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2일 토요일

절대세계의 붓다들_칭명염불을 권한다!*영산불교 현지사



 절대세계의 붓다들_칭명염불을 권한다!



불자 여러분께서는 실제로 붓다들이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또한 그 불보살님들이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구원을 요청하면
그 염불 수행자들을 친자식같이 생각하여 이들을 건지기 위해 가
능한 온갖 자비 방편을 쓴다는 사실을 유념하셔서 칭명염불을 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불가능이 없으리만큼 우주적인 무한 능력을 지니신 부처님' 을
부르지 않는 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 크신 힘을 지니신 부처
님을 외면하고 자력에만 의존하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다시 한 번 염불을 권합니다. 부처님의 위신력과 가피을 받는다
면 우린 삼악도에 떨어질 염려가 없습니다. 큰 죄를 지어서 지옥에
가고, 짐승 몸을 받아 날 수밖에 없다 해도 큰 스승을 만나 염불공
부를 잘 한다면 삼계까지 벗어나는 대장부가 될 수 있습니다.

학승들이 인간의 마음 속에서 법, 보, 화 삼신을 말하는 것
은 하나밖에 모르는 이설이 분명하다고 다시 단언합니다.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철학공부는 종교 수행인에게 이롭
지 않습니다. 실천 수행해서 깨닫고, 나아가 증득하는 것만이 필요
한 것입니다. 나는 다만 직접 깨달은 내면세계의 '다르마' 소식
만을 전하렵니다. 

내가 들추어낸 이 엄청난 새로운 삼신설의 법문
지각변동이라거나 핵폭발, 경천동지 혹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는
수사를 뛰어넘는을 당당히 사자후하는 것입니다. 묻혀진 아니,
죽어가는 위대 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살려내어 이 땅에 널리 펴고
싶을 뿐입니다.

남모르게 공부를 이루고자 쏟아낸 피눈물이 샘을 만들고도 남을
정도였답니다.

붓다들의 현신했을 때의 모습 보신 불신은 해탈신이기에 그렇겠
지만 보살의 그것과도 하늘 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납니다. 붓다의
음성 역시 그러합니다. 일거수일투족이 자비롭습니다.

보신의 미간, 눈, 입, 손바닥 등 열군데서 '빛' 을 방사할 때에
는 녹색이나 무색 광명같이 단색을 방광할 때도 있고, 백종 오색광
명을 놓을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억종광명을 방사할
때도 있습니다.

붓다께서 방광하는 빛은 마왕 파순이나 하늘 마는 물론 귀신들
도 모두 무서워하는 대상입니다. 탐진치 삼독이 녹아버린 성자의
마음 빛이기에 악심이나 사악한 기를 물리치고 녹이는 불가사의
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량광은 영롱하고 청정하며, 내
외명철합니다.

모든 붓다들이 무량광으로 이루어졌기에, 빛 그 자체이시기에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붓다끼리는 서로 항상 상속되어 있고 그래
서 한 티끌 한 생각이 똑같습니다. 말 그대로 삼세여래일체동
입니다.

그러나 각각 개성이 있고 얼굴, 키, 몸무게도 다르십니다. 그 이
유는 불과를 이룬 후 열반에 들 때, 그 붓다의 거짓 몸속의 네 개
영체가 빛덩어리가 되어 자신의 불신과 계합하게 되는데, 나름대
로의 성격차이가 그대로 불신 속으로 들어가 섞여져 반영되기 때
문입니다.

붓다가 세 몸을 지니신다니 이 어찌 희유하다 아니 하겠습니까!
이것이 정설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견성오도見性梧道 전체공개*영산불교 현지사

 


견성오도見性梧道 전체공개



의심하는 이 놈은 무엇인고?
화광반조 10여 년만인 7월 어느 날, 생각을 놓아도 저절로 화두
가 들리길 여러 날 동안 이어졌습니다.

답답함이 부풀어 올라 풍선같이 극치를 이룰 즈음, 큰 소리로
금강경을 봉독하는데, '여래는 어디로부터 온 바도 없고, 또한
가는 데도 없다'는 대목에 이르러 갑자기 온몸이 폭발하듯 하
면서 세상이 확 뒤집혔습니다.

주主와 객客의 벽이 무너져 버리고, 툭 터져 허공같이 비었습니
다. 적조寂照요, 만고萬古의 광명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마음은 실체가 없어서 가고 옴이 없고 여여부동如如不
動하다는 것을 확실히 보았습니다.

나는 저절로 일어나, 실로 법열法悅이 어떤 것인가를 실감하면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다겁생多劫生의 업業의 나무 무성하더라
팔만 사천 가지마다 줄기마다

망상 꽃이 피었더라.

내 이것을

송두리째 뽑아 버렸더니

하늘도 없고 땅도 없더라.

거짓몸뚱이 산산이 부서져

가루되어 없는데

착着할 게 어디 있는가.

마음 마음
본래부터 없는 것

이름하여 마음이라 하네



이것이 벌써 30여 년 전의 일입니다. 마음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존재의 진상, 우주의 체성體性을 확실히 철견할 수 있었던 것은 오
매불망 간절히 의단을 쌓아온 나의 정성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
합니다.






염불선으로의 회귀


돌계집石女의 겁외가劫外歌와 동산수상행東山水上行을 말하고 '덕
산德山' 의 30방을 흔들며, 상相에 집착 없는 언어로 공空을 읊고
마치 우주의 주인이 다된 양 착각하여 오만을 떨었던 지난날을 생
각하면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30대 중반 서울에 올라와 상임포교사로서 불법을 포교하기 위해
법상에 앉은 지 채 2~3년도 못 되어 나의 공부禪수행 保任에 회의
를 품기 시작했습니다.

히말라야 초인超人들, 힌두교 성자요기 Ylgi들 및 티베트 밀교의
성자 미라래빠의 수행담을 접하고 법화경, 화엄경 등 대승경
전을 정독하면서 나의 선수행을 비교 점검해본 결과 중대한 발
견을 하게되었습니다.

자성을 깨치는 것은 공부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견성見性이 곧
성불成佛' 이라는 산가의 기치旗幟는 분명코 잘못됐으며, 설사 견성
하고 나서 보림을 마친다 하더라도 곧 붓다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부처님이 거룩하시고 희유하시며 거의 절
대자라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또한 인간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 아라한에 그칠 뿐
이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아라한으로서는 우주와의 계합이라는
것이 결코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실존철학의 소위 존대sein 불교의 법성法性, 선禪의 자성自性에 해당가
드러나서 머무는 건 순간일 뿐입니다. 영원히 우주와 계합을 이루
는 성불만이 완벽한 생사해탈을 보장합니다.

소위 견성에 이름으로써 저 일신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이 우상
일 뿐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말하자면, '절대적인 창조주란 없
다!' 고 선언하는 단계가 바로 견성의 경지였습니다.


이 경지에 이르면서 이 몸뚱이란 4대지수화풍로 이루어진 옷이나
집과 같은 '가짜 나假我' 라는 것과, 나我라는 것도 오온五蘊-色受想行
識으로 이루어진 인연소생의 가아假我이며 이 세상은 꿈이나 그림
자 또는 이슬과 같은 무상無常한 존재라는 사실도 발견하였습
니다.

분별하고 사량하는 것은 생각일 뿐, 마음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
습니다. 이것만 해도 크나큰 깨침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지天地 이전, 곧 부처 나기 이전의 적멸寂滅과 우주가 생
기기 이전의 면목을 깨친 이라면 당연히 불교의 연기법만이 진리
라는 것을 사자후할 것입니다.

내가 갑자기 염불선 공부로 용감하게 회귀할 수 있었던 것은 화
엄경 입법계품, 법화경 본문 팔품에서 가르친 대로 무엇보다
도 계율을 존중하며, 경전을 읽고 염불하는 수행만이 부처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토삼부경에서 수행인이 생사윤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지름길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경전 읽고 염불하는 것만이
우리가 보다 잘 살수 있는 오직 하나의 대안代案임을 확실히 보았
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나는 인도의 용수, 마명보살, 중국의 혜원 조사, 진晋의
각현, 담란, 천태지의, 선도, 도작, 영명연수 선사, 한국의 의상, 원
효스님, 서산 선사의 염불선을 크게 주목하면서 우주생명의 실상
實相을 관觀하며 보림을 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미모의 젊은 여인을 보고 마음이 설레는 자신을 발견
했습니다.

그 순간 '진여실상이라는 용광로에 무명번뇌나 억겁의 죄장 따
위가 모조리 녹아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고 주장했던 지난날의 나
의 법문을 스스로 반추하고 의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혼자 산행山行을 하던 중에 쉬어갈 만한
곳에서 선정禪定에 들었습니다. 그 선정 중에 문둥병을 심하게 앓
고 있는 남자가 들어와 한 이불 속에서 자고, 밥지어 먹고 지냈을
때, 정말 선정에 들었으면서도 알고보니 천인天人의 선정이었다
중생심의로 돌아가 역겹고 싫은 생각이 줄곧 따라붙고 있었습니다.

한 태백산의 토굴에서 보림하던 어는 여름날, 커다란 구렁이
가 내 곁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너무도 긴장하여 진땀을
흘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본래면목의 실상, 진여자성眞如自性을 철
견하고 보림한다고 해서 붓다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오백생 이전에 수행하실 때에 '가리왕' 이라는 포
악한 악인을 만나 난자당해 돌아가셨을 때에도 그에게 성내고 원
망하는 마음이 조금도 일어나지 아니하셨는데, 도대체 나는 어디
쯤 와 있단 말인고? 결국 인간 능력의 한계라는 명제와 타력他力, 곧
'부처님의 가피' 라는 주제를 두고 차츰 골똘히 생각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나는 깊은 선정에 들어서 그것을 진짜 삼매라고 오해
한 나머지 불 보살을 뵙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친견은 고사하고
지옥 천상세계도 관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윤회를 벗어난 해탈
오계解脫梧界, 곧 도솔정토나 서방극락세계도 끝내 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선승禪僧이었음에도, 이 모두가 실제로 존재할 것이
라고 믿었기 때문에 염불선으로 과감히 방향전환하였으나 특히
1970년대 당시의 한국불교에서 선수행이 강고되다 보니, 염불하
는 행자들을 무조건 외도로 몰아 배척하였기 때문에 겉으로 내색
하지 못하고 침묵 속에 정토업淨土業을 쌓았습니다.

또 하나 내가 염불선으로 방향전환을 결심한 데는, 선재동자와
같은 나의 과거 행각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마친 화엄경 입법계품의 선재동자처럼 나이와 성별, 출가
재가를 가리지 않고, 이단異端-제2의 예수라 자칭하는 어느 목사님, 부처라
고 떠받드는 어는 재가보살 그리고 전라도 토굴의 어느 도인 등을 이해하고 오
랜 세월 교유함으로써 선禪의 참구參究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칭명염불 수행법의 이론적 토대 - 성명쌍수*영산불교 현지사

 


칭명염불 수행법의 이론적 토대 - 성명쌍수



수행자가 칭명염불 수행법에 대한 든든한 이론적 토대를 얻기 위해
서는 성명쌍수에 대해서 이해하면 좋다. 흔히 동양 철학과 동양 수행
을 하는 수행자라면 고대 성현들로 부터 전승된 성명쌍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성명쌍수란 성(성품)과 명(생명, 삶)을 함께 공부하라는 것을 학
인에게 당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성이란 성품을 말하며, 성품은
마음의 자성을 말한다. 이는 또한 불성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명이라는 것은 우리의 목숨, 즉 생명을 말하며, 더 포괄적으로는 삶
이란 점에서 성품을 공부하는 것이 명을 공부하는 것보다 중요하게
인식될 수 있다. 

그 이유는 성품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주적으
로 영원하게 존재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반면 명으로서의 삶은
시간과 공간 속에 내재한 법리와 인연법 그리고 연기사상
을 통찰 및 철견하는 것이다.

물론 반드시 성으로서의 자성을 닦는 것이 명으로서의 삶
을 이해하는 것보다 우월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래서 성과
명은 함께 닦아야 한다는 성명쌍수를 성현들은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실, 힌두의 철학 사유에서도 본질 또는 존재를 공부하는 것과 인
연 또는 관계를 공부하는 것 두 가지를 나눈다. 어느 것이 우선이고
어는 것이 차선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둘을
통해서 내면의 자성 세계로 회통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될 때 내면과 외면은 뻥 뚫려 내외명철이 된다. 이 내외명철
이 확연히 인식되어 자신의 인식 구조와 존재론적 세계가 하나가 될
때 내외의 벽은 허물어지고 완전히 허공과 같이 충만한 공을 철견
하게 된다.

인도의 쿤달리니 요가에서도 쉬바로서의 정적인 성품 의식과 샥티로
서의 동적인 육체 에너지를 이야기한다. 쉬바는 성에 해당하며 샥
티는 명에 해당한다. 성은 관조적 힘이자, 주시적 힘이자, 관찰
자로서의 힘이다. 명은 행위적 힘이자 삶의 영위자로서의 힘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불가의 팔정도에서 정견, 정사유 등은 쉬바 의식
을 도야하는 바른 길에 해당하며 정업, 정정진 등은 샥티 힘을 도야하
는 바른 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성은 우리의 마음을 의미한다면 명은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
신 구 의 작용을 의미한다. 성은 체요 명은 용인 것이
다. 21세기 과학 문명의 총아인 컴퓨터 시스템을 비유로 들면 프로그
램들 하나하나의 실체가 바로 성이요 그 프로그램의 행위 또는
작동이 바로 명인 것이다.

체와 용이 분리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처럼 성명도 불
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마음에는 안과 밖의 경계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염불선이나 위빠사나선이나 모두가 일차적으로 성을 도야하
는데 있다.

물론 큰스님의 칭명염불 수행은 성을 도야하는 것을 넘어서 부처
님의 가피와 위신력으로 불신을 얻는데 있다. 큰스님의 법 세계에
서는 성이라는 것은 작은 불씨라면 불신은 태양으로 비유할 수
있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수승한 공덕의 염불 수행법*영산불교 현지사

 


수승한 공덕의 염불 수행법



염불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부처님의 상호, 즉
그 모습을 마음으로 관찰 관상하면서 그 공덕을 기리는 일"
이라고 한다.

염불과 비교해서 다라니가 있는데 다라니의 사전적 의미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의 정요로서, 신비적 힘을 가진 것으로
믿어지는 주문을 뜻한다. 원어명은 dharanl라고 한다. 또한 백과
사전에 의한 설명으로는 "비교적 긴 장구로 되어 있는 주문으로
총지 능지 능차라 번역하며 불법을 마음 속에 간
직하여 잊지 않게 하는 힘이다."

다라니들 중에서 좀 더 짧은 다라니인 진언, 즉 만트라에 대
해 사전적 의미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이
나 서원을 나타내는 말로서, 불교에서 진실하여 거짓이 없는 신주
주 신주 밀주 밀언 등으로도 번역한다." 본 단원에서는 염불수행과
관련 제반 내용을 집중 조망할 것이다.

먼저, 석가모니불 칭명염불 그 효시, 즉 염불 수행의 원류를 교
학적 근거에 기초하여 논구하고자 한다.

첫째, <<잡아함경>>에 "바사닉왕이 부처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나
무여래응정등각' 하니......"라고 되어있으며 둘째, <<중일아함경>>에는
"부처님의 명호, 여래 지진등정각 선서 세간해 ..... 등 여러 가지 명
호를 부르면...., 이 공덕에 의해 두려움이 소멸되고, 신통을 얻고....
죽으면 천상에 난다."라고 되어 있다.

셋째, <<중일아함경>> <억념품>에는 "1. 거닐 때도, 2. 머무를 때도,
3. 앉아 있을 때도, 4. 누워 있을 때도, 5. 항상 어디서나 부처님을 억
념하라."고 되어있으며 넷째, <<대방편보은경>>에는 "석존의 제자 한
사람이 '나무석가모니불'을 부르게 하자, 5백 명의 도둑 신체의 고통이
제거됐다."라고 되어 있다.

다섯째로 <<여환삼마지무량인법문경>>에는 "'나무석가모니불' 부르는
것에 의해, 선근이 증장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성과가 있다"고 하
였다. 그리고 여섯째, 부처님은 <<증일아함경>>에서, 모든 비구들에게
수행의 한 법을 염불이라고 설했다. 

즉,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이르시기를 마땅히 한 법을 수행하고, 마땅히 한 법을 널리 펴라, 큰 과
보를 이루며, 모든 선이 널리 이르게 되고, 감로의 맛을 얻어 무위
처에 이르며, 문득 신통을 이루어, 모든 어지러운 생각을 제거하
여 아라한과를 얻어, 열반에 이른다. 어떤 것을 한 법이라고 하
는가? 이른바 염불이다."고 하셨다.

이는 염불하는 공덕에 의해서 무위처에 이르고 신통을 얻어
열반에 들어 갈 수 있다고 한 것은 불교의 수행 중에서도 염불이 중요
함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곱째, <<관무량수경>>에서는 "부처
님께서 위제희 부인에게 16관을 .........."이라고 전한다.

한편, 정토종의 염불 수행인 나무아니타불 칭명염불에 대해서 설명
하자면 다음과 같다. 전통적인 정토종은, 서방 극락정토가 분명하게 존
제하고 염불의 목적이 왕생 극락정토에 있음을 주장한다.

아미타불이나 서방정토 극락세계는 대승경전 전체의 1/4 정도에 해
당하는 방대한 영역에 걸쳐서 등장하고 있다. 정토사상의 발생과 <<정
토삼부경>>의 성립 연대는 불입멸 후 대승불교가 발생할 무렵
어느 대승인 학장에 의해 이루어졌으리라.

그러나 신앙의 근원은 석가모니불 제세시에서도 찾아 볼 수 있으며,
정토신앙은 인도의용수(불멸 후 6~7백년 경), 세친 보살에 의해
서 그 골격을 잡았고, 중국으로 전래되어 크게 발전하였다.

중국의 진나라 때 혜원(육경에 통달, 노장에도 밝았다), 불타발타라
후위의 담란, 수의 지자 대사, 당의 선도 화상, 도작 스님에 의해
서 염불 수행은 크게 진작되었다.

특히 도작 스님은 하루에 칠만 번씩 염불하였다. 규봉 종밀 스님은
염불법을 칭명염불, 관상(觀想)염불, 관상(觀像)염불, 실상염불로
구분하였다.

염불 수행이 선종과 결합하여 염불선이 대두되었는데 염
불선의 효시를 추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선종에서 수용하는 정토
는 내생이 아닌 지금 현세에서 도달한다는 것이고, 타력에 의한 성취
가 아니라 자력에 의한 자각이란 점을 들고 있다.

그래서 정토란 곧 자기 마음의 청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유심 정토
의 사상은, 정토의 개념을 선에서 수용하여 선정일여의 염불선을 표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초기 선종에서 정토를 일심에서 통함, 선정일여의 염불선을 언급한
것은 사조 도신스님의 <<밉도안심요방편법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고려말 나옹 혜근 선사(태고 보우와 더불어 고려말의
선품을 진작한 대선사)의 염불선을 음미해 본다.

아미타불 어느 곳에 있는가
마음에 붙들고서 간절히 잊지 않는다면
염불하는 일념은 일념마저 끊어진 무념처에 도달하여
육근문에 항상 자마금색 광명을 놓으리.

나옹 스님은 자성미타인 유심 정토를 설하고 있다.
또한 참구염불선이 있는데 이는 염불을 참구한다. 즉 지금 염불하는
자가 누구인가를 참구하는 것이다. 당대에는 서방 정토를 유심 정토로
해석해서 선과 정토가 이념적으로 통합되었고, 송대에는 법안 문익, 영
명 연수 스님이 염불선을 주창했으며, 원대에는 남송시대에 발전
한 간화선의 영향을 받아 염불과 화두 공안이 방법적으로 융합되어 임
제종의 몽산 덕이, 중본 명본 스님 등이 있었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120~123






염불선이야말로 수행의 으뜸*영산불교현지사

 


염불선이야말로 수행의 으뜸


이런 용기는 <<화엄경>> <<법화경>> <<율장>>의 가르침대로
무엇보다 계율을 존중하며, 경전을 읽고 염불을 하는 수행이
부처가 될 수 있는 길임을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1970년대
시절의 그 일이 놀랍다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인간 스스로의 수
행인 자력에 의존하는 것에 일정 부분 한게를 긋고 있다
는 점이다. 부처님의 가피라고 하는 타력에 의존하기 시작
한 것이다. 다음 그의 고백을 유심히 음미하기 바란다.

"덕산의 30방을 흔들며, 상에 집착 없는 언어로 공을 읊
고 마치 우주의 주인이 다 된 양 착각 하며 오만을 떨었던 지난
날을 생각하면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30대 중반 서울에
올라와 총무원 상임포교사로 법상에 앉은 지 2~3년이 못돼 나
의 공부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습니다."(25쪽)

바로 이 지점에서 고유의 불교 세계관이 본격적으로 펼쳐진
다. 그의 단언에 의하면 출가자가 자력의 수행으로 오를 수 있
는 최고의 경지는 아라한까지다. 즉 곧바로 성불한다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인 셈이다. 견성 그 이후부터는 철두철미 부처
님의 가피가 필요하고, 다음 생애에 몸을 받은 아라한의 공덕
이 다시 쌓여 그 결과로 보살의 반열에 오른다.

"문수보살, 보현보살 그리고 관음보살께서 뿌리는 부처님의
광명을 온 몸의 털구멍으로 받아들이는 경계를 종종 만나는 위
력"이 바로 보살의 경계다.

이때 모든 보살이 아닌 최상수 보살 정도가 되면 부처가 뿌
리는 무량광이라는 빛덩어리를 보게 된다. 다음이 부처님 친견
의 경지다. 즉 '불과를 증한 대성자'의 단계에 바로 이때 들어
가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신의 불신을 절대계의 부처
님 나라에 둔, 즉 법신 보신 화신의 3신을 완벽하게 구족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높디 높은 까마득한 위계의 관문 때문에 '견
성 즉 성불'이라는 습관화된 말은 턱없는 노릇인 것이다.

"무량광을 보기 이전에 부처와 보살이 있다 없다고 말하는
것은 한낱 범부가 지껄이는 망언일 뿐입니다."는 단언(35쪽)은
여기에서 나온다. 만현 스님은 자신이 구축한 삼신 이론과 부
처 성불 단계론이 11세기 티벳의 전설적인 성자 미라래빠보다
구체적이며, <<반야경>> 등에서 설명된 법신 이론 중심의 부처
설명보다 정교한 것이라고 밝히지만, 지금 이 원고는 그걸 검
증할 수 있는 자리는 안 된다.

용궁에 들어가 <<화엄경>>을 가져왔다는 인도의 용수와 달리
만현 스님 자신은 이 책의 도처에서 부처님을 친견했다고 말하
지만, 그것 역시 제3자가 쉽게 용훼할 수 있는 일이 못된다.

독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불교에 관심 있는 이의 입장에서
보건대 만현 스님의 이 '신 불교론'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불교
가 훨씬 불교다워진다는 점이다. 장려한 체계의 구축과 함께
그가 강조하는 신행 활동의 3박자인 염불 - 계율 - 효도는 출
가자와 불자들을 위한 덕목으로 돌연 떠오르게 된다.

