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1일 화요일

견성은 공부의 시작이다

견성은 공부의 시작이다 


오늘은 ‘견성은 공부의 시작이다’ 하는 것을 주제로 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이 주제는 격이(-차원이) 높습니다. 견성(見性)-깨달음-도(道)를 통하는 것. 이것은 진짜 공부의 시작이다 그 말이어요. 내가 7, 8년 전에《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을 쓰면서 맨 처음 일성(一聲)으로 불교계에 이 말을 했습니다. ‘견성성불’이라는 말은 천 년 동안 한국불교를 지배해오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견성은 공부의 시작이다’라는 말은 선불교(禪佛敎)의 심장을 찌르는 소리입니다. ‘견성은 공부의 시작이다’ 했거든요.

선불교에서는 견성이 목표입니다. 구경(究竟)이거든요. 끝이어요. 그런데 나는 그것을 ‘시작이다’고 했거든요. 돈점논쟁(頓漸論爭 -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의 논쟁. 선가에서의 이상적인 깨달음이란, 깨달음 이후에도 보임수행이 필요한 그런 깨달음인가(점오론), 보임이 필요없는 완전한 깨달음인가(돈오론) 하는가에 대한 논쟁)으로 한때 우리 불교계가 불교학자들이나 고승들 간에 대단히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견성은 공부의 시작이다? 여러분, 견성은 공부의 시작입니다. 이 견성이 초견성(初見性-갓 본성을 보아서 계속 번뇌의 습기를 제거하는 보임수행을 해야하는
견성)이든 선가에서 말하는 구경각(究竟覺-더 이상 습기를 제거하는 보임수행이 필요없는 구경의 견성)이든. 이 말은 돈점논쟁(頓漸論爭)을 잠재워버리는 소리예요.
  
보통 선가(禪家)에서 말할 때 ‘견성(-초견성)해서 보림을 잘~한다면’, 또는 ‘제8아뢰야식 안에 있는 미세무명까지 밝히면, 정화하면 거기가 구경각(究竟覺)으로서 견성(-구경각)이라고 한다’ 그러거든요. 조금 어려운 말이어. 우리 앞의 교수님들은 다 잘 아시지만. 선불교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구경각으로 안 보지요. 거기를 아라한으로 보지요. 거기를 아라한으로 봅니다. 견성을 해서 보림을 100년 했다 하더라도 아라한 이상은 불가능합니다. 그 이상은 못 갑니다. 보살은 절대로 될 수 없습니다.

보살은 크~신 능력의 우리 부처님의 가피라야 보살과(菩薩果)를 얻습니다. 이것은 스님이 이 자리에서 정말 힘주어서 자신 있게 말하는 것입니다. 내 책에 써놨을 것입니다. 그 이유, 부처님의 가피 아니면 절대로 보살이 될 수 없는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자기를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 조상님들 다겁생래 부모님들의 은혜를 갚지 않고서는 절대로 보살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현지사에서는 역사에도 없고 이 세상에도 없는 천도재(薦度齋)를 모시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그 사람이 여러 생을 살아오면서 지은 악연영가 원결영가를 치우지 않고는 절대로 보살이 될 수 없습니다. 보살은 자력으로 될 수 없습니다. 절대 자력으로 될 수 없습니다.

-첫째 이유는 정토 극락세계에 자기 분신인 아기보살이 생겨야 됩니다. 탄생해야 됩니다. 그건 자력으로 백천만 년을 닦아도 안 됩니다. 우리 신도분들은 이 점을 아실 거예요.

정토에는 이 몸속에 있는 네 영체, 그 중 3개의 자기 주인공 영체가 갈 수가 없습니다. 여기하고 정토세계하고 환경이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갈 수가 없습니다. 자기 영혼체를 부처님의 그 무량억종광의 빛으로 정화해줘야 됩니다. 그래야 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갈 수 없습니다. 영혼체가 상합니다. 손상됩니다. 큰일 납니다. 못갑니다. 따라서 오늘 이 시간에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몇 년 전에 중국의 어느 법사가 법문한 내용을 책자화한 것이 있어요. 내가 아마 전에 법문석상에서 한 번 했을 거예요.

‘극락세계 유람기’라고 하든가? 극락세계는 있다 하는 이런 책이 나왔는데, 보니까 정~말 이건 아니어요. 이건 외도천을 가가지고 거기에다가 윤색(潤色)해버린 것입니다. 삼매도 그런 것이 아니어요. 보니까 엉망이어요. 극락세계가 그렇지 않아요. 애기들이 없어요. 여자 없고요. 마음대로 된다고 해서 극락세계 간 사람이 자기 식구들을 생각하니까 식구들이 오고 진수성찬을 한 상 생각하니까 차려져가지고 먹고 놀면서 노래하고 하는 것이 나오거든요. 이게 뭡니까? 아수라장이지 이게. 그렇지 않아요.

다~ 법이 있어요. 룰(rule)이 있어요.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어요. 그렇지만 그때에 그것은 허구(虛構)다 하는 것만 말했지 이유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가짜다 하는 것을 말하지 않았어요. 왜냐? 그래도 극락세계가 있다고 했거든요. 극락세계가 그래도 있다고 했기 때문에 아무 말 않고 있었어요.

오늘 이 ‘견성은 공부의 시작이다’ 하는 제목, 이건 선불교(禪佛敎)에서 들으면 죽는 거예요. 내가 이것을 아마 내 책 쓰기 전에 생각해보니까 부산 대한불교신문에
첫 번째 내가 쓴 거예요. 한 10년 전이지요. 그러면서 책이 나오고 내가 TV에 나가니까 조계종에서 죽이려고 한 거예요. 눈의 가시가 문제 아니어요. 그래서 이 제목 가지고는 지금까지 내가 별로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안 했는데, 이제부터 말을 해야 되요. 이제는 할 말을 해야 되요. 아! 그래야지 스님들이나 우리 신도분들이 죽을 함정으로 안 가지. 지옥 갈 중생을 막아야지. 이게 중생을 오도(誤導)하고 있는 말인데요.

