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 윤회의 주체 연기의 주체 나의 주체 주인공의 자격은 여섯 일곱 가지 자격 조건을 갖춰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부파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심식류는 다섯 가지를 거의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아뢰야식도 보면 거의 안 갖춰져 있어요. 다만 아뢰야식은 중생이 짓는 업, 그 종자를 보존하는 처소는 이야기하지만, ()이면 처소 개념인가?

그래서 우리 현지사에서는 아뢰야식설을 완전히 아니라고 합니다. 아니다고 하면서 그 갖춰야할 조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번 가서 생각해 보세요. 깊이 생각해 보세요. 이번 5쇄에 나올 것입니다

주석(註釋)을 좀 달아놨어요. 조건을 달아놨어요. 자격 조건을 달아놨다고요. 유식(唯識) 하는 사람들은 좀 보라 그거요. 아뢰야식이나 말나식은 우리 주인공 영혼체의 기능이어요. 일부 기능이어요.

()은 여섯 가지 밖에 없는 거예요. 부처님 말씀이 옳은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것은 12처 안에 든다고 하신 거예요. 무슨 78식이 있어요? 78식은 우리의 주인공, 윤회의 주체, 윤회의 주체인 영혼체, 그것의 기능이라니까요. 기능입니다.

 이 아뢰야식설이 이렇게 하자가 있고 무너져버리면 유식학(唯識學)은 무너져가는 거예요. 이 아뢰야식설은 유식학에서 핵이어요. 그리고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 시간에 내가 이야기를 하는데 이건 아닌 거예요.


지금 중관(中觀) 유식(唯識)이 인도 대승불교의 쌍벽이어요. ‘대승불교그러면 유식 중관이어요. 이건 문제가 있는 거예요.

, ()이 어떻게 주인공 자격이 있습니까? 선불교에서는 불성을 주인공이라고 합니다. 불성이 공()이어요. 우주본체인 공(), ()에서는 그것을 불성이라고 그래요. ()이 어떻게 내 주인공의 자격이 있습니까? () 불성(佛性)이 주인공 자격이 없다는 이유입니다.

첫째, 내 얼굴 내 운명 다르고, 당신 얼굴 당신 운명 다르잖아요. 다 다르잖아요. 당신 얼굴 다르고, 저 사람 얼굴 다르고 저 사람 운명 다르듯이 내 주인공 따로 있고, 네 주인공 따로 있고, 저 사람 주인공 따로 있는 거예요

그런데 공() 불성(佛性)이 자기 주인공이라고 하면 내 주인공도, 네 주인공도, 저기 우리 땡삐 주인공도, 저기 백두산 주인공도 전부 공()이라. 주인공이 하나라. 이거 무슨 모순이고 당착이냐고.

둘째, 내가 짓는 업 여러분이 짓는 업, 그 업의 종자가 여러분 주인공한테 붙어야 되는 거예요. 보존 되어야 해. 여러분의 주인공이라고 하는 그 창고에 가서 보존되든지, 주인공이라고 하는 밭에 종자가 뿌려져야 되는 것이어. 그래야 그것이 나하고 직결되어. 내가 업을 지어서 그 과보를 내가 받는 것이여.

사람 죽인 사람, 사중죄(四重罪) 지은 사람, 불효오역죄 지은 사람은 영혼체가 철판으로 둘러쳐 있어요. 때가 되면 그렇게 나타난다고. 그 사람은 얼마 못가서 식물인간이 되는 거예요. 딱 보면 자기가 지은 업이 영혼체에 반영이 되어 있어요

이 거짓 몸뚱이가 지은 업이 착하게 살았건 나쁘게 살았건 그 업은 고스란히 그대로 그대로 자기한테로 가는 거예요. 자기한테 붙어. 자기 영혼체에 반영되는 거예요.