장려한 체계라 함은 수행의 단계와 관문만이 아니라 올바른
생사관을 위해 필수인 대목이다. 이를테면 만현 스님은 부처와
보살이 보신으로 존재하는 것은 물론, 지옥과 극락 그리고 윤
회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고 설파한다. 마음자리를 깨친 정도의
수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지장보살본원경>>에 설명되는 끔
찍한 무간지옥은 실제로 있다. 따라서 출가하여 수행하는 이가
설혹 선근공덕이 있어 견성했다 해도 계율을 지키지 않을 경우
특히 음행 무간지옥에 떨어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비유컨대 "수행자가 여자를 가까이 하는 행위란 마치 깨끗한
물 한 컵에 똥물 한 방울이 떨어져 그 물을 마실 수 없게 되
는 것"과 같은 것이니 무소유와 청정을 지향할 것을 권한다.

이 점 요즘 흔들리는 모습의 불교계에 중대한 암시가 될 것이
고, 지옥과 극락 그리고 윤회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대망언을
했던 동양철학자 도올 김용옥 역시 가슴 철렁할 노릇이다. 책
에서 만현 스님은 부처 말씀을 인용하며 "정법을 비방하는 구
업은 그 어떤 죄업보다 지중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만현 스님 설법에서 중요한 점은 따로 있다. 삼신을
두루 갖춘 부처의 위신력에 대한 강조다. 훌륭한 상모와 지혜
그리고 자비와 신통을 두루 갖춘 부처는 온 세상에 자재한 존
재로 성큼 부각된다. 만현 스님이 화두 참구에 앞서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는 염불 공부를 "가장 훌륭한 수행법"(208쪽)으로 권
장하는 것 역시 자연스럽다.

"붓다 중의 붓다께서 일러주신 수행법은 바로 염불선입니다.
위빠사나선도 2500년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공부이기 때문에 훌
륭한 수행법입니다. 염불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하고
부르는 것이요. "지장보살, 지장보살'해도 좋습니다.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하면 더욱 좋습니다. 이것을 칭명염불이라고 합
니다."(208쪽)




출처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염불선*영산불교 현지사

 

염 불 선


진리는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강조하는 바, 삼란만상은
설법하고 있다고 어는 고승께서는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모든
곳곳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주의을 기
울이고 자각을 하고 인식을 해야 합니다. 

러셀이 이야기한대로 우리에게 인식되지 않는 존재는 없는 것과 다름없
습니다. 이러한 인식론은 양자역학의 이론과도 매칭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존재의 실상이란 우리의 인식 속에 들어올 때 가치
가 있는 것입니다.

진리라는 것도 몇 해 전 열반하신 숭산 스님이 말씀하
신 것처럼 우리가 사과를 깨물어 먹듯 맛을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맛을 본적이 없는 진리란 단순한 궤변에 지나지 않습니
다. 

큰스님의 칭명염불은 이 점에서 훌륭하다고 할 수 있습니
다. 실제로 현지사의 많은 신도님들이 부처님의 방광을 본
적이 있으며 머릿속에서 빛이 나오는 것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는 칭명염불의 위력이 일반 수행자가 몇 년 동안 공부하는
양보다 많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험
으로 증득될 때 마음의 개오와 의식의 정화 그리고 정신의 각
성이 일어나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내면의 진리를 발
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큰스님은 현성이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경건하고 독실한 불제자들이 각골쇄신해 온 큰스님의 삶이
여과 없이 스며들어 있는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여러 번
정독했다면 큰스님께서 얼마나 뼈저린 삶과 진지하고 심오한
마음으로 구도 여정을 펼쳐 오셨는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큰스님의 구도 여정을 완숙한 경지로 승화시킬 수 있었
던 것이 바로 칭명염불에 의한 염불선입니다.

염불은 만트라(진언)와 같은 효과가 있어서 자신의 마음을 보
호해 줍니다. 또한 염불을 통해서 발성하는 말은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석가모니불이라는 발성 자체에 강력한 힘이
있기 대문에 오래할 수록 내면의 힘이 강해진다고 할 수 있습
니다. 사양에서는 로고스라고 하여 신의 말씀을 이야기합니다.

바로 염불도 석가모니부처님의 마음과 링크시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을 많이 염송하게 되면 자신의
내면체에 석가모니부처님과 같은 파장과 에너지를 얻게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칭몀염불을 많이 한 어는 수행자는 자신의 내
면에 부처님의 황금빛 화신이 자리잡고 있음을 인식한다고 합
니다.

재삼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점은 바로 염불선이 큰스님의
법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큰
스님께서 염불선, 특히 칭명염불을 강조하신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부처님게서 실재하신 다는 것입니다. 

삼천대천세계에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붓다님들이 여여히 
계시기에 우리는 그 붓다님들을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붓다님들을 진심으로 간절하게 찾을 때 우리는 붓다님들의 
가피을 입을 수 있고 궁극으로는 붓다가 되는 길에 들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특히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붓다 중의 붓다이시기에 그 분
의 능력은 실로 창조주격이십니다. 바다를 건널 때 수영으로
건너는 것 보다 배를 타고 건너는, 즉 타력에 의한다면 훨씬
빠르게 수행의 목적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염불선으로 희귀함을 매우 중요하게 평가하셨
습니다. 한편 저는 여러 선지시을 만나고 다양한 책들을 접하
면서 모종의 정합적 이해를 얻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혼돈이 있
었습니다. 그러한 혼돈은 바로 방황을 희미하여 급기야 정신적
공황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많은 구도자들이 중도에 포기하고
폐인이 되다시피 하는 것은 바로 확고한 방향을 제시할 뚜렷한
경지에 이른 선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큰스님께서는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 불경을 통해서 염불선을 수행해야 
할 당위성을 얻으셨고 결국 수행 정진에 매진하시고 각고의 노력과
수많은 인고의 세월을 이겨내시고 불과를 얻으시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이는 한국 불교사에 일대 획을 긋는 그리고 불교계의
잃어버린 얼을 되살리는 대업을 이루신 일이라 생각합니다. 큰
스님이 말씀하신 바대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처럼 말입니다.

여하튼 큰스님은 한국 불교계에 커다란 사자후를 남기셨습니
다. 즉, 염불선을 수행함으로써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음을
사자후하시는 동시에 실제로 몸소 불과를 증득하셨습니다. 일체
을 의심하면 모든 법이 다 허무해 보이고 실없어 보입니다. 

그러므로 너무 의심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믿음이 수행에
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도
큰스님게서는 화엄경의 주옥같은 구절을 인용하시면서 '믿음이
모든 공덕을 짓는 어머니'라고 당부 하셨습니다. 

"불전의 부처님 말씀이나 공부가 깊은 큰스님의 법문 말씀을 
믿어 의심하지말아야 합니다. 믿음은 도를 이루는 근원이 됩니다. 
지옥에 갈종자는 진짜 큰스님의 말씀도 믿질 않습니다. 

삼악도의 종자는 의심만합니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불제자에게 
신심을 내야함을 당부하셨습니다. 믿음을 수행터로 삼아 극락 왕생과 
붓다증위를 위해 전심전력하여 염불선, 즉 칭명염불에 정진하면
우리 불제자들 모두가 큰스님의 말씀처럼 석가모니부처님의 위
신력과 가피를 받아 부단한 향상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염불수행-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공부*영산불교 현지사

 

염불수행-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공부



나는 분명히 말합니다!
최초 불이시요, 남섬부주 교주이시고 삼천대천세계 총교주이시
며, '붓다 중의 붓다' 이신 불세존 석가모니불佛께서 일러주신 수
행법은 바로 염불선입니다.

그리고 시방의 모든 붓다들께서도 염불공부할 것을 간절히 권하
고 계십니다. 염불선이 가장 휼륭한 수행법이라는 증거입니다. 어
느 아라한이나 정토보살위의 성인들이 가르쳐 준 게 아니라, '붓
다 중 붓다' 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수행법이기에 염
불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위빠사나 관법선도 2500녅 넌 부처님께
서 가르쳐 주신 공부이기 때문에 휼륭한 수행법입니다.

염불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하고 부르는 것이요, '관
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해도 좋습니다. 의상대사는 관세음보살을
스승으로 삼아 정토왕생을 발원하고 '관음염불' 에 매진한 분이었
습니다. '지장보살, 지방보살' 해도 좋습니다. '석가모니불, 석가
모니불' 하면 더욱 좋습니다. 이것을 칭명稱名염불이라고 합니다.

일심불란으로 집지명호 할 수만 있다면 윤회를 벗어나 극락정토
까지도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信,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願, 그
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염불선行을 해 나가야 합니다.

<<관무량수경>> 에는 지성심, 심심深心, 회향발원심을 갖추면 극락
에 왕생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심심이란 믿는 마음이 철기
등 되어 널리 공덕을 닦거나 즐겁게 선법을 쌓는 것입니다. 널리
공덕을 지으면서 불호佛號를 염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왕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은 이렇듯 쉽지만 실제는 비범한 수행이 아니고서는
왕생하기 어렵습니다. <<아미타경經>> 에서 이르길, "1일에서 7일 일
심불란 칭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과연 보살이 아니면 왕생할 수 없습니다. 선방에서 공
부해 본 수행승이라면 생각이라는 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
난다는 것을 잘 압니다. 아라한을 뛰어넘은 보살이 아니고는, 생각
이란 놈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참선이나 염불을 하다보면 생각은 곧잘 마실마음을 갑니다. 일념
一念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염불 일념을 1일에서
7일간 지속할 수 있으면, 즉 염불선이 되는 염불행자라면 설사 오
역죄를 범한 악인이라도 정토에 왕생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
죄를 지은 자가 일념이 되기란 지극히 어렵습니다.

얼마 전 서울공대를 졸업해 일류 재벌기업의 간부로 있다가 명
예퇴직한 어느 불자님의 조상을 천도해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佛' 을 부르고 있는 가운데 아니타부처님께서 현
신햐셔서, 그 천도재에 참석했던 재자齋者의 큰 아드님을 가리키며
"이 애는 5하늘에서 왔느니라. 전생에 지성으로 염불공부를 했으
니, 잘 지도해주라" 고 필자에게 부촉하신 바 있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염불하고 살았거나, 또 임종 무렵 왕생경계가 나
타났다 해서 그 사람이 모두 정토에 왕생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속
단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하늘 천상만 해도 54층여섯 하늘로 나눔이 있고 그 위
에 윤회를 벗어난 아라한 성자의 하늘 곧 성중하늘이 또 27층품이
있으며, 성중하늘 위가 도솔정토 도솔정토 위가 바로 보살이 가는
서방극락세계라고 하신 말씀을 상기하십시오.

우리 인생이 설사 대과없이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살았다 해도 6
하늘, 5하늘에 가기도 어려운데 염불공부만으로 극락에 쉽게 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 시큰둥해 하는 불자들이 있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부처님이 계시기에 염불하는 것*영산불교 현지사

 


부처님이 계시기에 염불하는 것



요즘은 소위 선종의 큰스님들이 염불하는 '이게 뭐꼬' 하는 화두
식 염불을 권하는 분들이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이것에 반대합니
다. 진여실상을 관하면서 염불하는 실상염불이나 부처님 상호의
공덕장엄을 관하면서 염불하는 관상염불은 좋습니다. 그러나 보
다 좋은 것은 고성으로 칭명하는 염불입니다. 부처님이 계시기 때
문에 염불을 권하는 것입니다.

아미타부처님의 염불왕생원제18원에 따라 그 본원本願을 믿고 일
념으로 염불하십시오. 법계에 부처님이 안 계시다면 칭명염불이
아무 소용이 없겠으나, 부처님은 진실로 계십니다. 그래서 칭명염
불을 하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관무량수경>>에서 "극락극에 태어나고자 하면 마
땅히 부모를 효양하고, 스승께 봉사하며, 10선도를 닦을 것이니
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정업淨業의 기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서방극락세계는 있고, 아미타부처님도
계시며 경전의 말씀도 옳습니다. 다만 아미타부처님은 삼천대천
세계의 수많은 붓다님들 중 다섯 분 어른인 오여래五如來이시고,
10겁 전이 아니라 무량겁 전에 성불하셨사는 것입니다.

아미타부처님께서는 특별히 당신의 이름을 일심으로 부르면 항
상 무량광명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비추시다가 염불중생을 섭취하
는 본원이 있으십니다.

길 잃은 자식이 어머니를 찾듯 간절히 아미타불佛을 부르며 사
십시오. 반드시 좋은 일이 있습니다. 큰 액운도 비켜가고, 죽을 때
잠자듯 편히 갈 수 있으며 최소한 하늘천상에 날 수 있습니다. 진
력을 다하면 왕생도 못할 것이 없습니다. 먼저 <<아미타경經>>을
일독하시고 '아미타불佛 무량겁 멸죄진언' 을 108독 염송한 후, '나
무아미타불' 을 고성으로 힘차게 염불정근 하십시오. 지옥 축생
의 과보를 벗고자 하거나 윤회를 뛰어넘어 아라한이 나는 성중하
늘이나 극락세계에 왕생을 목표로 한다면 음계 10선계를 지
킴은 물론 큰 스승님을 지도자로 모시고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
께 효를 다 하면서 염불수행을 지성으로 하십시오. 그게 여러분이
사는 길입니다.

또한 부처님보신佛께 공양을 드리는 것도 중요하며, 무엇보다도
청정계율을 지키면서 염불하십시오, 물론 이타행 보살행을 해야
합니다. 영명연수 선사의 말처럼 온갖 선행을 두루 닦아 왕생극락
에 회향토록 하십시오.

그리고 삼매에 들 수 있도록 염불선에 매진해야 합니다. 한 순간
도 끊어짐 없이 염불이 되어야 진정한 염불선입니다. 염불삼매나
삼매는 실제로 들기가 무천 어렵습니다.

삼매에 든다면 여기서부터 성자의 반열에 오른 것입니다. 삼매
에 들수록, 더 깊은 삼매에 들어갈수록 청정이 더해지고 지혜가 증
장되며 삼매력이 생겨 죽음을 마음대로 하고 윤회에서 벗어납니
다. 그렇게 해서 대성자가 되어가고 무아 속 삼매까지 들게되면
극락정토까지 뛰어 오를 수 있습니다. 더욱 간절히 염불공부
하십시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염불선이 되어야 삼매에 든다*영산불교 현지사



 염불선이 되어야 삼매에 든다



경전 읽고 염불하는 나의 염불선을 좀더 자세히 소개하겠습니
다. 아미타불 염불공부를 중심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먼저 정토삼부경 중 하나를 선택해서 봉독한 후 벽을 향해 단정
히 반가부좌한 채로 두 눈을 벽의 한 점을 응시한 채 염불선을 시
작합니다. 결코 눈을 깜박거리지 마시고 그 한 점에 두 눈을 고정
해야 합니다. 기도 정근 중에 자꾸 마실마을 가는 놈이 있어서 공부
를 일념으로 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생각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공부의 요체입니다.

하나로 모으려면 차라리 확실하게 둘로 나눠주는 것이 좋습니
다. 망상 피우는 그 놈이 바로 '나'입니다. 그 놈으로 하여금 망상
하지 못하게, 마실마을가지 못 하게 과제를 하나 내주십시오.

내 앞에 아미타부처님께서 와 계신다 생각하고, 마음속에서 큰
소리로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다짐을 하도록 시키십시오. 또 부처
님 앞에서 지난 날 못된 짓 한 것을 경건하게 참회하게 하고 극락
왕생을 발원하도록 말을 시키십시오. 입으로는 '나무아미타불'
정근한 채 두 눈은 앞 벽의 한 점을 응시하고, 귀의 참회 발원을
잘 해내도록 합니다. 이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나 힘써 하면
됩니다.

자유자재로 마음속의 내가 독자적으로 말을 잘 하는 정도가 되
면 이제 생각을 하나로 모아 한 점 속을 뚫어 가십시오. 염불삼매
로 들러갑니다.

부처님의 신상광명을 관하면서, 입으로는 고성으로 힘차게 칭명
해 들어가는 염불공부도 좋습니다. 모든 붓다는 몸이 빛으로 돼 있
어서, 현신現身할 때에는 모든 빛을 거둔 상태지만 여전히 안팎이
드러난 청정광명을 방사하게 됩니다. 정수리, 미간과 모든 털구멍
에서 밝고 투명한 빛을 방사합니다. '석가모니불' 염불행자라면
석굴암의 불상을 마음속으로 그려가면서 방사하는 광명을 마음숙
으로 지어갑시다. 그런 부처님 상을 관하면서 칭명염불합시다. 세
존석가모니佛 염불하는 자는 반드시 <<금강경>>을 봉독한 후
염불하는 겁니다.

대승경전 전체의 3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정토삼부경 <<대집
경>>등 200여 경전에서 염불을 권하고 있습니다. 특히 문수보살은
<<문수반야경>>, <<문수사리발원경>>등에서 극락왕생을 발원토록 하
셨고, 보현보살께서는 <<화엄경>> <입법계품> 마지막 부분에서 선
재동자 등에게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날 것을 권하셨습니다. 대
세지보살도 <<능엄경>>에서 염불하는 중생을 인도하여 삼마디을 얻
어 서방극락세계에 나게 하시고, 관음 지장보살께서도 물론 인
연중생을 극락정토로 인도하시는 일을 교화의 목표로 삼고 계십
니다.

인도의 마명 용수 무착 세친, 중국의 혜원 선도 천태
철양 영명, 신라의 원효 의상 서산 기화, 일본의 법연 신란
등 대선사들을 포함한 당대의 큰스님들도 염불수행을 최선의 공
부법으로 권장하고 고취시켰습니다. 물론 자기들 스스로도 정토
업염불공부에 매진한 분들이었습니다. 염불선은 보살지까지 뛰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수행법임을 다시 천명하는 바입니다.


출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현지사 칭명염불 수행법*영산불교 현지사

 현지사 칭명염불 수행법


나는 이제 불교사상 가장 위대한 칭명염불을 권고하는 바입니다.

최초 불이시오, 삼계의 법왕, 우주의 주主이신 석가모니불을 봉창하는 칭명염불 공부법을 여러 불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세면을 한 뒤 공부방에 가서 성상 앞에서 3배합니다. 

≪금강경≫을 1독하고 부처님 다라니 5번 정도 염송하고 반듯이 반가부좌해서 두 눈을 벽면의 한 점에 고정합니다. 물론 부처님께 귀의·참회·발원합니다. 

낭랑하고 힘 있게 석가모니불을 봉창합니다.

현지궁 현지사의 칭명염불은, 정토종念佛宗의 염불과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다는 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염불 공부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입으로는 석가모니불을 계속하면서 마음속으로는 금강반야바라밀을 동시에 부르도록 해야 합니다. 

선정, 삼매에 들려면 망상이 쉬면서 일념상속一念相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불을 칭명하는 것과 동시에 마음속에서 금강반야바라밀도 잘 부르게 될 때, 석굴암 부처님 미간에서 빛이 방사함을 관觀해봅니다. 

자력의 선정력이 어느 수준 깊어졌을 때 부처님께서 여러분을 삼매 속으로 이끄십니다.

공부할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세간적인 욕심을 포함하여 도를 통하겠다거나 아라한이 되고 보살이 되겠다는 욕심을 갖고 계율 없이 용맹정진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 마가 치고 들어옵니다. 한 번 빙의된 하늘 마天魔는 떼기 어렵습니다. 결국은 정신이 돕니다.

공부 중에 경계에 집착해서도 안 됩니다. 정신넋이 빠질만한 미인이나 시각적으로 볼만한 대상 경계에 집착하면 큰일입니다.

그것은 하늘 마의 유혹입니다. 한두 번 마음을 뺏기다가 급기야는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빠져버리게 됩니다. 마침내 비정상이 됩니다. 미칩니다.

인생에 네 가지 어려움人生四難得이 있다 합니다. 사람 몸 받기 어렵고, 바른 법 만나기 어려우며, 눈 밝은 스승 만나기 어렵고, 해탈하기 어렵다 합니다. 

다행히도 여러분은 천 년, 만 년 아니 겁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하는 부처님 회상 만났으니 큰스님을 스승으로 삼고 지도받아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 천도해 드리는 진짜 효도를 해 드리고, 부처님께 공양도 가끔 올리면서 부지런히 선근 공덕을 쌓으며 열심히 염불 공부해 나간다면 업장이 소멸되어 이루지 못할 소원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때그때 공부의 진척도 점검받기 바랍니다.


출처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中





칭명염불/아라한,보살.붓다가 나온다*영산불교 현지사

 칭명염불



칭명염불수행법은 미증유한 공부법입니다.

중생들의 검증 절차가 필요치 않습니다.

삼천대천세계
모든 부처님들께서 권하시는 바요,

거룩하신 우리 교주
불 세존 석가모니부처님의 뜻이요,

불과를 이룬 광명·자재가 내놓은
공부법이기 때문입니다.




현지사 칭명염불_아라한, 보살, 붓다가 나온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행복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꿈꾸게 됩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부처님께 귀의하고 그 교법에 귀의하며 지난날의 업을 참회하고 탐진 번뇌를 정화해가면서 오계·십선을 행하여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하늘이나 인간세계로 몸 받아 올 수 있는 정법의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물론 금생도 근심 걱정 없이 잘 살기 바랍니다. 그러다 부처님 회상을 만나 윤회전생에서 벗어나 정토에 나기를 간절히 권합니다.

여기서 나는 일찍이 불교사에 없었던 석가모니불을 봉창하는 칭명염불을 제안합니다. 많은 공부법이 있지만 이 염불 공부가 보살이 되고 붓다 되는 가장 확실한 수행법이기 때문입니다.

화두를 드는 선종의 간화선이나, 남방불교의 위빠사나 관법선이나 티베트 밀교의 쿤달리니 요가 수행법 - 이 모두는 자력으로 가는 수행법입니다. 잘해야 아라한 성과를 얻을 뿐입니다.

오늘 날 간화를 참구하는 선승들 중에 지계 청정하고 부처님 없다 말하지 않고 공부 잘하는 스님들도 많이 있음을 압니다. 

그 스님들, 자·타력의 불교로 방향 전환한다면 결정코 성과聖果를 얻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현지사의 칭명염불은 자력과 타력을 겸비한 수행법입니다.
아라한, 보살, 붓다가 나옵니다.

이 칭명염불 수행법은 미증유한 공부법입니다. 중생들의 검증 절차가 필요치 않습니다. 

삼천대천세계 모든 부처님들께서 권하시는 바요, 우리 교주 불 세존 석가모니부처님의 뜻이요, 불과를 이룬 광명·자재가 내놓은 공부법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부처님의 성호를 칭명하라!

2600여 년 전 인도 땅에서 출세했던 석가모니부처님은 대열반에 드셨다 해서 완전 공으로, 적멸로 드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중요한 지적입니다. 

처음으로 불과를 증해 붓다가 되던, 어느 부처님께서 다시 사바 세상에 사람 몸을 받아 오시던 간에 절대계에, 유무를 초월한 무아 속 절대계에 부처붓다의 몸佛身·報身을 두십니다.

그 불신은 청정하고 깨끗한 부처님의 무량 억종광명 빛으로 이루어졌기에 영원불멸입니다.

 그 불신은 대적광삼매 속에서 환희, 지복을 누립니다. 동시에 이 우주와 하나로 계합해 있으면서 삼천대천세계를 항상 비추는 대생명체인 법신法身佛도 두고 계십니다.

그 부처님보신은 ≪법화경≫ <신력품>에서 말씀하신대로 자기의 화신을 천이고 억이고…… 중생의 부름에 응하여 나투어 가시는 것입니다. 소위 32응신으로 그 중생의 근기에 따라 현신하십니다. 

불과를 증하신 부처님 삼신三身의 중심이 되는 보신부처님은 32상을 갖춘 유형의 불신으로서 지혜와 자비 자체가 되어 깊은 삼매의 힘으로 항하사의 신통 묘용을 자재하게 부립니다. 시방十方의 불국토를 다니시면서 보살들을 교화하십니다.