왜 견성은 공부의 시작인가? 견성에서 아라한 보살 붓다, ‘견성‧ 깨달음에서
붓다까지’라고 하는 책을 내가 아마 금․명년 간에 쓰고 싶습니다. 이미 나왔지만 우리 연구소에서 쓴 책인데 그것은 너무 약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폐기하고 다시 쓸 거예요. 오늘 한 시간 ‘견성은 공부의 시작이다’고 하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드리겠지만 이건 책 한 권 감이어요. 그래서 오늘은 대략 말씀을 해드리겠습니다.
자! 견성, 견성 하는데 그러면 견성이란 뭐냐?

깨달음, 깨치는 것을 말해요. 절에 가면 스님들이 가부좌를 해서 벽을 보고
참선(參禪)하고 있잖아요. TV를 통해서 보시기도 할 거예요. 다 공부감이 있어요. 화두를 들고 하는 거예요. 화두타파, 이게 견성이어요. 화두타파를 하게 되면 성품자리를 보는 거예요.

성품자리가 뭐냐? 이것을 자기의 본성이라고도 해요. 자성(自性), 불성(佛性), 본성(本性)을 본다 그 말이어요. 달리 우주 본체를 가지고도 말해요. 우주 본체를 본다 그거예요. 삼라만상(森羅萬象) 이 우주를 낸, 우주가 나온 근본(根本) 모체(母體), 본체(本體), 이것을 본다는 거예요. 이거 대단한 거예요. 이게 견성이어요. 그러나 이 견(見)자는
본다는 것인데, 그 경지에 가버리면 ‘나(我)다, 남이다’ 하는 관념이 없어져버려요. 그러니까 여기 견(見)자는 뜻으로는 드러날 현(見)자예요. 거기가 드러난 거예요.

나(我)도 없어져버려요. 그건 좋아요. 그건 바람직해요. 과거생에 많은 선근공덕이 있어야 그 경지에 가는 거예요. 공부인들이 천(千)에 하나, 만(萬)에 하나 나옵니다. 그런 사람이요, 나오지요. 그런데 그 후가 문제예요. 그렇게 공부한 사람들이 ‘마음이 부처’라고 하니까. 선불교에서는 마음이 부처라고 하거든요. 시심시불(是心是佛) 혹은
시심즉불(是心卽佛) 그럽니다. 마음이 부처라고 해, 마음을. 이 ‘마음’이 바로 본성이어요. 본체. 불성. 자성. 이것을 선에서는 마음이라고 해요.

깨쳤으면 부처되었다는 거예요. 자성을 깨쳤으니까 부처가 되어버렸다 그 말이어. 그래가지고 법상에 이렇게 올라가가지고 법문을 한다고 합니다만, 그 선법문(禪法門)은 좀 특별합니다. 주장자를 타~악 잡아 내리고 일단 게송을 읊고 하는데, 법문하다가 꼭 이런 얘기를 합니다. ‘마음이 부처이지 마음 밖에서 부처를 이야기하는 것은,
찾는 것은 외도다’ 그래요. ‘극락 지옥? 마음의 즐거움 혹은 고뇌의 그 자리가 지옥이고 극락이다’ 그래요. 극락 지옥이 마음 속에 있다고 이야기해요.

영산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것? 부처님의 그 몸뚱이의 불가사의한 삼신(三身)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선불교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아요. 마음 속에서 이야기해요. 마음 속에 있다고 말해요. 이건 아니어요. 이건 절~대 아닙니다.《법화경》〈비유품〉
에 있어요. 그거 아닌 거예요. 공성(空性), 공(空)을 봤다? 아~직 멀었어요.

보림을 정말 잘하면 공성을 증득한다고 하지요. 그러나 완전한 공성의 증득은 붓다의 견지에 이르렀을 때 가능한 거예요. 공(空)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이게 부처님 수준에서 그렇게 되는 거예요.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몸뚱이 때문입니다. 무량광이라고 하는 그 빛으로 자성광, 우주 본체의 그 빛을 먹어버려요. 흡수해버린다고요. 그래가지고 우주 본체와 하나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그것이 청정법신이올시다. 그것이 청정법신이어요. 그 경계에 가야 공성을 완전히 증득했다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저~기 절대계에 상적광세계에 내 불신(佛身)이 생기는 거예요.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불신이 생기는 거예요. 이렇게 되는 것이지, 그 사람들은 마음 속의 성품자리, 이것을 청정법신이라고 하거든요. 그리고 또 보신(報身)은 무엇으로 말합니까? 보신은? 참~착한 성품, 또 화신은, 천백억화신은? 온갖 경계에 때에 따라서 생각이 들쭉날쭉 일어나는 것을 화신이라고 그래요. 한참 멀었지요. 정~말 공부를 많이 해야 돼. 마음 속에서 삼신을 설명한다고.

아라한 넘어서, 보살 넘어서, 불과를 증할 때 삼신(三身)을 아는 거예요. 삼신,《법화경》〈비유품〉에 있잖아요. 사리불 존자가 독백한 것이 있어요. 자기가 교단에 들어와서 얼마 있지 않아서 깨쳤어요.
그래서 자기도 완전한 멸도를 이루었는 줄 알았는데, 붓다가 된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까 아니다 그거예요. 절대계에 자기의 32상의 색신을 두어야 불(佛)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야 대승의 완전한 멸도를 성취했다고 본다 그래놨어요.

