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8일 일요일

현지사에서 밝히는 빛 중에서도 가장 천문학적으로 밝은 빛 무량광




   

우리 현지궁 현지사에서는 빛 중에서도 가장 천문학적으로 밝은 빛을 내놨습니다. 무량광이 그렇습니다. 무량광이 오면 붓다를 볼 수 있습니다. 선정삼매에 들어서 무량광을 볼 정도로 되면 부처님을 뵐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볼 수가 없습니다. 

중생들은 부처님의 그 밝은 광도, 저 높은 히말라야의 클리어 요가를 완성한 초인들은 필요하다면 10억 와트의 광을 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부처님의 광은 그것의 백 천 만배가 될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중생이 부처님의 현신을 본다면 가루가 될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들은 천 만억 화신으로, 32응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공부하는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거예요. 그리고 부처님은 몸이 셋이다 하는 것. 우리 중생은 하나이지만, 부처님은 몸이 셋이나 됩니다. 


불과를 이루면 절대계에 빛으로 된 몸 하나를 두고, 우주 몸이 하나 있습니다. 유형의 몸이 있고(여기 있고), 그 절대계에 그 몸은 빛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32상 80종호를 뚜렷이 갖추고 있고, 지혜와 자비와 복덕이 다갖추어져 있어. 복덕이라는 게 뭐냐? 


여러분이 부처님께 공양을 드려요. 아주 가난하지만 마음씨가 너무 착하고 부처님 공부도 아주 잘하는 사람이 공양을 드려. 그 착한 마음씨를 가졌다면 부처님께서 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 


모든 붓다가 가지고 있는 복덕은 이 사바세계를 살만한 복덕을 갖추고 있는 거요. 희유하지요? 그러니까 줄 수 있는 거요. 그 복덕을 다 갖추고 있지요. 백천 삼매를 자유 자재하지요, 팔만사천이 문제가 아니라 항하사수와 같은 많은 신통이 자재하지요,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앞에 열거한 희유한 능력외에도 많습니다. 그래서 외도들이 꼼짝 달싹 못하는 것입니다. 붓다 혼자서도 외도를 전부 제압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 그 빛 때문에 그래요. 우리 승려들, 여러분들, 마음을 닦잖아요. 마음을 닦는 겁니다. 


수행이라는 것은 마음을 닦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윤회를 벗어날 정도 되면 이 마음이 대단히 맑고 청정합니다. 거기서도 더 닦는다고요. 닦고 닦고 또 닦고 또 닦고 그럽니다. 여기 춘천에서 부산을 가는 데 구간 구간이 있어요. 


1구간을 다 정화하고, 또 2구간까지의 업을 전부 정화시키고 해서 부산을 도착하면 불과를 이룬다. (불과를 이룬 사람은 그럽니다. 그렇게 해 줍니다). 이렇게 비유한다면 거기까지, 그러니까 다겁 생토록 지은 업을 전부 정화시키고, 업장을 소멸시키고 그럽니다. 


그래서 청정 청정 청정해서 아라한을 넘어서 보살이 되면, 정토에 있는 보살들이 올 때의 그 모습은(그 영체에서 나오는 빛은) 광휘 휘황찬란합니다. 붓다는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상대세계) 있는 영체도 빛덩어리이지만 저기(절대계) 있는 불신은 완전히 빛덩어리입니다. 무량광덩어리로 있는데 인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눈 · 코 · 입이 있다고요. 32상 80종호가 햐!!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고, 생각도 다 있따고요(물론 그 생각은 깨끗한 생각, 지혜의 생각이지요). 또 그 불신(절대계에 있는 그 보신 부처님)은 몸이(그 근본체가) 또 하나 있습니다. 무형의 우주적인 몸이라고 그래요. 


냄새도 없고, 맛도 없고 그런 무형의 빛덩어리, 그것을 청정 법신이라고 그래. 불과를 이룬 분은 자기의 청정법신이 잇어요. 그리고 절대계에 보신이 있어요.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지혜 · 자비 · 복덕 · 삼매 · 신통 등 모든 것에 자재 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지닌 초월적인 인격체가 있다고요.