아미타부처님께서 수년 간 사유하여 큰 삼매력으로 극락세계를 성취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부처님 중 부처님이십니다. 그리고 최초의 부처님이십니다. 무량 아승기겁 전에 불과를 이루신 이래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 보살님들을 양성해내신 부모님 같은 어른 부처님이십니다.

부처님들의 지혜·자비·능력은 실로 불가사의합니다. 외도 이단의 세력을 다 합쳐도 부처님 한 분을 대적하지 못합니다.

석가모니불게 귀의·귀명하고 과거 생에 저질렀던 사악한 죄업을 참회하고 그 태산만한 우리 자신의 업장 소멸을 발원하면서 칭명하는 염불수행을 나는 이 책을 읽고 있고 여러 불자들에게 간절히 권하는 바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부처님은 진실로 절대계에 계십니다. 보신부처님은 여름철 뙤약볕 아래 놓은 다이아몬드가 천만 갈래의 빛으로 발산하는 것처럼 그런 불가사의한 빛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32상 80종호로 자비·단엄하십니다. 우리 죄업 중생이 간절히 부르면 우는 아이에게 달려오는 어머니처럼, 그 같이 오셔서 각자의 수행과 공덕에 따라 업장을 씻어주십니다.

중생의 지중한 업장 소멸은 오직 부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외도 수장들도 이것만은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이 점 확실히 말해둡니다. 

나라는 의식이 생겨, 탐진 번뇌들이 일어나 업을 지으면 우리의 영혼엔 더덕더덕 오물찌꺼기들이 붙어 몸뚱이가 만들어집니다.

우리의 본래의 영아靈我에 영혼체가 생긴다 그 말입니다. 수행이란 이런 비본질적인 나, 비아非我를 정화해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영혼이 순수하고 깨끗하고 청정해질수록 맑고 청정한 국토에 납니다.

수행이란 영혼의 정화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업의 정화는 자력수행으로서도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아라한 수준의 영혼 본래 모습까지는 정화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이상 보살로 발돋움하는 것은 타력부처님 가피에 의해서만이 가능합니다.

거룩하신 부처님의 신력神力에 의해서 탐진의 뿌리가 녹고 업장이 소멸 되면 우리는 누구나 보살이 되어 극락정토에 왕생합니다. 오직 석가모니부처님의 가피에 의해서만이 보살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님의 가피력이 아니면 우리 중생은 기왕에 빙의됐거나, 앞으로 빙의될 가능성이 있는 천마·용신 등의 무서운 장애를 제거하거나 방어할 힘이 없습니다. 

그리고 삼독 번뇌의 지멸 역시 우리 연약한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금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만나게 되는 삼재와 팔난의 고통도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과 가피에 의해서만이 피해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숙명적인 운명까지도 바뀌어 집니다. 죽을 때 불 보살님처럼 잠자듯 편히 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 교주 불 세존이 안 계셨더라면 이 삼천대천세계 안의 그 많은 붓다님들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 여러 정토세계의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저 수많은 정토보살과 현재의 항하사 수같이 많은 성중도 있을 수 없습니다.

중생은 삼악도를 헤매다가 기껏 그 중 소수만이 하늘세계에 오를 뿐이었을 것입니다.

 세존께서 나유타하고도 아승기겁 전에 불과를 이루시고 지금까지 한 시도 쉼 없이 여러 국토에 다니시면서 중생을 교화해 오셨기에 오늘 날과 같은 장엄한 회상을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본생담에 나오는 바와 같이 부처님께서 수많은 과거 생을 통해 중생을 위하여 보살도를 하신 거룩한 대승의 이타심, 그 은혜에 우린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은 2600여 년 전 오직 정법을 심어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일념으로 6년간의 설산 고행을 각오하고 다시 인도 땅에 응화신으로 오셨습니다.

그 당시 산 속의 호랑이, 사자, 전갈, 독사, 쉬파리, 사나운 모기떼들에 완전히 노출된 채로 1일 일마일미一麻一米로 연명하며 고행하신 그 은혜를 우린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최초로 불과를 이루신 이후에도 사바세계에 수없이 많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때마다 눈물겨운 난행고행을 마다하지 않으셨답니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우리 문수보살님의 송頌처럼 “이 몸 백 천으로 나누어 가루되어 바친들, 우주만큼 큰 부처님의 은혜를 어찌 다 갚는다 하리까?”하는 감사의 노래가 절로 나오게 됩니다.

모름지기 우리 불자들은 천상천하에 오직 위대하신 불 세존의 은덕을 생각하면서 부처님의 성호를 봉창해주시기 바랍니다.





현지사 터를 잡은 이야기*영산불교 현지사

 

현지사 터를 잡은 이야기



현지궁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천마(天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처님이 계시는 곳을 궁(宮)이라고 합니다. 중국 당나라 이전 수나라 때 당시 최고의 큰스님이 있었잖아요. 천태종을 크게 일으킨 천태지의(天台智, 538~597). 그분은 법화(法華)학승인데, 지금까지 그분을 능가할 분은 없습니다. 

그분이 법화삼매에 들어서 보니까 영축산에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법문하시는 장면을 봤어요. 그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고 하는데, 영산회상이 아직도 흩어지지 않고 있단 말이에요. 그 한 장면을 슬쩍 본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그것이 영산정토라는 말이 있어요. 영산정토. 영산궁은 사실이어요. 

우리 부처님께서는 사바세계 교주이시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영산궁에 계셔요. 절대계에도 계시지. 삼계지존이시니까. 무아속 상적광세계, 거기에도 궁(宮)이 있어요. 

우리 부처님과 가장 가까운 붓다들이 문수․보현이죠. 그리고 태자 광명이 있고, 문수법왕자인 자재가 있잖아요.


그 절대계에 모두 다 궁(宮)이 있어요. 그러면서 여기 영산궁에도 있어요. 우리 부처님께서 영산궁에 와계십니다. 그런데 오늘 밀장이어서 조금만 해석 해 줄게요. 

여러분한테 조금 말씀해드리겠습니다. 오늘 법문은 굉장히 중요한 법문입니다. 그 영산궁에는 부처님께서 계시고, 많은 붓다들이 계시고, 많은 보살님들이 계셔요.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영축산을 뒤지고 찾아도 못 찾아요.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최고의 선지식이라고 하는 분도 100년이 아니라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게 되어있어요. 못 찾지요. 현지사에 현지궁이 있습니다. 

아직은 자세히 말 안했지만, 조금 이야기했지요. 못 찾지요. 찾을 수가 없지.《화엄경》에 이런 말이 있지요.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한 개 티끌 가운데 시방세계가 싸여있고)”이라는 말이 있어요.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 하나 가운데 모든 것이 있고 많은 가운데 하나뿐이며), 일중다 다중일(一中多 多中一)”의 도리가 있어요.《유마힐경(維摩詰經)》을 봐도 그것이 나와요. 조그마한 방에 수만(數萬)의 붓다님들이 의자를 갖다가 앉아계셔도 그 방이 좁지도 않고 넓지도 않고 한다는 것, 그것을 사사무애(事事無碍)의 도리라고 해요.


좀 어려운 이야기예요. 영산불교 영산궁이 그렇게 있습니다. 있는데, 두 제자를 불과(佛果)이루어서 데려가시기 위해 현지궁에 와계시잖아요. 그래서 현지사에다가 현지궁을 만들어 놓은 거예요. 현지궁의 실체를 좀 알려 주려고 하는데, 이게 밀장이기 때문에 오늘 조금만 이야기 합니다. 

우리 제자 누가 조금 알아가지고 써놨더구먼. 이 밀장부분은 여러분들한테 전부를 공개 못하는 것입니다. 어느 벽이 있어요. 이 조그마한 벽 사이에 서울시보다도 더 넓고, 사바세계보다도 더 넓은 세계를(부처님나라를) 창조해 놨어요. 알았습니까?

그래서 열다섯 사부님들이 거기에 계셔요. 여러분! 그 부처님들께서 어디에 계시는지 아무리 찾아보라고. 모르잖아요. 그런데 그 궁(宮)은 그렇게 넓고, 기가 막히게 절경이고, 강이 흐르고 하는데도 여러분들은 모르잖아요. 거기에서 식사도 해요. 식사하는 곳이 있어요. 

그러면 하늘에서 천녀들이 내려와서 시중을 들고, 차를 갖다 바치고, 삼천대천세계 우리 부처님께서 결재해야할 것들이 산적히 들어와요. 여러분, 이렇게 쉽게 말해주면 이해하시겠지요. 그래서 현지궁, 궁(宮)을 쓴 거예요.


우리가 10년 전에 그 자리를 잡은 이야기는 어느 제자가 또 슬쩍 써놓았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지 않고, 거기에 얽힌 불가사의한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11세기,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 티베트의 붓다의 화신이라는 전설적인 고행의 성자 '밀라레빠'를 아시지요

. '밀라레빠십만송'이라는 두꺼운 책이 나와 있어요. 여러분 한번 보십시오. 잘못 기록된 것이 많습니다만, 한번쯤 읽어 봄직 합니다. 이 '밀라레빠'는 붓다의 후신이 아니고 상품보살이어요.


이걸 말하면 티베트 사람들은 화가 날거예요. 그 '밀라레빠'가 우리한테 두 번 와서 친견을 하고 갔어요. 200년 안팎엔가 또 한 번 왔어요. 그때도 수행을 잘 했어요. 

어쨌든 그 정도로 아십시오. 이 '밀라레빠'가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과 함께 수행을 하는데, 제자들이 많이 나오면 수행처가 부족하잖아요. 여기저기 수행처를 잡는데 가끔 그 수행처를 자기의 집으로 삼고 사는 신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 '밀라레빠 십만송'은 잘 못해 놨더구먼요. 요괴들인데, 많은 요괴들이 삽니다. 요괴는 이매망량신들이어요. 그래서 여자로(요녀로) 둔갑을 잘해. 자기의 집에 와서 공부하고 있으니까 그 동굴 같은 것을 뺏기지 않으려고 해요. 안 그럽니까? 

나타나서 아주 훼방을 부리는 거예요. 훼방을 부려요. 웬만한 신통이 없으면 당해요(죽어요). 신통으로 죽여요. '밀라레빠'는 대단한 분이지요. 그러니까 싸워요. 법문을 해주기도 하고. 그래서 조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많은 동굴과 절경이 어우러진 수행처, 수행하기에 적합한 설산 수행처를 빼앗잖아요.


그 중에서 '띠세'설산이라는 곳이 유명하고, 동굴은 '링와'동굴이 유명한데 이건 모두 다 빼앗은 거예요. '밀라레빠 십만송'을 보면 그런 것들이 나와요. 그런데 이걸 꾸민 이야기로 알지요. 읽은 사람들은 모두 그러겠지요. 

그래서 오늘 현지궁 이야기를 하면서 현지사 터를 잡았을 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불보살로 잘 변술(화현)도 하고, 어떨 때에는 구렁이로, 사자로, 여자로, 노인으로 애기로도 금방 변화해버리는 변화술에 능한 하늘 마(天魔), 외도의 집단이 거기서 터를 잡고 수 백 년을 있었어요. 여러분, 그것들이 우리한테 양보해 주려고 합니까?


처음에는 설득해도 듣지 않아요. 이 귀가 막혀가지고 안 들어. 안 들어가. 그러니까 저들의 괴수, 반드시 그 집단은 괴수가 있습니다. 대장이 있는 거예요. 

괴수가 저들의 집단을 이끌고 우리한테 도전을 한 거예요. 도전을 하는데, 거기는 높은 하늘 외도마(外道魔, 天魔)라서 무서운 신통이 있어요. 전쟁을 하는데 어떻게 오느냐? 독침을 날려요. 화살에다가 독을 발라서 쏘는 것처럼 독침을 마구 신통으로 쏜다고요. 맞아버리면 죽는 거예요.

그 영체가 죽어버린다고요. 무수히 날아온다고요. 그러니까 여러분,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들보다도 더 무서운 위신력이 없으면 당해버리는 거예요. 당해버려요. 

거기는 붓다가 나올 곳이어요. 우리가 서울에 있었을 때 부처님께서 자꾸 “여기는 우리 광명불이 기를 다하고(붓다가 되었으니까), 자재를 위해서 그곳으로 옮겨 가거라”해가지고 꼭 거기를 가게 되어 있었어요. 가야만 돼. 

그래서 이제 거기를 차지했는데 도전해 오더라고. 더 무섭게 도전을 하는 것은 독 가루입니다. 독 가루를 뿌려버린다고요. 이 독 가루가 태풍이 몰아치듯 한 속력과 속도로 온다고요. 이걸 어떻게 막아내느냐?


막아내지 못하면 죽는 거예요. 이걸 전부 막아내어요.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영체는 그걸 막아냅니다. 못 옵니다. 그리고 이 영체가 장풍도 있습니다. 장풍을 확~놓아서 독 가루가 오는 것을 막아낸다고요. 저들이 이제 해도 해도 안 되니까 하늘 신(자기의 도반들), 말하자면 자기의 신들(천마들)을 부른다고. 이제 일개 군단이 된다고.

그러면서 2차 도전을 해온다고요. 그걸 우리는 응전을 않고 응전을 했어요. 응전을 하지 않고 장풍으로만 하다가. 저것들이 아무리 해도 안 되거든. 그때 곧 우리 광명불님께서 오셔서 광명불 영체하고 합해가지고 불로 포위를 한 거예요. 불기둥으로 포위를 시켜버린 거예요. 순식간에 해버립니다.

그래가지고 조여 들어와. 그런데 그 온도를 백도 천도 만도 억도까지 높이면서 조였어. 저것들이 이제 타 죽게 생겼거든. 여러분, 불이 났다고 생각해보세요. 사면에서 불이 막 좁혀 들어 올 때 어떻게 됩니까? 이제 죽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는 그 영체가 견딜 수 없는 온도로 높여서 좁혀 들어갔다고. 그러니까 전부 살려달라고 비는 거예요. 

그래서 조복을 받고, 그들이 지니고 있는 못 된 신통을 전부 거둬버린 거예요. 부처님은 그 능력이 있어요. 그들이 갖고 있는 최고의 일급무기는 빼앗아 버린 거예요. 빼앗아버렸어. 그래도 우리가 미안하잖아요.

인연이 다 되어서 우리가 왔는데 미안하니까 전라도 어디로 터를 잡아서 보내준 거예요. 아시겠지요. 오늘 처음 스님이 성지(聖地)를 빼앗은 이야기를 해드립니다. 

이것을 읽고 이제 '밀라레빠 십만송'을 읽어보라고. 그러면 다른 학승들이나 큰스님들은 ‘이것은 뭐 이야기이고, 말도 아니고, 이건 뭐...’그런다고. 여러분은 이제 실제로 ‘아하! 이렇게 해서 빼앗아 버렸구나’라고 이해하실 겁니다. 그 설산 3,000미터 5,000미터 고봉의 동굴 산을 많이 빼앗았어요.


부처님 말씀이올시다. 잘 들으세요.

“이 세상에는 많은 종교와 가지가지의 가르침이 있다. 그 종교의 성인(聖人)이 되는 팔정도 법이 있는지를 보라. 만약 팔정도 법이 없다면 그 가르침은 아무리 열심히 실천수행을 해도 아라한 성자가 절대 나올 수 없다.” 알았지요. 

이 정법팔정도, 그래서 우리는 '팔정도칭명염불'이라고 합니다. ‘사성제 팔정도를 통해서 수행하지 않는 종교나 종파는 전부 성인이 나올 수 없다.’ 맞습니다.


그 위대하신 우리 부처님께서는 항상 역설 하시는 것이 효(孝)입니다. 부모님께 효도해라. 돌아가셨으면, 붓다회상 이때, 이 부처님께서 계실 때 천도를 해라. 그래야 천도가 된다. 

네 번만 해라. 하늘로 보내 줄 것이다. 천도를 해라. 그래서 지금 많이 하고 있는데, 이 천도재가 돈이 비싸다느니, 뭐뭐 어떻다느니 해가지고 말들이 많지만, 비용은 다른 절과 같습니다.

 값은 다른 절과 같습니다. 10년 전에도 그렇게 했습니다. 선근이 있는 자들만 오라고 했더니, 계속하고 있어요. 이 효를 굉장히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효를 하는 사람은 안 되는 사람이 없어요. 무슨 일이든지 잘 되는 거예요. 효를 하는 사람은 하늘이 도와주니까요. 효는 불보살님도 도와줘요.



출처/2010.10.15.금(음9.8) 큰스님 대전 법문 중 발췌

우주적 진리의 신불교-영산불교의 법세계를 말한다!

 

우주적 진리의 신불교-영산불교의 법세계를 말한다!



우주적 진리의 신불교, 불교나 힌두교는 자기들의 종교를 대양(大洋)에 비유합니다. 대양(大洋,큰 바다), 혹은 종대, 큰 산맥에 비유한다고요. 그런데 우주적이라고 해버리면 대양을 초월함은 물론, 산맥 같은 것 보다 위에 있습니다. 

우주적이니까요. 그래서 우리 영산불교는 우주적이라는 말을 씁니다. 우주적! 이 말은 굉장한 의미가 있습니다. ‘

영산불교는 우주적 진리이다’그거예요. ‘부처님의 실존과 윤회의 주체인 영혼체를 인정해라’그거예요. 지금까지의 불교는 부처님이 계신 것도 모르고, 부처님이 계신다고 하더라도 어떠한 어른인가를 모르고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압니다.


부처님은 어떤 어른이냐?

▸지혜와-부처님의 지혜는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 없는 지혜입니다. 그런 지혜를 구족하고 계시고,

▸그 다음, 복덕을 구족하고 계십니다.


부처님의 세계에 대해서, 부처님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아는 영산불교에서는 이 불교계에, 아니 이 종교계에다가 이걸 강의한다고 생각하십시오. 

지금까지의 불교는《화엄경》이나《법화경》을 앞뒤로 꿰어도 부처님의 위신력 복덕 지혜 등등에 대해서 우리 영산불교와 같이 피부에 깊이 와 닿게끔 설명을 할 수도 없고, 자기들도 모릅니다. 전혀 모릅니다. 그런 줄 아십시오. 

우리 부처님은 지혜와 복덕을 갖추고 계십니다. 복덕, 스님이 어느 법회 때인가 또는 책에서인가 말을 했나요?

이 지구를, 아니 우주를 다 살만한 복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그렇습니다. 불과(佛果)를 증함에 있어서 그 과정이 있습니다. 

이 우주를 다 살만한 복덕(복력)을 받아옵니다(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연 깊은 불자들이 복을 달라고 불공(佛供)을 하지 않습니까? 간절히 복을 달라고 기구(祈求)합니다. 

그러면 봐서, ‘저놈이 참 착하구나. 착하게 살았구나’하면 복을 주는 거예요. 복을 주기는 주는데, 이 만큼 줄 것인가, 요만큼 줄 것인가, 산덩이만큼 많은 복을 줄 것인가 하는 것을 지혜로 판단해야 됩니다. 

불과(佛果)를 증하게 되면 저 절대계에서 그 공부를 합니다. 무한한 지혜를 쓰는 법을 말입니다.

어제 우리 광명 만덕님이 볼일이 있어서 부산을 다녀오셨어요. 그런데 비가 너무도 많이 쏟아졌습니다. 불과(佛果)를 증한 분이 외출하시면 어쩐다고요? 

외출하실 때에는 많은 성중이 앞뒤로 옹호 한다고 했지요? 그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실 때 비가 너무도 많이 오니까 

“이거 큰일났다. 관세음보살!”하니까 당신의 광명불이 쭈~욱 내려왔답니다. 그 광명불은 좌우보처가 누구입니까? 무현․모현 두 분의 붓다이지요?

이 응신(화신), 이 몸뚱이가 나갈 때에는 항상 그 좌우보처가 외호합니다. 

그러니까 광명불이 처~억 오시고, 그분을 옹호하는 수많은 성중이 오시고, 극락세계 최상품이신 정명보살이 오시고(정명보살은 신통이 굉장히 큼), 또 많은 보살들이 위호해가지고 촤~악 내려오셨다 그거예요. 

광명불인 광명 화신, 당신의 몸뚱이가 여기(승용차 뒷좌석) 앉았었고, 앞에 앉아서 가는 우리 두 제자 분들, 이름을 밝힐 까? '혜명'하고 '보광'입니다. 정토보살 인가를 받았잖아요. 그리고 운전은 나의 시자인 신행이 했습니다. '신행'알지요?


이 두 정토보살을 천도재할 때 부처님께서 닦아주시는 것 이상으로 영적으로 깨끗하게 안팎을 대청소(정화)하는 작업을 끝내주시고, '신행'에게는 큰스님을 모시는데 너무도 더럽다 해가지고 유리알 같이 깨끗이 소제를 해주시더라 그거예요. 

이제 그 절대계에 있는 자기 붓다가 내려와 가지고 하시는 말씀, “자기는 아직 공부하고 있다”그거라. 

자재통왕불하고 거기서 공부하고 있는데,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느냐 했더니, 방금 스님이 이야기한 지혜, 지혜도 다 갖추었고, 복덕도 다 갖추었는데 이 사람(중생)들에게 마구 줘버리면 안 되거든요.

자비 자체이니까 마구 주고 싶지. 그렇지만 그것은 이법(理法)에 어긋난다 그거요. 

그래서 저 불공(佛供)을 한 사람이 무서운 큰 병을 얻었다? ‘병을 낫게 해 주시옵소서’ 하는 발원으로 해서 불공을 하고 있다 하면, 저 사람을 자비심으로는 다 낫게 해 주고 싶지만, ‘저 중생이 왜(무슨 이유로) 저런 병을 얻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된다(봐야 된다) 그거예요. 

그래서 불안(佛眼)으로 저 중생이 전생 전생...전생에 무슨 업을 지었는가를 봐야 된답니다. 여러분, 그런 거예요.


그 다음, 하!~ 저 사람이 전생 전생...전생에 무슨 업을 짓고, 무슨 죄를 지어가지고 지금 저 병을 얻어서 앓고 있는데, 내가 자비심으로 그냥 갈 수가 없어. 그러니까 내가 어느 정도 저 사람을 치료해 주어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을 판단해야 된다 그거예요. 

보니까 그것이 다 지혜예요. 그래서 30%를 낫게 해 준다든지, 70%를 낫게 해 준다든지, 어쨌든 간에 공양 올린 그 선근으로 해서 작업을 하고, 그 병근(病根)을 어느 정도 뿌리 뽑아 주고 간다 그거예요. 그러니까 그 지혜를 어떻게 그때그때 쓸 것인가 하는 공부를 한다 그거예요. 아셨지요?


그런데 우리 신도 분들은 자기가 그 많은 생에 지은 죄업은 생각하지 않고, 무슨 사업이 안 되니까 ‘이 사업이 좀 되어야 되겠습니다’ 해가지고 공양을 올리잖아요. 그러면 또 축원을 잘해주지만, 부처님은 딱 관하신다 그거예요. 이건 영산불교에만 있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지금 전부 읽으면서 강의 해 드리겠지만 다른 절은 화신불이 갑니다. 지금의 절에는 화신불도 절반이 안 됩니다. 본불(本佛)은 안 가십니다. 

본불(本佛)은 여기만 계십니다. 왜냐? 불과(佛果)를 이룬 제자들 곁을 철저하게 떠나지 않아요. 여러분, 그것을 아셔야 되어요. 불과(佛果)를 이룰 분이 이 세상에 올 때 저 원만보신불이 한 번 오셔요. 