그래야 자업자득(自業自得) 하지.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 것이지. 앞에서 내가 흐르는 물을 내가 비유로 들었잖아요

그처럼 심의 상속(相續-흐름)이라든지 업의 흐름이라든지, 이것을 주체로 봐버린다고 하면 짓는 업과 받는 과보는 있지만 그 주체는 없다’(-有業報 而無作者, 잡아함경 제일의공경)는 말이 맞는 거예요.아함경에 나오잖아요. 그러나 그것은 불설(佛說)이 아니어요. 그건 불설이 아닌 거요. 경전이 잘못되어 있어요. 그것은 사설(邪說)이지.

, () 진여에 여러분들이 지은 업이 붙는다? 가서 달라붙는다? 내 주인공이라고 하면 붙어야 되지? 그건 청정무구하고 초월해 있어요. 그 공()에는 청정무구해서 달라붙을 수가 없어요. 그러면 그 공()에 내 것도 달라붙고 여러분의 것도 달라붙고 한다? 그렇게 되면 그게 윤회의 주체입니까? 그게 윤회의 주체이고 내 주인공입니까?

또 빙의를 하거든요. 업을 지으면, 내가 가령 어떤 사람을 죽인다고 하면 그 나로 인해서 죽은 사람의 영혼체가 복수하기 위해서 귀신으로 있는 동안에 내가 사람으로 왔을 때 빙의해요. 그건 불성이 있어서 그 영혼체가 알아요

앞에서 공()을 지녀야 된다고 했잖아요. 주인공 자격이 되려면, 윤회의 주체 자격이 되려면 공() 우주본체인 공(), (), 불성을 지니고 있어야 되요. 지녀야 되요. 1번 영체가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알아요. 그래서 빙의한다고요. 빙의한다고. 그 몸 속 깊~은 데 숨어 있어요. 그러면서 그 사람을 죽이는 거예요. 작해(作害)하는 거예요.

, 아뢰야식이 윤회의 주체라고 하면 그 나로 인해서 죽은 사람 영가가 어디로 붙습니까? 어디로 들어가서 빙의하느냐 말이에요. 어디로 가서 빙의하느냐 말이어? 윤회의 주체 주인공은 몸뚱이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몸뚱이 개념이라야 돼. 처소, 보존할 수 있는 개념이라야 돼. ()? ()의 어디에 가서 붙어? ()의 어디에 가서? ()이 눈 달리고 코가 달렸나? ()? ()이 어떻게 지옥에 가서 무섭다 하고 극락에 가서 좋다고 그래

()이 어떻게? ()은 몸뚱이가 죽어버리면 죽어버리는 거요. 그래서 2600년이 흐른 지금 이 문제 투성이 불교 교학을 때려 부수는 거예요 여러분.

이 주인공이 어머니 뱃속으로 들어오게 되면 그걸 수태(受胎)라고 그래요. 어머니 아버지가 아무리 10100년을 살아도 인연이 없으면 애기가 생기지 않는 거예요. 이 종자 -윤회의 주체이면서 내 주인공인 이놈하고 부모님하고 인연이 있을 때, 이것이 부모님한테 자식 되기 위해서 오잖아요. 이놈이 와야 이제 수태가 되는 거예요. 이놈이 와서 수태가 딱 되어가지고 이것이 없으면 몸뚱이가 안 생겨요.

이것이 없으면 안 되어요. 아들이든지 딸이든지 간에 부모님하고 이놈하고 얼굴이 닮아 있는 거예요. 그 아들딸은 어머니를 닮든지 아버지를 닮든지 이놈을 닮든지 닮게 되어 있는 거예요. 이놈이 빠져나가버리면 눈이 있어도 못 보는 거예요. 귀가 있어도 들을 수 없는 거예요. 이것이 빠져나가버리면 생각도 못하는 거예요. 뇌가 그렇게 있어도 이것이 없으면 생각도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스님이 이야기했잖아요. ‘이승의 생명을 유지시켜 줘야 되고.’ 이승의 생명, 이 몸뚱이의 생명활동을 보장해 주는 거예요. 이것이 있어야 가능한 거예요. 이 몸뚱이가 죽은 사후에도 생명의 주체가 되는 거예요. 그렇잖습니까?