하늘과 인간과 야차와 아수라들이 공경하고 또 불신(佛身)이 그들을 보고 교화할 수 있고요. 이런 몸을(-불신을) 얻어야 붓다인 거예요. 그리고《화엄경》에도 나와요. 그런데 이것을 몰라요. 이 부분을 간과(看過)해버려요. 어쨌든 견성 아라한 보살 붓다에 이르기까지, 아마 금 ․ 명년 사이에 내가 이 부분에 대해 책을 쓰고 싶습니다. 화두타파가 어떻게 부처입니까? 부처님입니까? 그래도 성철스님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오매일여(寤寐一如), 그러니까 몽중일여(夢中一如), 숙면일여(熟眠一如)를 넘어서
제8아뢰야식 안에 있는 미세무명까지 다~정화해버린 구경각을 견성이라고 했어요. 그것을 부처라고 했어요. 상당히 진전된 이야기이지요. 그러나 거기도 아라한이어요. 이제 거기가 아라한이어요. 보살은 절대 아니어요. 보살은 부처님의 가피 아니면 갈 수 없어요. 이 말을 분명히 해둡니다.

내가 ⟪21세기 붓다의 메시지1.2⟫권 여기저기에 부처님의 그 위대함을 많이 이야기했지요. 여러분《법화경》이나《화엄경》을 보면 알아요. 햐!~부처님이 이렇게
위대하냐? 그렇지만 우리 영산불교에서는《화엄경》을 더욱 빛나게 하고,《법화경》을 더욱 빛나게 하는 법문을 쏟아내고 있어요.

《화엄경》을 보면 부처님께서 이 미간(眉間)에서 또 양 무릎에서 발바닥에서 방광하잖아요. 천만억 가지의 색깔로 우주 세계를 비추잖아요. 그런 거예요. 그거 무량광이어요. 그걸 비추잖아요. 눈에서도 나오는 거예요. 입에서도 나오는 거예요 여러분. 이 겨드랑이에서도 나오는 거예요. 온갖 8만4천 털구멍에서 나오는 거예요.

방광할 수 있는 거예요.《화엄경》은 그 부분이 빠져있습니다. 열 군데에서 나와요. 그런데 그 빛은 불가사의해요. 그 빛은 불가사의해요. 이런 빛이 아니어요. 자성광 따위가 아니어요. 정토 세계의 빛도 아니어요. 이 빛을 보면 중생은 눈이 멀어버릴 정도예요. 눈이 멀어버릴 정도라니까요, 사람이 타서 죽어버릴 거예요. 영체가요. 녹아버려요. 그런 빛이어요. 그런 빛의 몸뚱이, 그런 빛으로 이루어진 몸뚱이, 그러면서도 32상80종호를 갖추고 있지요.《화엄경》에서는 아흔네 가지라고 했어요. 그런 서상(瑞相)을 갖추고 있어요.

그리고 대적정삼매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어마어마한 지혜의 힘으로 방광을 하면서 이 빛을 가지고 온갖 세계를 보여주고 온갖 궁전을 만들고 백천만억 화신을 나투고... 《화엄경》을 보세요. 부처님은요, 그것이 문제가 아닌 거예요. 그런데 화두타파 해서 그렇게 갔다? 백천만리 수행해도 안 되어요. 견성 가지고 어떻게 불(佛)이라고 합니까? 아라한도 안 되어요. 견성해가지고 아라한 되기 어려워요.

아라한은 뭐냐? 여러분 사실은 이 몸뚱이가 감옥이올시다. 그렇지요?
이 몸뚱이만 감옥인가? 이 삼계가 감옥이어요. 욕계 색계 무색계, 이 삼계가 감옥인 거예요. 여기에서 탈출할 수 있어야 돼. 해탈해야 돼. 마음대로 자유자재로 들락날락 할 수 있어야 돼. 그것을 해탈(解脫)이라고 해요. 그 정도 되어야 생사를 자재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려면 어쩌냐? 모~든 것에 집착이 있으면 안 되어요.

아집(我執), 이 몸뚱이에 대한 집착, 이것이 있으면 이 감옥에서 영원히 나올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아집과 미망에서 벗어나는 것, 그럴 정도 되면 언제라도 내 영체가 이 몸뚱이에서 나올 수 있는 거예요. 거기에서 더 깊은 삼매에 들어가게 되면 이 삼계를 마음대로 들락날락 할 수 있는 거예요. 지금 미사일(missile) 가지고 설명할 수 있어요. 오늘은 그렇게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남방불교의 위빠사나에서는 지관수행(止觀修行), 그러니까 이 존재의 속성은 무상(無常) 고(苦) 공(空-무아)이지요. 존재의 속성을 철견하는 수행을 하잖아요. 그러면 집착이 떨어져버리는 거예요. 탐진치가 녹아요. 그러니까 아라한이 되는 거예요.
그럴 때에는 많은 삼매 ․ 선정에 들어가요. 색계 사선정이 있지요. 무색계에 사무색정이 있지요? 그 다음에 멸진정(滅盡定)을 들어가야 아라한이어요. 화두타파해가지고 삼매에 들어갑니까? 못 들어가요. 이제 보림을 잘 해야 들어가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는 절대 못 들어가요.

보살은 어느 정도냐? 이제 보살은 어마어마해요. 이 소승의 아라한 선정은 자아(自我)에서 벗어난 거예요. 이제 겨우 자아라는 소아(小我), 자아에서 벗어난 거예요.
보살은 대아(大我)로 들어가는 거예요. 소아가 아니고 대아. 스케일(scale)이 커요. 깊이도 깊고요. 붓다는 이제 우주아(宇宙我)가 되는 거예요.

자,《화엄경》에〈아승지품〉이 있어요.〈아승지품〉을 보면 부처님이 얼마나 위대한지 한 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화엄경》에〈불부사의법품〉이 있는데, 그것을 봐도 10가지 불가사의한 측면에서 부처님의 위대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건 놔두고.〈아승지품〉을 보면, 부처님말씀입니다.