그때만 오셔요. 그러면 다른 절에서는 스님이 이야기했지만, 다른 절의 주지가 이렇게 말할 거예요. ‘현지사에만 부처가 있나, 부처 안 계신 곳이 있나’라고 말한다고 했지요. 그런 거예요.


그러나 여기서도(현대불교신문) 내가 대답을 했지만, 그것은 법신불 이야기입니다. 눈도 코도 입도 몸뚱이도 없는, 생각이 없는, 형상이 없는 법신불 이야기예요. 

그 법신불이 절에만 있나? 절 아닌 곳에도 있어. 교회에도 있어. 물속에도 있고. 그러니까 그건 말이 아닌 것이어. 법신불이 뭐고, 보신불이 뭐고, 응화신불이 뭐고 하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저 들은 풍월이어요. 아셨지요? 

앞에서 사업도 이야기하고, 천도재도 몇 번 하고, 불공도 했는데 내 병이 낫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가 다 해줍니다만, 서너 번 다섯 번 여섯 번해도 안 되는 사람들은 불평을 한다고요.


자기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데 불평을 한다고. 그런 사람들은 많은 전생에 복 받지 못할 짓, 지금 현재 고통 받을 짓을 했어. 아주 나쁜 짓을 했어. 

그러니까 그것은 부처님도 어찌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렇지만 우리 영산불교, 부처님회상에다가 큰 선근공덕을 심어라 그거예요. 

다 해줘버리니까. 그건 처음에 스님이 말했을 거예요. 도저히 손 못 대는 병(病)이 있잖습니까. 우리 영산불교에서 손 안 대는 병이 있습니다. 

러한 병을 얻었다 하더라도 부처님 교단이 지금 일어설 때에 크게 선근공덕을 지어라 그거예요. 그러면 못해줄 것이 없으니까. 현대불교에 실린 인터뷰기사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불세존의 본불(보신불)인 노사나불과 여러 붓다님들이 상주하신다는 성지, 특히 영산당시의 가섭존자 광명 만덕 큰스님과 아난존자 자재 만현 큰스님께서 정법을 펼치고 계신다는 영산불교 현지사(顯智寺). 

깊은 산속 명당자리도 아니고 화려한 시가지도 아닌 춘천시 교외 북단, 화천군과 경계를 이루는 38선 이북,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통일의 꿈을 품고 흘러오다 잠시 머무는 북한강 춘천댐 상류에 자리 잡고 있다.


(이거 기자가 썼는데, 보니까 좀 어폐가 있네요. ‘명당자리도 아닌’이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중생, 풍수지리를 하는 지관의 눈에는 명당자리가 아니라고 보이겠지만, 불과(佛果)를 이룰 정도의 눈뜬 성자의 눈에는 ‘아! 사바세계에서 오직 유일하구나’하는 것을 알아버려요. 왜냐? 여러분들이 아시는지 모르겠네요.


우리 현지사 삼불보전 쪽에 그 부처님세계에서 통줄기로 내려오는 한 아름 이상이나 되는 무량광 줄기가 있습니다. 또한 땅에서 솟구치는 지기(地氣)가 나가는데 청정한 지기가 나갑니다.

 이것이 딱 맞닿아져 있어요. 그것은 세계에 유일한 우리 현지사 밖에 없어요. 그 기(氣)가. 부처님 세계의 기가 쏟아지는 곳은 현지사 밖에 없어요. 더러더러 극락세계의 기나 하늘의 기가 쏟아지는 곳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처님세계의 기가 쏟아져 내려오고 있다. 또 플러스 마이너스처럼 밑에서 청정한 기가 솟구치고 있다. 이것이 반경으로 쫘~악 퍼져가지고 그 빛이 2만평을 다 카바(cover)합니다. 알았습니까? 

그것은 지관의 눈에는 안 보이는 일입니다. 물론 지관들이 지적하겠지요. 현지사 뒤쪽으로 산봉우리가 두 개 터~억 있잖아요. 그러니까 어머니의 두 유방이다 그거예요. 

그것을 어린애들이 젖에 의지하는 것처럼 비구 비구니들이 그것을 의지하면서 빨아먹고 살고 있다 그거예요. 그리고 또 앞에는 강이 유유히 흐르잖아요. 강이 있어야 됩니다.

강이 없는 데는 아닙니다. 물이 있어야 됩니다. 또 오른쪽에는 노적봉이 있어요. 그래가지고 여기의 재물이 안 빠져나가요. 저축하고 재물이 안 빠져 나가. 

그리고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불․보살, 많은 부처님들(열여섯 일곱 분의 보신 부처님들, 본불님들)이 와계시고, 많은 보살님들이 항상 왔다 갔다 하시고, 수많은 성중들이 쫘~악 깔려서 외도의 무리라든지 나쁜 마귀들이 들어오는가 싶어서 딱 진을 치고 외호하고 있어요. 

그리고 여러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유리관으로 궁(宮)이 되어가지고 2만평을 카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외도 하늘도 보고 다 그러지만, 거기서는(외도 쪽에서는) 안 보이게끔 하는 유리관이어요.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궁(宮)이라고 하는 거예요. 부처님이 계시니까 '궁(宮)' 그럽니다. 이 사바세계에는 궁(宮)이 두 개 있어요. 저기 인도 영축산의 '영산궁'과 여기 현지사의 '현지궁'입니다. 그 영산궁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영산궁에도 가셨다가 여기에도 계시다가 그래요. 우리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주로 여기에 계셔요. 그리고 또 절대계(상적광세계)에도 당신 궁(宮)이 있어요. 모든 부처님들은 다 궁(宮)이 있어요.


우리 석가모니부처님과 가장 가까운 두 부처님이 '문수․보현'이잖아요. 석가모니부처님 궁(宮)옆에 문수궁 보현궁이 있어요. 그런데 아드님이 더 가깝기 때문에 아드님 궁이 생겼잖아요. '광명궁'이 있어요. 

또 거기서도 시자를 했던 아난은 또 가깝기 때문에 거기서 1㎞도 안 떨어져 있어요. '아난궁'이 있어요. 여러분, 그걸 아십시오. 이건 밀장입니다. 스님이 처음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어쨌든 현지사는 명당이 아니라 명당이라고 할 수 없는, 이 우리 현지사는 참 희귀한 장소예요.)


현지사는 부처님께서 직접 지어 주신 이름으로 부처님의 지혜가 오롯이 드러나는 절이라는 의미이다. 

영산불교는 부처님 당시 여러 제자들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던 수많은 불자들이 인연 따라 다시모여 교단을 이루고, 인도 영산당시 부처님의 가르침을 원래의 모습 그대로 복원하여 다시 펼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느 정도 써 놨습니다) 불교 수행자로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신 두 분 큰스님을 찾아뵙고, 불교 교리에 있어 끊임없이 제기되는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들어보고, 영산불교에서 제시하는 해답을 통해 이 시대 불교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출처/2010.9.1.수(음7.23) 큰스님 대전 법문 중 발췌

영산당시 가섭 아난 금생에 한국에서 붓다 되다

 영산 당시 가섭 아난 금생에 한국에서 붓다 되다



2600여 년 전 영산 당시 가섭존자 광명 만덕 큰스님은 1954년 한국의 충북

보은에서 여인의 몸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줄곧 불세존과 문수 보현 관

음 지장보살님의 보살핌을 받아왔다.


그런 가운데 홀로 용맹정진해 오던 중 1997년 불세존으로부터 허공에서 화두

게송을 받고 9일 만에 답송을 하기도 했다. 그 후 무량광의 관문을 통과하여

부처님을 친견하고 줄곧 지도를 받아왔다.


1998년에는 붓다로서의 모든 관문을 통과해 <<법화경>>의 수기대로 불

세존으로부터 불호 '광명불'로 붓다 인가를 받았다. 같은 해 보현보살님의 주선으로

서울(암사동)에서 아난존자를 만났다. 광명불은 불세존의 법의 태자로서 오여래급이

며 좌우보처는 명상불과 화광불이다.


영산당시 아난존자 자재 만현 큰스님은 1937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났다. 20

대 초에 출가하여 화두참구의 참선수행을 통해 10여 년 만에 공성을 증득했다.

<<화엄경>>의 선재동자처럼 여러 선지식을 두루 찾아 구법을 하기도 했다.


그 후 <<법화경>> 등의 경전을 통해 삼신불의 더 높은 세계가 있음을 확신하

면서 자력수행의 한계를 절감한 큰스님은 과감하게 염불행자로 방향을 전환했

다. 30여 년 간 사력을 다해 수행한 결과 깊고 깊은 염불삼매 속에서 부처님을

친결하고 가르침을 받아왔다.


드디어 2000년에 <<법화경>>의 수기 내용대로 불세존으로 부터 불호 '산해혜자

재통왕불'로 붓다 인가를 받았다. 좌우보처는 <<법화경>>에 나오는 상행보살과

정행보살이다.


출처/우주적 진리의 신불교

영산불교의 법세계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1권,2권 축약판)





부처님의 법통 전수와 영산불교 창립 선포



불기 2551년 음력 6월 15일 --- 이 날은 세계 불교역사에 새로운 한 페이지를

장식한 날이다. 영산불교 현지사 부산포교원에서 부처님 법통을 이어받은 법의


태자 광명불께서 가사와 전법통증서를 문수보살 법왕자 자재통왕불께 물려주고


영산불교의 창립을 선포한 기념비적인 날이다. <<아함경>>에는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분소의를 물려주는 장면이 나오고, 부처님 대열반 후 가섭존자와 아난존자


의 대화에서도 가섭존자 스스로가 불세존의 법의 아들, 법의 상속자임을 밝히고


있다. 가섭존자는 이제 붓다로서 공식적인 불세존의 법의 태자, 법의 상속자가


되었고 영산불교의 창단과 함께 법통을 아난 자재통왕불에게 물려준 것이다.


<전법통증서傳法統證書>


나, 불세존의 태자


영산 당시 법통태자 가섭 광명 만덕은


부처님의 뜻에 따라


오늘 영산불교 교단의 개창을 선포한다.


이와 동시에 문수보살의 법왕자 아난 자재 만현에게


나의 법통을 잇는 바이다


이의 증표로


그 동안 광명 만덕이 수했던


33쪽 가사를 전하노라


불기 2551년 정해년 음력 6월 15일, 광명 만덕


이 기회에 부처님의 법맥에 대해 한가지 밝혀야 할 사실이 있다. 선불교는


영산 당시 부처님께서 세 곳에서 제자 가섭에게 마음을 전했다는 삼처전심


을 근거로 자기들 멋대로 선불교의 법맥을 가섭존자에게까지 끌어올리는 무


지 무례를 범하고 있다. 이는 선불교가 불교의 정통성을 가진 적자임을 주장하


려는 억지일 뿐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선불교는 영산 당시 정통 불교와는 아무런 관력이 없다. 달


마대사도 마찬가지다. 그 법맥의 부당성을 지적할 가치조차 없다. 현지사의 가


섭광명불, 아난 자재통왕불께서 바로 살아계시는 중인이시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 더 이상 성스러운 부처님의 법맥을 갖고 죄를 짓지 않기를 바랄 뿐


이다.


출처/우주적 진리의 신불교

영산불교의 법세계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1권,2권 축약판)





위대한 영산불교 법맥 현지궁현지사



 위대한 영산불교 법맥 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는 영산 당시 가섭존자와 안난존자가 남섬부주를

찾아 불과를 증하고 영산 당시의 불교로 복원시켜 정법의

맥을 잇고자 영산불교를 창시하였습니다.


영산 당시 가섭존자는 현재 영산불교의 태사부이신 광명

만덕 큰스님이십니다. 이 분은 이미 1998년에 불과를 증하기

위한 모든 관문을 통과하여 불세존으로부터 광명불의 인가를

받았고, 영산 당시의 아난존자는 현재 자재 만현 큰스님으로

계시며, 2000년 불세존으로부터 산해혜자재통왕불의 인가를

받았습니다.


불과를 이룬 두 분의 큰 서원에 따라 불기 2551년 6월 15일에

부처님의 법통을 전수한 영산불교 창교를 선언하였습니다.

영산불교가 영산 당시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의 후신에 의해 부처님의 법통을 잇고 있는 것에 비

해 현재 세계 불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남방불교, 북

방불교, 티베트불교는 부처님의 법통을 잇고 있지 못하고 있

습니다.


한국불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선불교는 그 법맥이

당 송시대의 선사에 의해서 계승된 불교와 도교가 융합된

형태로서 새로운 불교의 한 종파일 뿐입니다.



출처/비교종교학

펴낸곳/현지사-영산불교사상연구소



영산불교 왜 탄생했나?


1. 가섭 아난 영산불교 정법시대를 열다

- 부처님 없는 불교에서 부처님 실존중심 불교로

1. 영산불교 왜 탄생했나?

'부처님 없는 불교'에서 '부처님 실존중심 불교'로 교리

수행체계 혁신적 재정립해야

지금의 세계 불교가 과연 2600여 년 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어왔을

진리를 통달한 어느 대수행자가 이 질문에 '아니로'라고 대답하는데 1초의

도 걸리지 않았다면 너무나 슬픈 일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대답은

사실이다. 부처님 이후 '제2의 부처'라고까지 일컬어지던 용수를 비롯하여 수많

은 선지식, 큰스님들이 거쳐 갔는데 도대체 무엇이 잘 못 되었을까?


아직 생존해 계신 분 중에서도 소위 2대 생불이라고까지 추앙받는 티베트 불

교의 달라이라마도 있고, 플럼 빌리지(Plum village)를 설립한 베트남 출신의 틱

낫한 스님도 있는데 현재의 세계 불교가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지금 세계

불교계만 해도 수많은 종단과 종파들이 있는데 거기에 또 왜 영산불교라는 새

로운 종단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이유는 분명하다. '불교의 교주이신 부처님이 빠져버려 부처님의 우주적 구원

력을 잃어버린 불교, 인간의 실체인 영혼체가 빠져버린 실체없는 생사관으로 인

생 문제에 해답을 주지 못하는 불교, 자력중심 명상수행에 매달려 완전한 생사

해탈을 이루는 수행법이 없는 불교'를 이대로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첫째, 지금의 세계 불교는 부처님 없는 껍데기 불교가 되어버렸다.

부처님께서는 무아속 절대계에 빛의 인격체로 여여히 계신다. 모든 붓다님들

도 다 계신다. 그러나 현재의 불교계는 이 사실을 모른 채, 2550여 년 전 대열

반에 드신 육신부처님만을 믿고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부처님을 믿고

있는 것이다. 영원히 멸도하지 않으시고 눈 뜨고 생생히 살아계신 진짜 부처님

(보신)을 두고 말이다. 핵심 주인공이 빠져버린 불교다.

또한 '견성 - 아라한 - 보살 - 붓다'의 법위에 대한 무지로 견성 또는 아라한을

붓다와 동등하게 보아 불교를 왜소화 시키고 부처님을 격하시켜 버렸다.


둘째, 현재 불교는 영혼체가 빠져버린 실체없는 생사관으로 인생 문제를 풀어줄 실

천적 생사관 하나 제대로 내놓지 못하는 반쪽자리 불교가 되어버렸다.

현재의 불교계는 인간의 실체인 영혼체를 정확히 모를 뿐만 아니라 그 존재조

차 부정하기까지 한다. 지옥세계 극락세계 등 사후세계의 존재와 실상에 대한

확신도 없다. 불교의 목표는 생사해탈인데 생사해탈의 주인공인 영혼체를 모르

고 부청하면서 도대체 누구를 생사해탈 시키겠다는 것인가? 인생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갖고 중생들의 등불 역할을 해야 할 불교가 인생 문제를 풀어줄 생사관

하나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실정이니 어떻게 똑바로 중생을 교화하고 수행을 지도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중생에 대한 불교의 직무유기다.


셋째, 지금의 자력중심 좌선명상 관법 위주의 수행으로는 완전한 생사해탈을 이루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는 큰 수행 성과를 낼 수 없다.


언제부처인가 불교는 자력에만 의존하여 수행한다는 잘못된 개념이 사실인양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력수행은 불교 수행의 토대가 되지만, 완전한 생사해탈을

이루는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가피를 불러오는 타력수행

문으로 들어와야 한다.


이제 불교의 수행 패러다임도 염불중심으로 혁신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삼천

대천세계 모든 붓다님들, 보살님들도 모두 염불로 붓다 되고 보살이 되었다.


불보(佛寶)의 자리에 부처님이 안 보이고, 법보(法寶)는 무지와 왜곡에 가려져

있고, 승보(僧寶)는 중생의 등불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

불교의 실상이다. 주인공과 핵심 알맹이가 모두 빠진 이름만 남은 지금의 불교,

반쪽자리도 못되는 지금의 불교를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 그래서 영산 당시

가섭존자와 아난존자가 이 땅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붓다 이루고 부처님의 가르

침을 복원하고자 새로운 영산불교 정법교단을 창단하게 된 것이다.


지금 현지사 두 분 큰스님 외에 살아계신 세계의 어느 큰스님도 불과를 이룬

분이 없음을 선언한다. 돌아가신 분 중에는 사리불존자와 수보리존자 외엔 어느

누구도 붓다 되신 분이 없음을 아울러 밝힌다. 붓다의 화신으로 왔다 가신 분은

인도의 유마힐 거사 아쇼카왕, 중국의 구마라즙 삼장, 한국의 이차돈 성사, 일

본의 성덕태자가 있다. 이는 살아 있는 붓다의 신분으로 하는 선언이며, 이 선

언에 대하여는 분명한 책임을 진다.


영산불교는 이제 부처님을 중심에 두고 불교의 모든 교리와 수행체계의 큰 틀

을 다시 정림해 나가고자 한다.


불교의 우주적 위대성을 상징하는 불신관은 종래의 이론적 추상적 삼신불신

관에서 경험적 실존적 삼신불신관으로 재정립 되어야 한다.


불교의 뿌리가 되는 믿음관은 열반하신 육신부처님에 대한 믿음에서 살아계신

빛의 인격체인 보신부처님의 존재와 위신력에 대한 믿음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불교의 존재 이유가 되는 생사관은 현재의 인간 실체가 빠져버린 주체없는 생

사관에서 영혼체 중심의 실천적 윤회해탈생사관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불교의 실천행의 근간이 되는 수행관은 기존의 자력중심의 좌선명상 관법수

행에서 자력기반 타력중심의 칭명염불수행으로 과감히 전환되어야 한다.

불자들이 희구하는 구원관은 세속적 기복중심의 구원관에서 생사해탈이라는

수행목표중심의 실질적인 생전 사후구원관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러한 토대 위에 영산불교에서는 부처님 이후 26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실

천적 관점에서 지구촌 인류의 본질적 문제인 생사관의 문제를 다루었다. 우주

진리를 통달한 붓다의 혜안과 통찰력으로, 생생한 경험으로 인간의 실체와 사후

세계의 실상을 명확히 밝혀놓았다. 이를 토대로 인생의진정한 목표는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진리의 생사관을 정립하고 실천 방법도 분명하게

제시하였다. 지금까지 어는 누구도 인간의 실체와 사람이 죽어서 가는 사후세계

의 실상을 정확히 몰랐다. 그래서 우리 인류가 죽어서 가게 되는 엄청난 고통의

세계에 대하여는 아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이 죽으면 대부분 혼절

할 정도의 가혹한 형벌이 가해지는 중지옥에 떨어져 겁 단위의 무량 세월을 고

통으로 보내야 하고, 다시 수십 수백 생 동안 돼지에서 시작하여 개에 이르기까

지 열두 띠를 돌며 축생의 몸으로 살아가야 하는 참담한 실상을 모르고 있다.


이미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과 가까운 친지들이 영혼체의 몸으로 받고 있을 가

혹한 고통의 실상에 대해서도 당연히 아무도 모른다. 물론 이 부분은 종교의 몫

이다. 그러나 지금 세계의 어는 종교도 이 문제에 대하여 정확한 실상을 알고

있지 못하며, 당연히 해결책은 꿈도 못 꾸는 실정이다. 불교조차 부처님의 정법

을 이어오지 못해 당연히 해야 할 이 역할을 못하고 있다. 그래서 부처님의 법

맥을 이어받은 영산불교가 우주 진리를 통달한 살아있는 붓다의 이름으로 이

인류적 차원의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고 아울러 처방도 제시하는 것이다.

오로지 오로지 진리의 이름으로 말이다.



출처/우주적 진리의 신불교

영산불교의 법세계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1권,2권 축약판)







영산불교현지사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 현지궁에서는 사람들 모두가 금생에 더 잘 살고, 다음 생도 잘 살며 죽어서 지옥, 축생 등 악도에 떨어지지 않으며 윤회생사에서 벗어나고 나아가 정토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도록 이끌어 교화합니다.


이곳 현지궁 현지사는 절대계 부처님 나라의 기운과 지기地氣가 맞닿는 사바세계에서 유일한 성지입니다. 불과를 증득할 대성자가 날 터전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2600여 년 전 영산 당시 부처님의 상수제자 대가섭과 아난이 이 땅에 와서 불과를 증하고 정법을 펴나가고 있습니다. 삼계의 왕 남섬부주 교주이신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상주하시고, 약사부처님, 문수보살, 관음보살, 지장보살, 준제보살……이 상주, 현신하십니다.

매일 아침 네시 반경 많은 불 보살님들이 이곳에서 공양을 드십니다. 부처님 이래 처음 있는 희유한 일입니다. 어느 누가 이 경천동지할 사실을 꿈엔들 이해하겠습니까? 그러나 필자는 이 책 처음도 중간도 마지막도 진실만을 말하고 있음을 강조해 둡니다.


절대계에 불과를 이룬 부처님들이 여여히 계심을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설파한 바 있습니다. 이는 역사상 처음 있는 파천황적 선언인 것입니다.


불과를 이룬 모든 부처님들은 진리의 몸을 상적광 절대계에 두십니다. 이 몸을 법신불이라 합니다. 무형이라고 말할 수 있으면서 우주적인 빛덩이 몸입니다. 분별을 떠난 지혜의 몸입니다.


동시에 무아 속 절대계에 부처님들은 각기 32상의 유형의 몸을 두십니다. 보신불이라고 하는 지복의 불신입니다. 보신불은 상모 거룩하시고 빛의 빛인 무량억종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법신불이 육체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 것입니다.


신神은 천千의 머리를 지녔다 합니다. 그러나 보신불이라는 불신佛身은 필요하다면 백이고 천이고 억이나 되는 자기의 화신불을 나툽니다. 

그래서 항하사의 신통 묘용으로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불연국토佛緣國土 인연 중생을 교화하십니다. 이는 백천삼매를 넘어선 대적정삼매라고 하는 삼매의 힘으로 되는 것입니다. 보신불은 지혜와 자비 그리고 공덕을 구족하고 있습니다.

부처님들은 인간 사바세계에 응화신으로 오시기도 합니다. 사람 몸을 받아 시들어가는 정법을 일으켜 바른 불교를 선설宣設하시고, 많은 제자를 양성하며 삼악도의 중생을 건지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고, 반열반에 들어 그 심의식心意識은 자기 보신불과 하나로 흡수 계합하시는 것입니다.

인간, 만물, 하늘, 땅 등 이 우주가 생성되고 진화하다가 소멸되는 것은 자연의 섭리 때문입니다. 힘과 자연의 법칙입니다. 다시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인과의 법칙, 소위 카르마Karma의 법칙입니다. 인과와 인연의 도리인 것입니다.