중음세계, 그때는 4번 영체가 주체가 되지요. 하늘 가면 3번 영체가 주체가 되잖아? 후세에 몸을 받게 해준단 말이에요. 이놈이 들어와야 되요. 이놈이 빠져나가버려야 이제 죽었다고 하는 거예요. 죽었다고 하는 거예요.
 
우리가 죽을 때에는 가져갈 것이 없어요. 가져갈 것이 없어. 무엇을 가지고 가느냐? 내 기억하고요. 의식. 업은 계속 갔으니까, 종자는 계속 내 영혼체로 계속 흘러갔으니까 죽을 때는 기억하고 의식, 이것이 가요. 부모님도 안 가요. 못 가요. 못 따라가요. 처자도 못 따라가요. 돈도 벼슬자리도 못 따라가요 여러분.
내가 없다고 하는 무아(無我)의 뜻은 진짜 뜻이 있어요.

무아는 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나? 현상세계를 다~봐도, ~주 깊게 사유해 봐도,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모든 것을 전부 분석해 봐도 없어요. 자기의 실체가 없어요. 그건 맞아요. 현상세계의 이야기예요. 그것만을 말씀하시고자 무아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어요.

부처님께서 무아를 말씀하신 것은 사람들이 욕심이 있고 탐욕이 있고 나밖에 모르는 이것으로 해서 죄를 지어요. 근본을 따져보면요. 그것을 아집(我執)이라고 그래. 탐욕(貪慾)과 아집(我執), 요놈이 업을 지어요. 이것 때문에 업을 지어요. 그래서 업을 못 짓게끔 하려면-중생들은 나에 대한 집착이 무섭거든요.

이 몸뚱이가 자기인줄 알고 이 몸뚱이에 대한 나에 대한 집착이 아주 무섭다고요. 나에 대한 집착을 털어버려야 업을 짓지 않아요. 그래서 무아(無我)라고 하신 거예요. 나가 없다는 거예요. 내가 어디에 있느냐 그거예요

이렇게 나가는 거예요. 사실 현상세계에서 보면 내 몸뚱이를 아무리 갈기갈기 찢어서 해부해도 나()라는 것이 없어요. 이제 공부시키려고 그것을 원용하는 거예요.

 ()라는 생각을 없애버려라 그거라. ()라는 집착에서 떨어져나가야 되겠는데, 그러려면 나()라는 생각이 없어야 되거든요. 중생들은 나()라는 생각으로 타~악 집착이 되어 있거든요. 그 병을 고치기 위해서 무아(無我)를 말씀하신 거예요.

그래서 아라한이 되고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려면 무아행을 잘해야 되요. 무아(無我), ()라는 생각이 없어요. 보살 정도 가버리면 나()라는 생각이 없어요. ()라는 생각이 없다고 해서 몸뚱이가 없나?

보살의 몸, 화려~하고 정말로 아름다운 몸뚱이가 있지요? 부처님이라고 해서 당신의 32상이 없나? 거룩한 32상을 갖추고 있잖아요. 지옥 가고 천당 가는 사람들은 몸뚱이가 없나? 지옥 사람들도 있고 천상의 하늘사람들이 많다고요. 하늘사람들은 얼굴이 다 환골탈퇴 해 있잖아요.

그런데 왜 없다고 하느냐 말이어요. 그것이 아니어요. ()라는 생각을 비워버려라 그거라. ()라는 생각을 비울 때 탐욕과 아집에서 벗어나니까.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라는 생각이 없어져버렸다? 탐욕과 아집을 벗어나버렸다

그러면 욕심이 없어. ~순수해요. 성자는, 진짜 성자들은 나의 뺨을 때려도 화가 나지 않는 거예요. 나를 죽인다고 해도 거기에 대해서 괘념(掛念)을 안 해요. 오직 할 일을 해요. 진실, 착하게 사는 거예요. 진실하게 보살행만 하는 거예요.