큰~ 수라고 하면 ‘백 천’을 들 수 있어요. 천 백 혹은 백 천, 백 천이 얼마냐? 10만이어요, 10만. 백 천이라고 하면 10만이죠? 백 천의 백 천이 백억이어요. 인도 말로 1구지라고 그래. 1구지. 1구지 곱하기(×) 1구지, 그러니까 1구지를 자승(1구지²), 거듭 곱한 것을 아유타라고 해요. 아유타를 또 아유타로 곱한 것이(아유타²) 나유타예요. 1나유타예요. 1나유타 곱하기(×) 1나유타, 1나유타 자승(1나유타²)이 1빈바라예요.

이렇게 거듭거듭 백스물네 번을 곱해가는 것, 아니 121번이네. 121번을 곱해 간 것은 중생들은 헤아릴 수가 없어요. 그것을 경전에서는 무한극수라고 해요. 무한수 혹은 무한극수 그래요. 혹은 불가설전불가설(不可說轉不可說)이라고 그래요. 그 수를 호칭하기를 불가설전불가설이라 한다고. 그러니까 불가설을 한 번 더 곱해주는 거예요. 불가설전불가설. 그런데 그 수가 어느 정도 많으냐?

인도에 갠지스강이 있지요? 항하(恒河)라고 하는데요. 갠지스강의 모래가 아주 작아요. 제일 작아요. 아주 잘아요. 세계에서 제일 작아요. 그 모래 수만큼의 수가 불가설전불가설이라고. 그런데 그 모래 속에 이 우주가 다 들어 있다는 거예요. 이 우주가 다 들어 있다는 거예요. 모래 수만큼 많은, 모래만한 그 낱알 속에 이 우주가 온통 들어가 있다니까?《화엄경》논리에서는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라고 그러는 거예요. 이 경지가 이제 부처님 경지예요. 이 말이 무슨 말이냐?

모~든 우주만물이 이렇게 연기(緣起)해서 이렇게 나가는데 생기는데 하나를 탄생하는 데에도 전체가 작용해줘야 되는 거예요. 이것이 하나 속에 전체가 들어있고,
머금었고 그 말이어요. 또 전체 속에 하나가 들어 있어요. 이것을 상입(相入)이라고 해. 좀 어려울지도 모르겠어요. 상입(相入).《화엄경》에서는 상입(相入)이라고 해. 또 하나가 전체에 관계하고 전체가 하나에 관계하는 이것을 상즉(相卽)이라고 그래요. 상즉상입(相卽相入). 하나의 국화가 핀단 말이에요. 자기 혼자 못 피어요.

이 우주의 필요한 모~든 기를 흡수해야 하는 거예요. 또 여러 조건을 갖추어야 되요. 여러분, 앞으로는 피 한 방울 딱 뽑아가지고 조사하면 병을 다 알 수 있는 거예요. 지금도 많이 알잖아요.

그 이치예요. 이게《화엄경》이어요. 부처님은 무한극수를 안다 그거라. 일념(一念) 사이에 무한극수를 안다 그거라. 이것을 일체종지(一切種智), 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그래요. 그런 분이 부처님이라니까요. 그 경지가요.

화두타파 해가지고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이제 시작이지요. 공부의 시작이지요. 그런데 보니까 화두타파한 사람들의 절반은 가짜 타파입니다. 용신이나 천마(天魔)가 들어가 가지고 그 힘으로 되는 거요. 그것들의 빛으로요. 야!~이게 자성광 아니냐!

그렇지만 그것이 아니어요. 그건 천마나 용신의 빛이어요. 진짜 화두타파한 사람은 정말 드물어요. 정말 드물지만 그 화두타파가 이제 시작이라니까요. 거기가 이제 시작입니다. 이제 어떻게 하느냐?

이 모든 세계의 모~든 사물은, 물질 내지 정신적인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거예요. 가화합(假和合)이라고 그래요. 인연으로 해서 생긴 것이라. 인연이 흩어져버리면 없어요. 이건 실체가 없어요. 현상계에는요. 현상계 이야기입니다.

실체가 없어요. 공(空)이어요. 공(空). 그래서 모~든 세상사에 집착을 하지 않아야 되요. 그러면서 수행을 해가야 됩니다. 집착을 하면 안 되어요. 공부 안 되어요. 10년 100년 해도 안 되어요. 여자에 집착하고 재물에 집착하고 명예 권력에 집착하고, 이 몸뚱이에 애착을 갖고... 이거 공부 안 되는 거요. 다 허망한 것인데. 이거 전부 허망한 꿈이어요. 허망한 것이어요 여러분. 그런데 중생들은 그렇지 않거든. 집착을 해요. 집착을 한다고. 그래서 지금 스스로 감옥살이를 한다고.

우리는집착과 미망에서 벗어나야되요. 그래서 위빠사나에서는 명상을 시켜요. 지관(止觀- 지 ‧ 사마타=마음집중으로 번뇌를 조복받아 고요함에 이르는 것, 관 ‧ 위빠사나=존재의 속성을 철견하는 관찰)을 공부시켜요. 오늘 선불교(禪佛敎)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 부분은 자세하게 말할 필요가 없고, 또 밀교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필요 없습니다.

자, 선(禪)에서는 화두타파를 터~억 해가지고 자기의 본성을 딱 깨달아 놓고는 마음이 부처이니까 자기가 부처 다 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제 그렇게 생각하면 이제 마(魔)가 들어가는 거예요. 천마(天魔), 용신이 들어가는 거예요. 팔정도(八正道)로 철저히
무장이 되어간다고 하면 마장(魔障)이 없는 거예요. 들어올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마장이 들어 한 번 빙의가 되면 뗄 수가 없어요. 무서운 마장(魔障)이나 천마는 부처님밖에 못 뗀다고요. 대부분의 공부인들이 모두 마장(魔障)에 걸려 있더라 그거예요. 그것이 어떻게 견성입니까? 이제 견성해서 보림을 잘하면, 그 말이 무슨 말이냐? 경계나 대상에 집착을 않고 미망에 떨어지지 않고 계율을 잘 지키면서 그대로 정진을 한단 말이어요. 정진을 잘~ 해가서 탐진치와 공포에서 자유로워야 거기가 아라한이어요.