이 우주의 이법을 노자는 도道라고 했고, 공자는 천天, 힌두교에서는 범梵, 기독교 등 일신교에서는 창조주 하느님여호와, 알라, 불교에서는 공, 마음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 법은 어디까지나 비인격적입니다. 이것을 인격으로 하여우상화하다 보면 수백 수천 가지의 모순이 생깁니다. 법을 왜곡하게 됩니다. 

이 이법, 공, 마음을 기독교 등에서는 영원불멸하고 우주에 편만한 스스로 있는 자존자, I AM이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확실히 해둡니다. 이 우주의 이법은 하느님 이전에, 부처님 나기 이전에 이미 있었던 것입니다. 

 이법은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변괴 될 수도 없는 영원한 것입니다. 우주가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과는 상관없이 시공 이전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시공을 초월해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생각 이전입니다. 생각이 없습니다. 분별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주를 창조하고 모든 것은 기획하는 그런 뜻 - 의자라는 것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조화와 사랑, 힘, 지혜, 완전, 절대의 기氣입니다. 기氣이면서 이법理法입니다.

一. 믿음이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 부처님의 교법을 믿지 않는 사람들, 이 우주안에는 오직 인연의 이법만이 존재한다는 법설을 무시하고 이를 믿지 않는 이들, 인과의 법칙‧인연의 도리를 무시하고 사는 사람들, 그래서 죽은 뒤 몸뚱이 없는 저 세상, 지옥‧천상천당 나아가 윤회생사를 부인하며 사는 사람들, 귀신도 없고 영혼도 없고, 저 세상은 더더욱 없다고 우기며 인생을 사는 사람들, 과학을 하는 일부 지식인들 - 신앙이 없고 종교가 없는 모든 이들이여!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그러한 삶을 살아가기에 때로는 부처님을 능멸하거나 모독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습니다.


자기만을 믿는다고, 양심대로 살면 된다 하고, 살인殺人은 아니더라도 마구 살생殺生하며 그것이 악인 줄 모르고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주지 않는 것을 내 것으로 취하는 것이 죄악인 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은 자기가 처해 있는 자리에 따라 가능한 한 남의 재물을, 국가의 재산을 몰래 내 것으로 취하면서 양심의 가책 없이 살아갑니다. 

주인 있는 여인과 간음하고 자기 이익이 된다 싶으면 서슴없이 거짓을 말하고 이간질 하고 양설도 악담도 합니다. 남을 시기 질투하고 음해도 하고 증오, 저주도 하며 삽니다.


정법에 대한 진실된 믿음이 없기 때문에 많은 죄악을 범하며, 가끔 경우에 따라 큰 악을 짓기도 합니다. 그러다 인생을 하직합니다. 이 얼마나 불쌍한 자들인 줄 압니까? 길이길이 지옥‧축생‧악도만을 윤회하게 될 지옥종자들인 것입니다.

선인선과 악인악과는 만고의 철칙입니다. 죄를 지으면 과보를 받습니다. 착하게 살면 그 보상이 있습니다. 저 세상은 있습니다. 귀신도 있고, 지옥도 있고 하늘 천국도 있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펴낸곳/현지사-영산불교사상연구소



붓다의 설법을 듣는 불가사의한 공덕*영산불교 현지사


 붓다의 설법을 듣는 불가사의한 공덕



여기 와서 불과를 이룬 붓다의 설법을 듣는 공덕은 큽니다. 삼생을 두고 지은 공덕보다 큽니다. 그것은 대승경전상에 나와 있는 부처님의 설법 장면처럼 자재통왕불의 법문이기 때문입니다.


법왕자이지만 자재 만현은 아직 어리기에 오늘 이 설법에 와주신 우리 교주 불 세존과 더불어 다보불 등 오여래 큰 부처님, 문수·보현·관음·지장........... 수많은 부처님......... 특히 삼계의 법왕이신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깨끗하고 청정한 부처님의 광명을 놓으시어 청법 대중의 업장을 씻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각기 선근 따라 어떤 불자는 1겁, 10겁 등 겁 단위의 업장도 떨어져 나갑니다.


무량광이란 깨끗하고 청정한 부처님 광명을 말합니다. 두 눈썹 사이에서, 두 발바닥 법륜무늬에서, 온 몸에서 방사하는 억종광億種光, 열반광涅盤光, 백종오색광百種五色光입니다.


≪화엄경≫ 등 대승경전에서는 이를 티끌 수 같은 광명, 아승기 나유타 광명, 백천억 묘한 빛 광명…… 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이는 안팎이 없이 드러나는 아름답고 영롱한 빛입니다. 한없이 방광해도 끝이 없습니다.


중생들의 앞에 있어도 그들이 볼 수 없는 희유한 빛입니다. 그리고 밝기는 섬광 이상입니다. 중생이 보게 된다면 가루가 돼 버릴 부사의한 부처님 광명입니다.


자성‧진여의 광명부터는 태양빛과 달라서 밝고 어두움, 멀고 가까움, 땅 속, 물 속, 사람들의 마음 속까지 비추는 것입니다. 

특히 무량광부처님광명은 부처님의 우주적인 힘이 뒷받침되는 지혜의 빛입니다. 삼천대천세계 어디라도 비출 수 있고 천마, 외도 수장 모두를 조복할 수도 있고 중생의 업장을 씻고 소멸할 수도 있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중 발췌

펴낸곳/현지사-영산불교사상연구소



사바세계 유일한 성지_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


≪유마경≫에 보면,


“유마힐 거사의 조그마한 방에 높이가 8만 4천 유순이나 되는 사자좌 3만2천 개를 들여놓았으나 그 방은 비좁지 아니하고, 불가사의한 해탈에 머무는 불 보살들은 높고 넓은 수미산을 겨자씨 속에 넣더라도 겨자씨는 커지거나 좁지 아니하고……, 큰 바닷물을 털구멍 속에 넣더라도 털구멍이 커지거나 좁지도 아니하다.” 라는 법문이 있습니다.

이 경의 말씀은 옳습니다. 공부 잘해 큰 삼매력으로 해탈‧대열반을 얻은 붓다는 자기의 몸을 온 세계에 꽉 차게 할 수도 있고, 겨자씨 안으로도 들 수 있으나 그 붓다의 마음은 조금도 동요가 없이 고요합니다.


이곳 현지궁 현지사 큰 법당 불단 벽 안쪽에는 무아 속 절대계에 계시는 여러 붓다님들께서 여기 남섬부주 경험상대세계 한국 땅 춘천 현지궁에 현신‧상주하시는 궁宮이 있습니다. 

그 안에는 명경지수와도 같이 청정하고 깨끗한 물이 3탕으로 흐릅니다. 새벽에 올리는 남섬부주의 제자의 공양을 드시고 천녀들이 가져온 차 공양을 드십니다.


우리 교주 불 세존께서는 모든 불 보살님들로부터 보고를 받고 하루 일과를 지시하십니다. 부처님들 회의시간은 거의 2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사람들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산세 수려하고 강물 흐르는 명소에 자리한 절을 성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 현지사는 보명여래부처님오여래 중 한 분, 법보를 관장께서 자리 잡아주셨고 삼팔선 이북에 있습니다. 

땅의 지순한 기氣와 부처님 세계에서 쏟아지는 빛무량광 기둥이 맞닿는 세계에서 유일한 성지 중의 성지입니다. 이런 곳이라야 붓다가 출세합니다.


붓다는 그 싱그럽고 청정한 기를 섭취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신사리가 아닌 붓다의 원만보신이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는 그러한 최상의 성지인 것입니다.


인도 영축취산에는 영산궁이 있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남섬부주 교주이십니다. 그래서 그 영축산 영산궁에서 수많은 상품보살을 교화해오고 계십니다.

이번에 여기 한국 땅 현지사에 두 분 제자가 불과를 증하게 되어 이곳에 오셔서 상주하고 계십니다. 부처님붓다이 계시는 곳이기에 궁이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완전한 복덕을 구족하셨으므로 곧 다이아몬드, 노다지 광입니다.


이 궁에는 지금 두 분의 갓 불과를 이루신 광명 만덕 큰스님과 자재 만현 큰스님, 밑으로 극락세계 보살로 상품의 무량尼 스님과 27품으로 인가받은 혜명尼 스님이 있고, 금년 초에 인가 받은 무루 대아라한 상운尼, 선혜尼, 정수尼 스님과 영산 등 10여 명의 성중 인가를 받은 수좌를 비롯하여 50여 명의 염불행자들이 지혜와 복덕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현지궁 현지사는 외도의 눈길을 피할 수 있는 특수 유리관으로 둘러쳐져 있습니다. 이곳에선 바깥 세상과 하늘세계 모두가 보이지만 외도 하늘의 천마들에게나 마왕천에서는 여기가 보이질 않습니다. 영산궁과 현지궁의 실상은 붓다의 천안이 열리지 아니한 분은 볼 수 없습니다.


이 부처님 성지는 1,000여 명에서 10,000여 명의 성중이 도량을 항상 수호하고 있습니다. 사천왕이 출입문에서 입초立哨를 서기 때문에 어떤 마귀, 악귀, 영가鬼神들도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펴낸곳/현지사-영산불교사상연구소






현지사의 역사적歷史的인 중대한 발견 종교상의 코페릔쿠스적 혁명입니다.*영산불교 현지사

 현지사의 역사적歷史的인 중대한 발견

종교상의 코페릔쿠스적 혁명입니다.




1. 무아 속 절대계에 불과를 이룬 붓다님들이 여여히 계십니다.


나, 자재 만현이 붓다 되고 나서 절대계에 부처님이 계심을 보고 이를 여러 불자들에게 알립니다.


자성의 광명이란 존재의 근원인 빛을 말합니다. 진여의 광명이라고도 하는 이 빛은 원초의 빛, 티베트 밀교의 정광명, 카발라에서 말하는 무한광Ayin Sof Aur을 말합니다. 이 빛보다 한 차원 맑고 맑은 빛이 보살의 정토의 빛입니다.


정토세계의 빛보다 몇 차원 더 청정하고 아름답고 안팎이 없고 천문학적으로 밝고 청정한 부처님 광명이 곧 무량광, 억종광, 백종오색광, 대열반광인 것입니다. ≪화엄경≫에서 말하는 ‘티끌 수와 같이 많은 색깔의 광명’인 것입니다.


무량억종광으로 이루어지고, 유·무를 초월한 무아 속 절대계 곧 상적광세계에 불과를 증한 붓다들의 지복의 몸, 보신 부처님들이 계신다는 말입니다. 불교사상, 인류 종교 역사상 이 ‘절대계에 불신을 둘 수 있는 고도의 수행법은 불교밖에 없다’라는 것입니다.


도가의 최고 차원의 수행으로 얻어진다는 허공신·체외신은 불교의 보신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불교의 보신에서 천만억의 화신을 나툽니다. 그리고 보신은 법신불이 있어서 완전히 성장, 존립합니다.


나는 이 엄청난 초유의 발견을 하고, 거룩하고 희유하신 우리 교주 불 세존께 경배 드립니다.


깨끗하고 청정한 부처님의 광명을 보고 부처님이 드는 대적정삼매에 드는 것은 붓다삼신불 이루는 필수 요건입니다.


나는 깊은 삼매 속에서 다음과 같은 붓다만이 할 수 있는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깨끗하고 청정한 억종광천만억 나유타 빛깔 광명 빛을 보고,

깊은 붓다의 대적정삼매 속에서 부처님을 친견하고,

여러 가지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부처님의 법문을 듣습니다.

지금은 항상 모든 붓다님을 뵙고 법문을 듣고 대화를 나눕니다.

아울러 나는 깊은 삼매 속에서 미증유한 다음의 사실들을 요달了達했습니다.


①대승경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부처님 몸의 10군데에서 방광하는 백종오색광명의 색깔은 서로 다르고 갖가지 부사의한 기능을 지닌다는 사실

②붓다라면 삼신을 갖춰야 한다는 것과 붓다라야 불의 삼신, 곧 ‘법신·보신·화신이 어떻게 생기며 어떤 존재인가’하는 비밀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③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원만보신 노사나불과 구원실성久遠實成하신 최초 불 석가모니부처님의 희유한 실체


④다보부처님과 다보탑, 오여래 부처님과 준제보살,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등 우주법계에 수많은 붓다들의 세계


⑤붓다만이 드는 대적정삼매의 깊이와 희유한 법열


불교란, 부처님에 의하여 창교됐으며 붓다 이룰 수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오늘 날의 불교는 부처님이 계시는지 조차도 모르는, 심지어 마음이 곧 부처라 하는心卽是佛, 自性佛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부처님삼신을 갖추신을 모르면 불교를 알 수 없습니다. 붓다佛의 불신몸, 삼신관을 모르면 불교를 이야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우주적인 몸, 우주적인 광명지체光明智體-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모르면 불교가 우주적인 종교임을 알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의 불신佛身-원만보신 노사나불을 모르면 위대한 불교, 불교가 우주적인 메타종교임을 알 수 없습니다. ≪화엄경≫ 등 대승경전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다보탑, 다보불, 본화보살을 모르면 ≪법화경≫을 알 수 없습니다. 부처님이 어떤 어른인 줄 알 수 없습니다.

부처님원만보신은 지혜·자비·복덕의 빛덩어리억종광·무량광이십니다. 백천삼매, 방광放光, 천백억화신, 항사恒沙의 신통에 자재하시고 위대하시고 희유하신 분이십니다.


몸의 여러 군데미간, 정수리, 입, 온 몸에서 가지가지 광명을 놓습니다. 그 밝은 빛은 여러億種 빛깔입니다. 그 광명은 이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며 이 광명에 쏘인다면 죄업과 번뇌가 모두 씻겨나갑니다. ≪열반경≫

인류 역사 이래 그 어떤 성자가 이같이 희유한 위신력을 지녔답니까? 실제 부처님의 위신력은 그러합니다. 불교는 위대합니다.

절대계에 계시는 원만보신 부처님100%빛의 존재을 뵙고 법문을 들으며 거기 붓다님들과 법담을 나누는 일, 또한 그 무아 속 절대계에 임의로 들 수 있는出入 일은 대적정삼매붓다의 깊은 삼매를 통과하여 삼신三身, 法報化을 구족한 붓다 아니고선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언해둡니다. 천만생 아니 겁劫에 한 분 출세하는 붓다의 시대에 불교는 비로소 우주적인 메타 불교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불멸 후 9백년 경 당시 인신人身을 받아와 살다간 미륵Maitreya 부처님으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은 대학승大學僧 무착에 의해서 불의 삼신관이 정립, 완성됩니다. 그러나 무착은 불과를 증한 붓다는 아니어서 그의 삼신설은 법신불부터 많은 보완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대승불교의 법신 부처님을 알지 못하고, 거기에 뿌리내린 보신 부처님을 모르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우주적 메타종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석가모니부처님 이후 삼신불을 갖추고 불과를 이룬 분은 수보리존자, 사리불존자, 가섭존자 그리고 아난존자 네 분입니다.

수보리존자와 사리불존자는 부처님 멸도 후 1200년, 1400여 년이 지난 후 각각 중국과 한국에서 불과를 이루시어 명상불과 화광불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출세는 하시지 않고 조용히 반열반般涅盤에 드셨습니다.


2. 부처님 원만보신圓滿報身은 우주의 주主이시고, 우주적 창조의 힘을 구유하십니다.


우주에 편만해 있고 불생불멸하는 대생명, 일심진여, 공 반야공般若空, 스스로 있는 자존자, I AM과 하나로 계합한 ‘붓다’에겐 우주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특히 최초 불이시오, 삼계의 왕 석가모니 부처님은 가히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니십니다.


우주의 진리와 하나된 붓다법신불는 모든 것의 전체적인 것으로서의 우주의 주主이고, 거기서 나온 빛의 인격체인 붓다보신불는 실질적인 우주의 주인이 됩니다.


32상을 갖춘 거룩한 상모와 백종오색광으로 이루어진 불신은 100% 빛의 존재이십니다. 몸의 10군데에서 티끌 수 같이 많은 색깔의 광명을 놓습니다.


천만억 화신을 나투시고 32응신으로 항하사의 신통묘용을 자재하게 부려 삼천대천세계 중생을 교화하십니다. 지혜와 자비, 복덕을 구족하십니다.


3. 육도 윤회세계와 해탈세계를 관통하는 불교 생사관을 정립하고 자·타력수행법을 통해 붓다가 되는 길을 제시했습니다.


아울러 무아와 윤회 주체간의 모순에 대한 2000여 년 동안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게 된 사실을 선언합니다.



1) 인간 영혼의 실체를 규명했습니다.

오늘날 서구 지성사회에서 목말라하는 인간 영혼의 실체를 규명했습니다. 영혼의 실체에 대한 규명은 인간 사유로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붓다의 무상 지혜 아니고선 영원히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인 것입니다.

영혼체를 알지 못하고, 무아無我·비아非我_무아사상은 불교 핵심교리를 잘 못 알고서는 영원히 무아와 윤회의 주체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현지사에서는 영혼의 실체와 무아·비아를 통찰할 수 있게 되어 2000여 년 동안의 교가敎家의 논쟁무아와 윤회 주체간의 모순 관계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게 된 사실을 선언합니다.


인간은 지·수·화·풍 4대로 이루어진 육신과 네 영혼체의 결합입니다. 영혼체는 누구에 의해서, 어느 절대자가 있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인연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자력과 타력의 수행에 의해서 삼독·오욕의 번뇌와 다겁생에 지은 업장 그리고 악·습기 등 비본질적인 것을 제거함으로써 그 정화된 영혼은 육도윤회의 생사에서 해탈하게 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팔정도와 육바라밀로 지혜般若와 복덕을 닦으면서 부처님釋迦牟尼佛의 존호를 봉창하는 염불행자가 되어 수행하면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정토에 보살로 갈 수 있습니다.


2) 완벽하고 올바른 생사관을 정립했습니다.

21세기 지성인들이 또한 몹시도 알고자 하는 것은 생사관일 것입니다. 육도에 윤회하는 주체-영혼체를 알지 못하고서는 올바른 생사관을 정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현지사에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철저히 규명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절대 다수가 악도중음계 지옥, 아귀, 축생에 간다는 놀라운 사실과 윤회 안과 밖 해탈오계를 달관하게 됐습니다.


붓다의 삼매가 아니고서는 이러한 생의 근원적인 문제 해결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재확인합니다.


중생이 윤회생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수라, 천상- 육도는 실재합니다.


사람들이 자살 또는 비명횡사하거나, 나쁜 병을 얻어 죽거나 자식과 재물 등에 착着이 많은 이들은 죽어 명부저승를 들어가지 못하고 이승도 저승도 아닌 중간세계 곧 중음계에 머물게 됩니다.


중음계는 4번 영체로 살게 되는데 여기는 배고프고 춥습니다. 물론 4번 영체도 엄연한 생명체임은 말할 나위 없습니다. 중음세계가 있음을 확실히 해둡니다.


중생이 다겁생 이래로 또 미래제가 다할 때까지 불법을 닦아 해탈을 얻지 못하면 영원히 육도에 윤회생사합니다.


본성을 보아 공을 깨치는 견성은 수행의 종착역이 아니고 궁극적인 해탈세계붓다의 절대계로 가는 머나먼 도정의 출발점에 불과합니다. 깨달음을 얻은見性 수행자는 음계를 지키고 두타행으로 나我에 대한 착着을 떼어 아라한이 됩니다.


아라한은 다시 사람 몸을 받아와 육바라밀과 타력수행으로 보살이 될 수 있습니다. 보살은 무량겁을 두고 보살도를 완성하고 보현행원을 실천하여 자기 불신을 절대계에 두는 붓다가 된다는 것입니다.

3) 무아비아와 윤회의 주체에 대한 실체적인 진실을 파악했습니다.


중생이 육도에 윤회 전생하는데 있어서 그 주체는 영혼체1,2,3번인 것입니다. 이 영혼체는 우주 본성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인 힌두교의 아트만과는 다릅니다.

무아無我, Anatman는 나의 몸과 마음을 포함, 제법諸法은 인연 소생이므로 영원 불변하는 나我라는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이 세상현상계에 한하는 말임을 유의하여야 합니다. 시공을 초월한 세계의 주체가 되는 비본질적인 것까지 제거된행위의 주체 참 나까지도 부정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비아非我는 비본질적인 것까지 포함한 나는 참된 나가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무아라는 말보다 비아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온당합니다.


육도에 윤회하는 주체가 되는 영혼체는 업덩어리가 붙어있는 청정하지 못한 영체이며 생사 해탈로 가는 주체는 청정한 순수 영체인 것입니다.


4)수행인에게 있어서는 음계가 제1의 계율이고, 효행이 제1의 덕목임을 알았습니다.


불교 수행자에게는 물론 음계가 생명입니다. 음계를 파하면서 공부한다면 깨달음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래를 쪄서 밥을 얻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아라한 성자도 음계를 범한다면 그럴 수 없지만 악도행입니다. 영적으로 참수·단두됩니다.


그리고 ‘효孝’는 부처님께서 가장 중요시 여기시는 덕목입니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라를 사랑하며, 스승을 공경해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우리는 불쌍한 이웃을 사랑하는 이타행을 실천해야 합니다.


5) 자력이 아닌 자·타력 불교라야 합니다.


지난날의 잘못을 참회하고, 부처님께 귀의하며 가피 받을 행을 하고, 악을 더 이상 짓지 말고, 부모님께 효도하며 착하게 살면서 칭명염불 하십시오. 자력수행으로는 여러 마장 때문에 인간 능력엔 한계가 있습니다. 윤회를 벗어나는 높은 수행 성과를 얻기는 어렵습니다.


타력수행을 하여 부처님의 가피를 얻으면 건강에도 좋고 삼재팔난을 만나지 않아 금생도 잘 살고, 다음 생에도 복되게 살 것입니다. 잘하면 윤회를 벗어나고, 삼계를 탈출하여 극락정토까지 왕생할 수 있고 붓다도 됩니다.


생으로 윤회생사하면서 지은 중생의 업장은 태산만합니다. 업장은 오로지 부처님만이 소멸시켜 주실 수 있습니다. 또한 천마와 용신과 무주고혼의 실체를 알게 됐으며, 이들이 빙의되었을 때의 문제점과 그 해결 방법에 대한 확실한 처방을 갖게 됐습니다. 

이외 많은 사람들-천마天魔, 마경魔境, 외도의 수장首長, 용신 등 외마 그리고 신통 등에 대해서도 깊이 알게 됐습니다.

21세기 인류를 향도할만한 진정한 법Dharma은 우주적인 메타불교입니다. 불교 계율에 대한 가르침은 삼천대천세계 모든 육도중생에게 해당이 됩니다.


삼강오륜의 인륜 도덕은 우리 인간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러나 우주적인 종교의 계율은 탐진치의 뿌리까지 정화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육도의 중생은 물론 윤회 밖의 아라한이나 보살들도 부처님의 계명에 귀의해야 할 것입니다.


보시의 실천도 대승보살의 이타행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육도 중생의 고통을 대신해서 내가 받는다는 큰 자비가 있어야 합니다. 미래제가 다하도록 무피염無疲厭의 정신으로 지옥의 중생을 건지는 것입니다.


모두는 나와 더불어 한 몸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우주의 진리입니다. 이러한 지계와 보시에 대한 위대한 대승적 실천이 미래 인류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우주적인 진리의 몸-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석가모니 보신부처님의 진불이십니다. 삼천대천세계 모든 보신부처님의 진정한 법신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정법신 비로자나불께서 대역사大役事를 하시는 특별한 경우 시방의 모든 원만보신불들께서 그 안으로 드십니다. 이것 역시 미증유한 중대 발견입니다.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 이곳에는 불과를 증한 두 분 큰스님께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대적광전 그리고 다보탑을 건립, 점안하시어 곧 세상에 선보일 것입니다. 다만 이 나라의 국운융창과 인류의 복리를 위함입니다.