  윤회를 벗어났으니까(시공을 벗어났으니까) 초월이라고 그래. 시공을 벗어난 그 절대계에 그런 자기 몸을 둔다고요. 그래서 이 몸이 세 개 이어요. 여기 몸이 있고, 절대계에 하나 있고, 우주적인(우주와 완전 계합한) 빛의 무형의 몸이 있고 그래요.

이렇게 부처님은 세 몸을 가지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정말로 완전하게 몸에 와 닿게(여러분들이 이해하기 쉽게) 경전에도 없는 말을 현지사에서 쏟아 내잖아요. 자기가 안보고(안그러고) 그럴 수 있습니까? 그것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삼신관(三身觀)이라고 그래. 이 삼신관을 삼신설이라고도 하는데, 그 삼신설은 부처님 당시 제자들이나 부처님 가신 이후 그 교법만을 믿고 따르던 많은 제자들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삼신설은 불교의 가장 깊은 사상인데 부처님의 진짜(실체, 진면목)를 찾고 부처님 가르침의 원천을 부처님이 얼마만큼 깊이 뚫어 버렸으면 이런 팔만사천 대 법문을 설할 수 있나, 이런 원천을 찾으러 노력한 수많은 제자들에 의해서 오랜 기간에 걸쳐서 삼신설이 정립이 되었습니다. 삼신설이 불과를 이룬 분이 정리를 했으면 정말로 와 닿았을 텐데, 학자들이 경전을 보고 연구를 한 것이기 때문에 와 닿지를 않아요. 청정법신 · 보신 · 화신(변화신)을 해석해 놓은 것을 보면 이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하고, 앞으로 내 놓을 2탄(2집)하고는 좀 더 완벽하게 쓸 것입니다. 이런 완전한 불신관을 정립한 것은 현지사입니다.

  그리고 다보불이라든지, 다보탑이라든지 이것은 참 희유합니다. 다보탑, 우리가 지금 발주했는데 금년 안팎으로 건립이 됩니다. 그러나 세워놓고 점안(點眼)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아닙니다(소용이 없습니다). 불과를 이룬 분이 점안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모든 부처님들이 청정법신비로자나불 속으로 흡수 할 때가 있고, 앞으로 다보탑에는 그 많은 본화보살들, 수백천만의 보살들이 다보탑 안에서 주거를 할 것입니다. 점안을 해야 됩니다.

어느 불교도, 지금까지 어느 나라 불교도, 한국의 어느 종파 불교도 이건 꿈에도 듣지 못한 소리일 것입니다. 이 삼신설, 불신관은 불교의 궁극적 극책입니다. 사제(사성제)와 팔정도를 이야기해야 되는데, 지금 우리 현지궁 현지사가 발견한 수많은 소식들을 중요한 것만 말씀드리려고 하는데 그렇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같은 일신교(一神敎)는 사실 종교가 아닙니다. 이것은 언급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것을 내 책에서 꼭 언급 했으면 좋겠는데 저들이(일신교도들이) 또 불만을 표출시킬 것 같기 때문에 말하기도 그렇고, 불쌍한 사람들이 그 종교를 많이 믿고 하니까 꼭 건져야 되는데 '이걸 어쩌나' 그럽니다. "엿새 동안에 우주 만물을 창조한 하나님은 없는 것입니다." 그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일찍이 나지도 아니한 우주 대생명, 스스로 존재하는 자존자' 그럽니다. 그것이 우리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천지 이전 · 주객 미분전 · 공(空) · 무(無) · 일심 · 진여(眞如) · 주인공 · 마음자리' 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격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것을 인격으로 만들어가지고(인격 하나님을 내세워가지고) 옛날 사람들이 성경(구약,신약)을 써 놓았는데 많은 모순이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으로 봐버리면(인격으로 봐버리면) 과거도 없고, 전번에도 언급했지만 그 사상에 입각해서 보면 살인을 했어도 살인한 사람을 처벌 할 수 없습니다.

모든 만물을 창조했다면 하나님을 처벌해야지. 모두를 예정했으니까. 그런 모순이 있지요. 그런 종교 교리로 보면 다 정해져 버렸기 때문에 성공하기 위해서 노력 할 필요도 없어요. 이런 문제는 우리 현지궁 현지사에서 대단히 밝게 이것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출처/법문집3권중 - 2008.4.13. 일(음3.8) 현지사 자재 만현 큰스님 춘천 법문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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