곧 탐욕의 경계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화를 낼 일에도 화가 안 나고 공포의 경계를 당해도 두렵지도 않고, 여기가 아라한이어요. 이제 거기가 아라한이다고요.

거기서 보살을 갈려면, 자, 거기서 보살을 갈려면,
‣더~무서운 마장(魔障)이 들어와요. 이 마장을 막아줄 스승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위빠사나나 밀교나 참선(參禪)이나 염불이나 스승이 있어야 되요. 스승이 없으면 마장(魔障)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스승은 마장을 막아주고 마(魔)에 섭해 있으면
빙의되어 있으면 떼어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되는데 역사 이후로 그런 큰 스승이 없어요. 그런 스승 없어요. 없어요. 마장(魔障)이 문제이고.

‣둘째, 정토에 자기 아기보살을 놔둬야 되는데, 생겨야 되는데 이것을 누가 만듭니까? 보살이 못 되는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 그것은 부처님들이 만들어요. 그거 비밀이 있어요.

‣그 다음, 여자가 남자 되어야 되요. 변녀성남이 되어야 되거든요.

‣그 다음, 최소한 사중죄(四重罪)가 멸해야 됩니다. 다겁생으로 사중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사중죄를 소멸해야 되거든요. 문수보살이 해요. 문수보살의 고유권한이어요. 문수보살의 가피가 없으면 안 되어요. 그러니까 우리 회상에서 전번에도 보살이 하나 탄생했는데 부처님들이 다~작업해 주는 거예요. 그것만 해줍니까?

‣피를 걸러줘야 되요. 보살의 영체에 걸맞는 보살의 피로 바꿔줘야 되요. 중생의 더러운 피를 바꿔줘야 되요.

‣그래서 지장보살이 ‘이 사람은 삼계를 통과했습니다’ 하고 그 분한테 통과증을 주는 거예요.

‣그리고 부처님이 최종인가를 딱 해주는 거예요.

‣그리고 아미타부처님이 극락세계의 아이보리색, 그~화려하고 훌륭한 의복 옷과 영락을 하사하는 거예요. 죄를 지어서 영체에 철판이 씌워져 있는데 누가 어떻게 저 철판을 잘라서 치워줍니까? 다 절차가 있어요. 이렇게 해야 보살이 된다고요. 그런데 어떻게 자기의 힘으로 보살이 됩니까?

오늘 처음 오신 분들한테 좀 어려운 이야기를 하니까 죄송합니다.
계율을 잘 지키고,《금강경》읽고, 다라니(-비로자나총귀진언)하고, 염불하고, 나 없는 착한 일 많이 하고, 이렇게 살아야 되요 여러분. 이게 정법이어요. 그래서 염불이 정법이다 그래요. 염불이 정법. 염불이 정법이어요. 부처님이 계시니까요.

부처님은 큰~능력이 있으셔요. 지금의《화엄경》에도 부처님의 능력을 정말 조금 더 잘 써놓았으면 좋겠는데 아쉬운 점이 있어요. 보살도 저 미타국에 가게 되어서 공부를 하게 되면, 《화엄경》에〈십정품〉〈십통품〉〈십인품〉이 있을 거예요. 그 정도 되는 거예요. 그 정도 되어요. 견성해가지고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족탈불급(足脫不及-맨발로 뛰어도 따라가지 못함, 능력 재주 등이 모자라 남을 따라가지 못함)이지. 욕심을 버리고 게으르지 않아야 되요. 오직 부처님 생각만 하고 팔정도 행을 해야 되요. 이게 정법이어요 여러분.

염불은 왜하나? 삼계의 모든 불보살님들이 염불로 불보살이 되었어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그래요. 염불이 정법이어요. 왜 고성염불(高聲念佛)을 가르치느냐?

염불할 때에는 반드시 소리내어서 해야 되요 여러분.《금강경》읽을 때에도 소리내어서 해야 되요. 고성으로 해야 되요!!《금강경》이나 모든 경전은 고성으로 크게 읽어라. 그렇게 되면 모든 마구니가 두려워서 접근 못하리. 고성으로 경전을 읽고 다라니하고 염불하면 삼계의 부처님이 크게 기뻐하셔요. 여러분 마음 속으로 읽지 말라고. 그러면 결국에는 삼매에 들 수 있고 정토에까지 날 수 있어요.
자, 그 다음. 깨달음이라고 하는데 깨달음의 개념입니다.

화두타파 한 사람도 깨달았다고 하고, 《화엄경》을 보면 부처님도 깨달았다고 하고, 또 어느 방송을 들으니까 어느 민족종교 어떤 분이 처음 개교한 분도 크~게 깨달았다고 하여 대각이라 하고... 이랬으니 이 깨달음에 대한 그 개념이 이렇게 되어가지고서야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견성은 공부의 시작이라 하는 것을 꼭 말을 해줘야 되겠다. 화두타파의 깨달음은 이제 시작입니다. 이제 시작이거든요. 거기서 부처님의 정각(正覺) 깨달음에 가자 하면 백천만리 백천만리도 더 가야 되요.

그래서 오늘 내가 한 스물다섯 가지 측면에서 견성과 아라한과 보살과 붓다의 차이점을 좀 간단히 적어 봤거든요. 내가 대충 써보니까 한두 가지가 아니라 스물다섯 가지더라고. 이제 깨달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고, 그 다음에 돈점논쟁(頓漸論爭)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고, 선불교(禪佛敎)의 삼신관(三身觀)에 대해서 비판하고 싶습니다.
선불교에서는 좌탈입망(坐脫立亡)을 많이 하거든요. 앉아서 가고 서서 가고... 뭣 한다고요. 그건 허구입니다. 그건 하늘밖에 못갑니다. 잘못하면 지옥 가지요.