거룩한 우리 부처님만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그렇게 공부하도록 방편으로 무아(無我)를 말씀하신 거예요. 무아행을 하라 그거예요. 무아행을 하라. 그래서 무아(無我)를 이야기한 거예요

그런데 이 무아(無我)를 갖다가 현상계에 국한해야 되는데 저기 본체계까지 가가지고 불보살도 없다고 해버리거든. 극락도 없고, 지옥도 없고, 불보살도 없고, 하늘도 없다고? 이렇게 해버리면 안 되지.

저기 본체계의 진리는 삼법인에서 열반적정(涅槃寂靜)이어요. 그것은 본체계의 진리예요. 현상계의 진리는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예요. 없어. 그 어떤 법이든지 따지고 보면 공()이단 말이어. 인연이 모여서 살고 인연이 흩어져버리면 없어 그것은. 그건 맞는 거예요. 그러나 공부를 시키기 위해서, 거듭 이야기합니다

고통에서 건져내기 위해서, 이 고통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오느냐? 업에서 오는 거예요. 업을 지으니까 고통이 오는 거예요. 나쁜 업을 지으면 고통이 오잖아요. 지옥에 가잖아요. 그리고 암도 걸리고 병신도 되고 뇌성마비 환자도 되고... 온갖 병을 얻잖아요. 업에서 오거든요. 나쁜 짓해서 오거든요. 그런 업을 짓지 않도록, 업을 못 짓게 하기 위해서 무아를 말씀하신 거예요.
 
전에 현지보살이라는 분이 있어요. 그분이 얼마 전에 부처님 시험을 합격했어요. 그분이 붓다시험을. 부처님 세상 이야기입니다. 그분이 보살행을 하고 계시는데 붓다가 되었잖아요. 대원묘음왕불이 되었잖아요

무아행을 잘~하신다 그거라. 지장보살 말씀이어요. 합격했어요. 무아행을 해라 그거야. 여러분, 무아행을 한번이나 해봅니까? 무아행을? 무아행을 할 줄 알아야 돼. 그래야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거든요. 무아는 바로 그런 의미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거예요.

이 무아(無我)의 뜻을 내가 없다고 하거든. 그냥 순진하게 문자 그대로 해석해가지고 나()가 없다는 거라. 스님들이 나()가 없다고 해. 무아(無我) 무아(無我)하거든요. 안아트만(anatman)을 하고 말거든요.

, ()가 없어? 그러면 누가 윤회를 하는고? 누가 지옥을 가는고? 누가 과보를 받는고? 누가 해탈을 얻는고? ()가 빠져버리면 그것이 말이 되는가? ()가 빠져버리면? 내 주인공은 있어. 여러분 주인공도 있고. 업이 붙어 있으니까 윤회를 하는 거예요. 업을 닦고, 수행을 하든 부처님의 가피를 얻든 업을 닦으면 윤회를 벗어나는 거예요. 그리고 더 보살행을 하면 빛이 나는 거예요.

보살과, 보살은 여러분 눈에 안 보이니까 그렇지, 보살인가를 받은 사람은 몸에서 빛이 나요. 오라가. 오라라고 그러잖아요. 오라. 빛이 나는 거요. 성자는 빛이 나는 거요. 극락세계의 빛은 자마광이어요. 황색.