무엇보다도 영산 당시 가섭·아난이 이 땅에 와서 불과를 이루고 정법을 펴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립니다. 

부처님께서 상주하시고, 수많은 불 보살님께서 현신하시는 성지 중 성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중이 수호하는 현지사, 말세 중생들의 복전이 되고 석가모니불 칭명염불을 권장하고 있는 정법도량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중 서문에서 발췌






붓다의 대적정삼매*영산불교 현지사


붓다의 대적정삼매



밀장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붓다 되는 마지막 삼매의 관

문을 여기 소개합니다


백천 가지도 넘는 삼매를 자유로이 수용하면서 마지막 몇

가지 삼매의 관문을 통과해야 대적정삼매에 듭니다.


이 마지막 삼매의 관문 중 하나만을 예로 듭니다.

"1,000m도 더 되는 터널이 있습니다. 양 옆 그리고 위쪽

으로는 등나무가 무수히 뻗어 있고, 수천 마리의 성난 코브라가

머리를 안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겨우 한 사람 통과할 수있는 이

무시무시한 터널을 통과하는 시험입니다."


몇 백 년, 몇 천 년 만에 혹은 겁에 한 분 나올까말까 하는

붓다의 시험보살도를 완성하여 이제 남은 수련,그것은 삼매력

시험입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정색하시며 수행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이 터널을 통과하지 못하면

우린 다음 생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수행자는 자기의 네 영체를 하나로 하여 백천삼매를 나고

든 삼매의 힘을 다하여 오직 일심 칭명 석가모니불을 봉창하며

쏜살같이 터널을 뚫고 질주합니다.


온 몸엔 땀방울이 비 오듯이 흘러내려 옷을 흥건히 적셨습

니다. 터널밖에서는 모든 사부님들오여래 그리고 문수.보현

관음. 세지... 께서 눈물을 흘리시며 박수를 보냅니다.


모든 시험에 통과한 수행자는 해인삼매보다 백천만 리 떨

어져 있는 대적정삼매를 통과하면서 부처님 세계에 올라 붓다

인가 증서를 받고 삼천대천세계 붓다 대장에 자기 불명이 기입

됨을 확인합니다.


자기 불신이 절대계에 어린아이로 자라남을 봅니다. 자기

의 네 영혼체는 빛덩이임을 확인합니다. 부처님들의 축제 한마당이

벌어집니다. 하늘 꽃비만다라화등는 1m이상 내리쌓이고 성중들은

폭죽을 터뜨려 붓다의 탄생을 진심으로 봉축합니다.

출처/비교종교학





광명만덕님은 붓다입니다



이것을 오늘 내외에 선언합니다. 여러분, 붓다는 그 법위가 엄청납니다. 깨달음을 넘어서, 보림이 완성되어서, 무아행을 해서(두타행을 해서) 음계를 잘 지키고, 모든 중계를 선지한 후에 보림이 되어서, 이 몸에 대한 착(着)이 떨어져버린 자리가 아라한입니다. 


그러니까 깨달음에서 이제 시작하는 거예요. ‘깨달음은 공부의 시작이다’하고 내 책《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에 제일 먼저 일성(一聲)을 했습니다(먼저 말을 했을 겁니다). 깨달음이 끝이 아닙니다.


모두 그렇게 보는데, 그것은 절대 아니고, 깨닫고서 이제 보림을 잘 해서 탐․진 번뇌의 뿌리를 뽑아 놓고, 이 몸뚱이에 대한(나에 대한) 착(着)이 떨어져버린 그 자리가 아라한입니다. 

이제 거기가 아라한이어요. 그렇기 때문에 아라한의 자리에 올라간 성자는 몇 십 년 만에 이 세상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합니다. 아마 내 책에 말해 놓았을 거예요. 그게 맞습니다. 

아라한에서 보살이 되는 그 공부는 이제 이타 행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보살도를 해야 됩니다.

모든 것이 전부 공(空)하다는 것을 알고(이미 착이 떨어져버렸으니까 그렇게 되지요), 대상에 대해서 착(着)하지 말고, 이제 남을 위해서 희생합니다.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거예요. 

이게 보살이어요. 그래야 보살과(菩薩果)를 얻습니다. 그런데 자력으로는 안 됩니다. 자력으로는 절대 안 됩니다. 이것도 '자재 만현'이 처음 주장하고 이야기하는 것일 겁니다. 

아라한에서 보살이 되는 것은 반드시 부처님의 가피가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될 수 없습니다. 그 이유가 다섯 가지 있다고 했지요.


나는 그 목사를 뒤로하고, ‘내가 불과를 증했다’고 하는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내가 부처다’하는 그런 사람을 두 사람 만났어요. 잘 만난 거예요. 한 사람은 우리 고향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서울의 여자입니다. 

그 사람들에 대해서 정말로 깊이 연구하고 팠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전부 뒤로 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그러한 '만현스님'의 법문을 듣는 거예요.


이 사람(만현스님)처럼 외도(사마외도, 사이비)를 분간할 수 있는 깊은 안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전혀 없습니다. 내가 그렇게 공부해보고, 소위《화엄경》의 선재동자처럼 많은 선지식을 두루두루 찾아서 담론(談論)해보고, 연구해보고, 그들이 나를 친형제처럼 가까이 있으려고 해도 나는 정에 끌리지 않았고, 냉철하게 정사(正邪)를 분간하고 해서 그분들을 멀리했습니다.

다음에 광명 만덕님을 만난 거예요. 내가 쓴《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Ⅱ》권을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깨달음은 공부의 시작이고, 공(空)을 깨치고 공성을 증득했다고 하더라도 저 절대계에 32상을 두지 않으면 붓다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30년, 40년, 50년 동안 내가 공부한 결론입니다. 그런데 이것이《법화경》에 있습니다.《법화경》〈비유품〉에 우리 부처님께서 사리불 존자에게 말씀하신 부분이 있고, 사리불 존자는 그때까지 공(空)을 깨치고 공성을 증득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공부가 다 되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부처님께서 “저 절대계에 32상 색신을 두어야 붓다이고, 완전한 멸도이다”라고 하니까 사리불 존자가 당황한 거예요. 

그러나 수기를 받으면서 ‘우리 부처님 말씀이 옳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사리불 존자 등 십대제자 내지 십 육성이 공부를 한 거예요. 정진해 들어간 거예요. ‘아! 내가 아직은 불과(佛果)가 아니구나. 

부처가 아니구나. 이제 공성을 증득한 정도 가지고 나는 부처라고 생각했는데 아니구나’하는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 이 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지금 세계의 불교에 대해서 자재 만현이 많이도 한탄을 하고 있잖아요. 세계의 불교가 너무너무도 왜소화 되고, 왜곡되고,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어가지고 자기들이 최고라고 합니다. 자기들이 정법이라고 하지요. 그 우물 안에서(우물을) 뛰쳐나올 수 있어야지요.


객관에 서서 봐야지요. 깨달음은 이제 시작입니다. 결코 시작입니다. 내가 항상 이야기 하지만, 깨달음을 궁극의 목표로 알고 있는 지금의 불교는 21세기 지성 시대의 인류를 향도 못합니다. 모든 종교가 다 그 목표입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그 목표예요. 유교도 깨달음을 이야기하고 있고, 도교도 힌두교도 자이나교도 그렇고, 신비주의의 이슬람교도 그렇고, 영지주의의 기독교도 그렇고, 카발라 정도로 가면 유대교도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깨달음을 가지고 이것이 최고의 목표인양 생각하고 수행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뭘 모르는 사람들이어요. 마치《법화경》의 사리불께서 스스로 참회한 것처럼 그 사람들은 참회해야 됩니다. 

절대계에 32상을 둔 자기불신(自己佛身)을 얻어야 거기가 이제 진짜 불과(佛果)입니다. 그런데 ‘내가 부처다’하는 그 몇 사람, 또 추종하는 사람들이 ‘이분은 불과(佛果)를 이룬 분이다, 이분은 어떤 부처님의 후신이다’하고 맹신을 하고 있는데 아니었어.

 ‘아니다’하고 내가 결론을 내린 것은 정말로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니었어요. 여러분, 정사(正邪)를 분간하는 잣대를 스님이 가끔 이야기할 거예요. 스님이 이야기 했을 겁니다.


▸음계를 봐야 됩니다. 그 수행자가(그 도인이, 부처라고 하는 분이) 정말로 깨끗이 살았는가, 지금 현재 깨끗한가, 모르는 사이에 몰래 음행을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을 봐야 됩니다. 

이 음계가 잣대올시다. 아셨지요? 잣대입니다. 스님이 아마 비유한 말이 있을 겁니다. 표현이 좀 어색해서 죄송합니다만, 수행자가 음계를 파한다는 것은 청정수 한 컵에다가 똥 한 방울을 떨어뜨리는 것과 같습니다. 

청정수 한 컵에다가 똥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먹을 수 있겠습니까? 먹을 수가 없어요. 음계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런데 외도, 사이비의 교주들, 지금까지 우리 인류 문화사에 알고 모르고 간에 출세했던 그 많은 사이비, 외도의 교주들은 거기에 거의 다 걸릴 것입니다. 거기에 거의 다 걸립니다.


▸그 다음에 부처님을 모르면 그건 아닙니다. 부처님을 알아야 됩니다. 부처님이 얼마만큼 거룩하시고 위대하신 어른인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보세요. 부처님한테 말로만 귀의했지, 부처님을 얼마만큼 철저히 따르고 귀의하고 하는 가를 봐야 됩니다. 

우리 불교, 지금의 한국불교라든지, 저기 미얀마 태국 스리랑카의 불교 등이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얼마만큼 되는 줄 아십니까? 우리 영산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부처님 신앙(믿음)을 따라 올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위대한 것을 몰라요. 

겨우 2600년 전에 이 세상에 오셨던 우리 부처님, 인간 역사 안의 붓다밖에 몰라요. 우리는 그게 아니어요. 절대계에 계신 우리 부처님을 알고 있어요. 

그 어마어마한 인격, 지혜, 자비 공덕, 항하사의 신통묘용, 거룩하신 그 상모, 그리고 그 많은 겁을 내려오면서 많은 붓다와 보살을 내신 그 위대함, 우리 현지사에서는 이것을 알아요. 이러지 않으면(이런 것이 없으면) 절대로 정법이 아닙니다.


저기 히말라야 산에 초인들이 많이 살아요. 500살, 1,000살, 2,000년을 산 사람도 있어요. 온갖 신통을 다해요. 나는 그분들을 절대로 붓다가 아니라고 규정을 했어요. 

그분들은 붓다가 아니어요. 그분들은 부처님을 숭배하지 않고, 자기가 부처인양 해요. 부처님 세계를 몰라요. 그렇기 때문에 아니라는 것이어요. 또한 절대계에 불신(佛身)이 없어요. 

고로 거기는 아니어요. 그리고 사람의 영체(영혼체), 네(4)영혼체를 몰라요. 우리같이 속속들이 몰라요. 우리 영산불교에서 처럼 몰라요.


영혼체를 긍정하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 영산불교가 처음이어요. 힌두교, 자이나교에서 많이 알아요. 많이 알면 알수록 우주의 신비로운 그 비밀을, 우주의 이치를 많이 아는 거예요. 

그래서 힌두교를 위대하다고 봐요. 힌두교는 창조론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기독교 등 저 일신교의 창조론하고 질이 달라요. 힌두교는 굉장히 우수한 종교예요.


인간이 육도에 윤회하는 것까지 알았어요. 그래서 그 주체가 영혼체라는 것까지 알았어요. 우리 불교, 부처님 세계에 가면 그것은 상식이어요. 그런데 어떻게 이게 왜곡이 되어가지고 무아설(無我說)이 자리를 잡아버렸어요. 

나(我)가 없다고 하는 무아설(無我說), 부처님께서 무아설(無我說)을 말씀하신 것은 그런 의미에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어요.


중생이 죄를(업을) 짓고, 그래서 육도에 윤회하니까 이 고통의 세계에서 건져주시려고 무아(無我)를 말씀하신 거예요. 나(我)가 없으니까 이 몸뚱이에 착(着)하지 말라고. 너, 아무리 봐라. 나(我)라는 것이 있는가. 

오온(五蘊, 色受想行識)으로 이루어진 이 몸뚱이, 몸뚱이를 아무리 찾아봐라. 나(我)라는 실체가 있는가. 저 수상행식(受想行識), 정신적인 면을 아무리 찾아봐라.


나(我)라고 하는 것이 있는가. 죽으면 다 흩어져버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현상세계의 모든 것을 가지고(보시고) 말씀하신 거예요. 현상세계에서는 나(我)라는 실체가 없어요. 그러나 실체가 없는 몸뚱이를 부처의 불안(佛眼)으로 보니까 저 몸속에 들어와 있는 본체(주인공)가 있어요. 그것이 영혼체예요. 주인공이 없이는 윤회를 못하는 거예요. 영혼체가 없으면 생겨났다가 죽어버림으로서 끝나버리는 거예요.


여러분, 전번에 스님이 체외수정은 영혼체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씀을 해가지고 곧바로 지장보살님한테 잘 못했다고 혼났어요. 생각하니까 지장보살님 말씀이 맞아요. 오늘 수정합니다. 복제인간은 영혼체가 안 들어가요. 전번 대전 법회 때 스님이 말씀드렸지요? TV법회는 아니었습니다. 체외수정은 영혼체가 들어갑니다.


지금까지 2500년 불교가 영혼체를 몰랐어요. 무아설(無我說)이라고 하는 것에 걸려가지고 윤회의 주체가 없는 것으로 봐버렸어요. 무아설(無我說), 여러분! 이 무아설(無我說)은 우리 불교의 핵심이 되는 중핵의 사상입니다. 

그런데 그 무아설(無我說)이 지금 잘못해석 되어 있다고요. 이게 2500년 내려갔다고요. 그 어떤 스님도 모르니까 무아설(無我說)을 바로잡지 못했다고요. 이건 영혼체를 봐야 압니다. 영혼체를 봐야 알아.


그런데 그 영혼체도 힌두교 정도로는 몰라. 그러니까 그건 아트만 이야기로 끝나버린 거예요. 아트만은 순수하니까 윤회 못해요. 우리같이 1번,2번,3번,4번 영혼체가 갖춰짐으로서 육도에 윤회하고, 지옥 아귀 축생을 윤회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비아(非我)가 윤회의 주체다’하고 나온 거예요. 부처님 가신 후 처음으로 윤회의 주체는 있다. 힌두교의 말이 맞다. 그러나 힌두교의 아트만 가지고는 윤회를 못해. 잘못 안 거예요.

우리 영산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비아(非我), 1,2,3,4번이 뭉쳐진 것, 이것이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업을 지었어. 탐진치의 뿌리가 다 깊이깊이 내려있어. 

모든 악과 습의 기가 더덕더덕 붙어 있어요. 그래서 마치 영혼체의 모습이 숯검정처럼(진흙덩이처럼) 되어 버렸어. 그러니까 이것도 나(我)가 아니다 그거예요. 

비아(非我), 나(我)가 아니다. 그 비아(非我) 때문에 윤회를 하는 거예요. 윤회의 굴레에서(사슬에서) 사슬을 끊고 벗어나려면 수행을 해서 비아(非我)를 유아(有我)로 바꿔야 돼. 

이제 수행에 의해서 업장을 씻고씻고 해가지고 온전한 영체가 드러나야 돼. 순수하고 깨끗한 1번,2번,3번 영체가 드러나야 돼. 그러면 윤회가 안 돼. 이런 이야기를 했을 겁니다.

이것은 5년 전부터 내가 법회에 나가서 말씀을 한 거예요. 영혼체 이야기를 슬쩍슬쩍 했습니다.《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에도 있어요.《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Ⅱ》권에도 많이 써놨고요. 점점점점 깊이를 내다가 이번에 내가 이 '영혼체 윤회론'을 크게 정비해서 내놓은 거예요. 

이건 진리입니다. 이건 진리예요. 사람이 죽더라도 그 영혼체가 빠져나가야 완전히 죽었다고 의사가 판정하는 거예요. 영혼체가 빠져나가야 돼. 시골에 가면 어느 집에서 불나갔다고 하지요. 불나갔다고 하거든. 

부부가 아무리 10년, 30년을 살아도 영혼체가 들어오지 않으면 수정할 수가 없어요. 안 되는 거예요. 애기가 들어설 수 없는 거예요. 알지요? 바로 그게 영혼체야.


그런데 무아(無我)가 우리 불교 가르침의 핵심이기 때문에, 이 전제 하에서 100%긍정을 하고, 무아윤회(無我輪廻)를 이야기하다가 보니까 이게 말이 안 돼. 무아윤회(無我輪廻)가 어떻게 됩니까? 윤회의 주체가 없이 어떻게 윤회가 된단 말입니까? 

이건 안 되는 것이거든. 그러니까 그 힌두교의 여러 학파의 거장들한테(학자들한테)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런 논전(論戰)에서 대응할 수 없으니까 여러 가지 이론을 부파불교에서 만들어가지고 대응하지만, 인도사람들의 견지에서 보아도 말이 안 돼. 

많은 세월을 두고(BC, AD 7,8세기부터 몇 백 년 동안) 그런 논전이 벌어져 인도사람들이 구경해보니까 이건(불교의 이야기가) 말이 안 돼. 처음에는 그것도 모르고 부처님이 워낙 위대하니까 불교로 기울여 왔어.


아쇼카 대왕이 전 인도를 통일하면서 인도는 물론이고 그리스까지 불교화 시켰어요. 그 다음 칸슈카 대왕이 300년~400년 후에 출세해서 더욱 불교화 시켰습니다. 

그 불교가 인도에서 완전히 사멸해 버린 거예요. 사멸해버렸어요. 불교의 몸통이자 핵심사상인 무아(無我)가 이제 보니까 말이 안 되거든요. 이건 말이 안 되거든. ‘이게 불교냐!’ 하고 돌아서버린 거예요. 힌두교에 전부 흡수 되어 버렸습니다. 

10억 인도 인구에서 0.01%도 안 되었어요. 그것이 요즘 약50년 전에 이 세상을 떠난 천민계급 출신인 '암베드카르(Ambedkar, Bhimrao Ramji 1893.4.14 인도 모우~1956. 12.6뉴델리. 

인도의 정치가. 하리잔(불가촉천민계급)의 지도자로 1947~51년 법무장관을 지냈다. 인도 서부의 불가촉천민 계급인 마하르가(家) 출신으로 불교에 귀의함)'에 의해서 조금씩 조금씩 불교인구가 증가하고 있답니다.

암베드카르, 간디와 함께 인도 독립운동을 한 분이어요. 이분이 법무상까지 했는데 천민계급 출신이어요. 그렇지만 미국, 영국에 가서 경제학․법학을 전공하고 학위를 받은 분이에요. 

그래서 지금 인도사람들은 간디와 암베드카르의 생일을 국경일로 정한 거예요. 암베드카르는 힌두교에서 불교로 전향했습니다. 왜 전향했겠습니까? 자기는 천민계급이어요. 천민계급은 인도사회에서 사람구실을 못해요. 자기는 천민계급인 슈드라 계급이었거든요. 

불교를 보니까 평등을 이야기하거든. 완전히 바꿨어요. 그래서 불교 부흥운동을 한 거예요. 50년 전에 사망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0.01%의 불교인구가 0.1%, 1%...증가하면서 지금은 7%정도 늘어났습니다. 약700만 명이 불교신자가 되었어.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그 불교가 역시 왜곡된 불교예요.

암베드카르에 의하면, 영혼도 없고, 다음생도 없고, 업보도 없고, 인과도 없다는 둥 이렇게 이야기해요. 이건 마치 오늘날 불교의 현주소 같아요. 앞으로 이런 불교는 안 됩니다. 진리를 모르는데 어떻게 됩니까? 진리를 완전히 깨닫고, 그걸 상식으로 알고 있으면 전법(傳法)을 해야 돼. 그런 불교들은 수명이 얼마 못가. 참 아쉽습니다. 우리 영산불교와 같은 정말로 완벽한 불교가 이 세상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 지금 우리 영산불교에서 출간 된 책이 20여권 나왔잖아요. 열심히 읽고 알아야 되요.


우리 영산불교의 사상을 전면을 할애하여 세 번 광고를 했어요. 큰 면을 세 번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까지 그 누구도 반론을 제기 못합니다. 반론을 제기 못하지요. 학자 아니라 학자 석학이라고 하더라도 반론 제기 못하지요. 2600년 동안 그 어떤 큰스님도 이걸 몰랐는데요. 이유가 뭐냐?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뚫고 본체를 보는 경계가 깨달음의 경계입니다. 깨달음 가지고는 아직 몰라요. 거기서 더 들어가면 적멸의 경계가 있어요. 적멸의 경계, 불보살의 세계가 있어요. 여기까지 가야 지옥도 보고, 영혼체를 확실히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도 반론을 제가 못하고 있어요.


우리 광명 만덕님을 그때 찾아가보니까 어마어마하게 공부가 되어가지고 있었어요. 이 남섬부주에 불과(佛果)를 증한 분이 태어나게 되면 반드시 부처님이 오시게 되어 있어요. 오셔서 지도해야 되요. 마장(魔障)을 막아줘야 되는 거예요. 불과(佛果)를 증할 정도에 오를 그 수행자에게는 여러분이 도저히 상상 못 할 마장(魔障)이 오는 거예요. 보살만 될 사람한테도 절대로 보살과를 이룰 수 없는 마장이 와요.


이 마장을 피해서 보살과를 얻으려면 붓다회상을 만나야 되요. 부처님을 만나야 되는 것이어요. 그런데 이분은(광명 만덕님은) 내가 볼 때 부처님을 만났더라고요. 부처님께서 오셔서 지도하고 끌어주더라고요. 그래서 그 부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 내가 굉장히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갔습니다. 부처라고 해서 내가 만났던 두 사람, 내 고향의 남자와 서울의 어떤 사람, 그 사람들은 나하고 결별이 되었어요. 이유가 있어요. ‘아! 진짜 부처가 아니다’ 그거예요. 음계에 걸리고, 경전을 소중히 해야 되는데 경전을 소홀히 하고 독송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붓다가 되었다면 모든 부처님(붓다)의 세계에 대해서 잘 알아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충분히 들어보면 어딘가 미심쩍었어요. 우리 광명님을 만나니까 완전한 부처님이 오셨어요. 여러분, ‘우리 영산불교가 부처님 교단이다. 우리 광명 만덕님이 붓다이다’ 라고 하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건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이야기인거예요. 여러분은 너무너무도 행복한 거예요.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은 아마 스님의 이야기가 와 닿지 않을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시나?’하고 이해가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위해서 40~50년을 투자한 거예요.

무엇이 정법이냐? 모두 다 정법이라고 하는데, 무엇이 정법이냐? 고등학교를 나와서 예배당을 많이 다녔어요. 많은 부음집도 읽어 봤고, 기독교에 가보니까 저들이 최고라고 해. 저거가 최고라고 그래. 또 많은 종파가 있잖아요. 종파마다 자기의 종파가 최고라고 해. 또 종교의 수가 얼마나 많습니까? 나름대로 그 종교에 들어가면 자기들이 최고이고 정법이라고 해요. 여러분,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이 있어야지요. 정사(正邪)를 분간하는 이런 선지식이 나와야 되는 거예요.