지장보살님한테 잡히면요. 그건 우주이법을 역행하는 것입니다. 그건 대적정삼매에 들어가서 하는 것이 아니어요. 이제 조그마한 선정을 익혀가지고 3번 영체가 몸에서 나가는 거예요. 기체(基體)가 몸에서 나가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생명줄을 끊어버리면 스스로 죽어버리는 거예요. 안 와요. 그러면 도인이라고 하지요. 세상사람들은 모르고 말입니다. 그러면 지장보살님이 탁~, 지장보살님은 대보살이거든요.

부처님 다음가는 대보살인데 눈에 탁 띈다고요. 앞에서 부처님은 무한극수까지 안다고 했는데, 이 무한극수, 그러니까《금강경》에 있지요. 항하사 수, 갠지스강의 모래 수만큼 많은 불국토, 그 불국토를 가루로 만들어서 그 가루만큼 많은 수의 불국토, 그 속에 사는 중생들의 마음을 부처님은 다 아는 거예요. 앞의〈아승지품〉에서처럼 말입니다. 지장보살님은 그건 못하지만 대단하다고요. 딱 엉킨다고요. “내 눈은 피하지 못하리!” 그럽니다. 가끔 지장보살님이요.

누구 큰스님 말하면 “오! 내 눈을 피하지 못하리!” 그 말처럼 바로 걸려요. 중생의 눈을 속이면 중생을 오도하면 큰일 나요. 극무간지옥 간다고요.
진리를 잘못 이야기하면 사람으로 오더라도 삼중고(三重苦) 사중고(四重苦)를 받아와요. 스님이 스물다섯 가지를 이야기하려면 시간이 없네요.

그래 좌탈입망은 할 말이 더 많은데 이 다음시간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스님이 격외(格外)로 선문답 하는 것, 법거량 한다고 하지요. 그것도 이 다음에 하고.
‣자, 견성(見性)이라는 것이 뭐냐? 자기본성(自己本性), 우주본체(宇宙本體), 공(空)을 잠깐 본 거예요. 그것을 깨달음이라고 그래요. 그러면 현상세계 모든 것들이
공(空) 하다,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아는 거예요. 존재의 속성이 무상, 고(苦), 무아 ‧ 공이라는 것을 깨닫는 거예요. 도(道)를 깨쳤다고 그래요.

‣아라한은 뭐냐? 모~든 집착과 미망에서 벗어난 분이 아라한이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몸과 이 세계, 지구, 태양계, 우주에서 벗어나버린, 물리학에서 보더라도 어마어마하잖아요. 이 정도가 이제 아라한이어요. 이 육신과 세계라고 하는 감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어요. 어떻게 해서 벗어나? 아집과 미망을 벗어버리면 되어요.
아집과 미망은 어디에서 오느냐? 욕심 탐욕에서 오는 거예요. 욕심 탐욕은 어디서 오느냐? 무명에서 오는 거예요. 그렇지요?

‣부처님은 뭐냐? 그 본성(本性), 우주의 본체인 공(空)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버렸어요. 우주자체가 되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나는 우주주(宇宙主)라고 그래요. 우주자체가 되어버린 거예요.

여러분! 이 우주가 얼마나 크다는 것은 스님이 가끔 이야기했지요. 이 지구
땅덩어리 같은 별이 수천억이 아니라 수천억×수천억×수천억... 한참 해야 되요. 그렇게 많잖아요? 이것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이 어마어마한 우주가 어디에서 왔습니까? 이 천체가? 어디서 왔습니까?

현대물리학에서는 우주의 기원을 빅뱅(Big Bang) 이론으로 설명합니다. 현상 우주는 빅뱅을 통해서 온 거예요. 맞아요. 그러나 원래는 우주본체(本體)에서 왔지요. 우주는 본체에서 와서 다시 본체로 돌아갑니다. 이것을 반복하거든요. 이걸 반복해요.

그 힘을 어디에서 가지고 있는 줄 압니까? 뭐가 가지고 있는 줄 압니까? 공(空)입니다. 그 힘을 공(空)이 가지고 있어요. 대단한 거예요. 그러면 그 공(空)은 실체가 있느냐? 없어요. 텅~비어 있어요. 허공과 같더라고요. 그 본체와 나(我)가 계합해버린 분이 부처예요. 거기가 부처입니다. 그게 청정법신이어요. 그 청정법신이 인격화된 것이 절대계의 보신(報身)이어요. 그래서 부처를 이루게 되면 자기의 청정법신이 생기고, 자기의 보신이 절대계에 생겨요. 아시죠?

‣그 다음에 영체의 색깔입니다.
-견성하게 되면, 이제 저기 자성광을 본 거예요. 이 정도 되면 업장이 조금 정화되어서 영체의 색깔이 밝아집니다.

-아라한은 영체의 색깔이 보름달 밝은 빛깔이어요.

-보살은 맑은 아침 10시 세상에 비치는 태양빛과 같아요.

-부처는 한여름 쨍쨍 내리쬐는 뙤약볕의 햇 속, 여러분! 눈이 시리고 부셔서
못 보지요? 그거예요. 부처님은, 붓다 이룬 분의 영체는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견성과 아라한의 차이, 아라한과 보살의 차이, 보살과 붓다님의 차이는 확연해요.

‣그 다음에 영체의 분리입니다.
-견성해가지고는 네 영체가 분리되지 않습니다. 분리가 안 되어요.

-아라한은 오리발 정도가 되어요. 분리가 조금 되었어요.

-보살은 딱 분리가 되요. 그러니까 보살 될 사람은 부처님께서 그 영체를 끄집어내어서
네 개로 분리를 딱 시켜놔요. 분리작업을 하는 거예요. 개인의 힘으로는 이 분리작업을 못해요. 개인의 능력 갖고는 안 되어요.