붓다는 무량광이어요. 빛이 나는 거요. 빛 자체가 되어버려. 빛 자체가 되어버려요. 1234번 영체가 빛 자체가 되어버려. 무량광 자체가 되어버려. 이런 빛도 아니어. 자성광도 아니고. 극락세계 빛도 아니어. 네 영혼체가 절대계의 빛이 되어버려요. 그래서 광명불이라든지 자재통왕불은 다니면 123번이 가서 붙어 있어요

지금은 그 속으로 들어가 버려요. 들어가려면 그 빛덩어리하고 이 영혼체의 빛이 같아야 되요. 같아야 돼. 똑같아야 돼. 그래야 계합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놈이(-불신속으로 들어갔던 영체가) 또 다시 이놈으로(-육신의 몸속으로) 올 때에는 몸이 떨리는 거예요. 빛덩어리이기 때문에 이 몸이 못 견뎌요.
 
이 생명의 비밀, 우리 현지사에서는 우주의 생성, 인간 생명의 비밀, 이것을 다 파헤친 거예요. 역사 이후 처음이어요.

, I AM (), 생명의 비밀을 알려면 이 공()을 알아야 되요. 그리고 인간 영혼의 실체를 알아야 되요. 업을 알아야 되요. 그리고 연기법(緣起法) 카르마 법칙을 알아야 되요. 이 넷을 알면 인간 생명의 비밀, 우주 생성의 비밀을 다 알아요. 그런데 이것을 모두 몰라요.


I AM (), 존재를 존재케 한 존재자 궁극적 실재, 이것을 안 사람이 있나요? 그 어느 종교에서도 몰라요. 내가 말한 것은 공()에 대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아야 된다 그거예요. 인간 영혼의 실체에 대해서는 정말 2600년 동안에 몰랐어요

현지사밖에요. 인간 영혼의 실체 주인공 윤회의 주체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몰랐잖아요. 방금 이야기했잖아요. 부파불교의 심식(心識)의 흐름, 아니어요. () 아니어요. 아뢰야식 아니어요.

이 영혼체는 일찍이 나지도 않았어요. 일찍이 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미래제가 다하도록 죽을 수가 없어요.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도 아니어요. 하나님도 없지만. 이 영혼체는 우연히 생긴 것도 아니어요. 인연에 의해서 형성된 것도 아니어요

영혼체는 이런 조건을 갖추고 있어요. 이렇게 영혼체의 비밀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아야 되요. 그래야 인간 생명에 대한 비밀, 우주 생성에 대한 비밀, 어떻게 살아야 된다고 하는 가르침, 다 나오는 거예요.

, 업이 만물을 만들지요. 업에 대해서 알아야 되요. 그리고 I AM () ()의 기능-기능이 연기법이어요. 인과법칙이거든요. 이것을 알아야 되요. 그래서 우리 인간이라고 하면 이 거짓 몸뚱이, 오온을 가지고 여러분은 나()라고 생각하고 인간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다가 플러스(+) 주인공이라고 그래

그 주인공은 1234번으로, 1234번의 영체가 겹쳐져 있어요. 이 영혼체가요. 이렇게 본 데는 현지사밖에 없어요. 그리고 123번은 항상 뭉쳐 다녀요. 1번 영체는 인간 본체예요. 이렇게 깊이 말한 곳은 없어요.

하늘 세계의 천상 사람들은 3번 영체가 주인공이어요. 12번 영체는 3번 영체 속에 들어가 있어요. 겹쳐져 있어요. 아라한은 2번 영체가 주인공으로 되어 있어요. 31번은 겹쳐 있어요. 극락세계의 보살은 1번이 가서 주체예요

주인공 노릇해요. 23번은 겹쳐져 있어요. 붓다는 1234번이 다 가버려요. 자기불신으로 다 들어가 버려요. 보살의 법위까지는 4번 영체가 못 끼어요. 못 들어가요. 이런 것이라든지.
 
힌두교의 아트만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합니다. 힌두교에 대한 정밀한 분석은 지금까지 하지 않았어요. 다음 시간에 하기로 합니다.



출처/현지궁 현지사 (2012.11.18.) 자재 만현 큰스님 대전 법문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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