화두를 참구한지 10년 만에 깨닫고 보니까 많은 것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완벽하게 정사(正邪)를 분간할 수 있는 경지에는 못 갔어요. 한 30년 동안 많은 선지식을 찾아서 점검을 하고, 그분들의 경지를 잘 보고 해서 상당히 정비할 수 있었어요.


광명 만덕님을 보고 ‘햐! 부처님은 이러한 분이구나’하는 것을 완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절대세계에 자기 본불이 있어야 되고, 상적광세계에 자기 법신불이 있어야 되고, 어떻게 해서 절대계에 자기불신(본불)이 생기는 지 그 이유, 이건 정말로 깊은 밀장이지만 이런 것을 알아야 되요. 32상을 갖추고 있어야 되고, 그 부처님의 몸뚱이는 빛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빛은 보통 빛이 아니어요. 부처님의 몸은 무량광(상적광, 억종광, 백종오색광)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래서 불과(佛果)를 이루면 영원히 죽지 않는 거예요. 그 무량광이라는 것은 보통의 빛이 아니고 아주 불가사의한 빛이어요. 이 빛은 밝기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밝아.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저 한여름의 이글거리는 햇속, 그 햇속을 눈이 부셔서 볼 수 없잖아요. 그 햇속 보다도 더 밝아. 그러면서 특징이 안과 밖(겉과 속)이 없이 드러나 있어. 겉과 속이 구별 없이 하나라고요. 그걸 내외명철(內外明徹)이라고 해. 아주 묘한 빛이지요. 너무 투명하니까 그래요.


그러면서도 아름답고(예쁘고, 곱고), 영롱하고, 백천만억 가지의 색깔을 지닌 무량광이어요. 희유하지요? 부처님께서 어떤 때에는 단색으로도 내고, 어떤 때에는 백종백만억 가지의 색깔을 함께 내 뿜어요. 각각 그 빛을 놓는 데는 까닭이 있고, 사용처가 있어서 내는 거예요. 어떤 빛은 여러분의 업장을 소멸시키는 빛이 있어요. 업장소멸 부분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부처님의 그 불가사의한 능력인데, 부처님만이 중생의 업장을 소멸해 줄 수 있어요.


이렇게 부처님 교단이 시작되면서 여러분한테 업장을 소멸해 주는 거예요. 이건 겁에 하나 있는 거예요. 그 부처님은 32상의 완벽한 상모로 계시면서(눈 코 입이 다 갖춰져 있으면서) 지혜가 완벽하고, 자비 자체가 되고, 이 세상을 다 살만한 복을(복력을) 지니고 있고(불과를 증하면 다 살 수 있는 복력이 갖춰지게 되어 있고), 그러면서 부처님은 못 할 일이 없어요. 이것을 항하사(항사, 간지스강 모래알 수만큼 많다는 것임)라고 하는데, 부처님은 항사의 신통묘용이 있어요. 어마어마합니다.


부처님은 외도들과는 특별히 다른 큰 힘이 있어요. 전 외도를 당신 혼자 상대해서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어요. 지금의 이 세상 사람들은 이걸 몰라요. 이런 것을 광명 만덕님으로부터 많이도 알았어요.

▸광명 만덕님은 1998년도에 당신 불신(佛身)과 이쪽 영체가 계합이 되어가지고 불과(佛果)를 증했어요.


나는 그 후 2년인 2000년에 불과(佛果)를 증했습니다만, 광명 만덕님은 1998년도에 이미 불신(佛身)을 지니고 있었고, 그 불신(佛身)과 이 영체가(영혼체가) 계합이 되어 있었습니다. 보통사람들 중에서 지옥에 갈 사람들은 영체가 거무튀튀하고 숯검정 같은데, 하늘 갈 사람은 영혼체가 맑습니다. 아라한 정도부터는 달빛처럼 밝아요. 보살은 빛이 나요. 붓다는 이 네(4)개의 영혼체가 각각 분리되어서 활동할 수 있고, 네(4)개의 영혼체가 완벽하게 빛덩어리가 되어 있으며, 정말로 아름다운 상을 지니고 있어요. 부처님께서 이 네(4)개의 영혼체와 자기 불신(佛身)을 계합시키는 때가 불과(佛果)를 증하는 날이어요. 이것을 광명 만덕님은 1998년도에 마쳤어요.


▸그때 우리 광명 만덕님이 공부하는 것을 보니까, 식칼를 아주 날카롭게 갈아서 옆에다 놓고 공부하시더라고요. 아주 죽음을 각오하고 공부를 하시는 그 모습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광명 만덕님은 부처님으로부터 화두를 받고 9일 만에 깨쳤습니다. 나는 10년이 걸렸지만 말입니다. 저 어른은(광명 만덕님은) 물로 목욕하다가 화두를 깨쳤는데, 물을 굉장히 좋아하십니다. 그 즐거움에 홀랑 벗고 춤을 춘 거예요. 화두타파의 즐거움도 대단합니다. 대단합니다. 그때에 읊은 게송이나 붓다가 불과(佛果)를 증해서 읊은 저 대적정삼매송이 붓다 되어 가지고 읊은 송입니다. 대적정삼매를 통과해야 됩니다. 그때에 자기불신이 생기니까요. 그 읊어 놓은 저 게송이나, 지난 15년 동안 공부한 수행일지를 가지고 지금 책을 내려고 하는데 여러분에게 말 못할 밀장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 밀장을 빼고빼고 하려니까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지금 보여줄 수 없어요. 밀장이라서 보여주면 안 되게 되어 있는 부분이 있거든요. 내가 밀장이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밀장은 공개 못합니다. 그런데 광명 만덕님의 수행일지에는 많은 밀장이 들어있어요. 그래서 이 밀장을 빼자니(빼면) 핵심이 빠져버리고, 그렇다고 밀장을 공개할 수도 없고, 그런 문제로 지금 굉장히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몸부림을 합니다. 그 수행일지가 나오면 정말로 우리 부처님의 일거수 일투족, 저 부처님세계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이것이 정말로 이 세상에 소개가 된다면 놀랄 일입니다. 정말 이 책이 꼭 나왔으면 좋겠는데, 지금 이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내가 그때 우리 광명 만덕님을 만난 이후부터, 내 실력으로 광명 만덕님을 보건데 ‘이분은 가섭존자가 아니냐?’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전생을 좀 알아보시오. 부처님께 여쭤보면 그냥 말씀하실 텐데요’라고 했습니다. 그때 여러 부처님이 계셨거든요. 부처님께 여쭤봐도 “나는 모른다”고 하지. 또 문수보살님께 여쭤봐도 “나도 모른다”고 해. 보현보살님께서 말씀하셨을 겁니다. “자, 봐라”해가지고 그 영산당시 가섭존자의 모습을 쫘~악 보여준 거예요. 그런데 세상에 옷도 다 떨어지고, 머리는 그냥 더벅머리에다가 찌들어가지고 형편없는 모습으로 나오니까 이 양반(광명 만덕님)이 이상하다며 놀랐어요. 그래서 나는 무릎을 치며 ‘가섭이오’그랬지. 그때도 부처님들이 가섭이란 말씀을 안 하신 거예요. 이제 부처님들께 ‘그러면 나는 누구냐?’고 여쭈었어요. 그러니까 지장보살님께서 세 가지로 말씀하신 것이 있어요. 13년 전의 일입니다. “그 스님은 석가족이고, 부처님 동생이고, 부처님 시자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어요. 알겠지요? 나도 그 전에 내 전생을 알았습니다. 내 전생을 알았었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을 며칠 전에 또 들었어요. 저분(광명 만덕님)의 일기를 내가 읽어 볼 수 있습니까?


▸광명 만덕님의 거짓 몸(저 몸뚱이), 저 분도 빛덩어리가 거의 다 된 거예요. 기(氣)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나, 그런 분야의 공부를 많이 한 분들은 보면 알아요. 빛이 나가니까요. 그런데 그런 분이 어디 흔합니까? 세상이 모르지요. 누구도 몰라. 그러니까 일개 여인을 갖다가 붓다라고 하고, 뭐(?)라고 하니까 그냥 비방을 하고 그랬습니다. 몇 년 전에 그랬습니다. 지금도 끊어지지 않아요. 그래서 내가 이런 제목을 가지고 공식석상에서 선언을 해줘야 되겠다. 여러분, 붓다를 비방하면 큰일납니다. 큰일납니다 여러분! 다 나쁜 짓해도 그 짓은 안해야 되는 거예요. 오역죄보다도 더 크니까요. 법을 비방 능멸한다든지, 붓다를 비방 능멸해버리면 큰일 나는 거예요. 앞으로 우리도 그걸 놔둘 것입니다. 그렇게 비방하는 사람이 어떻게 되는가를 보세요. 우리는 안 낫게 해 줄 거예요. 안 낫게 해줍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되는 줄 아세요? 벙어리도 될 거예요. 내가 오늘 공식석상에서 경고해 두는 것입니다.

▸저러한 분이 정말로 신통이 벌어지지 않겠습니까? 전부 벌어지지요. 벌어졌어요. 그러나 몇 년 전에 부처님께서 꽉 막았어요. “절대로 신통을 하지마라. 신통은 나혼자다.” 부처님은 신통을 하십니다. 앞으로 언젠가 사람으로 오셨을 때 부처님은 또 불과(佛果)를 이루셔가지고 필요할 때에는 신통을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제자들에게 절대로 못하게 하시는 것은 우주의 이법을 거스르기 때문에, 죄를 짓기 때문에 절대로 못하게 하시는 거예요. 너희들 죄를 내가 감당한다(책임진다) 그거예요. 죄를 짓더라도 내가 하지, 너희들이 못한다 그거예요. 신통을 못하게 합니다. 예언, 아는 소리까지 철저히 못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신통은 하지 않아도 이러한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귀신을 잡는다고 하지요.


(광명 만덕님)이 귀신을 잡아요. 귀신을 잡는다? 이거 기가 막힌 거예요. 귀신을 완벽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는 줄 아십니까? 일부 점쟁이들, 무당들의 일부분이 흑색으로 조금 봅니다. 광명 만덕님은 천연색으로 확실히 본다고요. 그런 분은 없습니다. 지금 유가(儒家), 도가(道家)의 내로라고 하는 학자들, 귀신을 잡는다고 하면 놀랄 거예요. 어디 공자가 귀신을 봤습니까, 맹자가 봤습니까, 주자가 봤습니까? 거기는 아니어요. 그런데 귀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잡습니다. 잡는 다는 것은 바람처럼 신통이 무섭습니다. 저 귀신을 어떻게 잡습니까? 그렇지만 광명 만덕님은 귀신을 잡습니다.


▸광명 만덕님은 극락을 보고, 지옥을 보고, 못 보는 것이 없어요. 보려고 하면 봐요.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내가 법문에 써먹지.

이제 내가 법왕자이니까 붓다로서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분(광명 만덕님)은 부처님의 태자이기 때문에 엄청납니다. 보통 부처님들은 불과(佛果)를 증하면 열반에 들어버리게 되어있어요. 그러면 우리는 10년 전에 갔었어야 돼. 그런데 이렇게 가지 않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104위 신중, 그리고 저분(광명 만덕님)이 출세한 후 4~5개 집단이 귀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108위, 109위 신중을 부립니다. 무슨 말인 줄 압니까? 명(命)하고 보고를 받습니다. 이제 저분(광명 만덕님)의 실체를 내가 지금 말을 하고 있는데, 좀 죄송하기도 하지만 여러분들이 이걸 좀 알아야 우리 교단에 대한 위상이라든지, 큰스님에 대해서 저 아무것도 모르는 스님들이 마구 비방을 하니까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을 해주는 거예요. 그러면 안 되거든요. 이 말이 많이 퍼지면 좋겠어요. 이게 많이 녹음이 되어서 나가요. 나는 정말로 자신 있는 법문만 하는 거예요. 내가 본 것, 내가 공부한 것, 열 번이고 백번이고 숙고하고 검토한 거예요.


▸저분(광명 만덕님)은 어떠한 부처님들과도 항상 보고 대화할 수 있어요. 이거 기가 막힌 거예요. 역사 이후 그 누가 그랬습니까?

인도의 용수? 차원이 다르지요. 안 되지요. 거기는 영혼체의 깊이 까지는 못 봤으니까요.

▸저분(광명 만덕님)은 정토의 그 많은 보살들, 성중들, 하늘신들, 귀신들, 지옥을 전부 볼 수 있습니다. 삼악도의 중생, 지옥중생을 건질 수 있습니다. 죄를 지어서 가 있는 데, 누가 건집니까?


▸우리의 천도재, 저분(광명 만덕님)이 주관합니다. 저분(광명 만덕님)이 나오시지 않으니까 도대체 저분은 어떻게 해서 붓다까지 되셨는데 이 많은 신도들 앞에 나서지를 않나? 여러 가지의 말이 있을까봐 오늘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저분(광명 만덕님)이 하시는 일이 있어요. 오늘도 부처님들과 함께 여러분의 업장을 씻어 주시는 소임을 맡았어요.


▸이름과 신분을 거명할 수 없지만, 어떤 두 세 사람이 우리를 시해(弑害)하려고까지 했어요. 우리를 죽이려고 온갖 사술을 동원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어떤 한 사람은 사신을 움직였어요. 사신, 뱀신. 뱀도 코브라 같은 무서운 뱀신. 그런 뱀신 수 만 마리를 움직였어요. 그걸 가지고 우리를 죽이도록 명한 거예요. 몇 년 전의 일입니다. 그러나 족탈불급(足脫不及)이지. 붓다이기 때문에 해칠 수 없는 거예요. 붓다의 뒤에는 무수한 붓다들, 보살들, 성중들이 옹호합니다. 또 옹호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네(4)개의 영혼체가 빛덩어리가 되어 있어요. 빛덩어리는 저것들이 100미터(수 백 미터) 안으로 접근을 못 해. 몇 미터 안으로는 접근을 못해. 우리가(광명 만덕님이) 전부 그 사신집단을 명부에 가둬 버린 거예요.


▸저분(광명 만덕님)의 피의 색깔은 핑크색입니다. 여러분의 피는 검붉어요. 그렇지요? 붉다 못해서 검붉은 색이어요. 저분(광명 만덕님)은 핑크색이어. 순수하고 맑으니까 가지고 놀고 싶어.


▸그리고 번갯불이 있잖아요. 번개가 칠 때 일어나는 섬광, 그 섬광의 광도가 얼마나 무서운 줄 아십니까? 번갯불의 광도, 아시죠? 저분(광명 만덕님)은 번갯불이 오면 먹어버려요. 이 말을 집에 가셔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사실이니까. 신통을 못하게 하니까, 자연스럽게 사니까 그렇지, 얼마나 무서운 어른입니까? 보기에는 평범한 여자인데 뭐. 자기도 여자, 나도 여자, 그런데 뭐가 저렇게... 어떻게 공부가 깊어서 불과(佛果)까지 증했다고 하나? 아마 많이도 의심하고, 알고 싶어도 했을 거예요. 오늘 그래서 공개 선언한 거예요.


▸여러분, 한 여름에 해를 보세요. 몇 초나 볼 수 있을 까요? 햇속을 1분, 2분을 볼 수 있나요? 볼 수 없지요. 오래보면 실명됩니다.


저분(광명 만덕님)은 1분, 2분간 해가지고(봐가지고) 해가 저버립니다. 그래도 보통 눈으로 돌아와서 글을 전부 읽는다고요. 여러분, 1분 동안 햇속을 본 후 사람을 보고 글을 보거나 하면 글이 보입니까? 안 보이지. 오래 보면 실명 됩니다. 저분(광명 만덕님)은 해를(햇속을) 먹어버립니다.


▸저분(광명 만덕님)은 모든 사람의 전생을 다 알지요. 볼 수 있지요. ▸수 초, 1,2,3초 안으로 삼매에 들어가 버립니다.


원불교의 교주가 5분 안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미안한 말입니다만 내가 볼 때, 그분의 선정은 초선정도 안 됩니다. 저분(광명 만덕님)은 초선정에 어린이 때부터 (불과(佛果)를 증하기 이전부터) 들어갔습니다. 우리 부처님도 그랬습니다. 초선정, 경전을 보면 삼매가 여덟 가지 있다고 해. 그래서 아홉 번째가 멸진정이어. 초선정은 초선천에 태어날 수 있는 선정의 힘, 태어날 수 있는 힘, 그게 초선정이어. 초선정에 벌써 들어가셨어.


▸내가 저분(광명 만덕님)을 만났을 때, 저분은 벌써 어떤 깊이의 삼매에 들어갔느냐? 아라한 삼매가 있고, 보살 삼매도 많아요. 그 최고의 부처님 삼매에 거의 들어가더라고.


터널이야기를 했을 겁니다. 내 책에 나오지요. 내가 눈물을 흘렸어. 그 삼매에 들어갔다 나와서 옷이 젖어있었습니다. 터널 이야기 아시죠? 모르는 분이 있을 까봐 다시 들려드립니다. 터널, 그러니까 상하좌우가 몇 백도(℃) 아니 몇 천도(℃) 빛의 터널입니다. 그 안은 불덩어리로 이글거리는데 사람이 뛰어갈 만한 공간만이 있어. 그런데 저 부처님이 여기서 저기 산의 터널을 통과해서 오라고 해. 여기서 어떻게 갑니까? 그러니까 영체가 이 몸에서 나와서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가는데, 번개보다도 더 빨리 가야 되고, 생각이 한 생각이라도 잡념이 들어오면 실패인 거예요. 안 되는 거요.


두 번째, 코브라가 그렇게 있었어요. 그 사이를 통과해야 되는 거예요.


바위산을 뚫어야 되는 거예요. 여러 삼매가 있었습니다. 그것 하나하나를 전부 통과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내가 너무너무도 감격에 겨워가지고 눈물을 흘린 거예요.


우리 지장보살이나 관세음보살 같은 분들은 무량겁 전에 불과를 증한 붓다이지만, 얼마나 위대한 어른이신 줄 아십니까? 우리 관세음보살님, 62억 항하사 보살들을 보탠 것과 맞먹는다고 했어. 그러면 어느 정도 위대하다는 것을 알겠지요? 

62억 정토보살들을 다 합한 것보다도 더 위대하다 그거예요. 이 많은 정토보살들에게 평생 사사(수행승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네 가지 물건. 침구(와구), 의복, 음식, 탕약(湯藥,의약)이다)로 공양을 해도 관세음보살님께 한순간(한번) 경배하고 공경하고 예배하고 공양드리는 것만 못하다고 했어. 이 관세음보살님, 실제로 보면 그렇습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오늘처럼 이렇게 1,000명을 모아 놨다(1,000명의 청중들이 있다)? 관세음보살이 일시에 1,000명의 몸을 나툰 것이 천수천안이어요. 

눈이 천 개이고, 손이 천 개가 아니어. 당신의 몸을 1,000개로 화신을 내어가지고 여러분 각각의 머리위에 올라가서 여러분의 업장을 씻어주는 그 어마어마한 광경을 볼 때에 62억 항하사보살들이 그럴 수 있습니까? 

못하지요. 약수병으로 물을(감로수를) 정수리에 붓고, 그리고 버들가지로 돌려서 무량광을 쏘아가지고 업장을 벗겨내는(씻어내는) 작업을 하셔요. 그렇기 때문에 관음 ․ 지장 정도는 어마어마한 부처님이셔요.


▸그런데 이분(관음․지장)들이 우리 광명 만덕님을 보고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가끔 하셔요. “나는 자네가 부럽네”라고 하셔. 왜냐? 지존이신 우리 교주 불세존의 태자이기 때문입니다. 알겠지요?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은 지존이십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그 많은 붓다를 내시고, 보살을 내시고, 성중 아라한을 내신 분이어요. 부처님의 은혜 없이 된 분은 하나도 없어요. 더더구나 붓다는 부처님의 은혜가 99% 작용해야 됩니다. 그래서 붓다들을 부처님의 분신이라고 해. 부처님께서는 붓다들을 “아들아!”하고 불러요. 우리 부처님은 모든 붓다의 붓다예요.


▸우리 광명 만덕님은 그 부처님의 태자이시자 법의 상속자예요. 극무간지옥이나 무간지옥에 가 있는 사람들을 끄집어내려면 지장보살님의 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우리 부처님의 승낙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앞으로 언젠가 이 사바세계에 몸 받아 오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대행자가 광명 만덕님이어요. 대행을 하게 되어있어요. 지금까지는 문수․다보부처님께서 대행을 하셨습니다. 앞으로 오실 때, 나는 시자로 올 거예요. 또 오신다고 했지요.


▸산길을 지나갈 때가 있잖아요. 우리가 지방의 어디를 갔다가 돌아올 때 산을 끼고 오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때 대부분의 산왕대신들이 자기의 휘하 권속을 데리고 마중 나와서 예배를 해요. 알았습니까?

▸당신의 절대계에 있는 저 광명불은 어마어마한 붓다예요. 저 붓다와 언제나 계합할 수 있어요. 당신이니까. 당신 영혼체로 가서 계합할 수도 있고, 그 분이 들어올 수 있고 그래요. 당신이니까 그렇습니다.


▸이 사바에는 하늘마(天魔)나 귀신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속거천리(速去千里, 빨리 멀리 도망가다)라는 말이 있지요? 이 천마나 귀신들이 광명 만덕님을 보면 속거천리(速去千里)해요. 영체가 빛덩어리이기 때문입니다. 두더지가 태양을 보면 어떻게 되지요? 두더지는 저 햇빛을 못 보기 때문에 견디지 못 해요. 그와 같아요. 외도나 천마나 귀신들은 성자의 빛을 제일 무서워해요. 그래서 도망가는 거예요.

▸저분(광명 만덕님)은 사실 모든 것에 통달해 있어요. 불안(佛眼)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일을(토목공사, 건축공사, 나무․묘목 등을 심는 작업 등) 지시하는데도 저분(광명 만덕님)을 따라갈 사람이 없어요. 그 직업분야의 프로(사장)들이 그 안목을 보고 놀라요.


▸저 우리 집(현지사)을 짓고, 토목공사를 하고, 1,000그루 이상의 소나무를 구입해서 심고 한 것은 전부 저분(광명 만덕님)이 간단하게 지도 지휘해요. 저분(광명 만덕님)이 없으면 관계자들이 엉망을 만들어 놔버려. 엉터리 공사를 해놓는 다고요. 두 번 세 번(재탕 삼탕)을 해요. 그러니까 이 건축이나 토목분야에 종사하는 사장들이 그 안목에 놀라요.


▸복둥이 건물도 지금 좋게 해준다고 하는데, 갈수록 예뻐지더라고. 저분(광명 만덕님)이 다 지휘하신다고요.


▸한 가지 일을 하면 거기에 폭 빠져요. 이것은 견성한 사람들은 다 알아요. 선불교에서 견성한 사람들은 이걸 알아요. 이분(광명 만덕님)이 그 경지를 거쳐 간 것은 옛날 옛날 옛날이어. 그렇기 때문에 저분(광명 만덕님)은 한 가지 일에 퐁 빠져버리면 서너 시간도 금방 지나가기 때문에 일을 다 마쳐놓고 이제 몸이 ‘아이고! 죽는다’고 해. 그때는 몰라요.


▸전번에 어떤 사람이 처음으로 산삼을 가지고 왔어요. 최고의 심마니 대장이어요. 그 사람이 그 산삼의 수령을 100년이라고 했는데, 광명 만덕님은 ‘아니다! 60년 몇 개월 되었다. 산지가 어디다’라고 해버리니까 놀라버린 거예요.