-부처님, 붓다 이룬 분은 어쩌느냐? 네 영체가 하늘을 막 돌아다녀요. 아셨습니까? 네 영체가 하늘을 돌아다녀요. 영체가 개별적으로 활동할 수 있어요. 아니면 1.2.3번 영체는 꼭 붙어서 자기불신(自己佛身)한테 들어가 있든지 말입니다. 1.2.3번 영체는 각각 개별 활동 한다 그거요. 인연 깊은 사람한테 꿈으로도 가서 보여주기도 하고 교화한다
고요. 이게 부처의 경계예요.

‣그 다음 가는 곳입니다.
-보살은 삼계탈출 해가지고 정토세계에 나지 않습니까?

-아라한은 이제 윤회를 벗어난 그 아라한 하늘에 나거든요.

-부처님은 무량억종광으로 이루어진 상적광세계에 자기불신이 생겨서 그 곳으로 가요. 자기불신으로요.

-견성한 사람은 아직도 윤회 안이어요. 갓 견성한 사람은 그래요. 갓 견성한 사람이 윤회를 어떻게 벗어납니까?

그 업장을 어떻게 스스로 다 벗습니까? 탐진치를 어떻게 녹입니까? 습과 기가 정말 무서워요. 그것을 어떻게 다 녹입니까? 악연과 원결영가를 어떻게 다 뗍니까? 안 되지요.
‣지혜의 측면입니다.

-부처님의 지혜는 일제종지(一切種智)를 증득한 거예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요.

-견성하게 되면 물 한 모금으로 물맛을 보듯이 이제 지혜의 맛을 본 거예요.

‣환희. 기쁨측면입니다.
-부처님은 극락의 극락을 수용해요. 환희 자체가 되어버려요.
-극락세계의 보살은 극락세계에 살아요. 정말 극락(極樂)이어요. 고(苦)라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하늘세계하고도 천지차이어요. 보살은 그런 생활을 해요.

-아라한은 선정에서 법열(法悅)을 느낍니다.

-이제 견성한 사람들은 이제 법열을 한번 막 느껴본 거예요. 법열. 무슨 법열을 느끼냐 하면, 예를 들어볼께요. 화두타파하면 여러분! 저기 감옥에서 석방되어 나온 사람의
기분을 압니까? 안 가봐서 모르지? 어떤 사람을 이제 구속시켜서 미결수 신분으로 구치소에다가 넣잖아요. 일단 며칠이든지 몇 달이든지 그러잖아요.

거기서 어떻게 조사를 받다가 판사가 기각해서 나올 때의 기분, 여러분 모를 거예요. 그 기분입니다. 이 감옥이라고 하는 몸뚱이에서 살짝 나왔거든요. 본체를 봤거든요. 이 본체는 초월입니다. 시공(時空)을 초월해 있어요. 현상세계는 시간과 공간 안에 갇혀 있잖아요. 본체, 공은 초월계에 있는 거예요. 초월. 그러니까 격외가를 부르고 거량할 수 있는 거예요.

거량(擧量-깨달음을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선문답)의 동문서답이 전~부 거기에서 나온 소식인 거예요.

‣삼매의 수용입니다.
-부처님은 대적정삼매를 수용하고
-보살은 해인삼매
-아라한은 멸진정
-견성은 선정 속에서 공 체험을 하고는 이제 안 들어가. 쉽게 못 들어가요. 이러면 안 돼. 이제부터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사선정부터. 사선정 위에가 사무색정이잖아요. 멸진정. 그렇게 공부를 잘 해가면 아라한이어요.

‣신통입니다.
-견성해가지고는 신통이 안 나와요. 식(識)은 많이 맑아져서 마음이 번뇌에 휩싸이는 일이 적어요. 이것도 계율을 잘 지키고 공부를 잘 해갈 때 그래요.
-아라한은 삼매에 들어가니까 육신통이 나와요.
-보살은 삼명육통이 나와요. 아라한 하고는 신통의 능력이 달라요. 삼매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붓다는 8만4천 신통이 만능자재 하는 거예요. 이제 자기 영체가 불신으로 들어가 계합해버리면 저 붓다는 엄청난 거예요.
여기의 우리 광명불도 신통이 대단히 많아요. 하지 않으니까 그러지요. 어려운 신통 중의 하나는 전쟁을 막는 신통이어요. 전쟁은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없어요. 영적으로 보면, 업력이 작용하고 여러 세력들이 밀고당기고 해서 일어나거든요. 이거 막는 거 대단히 어려워요. 전쟁을 막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어요. 붓다의 경계에서는 이것이 간단합니다. 이거 기가 막힌 신통이어요. 전번 법문 때에 이야기했지요.

‣삼신(三身)입니다.
-부처님은 실제로 법보화 삼신을 구족합니다.
-그런데 견성한 그 선가(禪家)의 <법보단경>(중국 당나라 때 선종을 개창한 육조 혜능의 법문을 모은 어록, 육조단경이라고도 한다)을 보면 마음 속에 자성불을 이야기하고 삼신불을 이야기하니 한~심한 노릇이고, 해서 나는 이건 경(經)이 아니다 하는 거예요. 어째서 단경(壇經)이 경입니까? 혜능의 말을 따르는 어느 학자가 윤색(潤色)해가지고 써놓은 것인데, 이건 경이 아니지요.

‣업장의 소멸 정도입니다
보살부터는 사중죄(四重罪)를 소멸해야 정토에 듭니다. 그리고 정토에 이제 자기 아기보살이 생기고. 보살부터는 사중죄가 소멸되고, 앞에서 말한 여러 가지 조건을 갖춰야 돼. 아라한은 그러지 않아도 될 수 있어요.
붓다는 상적광세계에, 절대계에 자기불신을 갖습니다. 붓다는 업장이 완전히 소멸되어서 무죄가 되어야 되요. 탐진치 삼독이 소멸되고 습과 기가 소멸되고 악연 원결영가가 전~부 정리가 되고 소멸이 되는 거예요.

‣보살은 여러분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2명의 성중이 항상 호신해요.
붓다는 50명이어요.

‣보살은 25조 가사를 수해요.
붓다는 32조 가사.

‣불과를 증하면 청정법신비로자나 부처님세계에서 금강좌가 와요.
그리고 붓다는 큰~힘이 있어요. 삼악도 중생을 건질 수 있어요. 업장을 소멸해 줄 수 있어요. 등등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어요. 경전에는 힘 부분이 많이 빠져 있어요. 아쉬워요. 그래서 우리 현지사에서 지금 많이 이야기 해준다고요.《법화경》이나《화엄경》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거예요. 우리 현지사에서요.

‣물에 비유하면(물로 보면)
-부처님은 100% 순도의 증류수예요.
-보살은 1급수라고 그래요.
-아라한이 2급수이고요.
-견성이면 이제 3급수예요.

‣그리고 견성해가지고는 지옥 극락을 볼 수 없어요. 윤회 세계를 볼 수 없어요. 절대 볼 수 없어요. 붓다 정도 되면 그 영체가 지옥 극락을 가서 봐요.

‣견성해가지고는 악도에 떨어질 수 있어요. 4바라이죄를 지으면 영락없어요. 특히 구업, 대망어를 하면 악도에 떨어져요.
보살부터는 불퇴전이어요. 불퇴전이어요.
붓다는 영원히 빛으로 멸도하지 않아요. 빛으로 있어요.

‣부처님은 네 영체 모두 자기불신으로 흡수됩니다.
보살은 세 영체만 갑니다. 자기 아기보살에게로요.

‣아라한은 2번영체로 살아요. 보살은 1번 영체로 살고. 붓다는 불신(佛身)으로 사는데, 그 속에 1.2.3.4번 영체가 들어가 있어요.

‣부처님만이 백천만억 화신을 내요.

‣부처님이 다시 사람 몸을 받아 올 때에는 업이 없기 때문에 왕궁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와요. 업이 없으니까 항상 건강하고, 그때는 지혜 총명하고 복덕을 완전히 갖추고 있어요. 사람 몸 받아 올 때 이를 응화신이라고 해요. 그리고 피를 교체해 줍니다. 보살부터 피를 교체해 줘요. 그럽니다.

견성을 했다든지 아라한이라든지 보살이라도 대망어를 짓는다든지 사음죄를
짓는다든지 상주물에 관한 죄를 지으면 큰일 나요. 벌 받아요. 무간지옥으로 가요. 인간으로 와도 삼중고 사중고 받아요. 그것을 알아야 되요.

‣아라한에서 보살은 자력으로는 갈 수 없어요. 타력으로 가는 거예요.
이유는 아시죠? 여러 번 법문 했으니까요. 아라한이 보살이 되는 첫 번째 조건은
-돌아가신 부모님 조상님들 천도해서 악도에서 구해야 돼. 인연이 깊은 조상 영가들이 악도에 남아 있으면 안 돼. 아버지 어머니가 지옥에 있는데 보살이 정토에 갈 수 있나?
-악연 원결영가 정리해야 되고. 업장소멸 해야 되고. 마장 해결해야 되고. 변녀성남(變女成男-영체가 여자는 남자로 되어야함). 정토에 아기보살이 만들어져야 되고. 삼독심 소멸해야 되고. 부처님 인가 받아야 되고.

‣법위가 올라 갈수록 지혜. 자비. 복덕. 장엄. 빛. 법열이 배가(倍加)되어요.

‣그런 큰 성자를 미워하거나 하면 그에 비례해서 큰 과보를 받아요. 반대로 위해주고 보호해주면 큰~복을 받아요.

‣부처님들 축제를 보면 전부 해탈신이기 때문에 무애춤을 추어요.
여러분 무애춤이 얼마나 완벽한 줄 압니까? 저기 배우들을 볼 때 ‘아! 저사람 정말 타고 났다’ 하는 사람, 자기라고 하는 생각이 없어져버려야 되요. 자기 역에 100% 충실해버려야 되는 거예요. 무애라는 것은 나(我)라는 생각이 없고, 나(我)라고 하는 것이 없어요. 그러니까 무애가 나와요. 무애춤이 나와요.

‣아라한은 5등급으로 되어 있고, 보살은 27등급, 약사궁도 27등급이지요.
부처님은 등급이 없어요. 등급이 없지만 부처님은 서열이 있어요.
우리 부처님은 일본 내각제 국가 같으면 수상이어요. 다보부처님은 그다음에 되셨지만 부처님이 스스로 천황으로 받드시는 거예요. 일본 헌법 같으면 천황.
문수보살님은 어느 정도 높으냐? 모든 붓다의 스승이었어요. 모든 붓다님들이 붓다 될 때 문수보살님이 지도해서 불과를 증하도록 했단 말이어요. 스승이어요. 지장 ․ 관음에 대해서 명령할 정도예요. 그렇게 높습니다.

혜위등왕불 미륵보살님을 아십시오. 서열이 관음 ․ 지장보다 밑입니다. 훨씬 밑이지요. 관음 ․ 지장이 명령을 하거든요. 그거 아시고. 광명불님은 불세존의 법의 상속자예요. 그러니까 지존의 태자예요. 그러면 아시죠 여러분. 왕의 하나밖에 없는 국본(國本-조선시대 때 왕의 세자를 이르던 말)입니다. 국본이라고 하지요. 그 위치를 알아야 되요. 어떤 특정한 날에는 오여래도 절하게 되요. 문수보살님은 법왕자시죠? 부처님 다음이지요. 또 자재는 법왕자예요.
문수보살님의 아들이지만 법왕자예요. 그렇게 아십시오.

출처/현지궁 현지사 (2013.4.7.일) 자재 만현 큰스님 부산법문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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