구체적인 실례를 생각나는 대로 적어 놓은 거예요. 불과(佛果)를 증하게 되면 물론이거니와 보살과 이상은 석녀가 되어버립니다. 남자도 석남이 됩니다. 이라한 이상은 그럽니다. 자기의 힘으로 가게 돼. 석남석녀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사람을 딱 보고 첫 번째 하는 말은 맞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첫 번째 무슨 말을 하는가를 들어보시라고요.


▸천도재 때, 저분(광명 만덕님)이 혹시 나오시면 열시왕이 와서 반드시 삼배를 해요. 열시왕은 보살급입니다.


▸또 제석천왕이 가끔 우리 현지사에 큰 선물을 가지고 오시기도 하는데, 그 제석천왕은 상품보살이니까 광명 만덕님께 삼배를 해요. 광명 만덕님은 붓다이시니까 당연히 삼배를 합니다. 거기는(저 세상은) 위계가 엄격해요.


▸마왕 파순이가 그 어느 불과(佛果)를 이룬 붓다한테 경배는 하지 않았을 거예요. 가끔 저분(광명 만덕님)한테 와서 삼배를 해요.


마왕 파순이는 우리 부처님이 몇 번 혼을 냈어요. 그러나 죽일 수가 없어요. 우리 부처님은 자비하시니까 죽이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요. 안 죽일 줄 압니다... 終


2010.7.4.일(음6.23) 큰스님 부산 법문중 발췌






2022년 4월 1일 금요일

영상불교의 두가지 상징물-영산불교 현지사

 

영상불교의 두가지 상징물



우주적 신 불교, 우주적 진리의 신불교, 영산불교의 두 가지 상징이 있습니다.

첫째, 청정법신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신 대적광전이 있고

둘째, 오는 음력 4월8일에 준공하게 되는 다보탑이 있습니다.

이 두 상징물은 불과를 증한 붓다가 점안을 함으로서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이 두 전각과 탑은 아주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번에 청정법신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신 대적광전을 준공해서 오늘 100일 기도 회향을 했고, 이제 다보탑 건립이 내일 모레입니다.


탑이란 어떤 탑이고, 이 탑을 왜 건립하게 된 것이냐(왜 건립을 하느냐)? 아무리 들어도 부족할 거예요. 오늘 또 말씀을 드립니다. 이 다보탑, 이것은 탑 중에 탑이라고 스님이 말씀 드린 바 있을 것입니다.

다보탑은 탑 중에 탑, 탑 중에 왕입니다. 경 중에 경, 경 중에 왕은《화엄경》이나《법화경》을 말합니다. 왜 그러느냐? 이 다보탑이 대단히 불가사의한 탑이어요. 


지금 한국의 경주 불국사 이외에는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다보탑을 볼 수가 없어요. 불국사에 다보탑이 있고, 석가탑이 있는데 그 후 몇 몇 사찰에서 다보탑을 조성해 놓은 곳이 있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조성했다고 해서 다 된 것이 아닙니다. 새삼 힘주어서 말씀드리지만 조성을 해서 점안을 해야 됩니다. 점안이 없으면 그것은 구조물입니다. 


우리 청정법신비로자나부처님, 이부처님은 빛인데 빛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원만보신노사나불을 모셨거든요. 


그렇지만 점안을 하지 않게 되면 이것은 하나의 동(銅)이고, 돌이고, 철(鐵)구조물입니다. 아무 힘이 없는 거요.

여러분 그것을 아셔야 됩니다. 우리가 모신 부처님은 동불(銅佛)이지요. 점안도 불과를 증한 분이 점안을 하게 되면 삼천대천세계에 계신 많은 부처님들이 거기에다가 힘을 넣어 주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와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당신을 찾는 경우 그 부처님들이 오겠다 하는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우리 다보탑도 그래요. 다보탑도 그날(기축년 4월 초파일) 점안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불과를 증한 분이 저렇게 청정법신비로자나불상을 모시는 경우,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이라는 것은 그 의미가 대단히 깊지 않습니까. 우리의 말이 진실하다고 하는 것을 증명을 해줘야 돼요(증명을 하는 거예요).


이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어떤 부처님이 오셔서 증명을 해주는 거예요. 바로 그것이 다보탑인데 그 다보탑이 땅속을 찢고 올라 와요. 다보탑이 여러분 눈에 안보이니까 없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실재합니다. 어디에 실재하느냐? 보정이라는 나라에 있습니다.


보정이라는 나라는 영적(靈的)개념인데 여기서 동방(동쪽)으로 한량없는 천 만억 아승지 세계를 지나가면 있습니다. 아승지라는 것은 불교에서 대단히 많은 수를 비유해요. 나유타라고도 하고 아승지라고도 합니다. 동양에서 또는 우리나라에서 아주 많은 수를 억(億)이라고 하지요. 천(千) 만(萬), 억(億), 10억, 100억, 1000억... 1000억 정도라고 하면 대단히 많은 수이지요. 고등학교에 가면 지수가 나오지요.


 1000억은 10의 11승이어요.《화엄경》에 보면 아승지는 10의 105승이어요. 이 얼마나 많습니까. 한 없이, 너무너무도 많은 수를 아승지(나유타)라고 해요. 한량없는 천 만억 아승지 세계를 가야 보정이라는 정토가 나오는데,


그 보정이라는 세계의 교주가 다보부처님이셔요. 다보부처님은 항상 선정(禪定)에 들어계시는데 다보탑 속에서 선정에 들어 계셔요. 여러분, 불법(佛法)을 3차원의 세계에서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불법을 이해하려면 삼천대천세계로 넓혀야 됩니다. 

너무너무도 우주적인 종교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 다보탑이 지난해(무자년)음력10월15일 대적광전 개원식 때 대적광전 앞마당에서 솟아 올라온 거예요. 지금 솟아 오른 그곳에다가 조성하는 거예요.


다보불, 다보탑에 대한 경전적인 근거는《법화경》〈견보탑품(見寶塔品)〉에 있습니다.《법화경》이라고 하면 앞에서도 말씀 드린 바와 같이 경 중에 경, 그 많은 경(팔만대장경) 중에서도 으뜸가는 경을《법화경》《화엄경》그럽니다.《법화경》〈제11품〉에 다보탑을 소개해 놓고 있는데,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이시불전에 유칠보탑이 있어서, 고(高)는 500유순이나 되고, 종광이 250유순이라.”

이때 석가모니부처님 앞에 칠보탑이 있어서(다보탑을 칠보탑,보배탑, 다보여래의탑 이라고 하는 등 4가지 이름이 있어요), 높이는 500유순이나 되고(500유순이라고 하면 여러분 상상 못해. 우리의 측량으로 20,000리 정도랍니다. 탑의 높이가 20,000리나 된답니다. 우리 현지사에 솟아난 것은 이쪽의 분위기를 보고 환경을 살펴서 축소해서 올라와요. 또한 다보부처님께서 다보탑을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하게 만들 수도 있는 그런 탑이어요.), 가로세로가 250유순이라.”


다보탑은 꼭 땅에서 솟아나요. 왜냐? 앞에서 언급 했듯이 다보불이 계신다고 하는 보정정토가 여기서 얼마나 멀다고 했지요? 한량없는 천 만억 아승지 세계를 지나가야 돼. 그렇기 때문에 다보부처님이 선정에 드시고 계시는 그 다보탑이 불사를 증명하게 되는데, 청정법신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시는 우리 대적광전을 개원할 당시 대적광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다보탑이 올라왔느냐, 올라오지 않았느냐에 따라 판가름 납니다.


또한 우리가 불과를 증했다 증하지 않았다 하는 것도 판가름 나는 거예요. 이 어마어마한 사건마다 다보부처님이 선정에 들어 계시는 다보탑이 올라온 거예요. 앞으로 스님이 여러분한테《법화경》몇 품을 강의해 줄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지금 세계적으로 법화 행자가 많습니다. 우리나라도《법화경》을 신앙하고 사경(寫經)을 하는 신도들이 100만 여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일본은 더 많습니다. 일본은 법화사상이 대단히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법화경》을 보면〈28품〉으로 되어 있는데 그것을 바르게 해석 못해요. 그러니 이거 병통(病痛)입니다.

문제가 있는 곳이 약 다섯 군데입니다. 다섯 군데뿐만 아니라 모두 해석이 되는 부처님과 일문일답을 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지금 동판(銅版)으로 해서 다보탑 속에 넣어가지고 세우게 되는데 1000년, 2000년 후에 다보탑을 다시 보수할 경우 지금에 넣은 것이 나올 것 아닙니까. 그것을 2000년 후 우리 인간들이 보면《법화경》을 해석하는데 크게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그 다보탑은 어떤 탑인가 하는 것을 말씀드립니다.《법화경》〈견보탑품〉성구(聖句)입니다.


“종지용출해서 주재공중하니(땅에서 솟아나서 공중에 떠 있어요) 종종보물로 이장교지하고(진주 같은 많은 보물로 그것을 장식하고. 보배탑이 장식되어 있어.) 5,000난순이요 감실이 천만이라(난간 수만 해도 5,000개나 되고, 부처님께서 계시는 방이 천도 되고 만도 되더라. 부처님께서 계시는 방을 감실(龕室)이라고 합니다.). 

무수당번(無數幢幡)으로 이위엄식하고(한량없는 깃대로 장식을 하고), 수보영락하고(보배영락으로 드리워졌고), 보령만억으로 이현거상하고(만 억개나 되는 보배방울을 그 위에 달아 놓고), 사면에 계출 다마라발(多摩羅跋)전단향지향하며 충만세계하고(사면에서는 다마라발 전단나무 향기가 그윽히 풍겨나와 온 세계를 가득 메우고. 다마라발 전단향이라는 좋은 향내 나는 나무를 다마라발 전단이라고 함) 삼십삼천이 우천만다라화 하며(삼십삼천이라고 하는 것은 54품 하늘을 말합니다.


보배탑이 솟아오르니까 54품 하늘에서 만다라화라고 하는 꽃을 비오듯 뿌리고(비오듯 내리고)), 여재 천·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인비인 등 천 만억종이 일체 화향·영락·번기·일산·기악 등으로 공양 보탑하시더라(하늘의 모든 팔부중과 인비인(사람인 듯 하면서 아닌)등 까지 합해서 천 만억이나 되는 대중이 몰려와 가지고 한없이 아름다운 모든 꽃과 향기로운 향·영락·번기·하늘악기를 연주하면서 보탑에 공양하시더라). 이시 보탑 중에서 출대음성해서 탄헌하기를(그때 보탑 속에서 큰 음성이 울려나와 찬탄하기를), 오! 거룩하시고 거룩하십니다! 석가모니 세존이시여! 석가모니 세존이 능히 평등대해교보살법 불선호념묘법연화경으로 위대중선하시나니 여시여시라.


석가모니 세존 여소설자는 개시진실하시나이다(이것이 핵심인데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이때 보탑 속에서 찬탄하는 큰 소리가 났어. 누가 하느냐? 다보부처님이 찬탄하셔. 어떻게 하셨느냐? 거룩하시고 거룩하십니다. 


석가모니 세존이이여. 능히 평등한 큰 지혜로서 보살을 가르치는 법이며, 부처님이 호념하시는《묘법연화경》을 대중을 위해 설하시다니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법문(법설)하시는 내용들은 모두가 참이며 진실하십니다.).”


지금 법화 행자들은 여기에 꽉 매여 있습니다.《법화경》을 설할 때만 다보탑이 올라와서 이런다고 되어 있어요.《법화경》경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법화경》이나《화엄경》같은 위대한 경전도 시간이 많이 흐르다가 보니까 많이 왜곡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부처님께서 그 당시(2600년전 당시) 설하셔가지고 직접 녹음해 놓으신 것도 아니고, 부처님께서 대열반 하시고 몇 백 년 만에(500년~1000년 만에) 이 대승경전이 나온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많이 왜곡이 되어 있습니다. 바이블(성경)도 그렇습니다. 일신교도들은 자기들의 바이블‘한 획·한 글자 전부가 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은 바꿀 수 없다. 진리이다’라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바이블을 보세요. 

많은 문제와 모순이 있잖아요. 우리 불교 경전은 그렇게 많은 모순은 담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군데군데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이 아닌 부분이 있어요. 그러니까 선지식이 확실히 판단·분별해 주어야 하고,


바르게 해석해주는 선지식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학자들은 경전 그대로 간다고요. 한(하나) 글자도 용납 안하고, 다르게 해석하지 않습니다. 꼭 잘못된 부분을 그대로 해석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법화경》만 설하실 적에 다보탑이 솟아나와 가지고 다보불께서 증명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무자년 음력10월15일에도 다보탑이 솟아 나와서 “광명만덕·자재만현이 모신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의 불상은 진실하고 참된 것이다.”라고 선언한 것처럼, 겁에 하나 나오는 불과를 증한 성자가 청중 수 천만 명 앞에서 큰 법을 설할 때도 다보탑이 이렇게 솟아나옵니다.


내가 한 이후로 한두 번 솟아나왔을 것입니다. 다보탑이 이렇게 솟아나오면 어떤(무슨)일이 벌어지느냐? 그때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붓다님들이 허공에 운집합니다. 경에는 부처님의 분신이라고 되어 있어요. 그러면 분신이 뭐냐? 학자들이 이 분신을 해석 못합니다. 두 가지로 해석합니다.


첫째, 학자들은 분신을 석가모니부처님의 백 천 만억 화신이라고 해석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둘째,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불과를 증하신 이후 당신의 위신력으로 교화를 하고 구제해서 불과를 증하도록 하여 붓다가 된 그 붓다님들을 분신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분신 그럽니다. 분신의 해석을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그것만 알아도《법화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법화경》을 읽을 때 분신이라는 말이 많이 나와요. 삼천대천세계 그 많은 부처님의 분신들이 운집했다 그거요. 석가모니부처님의 화신이 아닙니다. 백 천 만억 화신이 아니고 석가모니부처님으로 인해서 불과를 증한 붓다님들을 말해요. 왜 분신이라고 하느냐? 붓다(부처님)들은 몸뚱이가,


몸뚱이를 이루고 있는 빛이 똑같아요. 중생들의 몸뚱이는 물질인 지․수․화․풍으로 되어 있지요. 사대색신(사대)이라고 그래. 그런데 붓다는 억종광(무량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억종광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은 동일한 거요. 모두 똑같은 거요.

《법화경》제5권 제16에〈여래수량품〉이 있습니다. 거기에는〈여래수량품〉때문에《법화경》이 최고라고 하는 거요. 그러면〈여래수량품〉이 무엇이기에《법화경》이 최고이고, 도대체〈여래수량품〉의 내용이 무엇이냐? 무엇을 썼기에 모든 경(經)중에 왕이냐?

《법화경》으로 하여금 경 중에 왕이 되게끔〈여래수량품〉이 밑받침을 해준 거예요.〈여래수량품〉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

부처님이 되면(불과를 증하면) 영원히 환희의 세계에 있다.”백 천 만억 나유타 겁이 지나가건, 그것 곱하기 나유타 겁 하던, 미래제가 다하도록 멸도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것이〈여래수량품〉입니다. 그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견보탑품〉이 나오고, 그다음에〈종지용출품〉이 나오고 그럽니다.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이 이해를 못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이야기 하겠지만,《법화경》에서는 그렇게 말해 놓았어. 

그런데 우리 현지사에서는, 불과를 증하면 왜 부처님은 수명(목숨)이 미래제가 다하도록 무량한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밝혀 놨어요. 그 이유가 무엇이냐? 

몸이 억종광이라는 빛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죽을 수가 없는 거예요. 육신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장기(臟器)가 고장나고, 수명이 다하는 거예요.


그런데 부처님은 빛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죽을 수가 없는 거요. 억종광(무량광)이라고 하는 빛은 빛 중에서도 빛이요, 불가사의한 빛이어요. 스님이 너무도 많이 강조해서 아실 거예요.

 그 빛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여래(세존, 붓다, 부처)가 되면 그 수명이 미래제가 다하도록 멸도 함이 없이 영원 하더라. 그것을 현지사에서 밝혀 낸 거예요. 그 정도의, 그런 큰스님이 있기 때문에, 그 스님은 불과를 증했기 때문에 다보탑이 솟아 오른 거예요.


다보탑은 불과를 증한 분이 아니면(부처님이 아니면), 부처님이 큰 법을 설하지 않으면 절대로 솟아오르지를 않아. 그런데《법화경》에서는 후세(후 내세)에《법화경》을 읽고, 설하고, 해설하면 솟아나온다고 되어 있어. 그것은 아닙니다. 그 부분은 아니어. 

이것은 우리가 확실히 부처님한테 일문일답을 해서 확답을 받은 것이어. 2년 전에 부산에서 영산불교 개교 창교식(선포식)이 있었지요. 그때 다보탑이 솟아올랐어. 


왜 솟아올랐느냐? 불과를 증한 분이 이렇게 사바 세상에 나타나잖아요. 붓다(부처)는 백 천 만생, 아니 겁에 하나 나와요. 겁에 하나 나오기 때문에 이건 아주 소중한 남섬부주 꽃이요, 우주의 꽃이어요.


그렇기 때문에 붓다들 서로 간에 그 끈끈한 정은 여러분들이 아들딸을 사랑하는 것에 비교가 안 돼요. 하나의 가족에 있어서 모자(母子) 모녀(母女)관계 이상입니다. 그리고 이 다보탑은 왜 솟아오르느냐? 방금도 말씀 드렸듯이 불과를 증한 분이 큰 법을 설할 때(정법을 설할 때) 정법을 펴기 위해서 올라오는 것입니다. 

주로 법이 다 망가진 말세(오탁악세)에 법을 다시 펴기 위해서 부처(붓다)가 탄생하는 거요. 그래서 이 큰스님이 말씀 하신 것이 옳다는 것을 삼천대천세계에 증명해 주는 거요. 그때 삼천대천세계의 많은 부처님들이 허공을 메워가지고 그것을 또 증명을 해요.


그 다음에 올라오는 것은 무엇이냐? 사바세계의 아래 허공에 있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본화 보살들이 또 땅속에서 올라와요. 장면이 세 가지가 있어요. 본화 보살이라는 것은 본지(본체계)에서 부처님을 옹위하는(보살행을 하는) 큰 보살들을 말해요. 

화엄 십지에서 보면 십지 혹은 등각정도 올라가는 보살들입니다. 우리 현지사에서 나열하는 보살품계로 보면 모두가 최상품 보살 혹은 상수보살, 최상수보살들이어요. 그런데《법화경》에 보면 본화 보살들은 어마어마한 위신력이 있다고 했어요. 문수·보현보살은 따라가지 못 한다고 했어요.


그것도 잘못된 표현입니다. 문수·보현은 불과를 이룬 분이거든요. 어쨌든 본화 보살들은 위신력이 큰 보살들이고, 그런 분들이 한없이 올라온단 말이어요. 그때(그날) 이제 점안을 합니다.

 아까 우리 광명만덕님께서 여기 설법전에 안 오신 이유는 대적광전에 가셔서 삼매에서 오늘 오신 여러분들의 업장을 씻어주려고 가신 거예요. 이 업장은 불과를 증한 분이 이 세상에 나왔을 때 한번 업장을 씻어 줍니다. 왜? 그때 부처님이 오시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어요. 여러분, 스님이 항상 이야기 하지만 이 부분은 꼭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그리고 100일 전까지 하면 아마 여러분들의 업장을 7번 이상 씻어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마 천도재를 7번 정도한 복을 받았을 거요.


다보탑이란 무슨 탑인가? 왜 우리가 다보탑을 건립해야 되는가? 이 부분을 아셔야 됩니다. ‵보정′이라는 정토는 그렇게 멀리 있지만 순식간에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다음에 서방정토극락세계는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에서 얼마나 멀지요? 

10만억 불토를 지나가면 서방정토극락세계가 있다는 말이 맞습니다. 영적인 이야기입니다. 영체개념에서 서방으로 십만억 불토를 지나가면 서방정토극락세계가 있어요. 그 교주는 아미타부처님이시지요. 그다음에 동방으로 십 항하사 불토를 지나면 약사여래부처님께서 계시는 정유리세계가 있어요.


항하사라는 것은 인도 간지스강의 모래를 항하사라고 합니다. 항하는 간지스강을 말해요. 항하사 불토를 지난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불국토를 항하사만큼 많이 동방으로 지나가야 약사여래부처님이 계시는 정유리정토가 있다 그거요. 

우리 현지사 단월님들이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아픈 병이 있어서 약사여래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면 약사부처님께서 친히 오셔서 시술을 하시는 건 아시죠? 그러니까 이 불교라는 것이 우주적인 종교예요.


한량없는 천 만억 아승지 세계를 지나는 보정이라는 나라도 다보여래부처님이 계시잖아요. 그리고 서방으로 십 만억 불토를 지나가면 서방정토극락세계라는 정토세계가 있어요. 거기는 아미타부처님이 많은 보살님을 붓다 되게끔 교화하는 세계입니다. 그다음 동방으로 십 항하사 불토를 지나면 약사여래부처님께서 계시는 정유리세계가 있어요.


이 사바세상에서 볼 때에는 한없이 멀고먼 저쪽 공간에 부처님들이 모두 계시고, 그뿐만이 아니라 삼천대천세계 모든 부처님께 우리가 가끔 공양을 드리는데 그 삼천대천세계(모든 세계)에 계시는 부처님들이 또 오신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 부처님은 뭡니까? 정법을 수행해서 불과를 증한 분들이어요. 부처님들께서 거기 계신다는 말은 그걸 중심으로 해서 교화를 하시고 계신다는 말이어요. 

그래서 불교를 우주적인 종교라고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불교는 우주적인 종교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들으셔야 돼요. 또한 우주적인 메타종교라고도 말해요. 

메타라는 말은 총(總), 초월(超越), 모든 종교·모든 사상을 전부 포용하고 초월한, 전 우주적인, 그런 뜻이어요. 우주적인 메타종교가 불교입니다. 불교가 정법이고 정법이 불교인 거예요. 그런데 지금의 불교는 어떻게 되었느냐? 내 책에서 그렇게 강조하고 내가 시간을 통해서 가끔 이야기 하지만,


지금의 불교는 나약한 불교·쇠약한 불교·반 쪼가리 불교·왜소화된 불교로 되어 버렸어. 왜냐? 보면 알아요. 모든 경전을 보면 부처님에 대한 완벽한 설명이 없어요.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있어요. 그러나‘마음이 부처다’라고 하는 선불교(禪佛敎)의 시각에서 마구 그냥 때려 버린 거예요(선불교의 시각에서 일괄적으로 해석해 버린 거예요). 

불교의 저 사람들은‘부처는 없다. 마음이 부처다. 마음속에 깨달아서 아는 성품이 붓다(불)이다.’라고 해요. 심각 왈불 그래요. 그렇게 봐버려요. 그리고 법(法)은 뭐냐? 우리는 법을 이렇게 봅니다.


부처님의 교법, 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해서 정토로 붓다로 인도하는 그 가르침을 법(다르마)이라고 합니다. 저들은(선불교) 마음속에 바를 정(正), 바른 마음을 법이라고 합니다. 또 스님은 선불교에서 올바른 이 개념 규정(청정)을 말해. 마음속에 청정한 그것이 있습니다. 


머리 깎고, 법복 입고한 이걸 이렇게 안 봐. 그런데 우리는 ‘선불교야! 그렇게 보지마라. 어찌 그렇게 옹졸하게 보느냐. 그것을 뛰어넘어 가라. 그렇게 해석하면 말이 안 돼. 10점 밖에 안줘. 뛰어 넘어가라.’

출처/2009.02.19.목(1.25)큰스님 춘천 법문중 발췌